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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제언] 북핵·북한문제 해결 ‘베트남 모델’서 해답 찾으라 

외적 강제에 의한 ‘체제전환’보다 점진적 변화에 의한 ‘체제진화’ 이끌어야… 북한 개혁·개방의 핵심 지렛대가 될 남북경제협력 사업의 재개 우선돼야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북한의 계속되는 핵과 미사일 실험을 계기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심상치 않다. 이에 더하여 전 세계는 바야흐로 자국 중심의 민족주의로 치닫고 있다. 그 와중에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이 위기를 벗어날 해법은 무엇인가?

▎베트남의 변화는 외적 강제에 의한 ‘체제전환’이 아니라 시장의 확대와 점진적 변화에 의거한 ‘체제진화’였다. 베트남 제일의 경제도시 호치민의 야경. / 사진제공·뉴시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3월 9일자 분석기사에 따르면 3월 6일 북한이 일본해를 향해 4발을 동시에 쏜 미사일은 단순한 테스트가 아니라 일본 내 미군기지를 핵 탑재 미사일로 타격하는 핵전쟁 가상 군사훈련이었다고 한다. 이는 같은 시기에 진행된 한·미 연합 독수리훈련 중 선제타격(Pre-emptive Strike)과 소위 김정은 참수작전을 포함하는 작계5015로 알려진 전쟁연습에 대응하는 것이었다는 분석이다.

북핵 문제는 지난해 1월부터 시작된 4, 5차의 연이은 핵실험과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submarine-launched ballistic missile)을 포함한 수십 차례의 미사일 발사로 확인되는 북한의 전례 없는 공격적 성향과, 미국 트럼프 정부의 매티스 국방장관 등 군사작전에 주저함이 없는 강경 성향이 언제 충돌할지 모르는 상황으로 진입하고 있다. 특히 4월 6일 미·중 정상회담의 북핵합의 결렬과 미국의 독자행동 경고는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까지 높이고 있다.

이 같은 한반도 정세 속에서 북한 핵문제의 근원을 북한 민족주의와 연관해 분석해보고, 미국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을 강성 대외정책의 뿌리인 경제민족주의(Economic Nationalism)와 연관해 분석하고자 한다. 현상적인 충돌 양상의 본질적 배경을 정확히 이해해야 그 해결책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핵은 북한민족주의의 핵심


▎북한은 이론적으로는 민족주의를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계급이론적 관점에서 비판하면서 주체사상에 기초한 민족운동을 내세우지만, 본질적으로는 민족주의를 핵심 이념으로 한다. 북한군을 사열하는 김정은 위원장.
먼저 북한이 왜 핵무기 개발에 집착하면서 2012년 개정헌법에서 핵무기 보유국가임을 천명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북한의 국가 통치이념은 주체사상이다. 주체사상의 사상적 기초를 세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1957년의 ‘반종파투쟁’이다. 북한의 조선노동당과 북한체제는 건국 과정에서 결정적 도움을 준 소련과 한국전쟁 시 체제 붕괴 위기를 구해준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의 심대한 영향을 받았다. 이에 김일성은 1957년 반종파투쟁을 통해 친중파인 연안파와 친소련주의자들인 소련파를 숙청하고 유일적 독재 체제를 구축한다. 이 투쟁 과정을 통해 사상에서 주체, 정치와 외교에서 자주, 경제에서 자립, 국방에서 자위라는 원칙을 세우게 된다. 이는 좌파민족주의 국가의 성립 과정으로 평가된다.

북한의 <주체철학사전>은 민족주의에 대해 ‘전 민족적 이익을 내세우면서 자기 민족 내의 부르조아지의 이해관계를 합리화하는 사상’이라고 정의한다. 대신 ‘민족운동’에 대해서는 민족의 자주성을 옹호하기 위한 투쟁, 즉 민족해방운동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계급 투쟁론적 역사관에 기반한 민족주의에 대한 이해다. 20세기의 민족주의는 선진자본주의 국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제국주의와 이에 대항한 제3세계 국가의 민족해방운동이라는 두 가지 큰 흐름으로 나뉜다. 그러나 21세기의 민족주의는 새로운 양상을 띤다.

