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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북핵 해결의 ‘마지막 카드’ 러시아 

푸틴이 북핵 결자해지 가능! 

박종수 전(前) 러시아공사
러, 북한 중공업 리모델링, 철도 현대화, 가스 공급 등 지렛대 보유… 블라디보스토크를 강대국 재건의 전초기지로 활용하려는 푸틴의 제2표트르 대제 야망에 주목해야

▎블라디보스토크는 새롭게 열릴 북극항로의 시대를 맞아 극동 경제 중심지로의 웅비를 꿈꾼다.
북한 핵문제의 끝이 안 보인다. 이제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질서를 뒤흔드는 뜨거운 감자가 됐다. 미국의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동해안에 항공모함을 발진시키면서 대규모 무력시위를 전개한다. 북한의 김정은은 이를 조롱이나 하듯이 연일 미사일 폭죽놀이를 즐기고 있다. 스트롱맨 트럼프의 강경 입장에 초강성 김정은이 초강경으로 맞서고 있다. 북한은 2006년 10월부터 약 10년 간 5차례의 핵실험을 실시했고 수차례에 걸쳐 다양한 종류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핵 논란은 1992년 1차 북핵위기 이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미국의 강경책은 먼산의 메아리처럼 공허할 뿐이다. 오히려 김정은의 근육질과 내구력만 키워준 셈이다. 단적으로 서방의 대북 핵개발 저지는 실패했다. 이제까지 우리 정부는 북핵 문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관자적 태도를 보여왔다. 북측과 직접 담판하기보다는 미국에 의지하려는 안이한 자세로 일관했다.

1차 위기 때 미 클린턴 정부는 4자회담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막대한 경수로 건설비만 한국에 지우고 무위로 끝났다. 부시 행정부는 9·11사태 후 아프간·이라크에 이어 북한을 ‘악의 축’으로 응징하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2003년 2차 위기 때도 6자회담을 통한 해결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2005년 9월 미국은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의 북한 계좌를 동결시켰고 백기 투항할 줄 알았던 김정일은 오히려 거세게 반발했다. 결국 2008년 3월 동결 계좌를 해제해야만 했다.

마침내 북한은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그 후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정책’은 근본적인 처방책을 강구하지 못한 채 허송세월만 했다. 오히려 북한은 3대 세습체제를 안착시켰고, 김정은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직접 진두지휘하면서 핵의 경량화와 고도화에 매진해왔다. 이대로라면, 트럼프 정부에서도 기대할 만한 진전은 없을 것 같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근본적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남북한 당사자간 직거래에 실패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분단 70여 년간 남북한은 정권유지 차원의 적대적 공생 관계를 유지하기도 하고, 때로는 민족통일의 장밋빛 비전을 공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한 정권은 보수와 진보를 교차하면서 당리당략에 집착했고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갖지 못했다. 둘째, 지나치게 미국에만 의존해 왔다. 6·25 종전 후 현재까지도 ‘구원자 미국’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새 우방인 중국·러시아의 존재를 애써 외면해왔다. 셋째, 북핵 지원국인 러시아의 역할을 과소평가했다. 러시아는 북한의 핵개발 전모를 알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방임한 죄책감도 있다. 대화에 의한 평화적 해결을 일관되게 주장해 온 배경일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러시아의 진정성을 외면해온 측면이 있다.

북핵 개발을 방임한 러시아의 죄책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15년 동방경제포럼에서 극동 개발 의지를 공식화했다. / 사진캡처·얀덱스
이제 북한은 미국의 본토를 직접 위협하지 않으면서도 남한을 타격하는 중·단거리 미사일을 실전배치해 한·미 간 갈등을 유발하는 전략을 구사하면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과 핵탄두 경량화에 주력할 것이다. 소련이 1950년대 NATO 동맹국들을 인질로 삼아 미국의 선제공격을 막고 시간을 벌면서 ICBM 전략핵무기를 개발했던 사례를 답습할 수 있다. 전문가들의 견해가 다소 엇갈리지만, 북한은 2020년까지 핵탄두 30~40기와 미국 본토 도달의 ICBM을 보유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간이 경과할수록 우리의 선택지는 제한될 것이다.