1990년대 소련사회주의권의 붕괴와 함께 혼란을 겪던 러시아는 2000년 푸틴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대러시아 민족주의를 추구한다. 100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지고 있고, 국민 75% 정도가 신도인 러시아정교와 결합해 강력한 러시아 건설을 내세웠다.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정책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한 중국은 2002년 후진타오(胡錦濤)의 등장과 함께 동북공정(東北工程) 등 패권적 민족주의 경향을 보이다 2012년 시진핑(習近平) 체제에서는 중화민족주의라는 좀 더 이론화되고 적극화된 공세적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다. 또한 1990년대 이후 소위 잃어버린 20년이라는 경제침체기를 겪은 일본은 2012년 아베의 등장과 함께 ‘보통국가 건설’ 등 강경보수 민족주의적 정책을 앞세우고 있다.

이 같은 21세기 신민족주의 성향은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양상을 띠면서 분출되고 있다. 이는 중동지역 터키 에도르안의 투르크민족주의, 인도 모디 총리의 힌두민족주의의 득세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해의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EU 탈퇴) 사태를 통해 자유민주주의의 본고장 영국에서도 민족주의 성향이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었고, 급기야 미국에서 경제민족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정부의 등장과 함께 21세기 신민족주의의 다양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의 전례 없는 공격적 성향과 미국 트럼프 정부의 강경한 정책이 언제 충돌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지난 2월 방한한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오른쪽)이 국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경제민족주의와 중화민족주의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기성 정치인들을 기득권으로 공격하면서 승리를 이끌어냈다. 트럼프의 승리 배경에는 세계화 과정에서 소외된 백인 중산층과 노동자들의 분노를 조직한 경제민족주의가 있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도시인 티후아나에 밀입국 방지용 장벽이 도로를 따라 건설되고 있다.
21세기 신민족주의의 특징은 첫째, 경제적 국익의 증대를 앞세우는 경우가 많다. 경제민족주의를 앞세운 미국 트럼프 정부가 대표적이다. 둘째, 20세기 종족적 정체성에 기반한 패권적 민족주의 및 저항적 민족주의와는 구별된다. 대부분 근대국가의 틀과 연관된 문화적 정체성과 애국주의와 결합된 운동 또는 정책으로 표출된다. 물론 신민족주의 흐름 속에는 종족민족주의·인종주의 등의 부정적 요소가 섞여 있기도 하다.

북한의 경우 이론적으로는 민족주의를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계급이론적 관점에서 비판하면서 주체사상에 기초한 민족운동을 내세우지만, 본질적으로는 북한도 민족주의를 핵심 이념으로 한다. 김정일의 1986년 논문 ‘주체사상 교양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에서 제기된 ‘조선민족제일주의’가 상징적이다. 김정일은 나아가 김일성 사후 주체사상을 선군사상으로 발전시켰다. 이를 1998년 개정헌법부터 적용하고 국방위원회를 국가 최고권력기관으로 정립시켰다.

그런데 김정일이 제기한 선군사상의 핵심은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가’가 되는 것이라고 평가된다. 따라서 1990년대 말 북한은 국가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선군사상에 기초한 ‘핵무기 보유국가’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100만 명 내외의 아사사태를 겪으면서도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북한민족주의의 핵심은 북핵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기성 정치인들을 모두 기득권으로 공격하면서 승리를 이끌어냈다. 트럼프의 승리 배경에는 세계화 과정에서 소외된 백인 중산층과 노동자들의 분노를 조직한 경제민족주의가 있다. 트럼프의 핵심 참모 배넌은 자신을 경제민족주의자라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취임사에서 “세계 각국이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취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the understanding that it is the right of all nations to put their own interests first)”고 밝혔다. 이는 세계사적 흐름과 질서가 현실적으로 각국의 경제민족주의를 기반으로 바뀌어나갈 것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김정일은 주체사상을 선군사상으로 발전시켰다. 그런데 선군사상의 핵심은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가’가 되는 것이라고 평가된다. 사진은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선인민군 해군 제597연합부대에서 종합기동훈련을 시찰하는 모습.
급속한 세계화 과정에서 형성된 선진 자본주의 국가 내부의 양극화 문제, 중국의 부상 등 세계질서의 변동, 일부 실패 국가의 난민 문제와 테러 문제 등은 세계 곳곳에 민족주의 흐름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중국은 공산당 주도 아래 권위주의적이고 패권주의적인 민족주의 양상을 띠고 있다. 이는 반도체·철강·조선산업 등에 대한 정부보조금의 대폭 지원, 구글·카카오 등 해외 첨단업체의 중국시장 진입 차단, 최근 한국의 안보 차원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한 각종 경제보복조치 등에서 확인된다. 특히 2013년 시진핑 체제 등장 이후 군사적 차원의 공세로 확대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남중국해 인공섬 조성을 통해 태평양 지역 해양 헤게모니를 추구하는 것과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하기 위한 반접근지역거부(Anti Access Area Denial) 전략으로 사드 한국 배치를 반대한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중국이 미국 무역적자의 주범이고, 북핵문제에 대해서도 거의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트럼프의 전략가 배넌은 향후 수년 내에 미국과 중국 간의 전쟁이 불가피하다고까지 말한 바 있다.

이러한 미국 트럼프 정부의 경제민족주의와 중국 시진핑 정권의 중화민족주의 간의 충돌 가능성은 한반도 정세를 심각한 위기국면으로 몰아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세계대전은 그 충격이 워낙 커 전면충돌이 아닌 국지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충돌지역은 남중국해 또는 북핵문제를 세계적 핵심 이슈로 끌어올린 북한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주변 강대국의 세력변동 과정과 헤게모니 쟁탈전 과정에서 전쟁의 수렁으로 빠진 경우가 많았다. 16세기 일본의 부상과 임진왜란, 17세기 청나라의 부상과 병자호란, 19세기 일본과 청나라의 한반도 헤게모니 쟁탈을 위한 청일전쟁, 20세기 미·소 간의 새로운 세계질서 구축 과정에서 발생한 한국전쟁 등이 대표적이다. 이제 21세기에 중국의 부상과 함께 미·중 간의 새로운 세계질서 구축을 위한 치열한 경쟁이 한반도를 무대로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현 단계에서 그 경쟁의 이념적 무기는 미국 트럼프 정부의 경제민족주의와 중국 시진핑 정권의 중화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사야 벌린과 자유주의적 민족주의


▎트럼프의 경제민족주의와 시진핑의 중화민족주의 간 충돌은 동북아시아를 한국전쟁 이후 최대 위기국면으로 몰아가고 있다. 지난 4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만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20세기 최고의 자유주의 사상가 중 한 명으로 평가되는 이사야 벌린은 옥스퍼드 대학에서 마지막 박사학위 논문 지도를 야엘 타미르의 ‘자유주의적 민족주의’로 했다. 일반적으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극복하고 함께 공존할 수 있다는 이론적 시도를 한 것이다. 그 배경은 이사야 벌린과 논문 작성자인 야엘 타미르가 같은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자유주의자이지만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적, 현실적 조건을 깊이 고민해온 덕분이다. 이 논문에서 자유주의적 민족주의(Liberal Nationalism)의 핵심은 첫째, 다른 국가들의 자결권·주권·자율성 또는 그 밖의 것에 대한 집합적 이익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이라크민족주의자들은 쿠르드족에 의해,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의해 시험받는다고 분석한다. 둘째, 국가 구성원의 권리를 개별 국민 한 명 한 명의 권리로 인정해야 하고, 그 결과로 국가는 단 하나의 이익과 의지를 갖는 통합체로서 인식하지 않게 된다. 즉 다원성에 기반한 통합,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민족공동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자유주의적 민족주의는 포용적 민족주의(Inclusive Nationalism)와 시민 민족주의(Civic Nationalism) 개념을 포괄한다.