요컨대 북핵 문제, 한·미동맹 및 과도한 대(對)중국 경제의존도는 오늘날 오히려 한국 외교의 3대 부담요소가 되고 있다. 북핵 문제는 서방의 임상실험 및 시행착오 대상으로 내버려 둘 수 없다. 북핵 해결 없이 통일을 기대할 수 없고 분단 상태에서 한국의 성장 동력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한·미동맹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환상에서 벗어나 홀로서기의 안보관 정립이 시급하다. 지나친 대중 무역 편중은 득 못지않게 실이 많다. 중국으로부터 사드 보복을 당하면서 터득한 교훈이다. 무역의 다변화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 난제를 놓고 고민하는 대한민국은 그 해답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이제 가용할 수 있는 외교 자산은 러시아 카드를 남겨두고 있다.

왜 러시아인가?

첫째, 러시아는 북핵 지원국으로서 결자해지해야 한다. 북한의 핵개발사는 정권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그 뒤에는 러시아가 있다. 러시아는 정권 초기부터 핵개발을 위한 이론·기술·인원·시설·재료 일체를 지원했다. 1946년 김일성대학 설립 때 핵의 이론적 기초를 다지는 물리수학부를 최초로 개설했다. 북·러 간 과학협력이 중단된 1990년까지 북한의 핵 전문가 250여 명이 두브나핵연구소를 거쳐갔다. 러시아는 1956년 북한과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협력협정’을 체결하고 1980년대 영변에만 100여 개의 핵시설 건설을 지원했다. 또한 핵무기 운영 전술과 전략을 북한군 장교들에게 전수했다. 다만 핵탄두 개발에 대한 직접적인 기술지원은 차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무기급 핵물질을 획득하기 위해 이중 용도의 흑연원자로를 이용함으로써 핵프로그램을 군사적으로 전용하는 데 성공했다.

북한은 소련 붕괴의 혼란기를 틈타 핵·미사일 장비와 기술을 불법적으로 반입해갔다. 1차핵실험 직전까지도 러시아 핵 전문가들이 음양으로 북한의 핵개발에 관여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내전사태를 역이용하는 정황도 포착됐다. 이렇듯 러시아는 자국의 의지와 무관하게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전폭적으로 지원한 셈이다. 이젠 결자해지해야 한다. 러시아 지원 없는 북핵 프로그램이 불가능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러시아 중재 없는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

시베리아, 제2의 후쿠시마로 전락할까


▎나진-하산 프로젝트로 주목받기 시작한 북한 나진항 제3부두. / 사진캡처·얀덱스
둘째, 러시아도 북핵의 피해 대상국으로서 긴장하고 있다.

러시아와 북한은 국경선 39.1㎞로 접하고 있다. 북·중 국경선 1360㎞에 비하면 매우 짧지만, 국경선 길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국경 너머의 광활한 극동 시베리아 땅과 풍부한 수산자원의 태평양 연안이다. 이 청정지역이 제2의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로 전락하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 러시아는 이미 체르노빌사태를 통해 핵 오염의 참혹상을 경험했다. 후쿠시마 재앙의 후유증도 지켜보고 있다. 그래서 북한이 핵실험을 자행할 때마다 러시아는 접경지역 연해주의 방사능 오염수치를 측정하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2014년 12월 나진-하산 프로젝트 시범사업에 따라 경북 포항만에 정박한 시베리아산 석탄 화물선.
러시아 해외정보부(SVR)는 이미 1993년 백서를 통해 북한의 핵·미사일 보유 가능성을 경고했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 4자회담이 출범했지만, 북핵 지원국인 러시아 없는 회담은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했다. 2차 북핵 위기 극복을 위한 6자회담 출범 때도 대동소이했다. 회담직전에 러시아는 ‘일괄타결안’을 제시했다. 즉 북한의 완전한 핵개발 포기와 서방의 대북 안전보장 및 경제적 지원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제안은 북한 김정일의 동의를 얻었고 한국 정부의 대북 햇볕정책과도 부합되는 현실적인 방안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의 ‘선(先) 핵개발 포기, 후(後) 경제지원’만을 고집했고 중국과 한국은 미국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결국 북한은 2006년 10월 9일 핵실험을 단행했다. 러시아 이바노프 국방장관은 ‘북한의 9번째 핵보유국’을 인정하면서 향후 핵탄두의 경량화·다양화를 경고했다. 어느 나라보다도 북핵 해법을 잘 알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답답할 노릇이다. 그 후 10년이 경과하면서 러시아의 예측대로 진행되고 있다.

셋째, 러시아는 북한의 핵문제 해결과 개혁·개방을 원하며 액션플랜도 가동 중이다. 북한 산업의 근간은 구소련의 지원 아래 건설된 70여 개의 중공업 시설이다. 이 시설은 노후화되어 러시아의 지원 없이는 정상가동이 불가능하다. 지난 4반 세기를 거치면서 북한의 대중국 교역이 70%를 차지하는데도 경제 회생이 안 되는 이유다. 한편 북·러 간 최대 걸림돌이었던 110억 달러 경협차관은 2012년 ‘90% 탕감, 10% 경협기금’에 합의함으로써 협력의 물꼬를 텄다. 최우선 사업이 북한의 철도 개·보수다. 이 프로젝트는 북한의 개혁·개방을 위한 지렛대다. 왜냐하면 철도는 인구 밀집지대를 통과하기 때문이다. 푸틴과 김정일은 2001년 8월 모스크바 정상회담 때 철도 개보수 및 TSR-TKR 연결에 합의했다. 그 후 북·러 간에는 4차에 걸친 북한 철도 정밀실사(2001~2003년)와 나진-하산 구간 개통(2012년) 등 성과가 있었다. 이어 2014년부터 북한 철도 현대화에 착수함으로써 비록 완만하지만 양국 간 합의는 이행돼왔다.

극동러시아 투자 진출에 혈안이 된 중국


▎블라디보스토크항에 정박한 북한 선적 만경봉호. / 사진캡처·얀덱스
또한 러시아의 잉여 전력 송전 및 가스관 북한 통과 문제도 심도 있게 논의해왔다. 가스관 사업은 이명박 정부 때 남북한·러 3각 협력으로 추진했으나 무산됐다. 전력망 연계사업은 최근 초고압직류송전(HVDC) 기술의 상용화로 전망이 밝다. 러시아는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 직전까지 극동-나진 간 송전망 연결사업을 전면적이고 체계적으로 검토했다. 심지어 러시아 기업은 적극적인 개성공단 진출을 검토 중이었다. 우리 정부의 일방적인 나진-하산사업 중단선언이 없었다면 지금쯤 어느 정도 진전되었을 것이다. 철도·송전·PNG(파이프라인가스)망 등 3통사업에 대한 러시아 의지를 북한의 핵문제 해결 및 개혁·개방으로 유도하는 우리 정부의 지혜가 요망된다.

넷째, 러시아 극동은 역사적·지리적으로 한민족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극동지역은 우리 민족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조선 후반기에 함경도에 기근이 들면 월경해서 농사를 지어 굶주림을 면했던 곳이 연해주 땅이다. 처음에는 계절농사를 짓다가 186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이주해 정착했다. 구한말 서세동점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종은 375일간 아관파천을 통해 외교적 숨 고르기를 했고 이어 연해주 크라스키노에 망명정부를 수립하려고 했다. 선조들이 일제병탄을 전후해서 항일 독립운동의 의지를 다졌던 곳도 바로 극동 시베리아 땅이다.

노태우 정부는 88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발판으로 철의 장막으로 뛰어들었다.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중국과 수교함으로써 국가발전의 지평을 대륙으로 넓힌 셈이다. 하지만 북한을 고립·포위·압박한다는 묵시적 목표에 너무 의존함으로써 개혁·개방을 유도하지 못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의 개혁·개방에 진력했으나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중단되고 말았다. 기회의 땅 극동시베리아는 다시 한 번 한민족의 외연을 북방으로 확장시킬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마냥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인가?

다섯째, 푸틴은 주요국 정상들과 전례 없는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의 시진핑과는 사회주의 동맹국 지도자로서 전통적인 우의를 다져왔다. 중국은 현재 극동러시아 투자 진출에 혈안이 돼있다. 러시아와의 불평등 계약을 감수하고 러시아 공안당국에 의한 ‘묻지마! 추방’도 개의치 않는다. 중국에 태평양·동남아 진출의 출구는 러시아 땅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

일본은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대러 경제제재를 함께 주도해야 할 입장이었다. 북방 4도의 반환문제는 2차대전 후 70년이 지났는데도 답보상태다. 그런데도 아베는 전례 없는 대규모의 대러 투자(2016년 말 약 3조원)에 합의했다. 후쿠시마 원전사태 후 최대 현안은 청정지역의 농산물·수산물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충족시켜줄 나라가 러시아다.