현실에서는 자유주의적 민족주의와 함께 전체주의적 민족주의(Totalitarian Nationalism)와 권위주의적 민족주의(Authoritarian Nationalism)가 존재한다. 소련의 스탈린 체제와 북한의 민족주의는 다른 민족에 대한 배타성과 개인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측면에서 전체주의적 민족주의라 할 수 있고, 시진핑의 중화민족주의와 푸틴의 대러시아 민족주의는 시장경제 등 일부 자유를 인정한다는 측면에서 권위주의적 민족주의라 할 수 있다. 특히 중국의 경우 티베트 문제, 동북공정 등에서 패권적 민족주의 성향을 나타내고 있다.

동북공정의 경우 1963년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 당시 총리는 고구려사를 왜곡하려는 정치인과 학자들에 대해 대국쇼비니즘으로 직접 비판한 적도 있다. 현재는 미국과 함께 세계 최대강국(G2)으로 등장하면서 이 같은 내부비판은 자취를 감춘 상태다. 또한 중국 내에서 개인의 자유와 관련한 여러 가지 인권문제도 존재한다.

트럼프의 경제민족주의의 경우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하지만 인종주의적 요소, 이슬람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 등을 고려할 때 권위주의적 민족주의와 자유주의적 민족주의의 중간쯤에 놓여있다고 평가된다. 아베의 국수주의 역시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하지만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과 제국주의 역사에 대한 불철저한 반성 등을 고려할 때 권위주의적 민족주의와 자유주의적 민족주의의 중간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독일의 나치 체제는 우파의 전체주의적 민족주의라 할 수 있다.


▎북한과 유사한 성향을 보여온 베트남은 1980년대 후반 이후 ‘도이모이’로 표현되는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해 1992년 개정헌법에 시장경제를 도입한다. 이후 베트남의 무역액은 급속도로 늘어났다. 베트남의 한 봉제공장.
한국의 경우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 등에 영향을 받은 1980년대 운동권세대를 중심으로 하여 좌파민족주의적 성향은 존재하지만 자유주의적 민족주의에 대한 논의와 흐름은 대단히 취약한 상태다. 박정희가 내세웠던 한국적민족주의는 우파에 기반한 권위주의적 민족주의로 평가된다. 일부 지식인의 탈 민족주의적 주장은 역사와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며,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조건과 분단 상황에서 민족 국가적 대응과 통일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희석시키는 잘못된 경향이다.

자유주의적 민족주의는 세계화(Globalization)에 대한 태도도 부정적이지 않다. 세계화는 인터넷과 정보화, 교통의 발달, 경제적 상호 의존성의 심화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추세다. 현실적으로 급속한 세계화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났고, 이에 대해 경제민족주의 또는 권위주의적 민족주의 성향의 지식인이나 정치인들의 세계화에 대한 비판이 점증되고 있는데, 이는 과도적 현상이다. 자유주의적 민족주의는 민족적 정체성에 기반해 민족공동체의 발전을 추구하면서도 세계화의 흐름, 인류의 과제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입장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동북아 지역에서는 북한의 전체주의적 민족주의와 그 핵심인 북핵을 매개로 북·미 간의 충돌 가능성이 증대되고 있다. 이에 더하여 트럼프의 경제민족주의와 시진핑의 중화민족주의 간 충돌은 동북아시아를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위기국면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러한 한반도 위기를 극복해 나갈 출발점은 자유주의적 민족주의에 기초한 동맹전략·외교전략을 지혜롭게 세우고, 나아가 북한의 변화를 합리적으로 이끌어내는 것이다.