미국의 트럼프는 신정부 출범 전부터 여론의 몰매를 맞으면서도 푸틴과의 브로맨스 관계를 유지해왔다. 사실 미국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복속에 대한 보복조치로 서방의 대러 경제제재를 주도했다. 그런데도 러시아의 전략적 가치를 중시하는 것이 미국의 기본입장이다. 중국을 견제하는 카드로 러시아를 활용할 의도도 감추지 않고 있다. 또한 푸틴은 북한의 김정은 정권과도 원만한 관계다. 두 정상에게는 미국으로부터 경제제재를 당하고 있는 동병상련의 공통분모도 있다. 우리는 러시아가 갖고 있는 주요국과의 우호관계를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외교적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푸틴의 ‘아시아를 향한 창’ 극동 개발 승부수


▎매혹적인 자태를 자랑하는 블라디보스토크항의 야경. / 사진캡처·얀덱스
극동시베리아는 남한 면적의 70배에 달하는 광활한 땅이다. 자원의 보고이지만 개발가치가 별로 없고 인구도 600만 명밖에 안 되는 영구동토였다. 그런데 이 쓸모 없는 땅이 21세기 벽두부터 전 세계인의 이목을 모으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시베리아 동토가 해빙되면서 자원개발과 함께 최적의 거주 환경으로 변하고 있다. 게다가 북극항로가 연중 개방되면서 물류혁명을 예고한다.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유라시아 대륙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극동시베리아가 그 중심에 있다.

러시아는 2012년 푸틴 3기 출범과 함께 블라디보스토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의 성공적 개최 후 신동방 정책을 표방하며 이를 전담할 ‘극동개발부’를 신설했다. 푸틴의 신동방정책은 18세기 초 표트르 대제의 서구화 정책과 20세기 미국의 아태 진출 전략과도 일맥상통한다. 표트르 대제가 최서단에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해 서구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소위 ‘유럽을 향한 창’으로 활용했고, 미국이 최서부에 LA를 건설해 동아시아를 향해 국력 팽창을 모색했다. 푸틴도 최동단 블라디보스토크를 강대국 재건의 전초기지로서 ‘아시아를 향한 창’으로 만들고자 한다.

푸틴 정부는 2015년부터 매년 개최하는 동방경제포럼(EEF)을 플랫폼으로 삼고, 일종의 경제특구로서 15개의 ‘선도개발구역’과 극동 연안 15개 항구를 ‘자유항’으로 지정하고 토지를 무상으로 공급하는 극동헥타르법을 제정했다. 국내외 투자자에게 토지 이용, 인허가 절차, 각종 세제 등에서 파격적인 특혜를 제공한다. 이처럼 러시아가 역내에서 핵심적인 지정학적 행위자로 부상하고자 동원하는 경제적 지렛대는 한국의 존립과 국가 번영에 필수불가결한 에너지·철도·전력·광물·식량 등 전략재다.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이 우리의 국익과 부합하는 것으로 판단될 때에는 주저 없이 공명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한·러 수교 후 27년 만에 주어진 호기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러시아는 호혜적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 러시아의 자원·첨단기술과 한국의 자본·기술 상용화가 결합될 때 시너지효과가 적지 않다. 거기에 북한의 저렴하고 우수한 노동력이 가미되면 금상첨화다. 그래서 러시아는 남북한-러 3각 협력사업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면서 우선 실현가능한 프로젝트부터 착수하자는 입장이다. 나진-하산 프로젝트가 그 대표적인 것이다. 북한 철도 개·보수, 송전망·가스관 북한 통과 및 북핵·미사일 해결을 통해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고 한반도 비핵화·평화를 정착한다는 러시아의 로드맵을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에 활용해야 한다. 이를 위한 여러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첫째, 북·러 국경 인접지역에 ‘제2개성공단’을 조성한다. 이 프로젝트는 한국의 영토적 제약 및 자원 부재 등 한계 극복에 도움이 되고, 통일 후 대량 탈북난민 수용에도 활용할 수 있다. 또한 개성공단·금강산 관광의 사례와는 달리 남북한 직거래에 따른 불확실성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향후 우리 정부의 대북관계를 경제와 안보를 분리, 추진함으로써 경협의 영속성과 안정성도 도모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국제적 관심 지역인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 지역을 선점함으로써 이 지역 진출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주변국에 대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또한 역사적으로 중·일·러 간 주도권 경쟁이 치열한 이 지역을 평화·공동번영의 장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러시아 측의 후보지와 전기·수도·가스 등 인프라, 북·러 간 노동협정에 기초한 북한 측의 노동력, 우리 측의 자본과 기술 등 3각 협력 방식으로 우선 추진하되, 장기적으로 GTI 회원국이 참여하는 국제 평화지대로 확대·발전시킨다.

둘째, 남북·러 3국간 3통사업을 추진한다. 3통사업(철도망, 송전망, PNG망)은 러시아의 극동정책과 대한반도 정책을 투사하는 통로이자 한국의 경제 건설과 대륙 진출의 출로이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에 대한 참여는 단순히 경제적인 편익 제고를 위한 개별 인프라 사업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지전략적·지경학적 국익 증대 차원에서 포괄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3통사업은 모두 북한의 동의와 참여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한계도 있지만, 반대로 이를 지렛대로 삼아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할 수 있다. 이 사업들은 인내심을 갖고 주도면밀하게 추진하면 북핵 해결 및 북한의 개혁·개방을 견인할 수 있다.

한·러 정상합의 전담기구의 필요성


▎2016년 한·일·러 정상이 참석한 가운데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
셋째, 권역별 경제블록의 소다자(小多者) 협력체제를 구축한다. ‘2선 3점’의 권역별 경제블록을 구축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북한 영토를 중심으로 동·서 2선과 각 선을 주축으로 권역별 경제블록 3개를 획정한다. 서선은 중국의 황금평·위화도 특구이고, 동선은 중·러·일의 나선경제와 원산경제 특구다. 남북·중의 황해권과 남북·러·일의 환동해권 및 다자국 GTI 두만강권역을 설정할 수 있다. 한·중·러는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만주·서해 간 해저터널을 통해 중국·한국에 공급하는 방식의 에너지 협력이 가능하다. 한·러·일은 연해주와 동해, 일본 관서해안을 각각 연계해 북극항로를 공동 개발할 수 있다. 미·중 협력과 경쟁이 교차하는 동북아 세력 가운데 러시아와 일본, 그리고 북한을 포함하는 다양한 소다자 협력을 강화하는 전략은 북한과의 직·간접적 관계 개선의 채널로 활용될 수 있다. 또 미·중 사이에 위치한 동북아 중간국들이 협력 기반을 강화해 역내 세력균형 및 안정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대통령 직속의 북방경제통합위원회(가칭) 설치도 검토해 볼 만하다. 1990년 한·러 수교 이후 수차례의 정상회담이 개최됐다. 양국은 모스크바 무역센터 건설, 나홋카 전용공단 조성, 이르쿠츠크 가스전 개발, 캄차카 해상유전 개발, 자루비노 항만 건설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수십 건의 계약 또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상 간 합의는 국내 언론에 보도되자마자 제 수명을 다했고, 다음 정상회담 때 원점에서 검토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근본적인 원인은 정상간 합의사항을 총괄하는 전담기구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4일 송영길 특사의 푸틴 대통령 면담은 당초 예정된 20분을 넘겨 45분간 진행됐다. 푸틴의 한국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푸틴은 양국 간 경협 전담기구 설치를 누누이 강조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송 특사의 귀국 보고를 받고 북방경제통합위원회 설치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대통령의 올바른 인식이요, 판단이다. 일본의 아베가 중앙부처 수준의 전담창구를 개설한 것을 벤치마킹할 수 있다. 역대 정권이 늘 그래왔듯이 단순히 언어적 유희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만약 새 정부가 북방정책 추진의 기회를 실기한다면 북한은 가까운 장래에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의 지위를 확보할 것이다. 북핵·미사일 중단을 위한, 북한의 개혁·개방을 위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절호의 카드를 방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핵을 보유하지 않은 나라는 핵을 가진 국가에 대들다 죽거나 항복하는 것밖에 없다”는 국제정치학자 한스 모겐스의 지적을 새삼 상기해본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미래 자화상이라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박종수 - 서강대 정외과 졸업 후 러시아 국립상트페테르부르크대 대학원 석·박사(경제학) 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교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주러 한국대사관 공사를 거쳐 (사)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정책위원, 사단법인 GEPI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러시아와 한국: 잃어버린 백 년의 기억을 찾아> <북한과 러시아: 신화, 비화 그리고 진화> <북방에서 길을 찾다>(공저,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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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호 (2017.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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