세계에서 역사적으로 북한과 가장 비슷한 성향을 보여온 국가는 베트남이다. 북한은 일본제국주의와 투쟁했고, 20세기 최강대국 미국과 전쟁을 수행했으며, 사회주의 강대국들이었던 중국과 소련을 상대로 자주적 외교를 벌였다. 베트남은 프랑스제국주의·일본제국주의와 독립전쟁을 치렀고, 최 강대국 미국과 전쟁에서 승리했으며, 사회주의 대국 중국을 1979년 국지전 끝에 격퇴하기도 했다. 그 결과 두 국가 모두 고립의 길을 걷게 된다.

한·미 합작으로 ‘베트남 모델’ 적용해야


▎북한의 전체주의적 민족주의 체제를 베트남식 권위주의적 민족주의 체제로 변화시키려면 북한 개혁·개방의 핵심적 지렛대가 될 남북경제협력 사업이 매우 중요하다. 2016년 4월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전면중단 결정에 따라 개성공단의 생산물품을 실은 트럭이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귀환하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은 1980년대 후반 이후 ‘도이모이’로 표현되는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해 1992년 개정헌법에 시장경제를 도입한다. 이후 1995년 미국과 국교정상화를 배경으로 베트남의 무역액은 경제제재 시기 이전보다 4배 이상 증가하게 된다.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2007년 이후 대외무역 액은 1063억 달러로 미국의 경제제재 시기에 비교하면 19배로 증가했다. 이 과정은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정상화 이후 베트남의 변화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변화는 외적 강제에 의한 ‘체제전환(Regime Change)’이 아니라 시장의 확대와 점진적 변화에 의거한 ‘체제진화(Regime Evolution)’였다.

현재 베트남은 동남아에서 미국과 가장 협력적인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로 손꼽힌다. 베트남은 공산당 일당이 독재하는 체제지만 시장경제의 자유 등이 보장되는 권위주의적 민족주의 국가라 할 수 있으며, 미국·한국 등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많은 우호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북한은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2014년 ‘5·30조치’까지 우여곡절을 거치지만 시장의 허용이 조금씩 확대돼왔다. 식량난의 해결은 북한 노동당의 역할이나 한국 또는 중국의 지원이 아닌 시장을 통해 북한 주민 스스로 극복했다. 북한에서는 시장의 확대 과정에서 주민과 당 간부들 내에서 시장의 필요성, 개혁·개방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이를 확대시키려는 세력들이 성장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따라서 북한은 전체주의적 민족주의 체제에서 시장의 부분적 확산과 함께 좌파의 권위주의적 민족주의 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은 위의 베트남 모델을 잘 연구해 북한의 개혁·개방에 기반한 선진화(Regime Evolution)를 어떻게 이루어낼지에 대한 구체적 전략을 세워야 한다. 한·미 간 협력으로 북한의 선진화(산업화와 부분적 민주화를 결합한 ‘베트남식 모델’)를 이끌어내 북한의 전체주의적 민족주의 체제를 베트남식 권위주의적 민족주의 체제로 변화시켜야 한다.

이 정책이 실현된다면 베트남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북·미 관계도 우호적으로 변화할 것이고, 북핵 문제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 개혁개방의 핵심적 지렛대가 될 남북경제협력 사업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북핵과 연관된 유엔과 미국의 제재를 해결해야 한다. 따라서 남북경제협력 사업의 재개 및 확대를 위해서는 한국이 미국과 함께 공동의 전략으로 북핵·북한 문제를 해결해나간다는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합의안을 만들 때 ‘베트남 모델’은 대단히 효과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북한을 시장경제를 수용하는 권위주의적 민족주의 체제인 ‘베트남 모델’로 변화시킬 수 있다면 한반도의 평화통일 가능성은 대단히 높아질 것이다.

구해우 - 1964년생,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북한의 개혁개방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민화협 청년위원장, SK텔레콤 북한담당 상무,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객원연구원, 미래전략연구원 초대 이사장 및 5기 원장, 중앙대 북한개발협력학과 겸임교수, 국가정보원 북한담당기획관(1급) 등을 역임했으며, 통일 문제 연구와 실천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이다. 저서로 <김정은 체제와 북한의 개혁개방> <통일 선진국의 전략을 묻다>가 있다.

201706호 (2017.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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