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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획] 이스라엘에서 새 정부의 안보 모델을 찾다 

생존의 절박함, 철통방어 높였다! 

이스라엘 =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아이디어로 다층방어체계 촘촘히...천 년을 넘도록 일상화된 전쟁과 테러에 자주방위 의지 다져

대한민국 새 정부는 ‘킬 체인’과 함께 KAMD(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 조기구축에 한 발 더 다가섰다. 후보 시절 ‘강한 안보’를 주장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5월 15일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과 관련해 KAMD 조기구축을 지시하기도 했다. 자주국방이 다시 기로에 섰다. 북핵 미사일 위협은 높아졌고, 사드의 한반도 배치 논란 등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한편, 영토 면적이 겨우 경상북도만한 이스라엘은 방위산업의 강국으로 불린다. 전 세계 방위산업 기술 3위, 인구 대비 나스닥에 상장된 벤처업체 수가 최다인 이스라엘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무장단체의 테러가 바로 옆 상점에서 일어나고, 도심에서 미사일 요격 장면을 구경하고, 대부분의 청년이 군 복무를 이행하려 하는 안보강국. 약 2000년을 영토 없이 떠돌아다니다 처참한 민족 대학살까지 맞아야 했던 비극의 나라는 지금 우뚝 솟은 바위처럼 강하다. 대한민국의 새 정부 안보정책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고자 6월 4일부터 7박 9일간 이스라엘을 탐방했다.


▎이스라엘은 생존에 대한 절박함을 되새기며 국방의 의지를 다진다. 유대인 저항군의 최후 요새였던 마사다는 비극을 기억하는 이스라엘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역사 현장이다.
Part 1. ISDEF(국제방산전시회) | 실전보다 더 실전 같은 군사 시뮬레이션 각축장

#1. 여기저기서 연기가 치솟고 적의 폭격을 피해 몸을 급히 숨긴다. 거침없이 날아드는 포탄에 피 흘리는 부상병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병사의 팔이 잘려져 나가고, 떨어진 살점에선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군인들은 부상병을 빠르게 응급 처치하고 적진을 향해 필살의 공격을 가한다.

영화가 아니다. 각종 시나리오에 맞춰 실제와 가까운 현장을 재현한 전투 군인들을 위한 훈련 시뮬레이션이다. 2년 전 ‘익스트림 시뮬레이션(Extreme simulation)’을 설립한 오리엘 헤르만 대표는 “실전에 가장 가까운 시뮬레이션으로 훈련과 실전의 간극을 좁히는 게 목표”라며 “상처의 깊이에 따라 출혈이나 부상의 정도도 컴퓨터로 다 조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양한 가상 상황을 연출해 실전 대처능력을 높이는 게 방어의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헤르만 대표는 “사실 저기 머리가 잘린 병사 인형은 우리 직원의 얼굴을 본 땄고 여기 묻은 피는 설탕이다”라며 웃었다.

#2. “탕 탕 탕”


▎이스라엘 최대 국제방산전시회 ISDEF. 2년에 한 번씩 열린다.
“85%, 90% 조준했습니다.”

“방향 각도를 조정하십시오.”

‘타게타이즈 에임 센서(Targetize Aim sensor)’는 총을 잡는 자세까지도 교정해주는 훈련용 애플리케이션(앱)이다. ‘테라세이프(TERRASAFE)’ 업체의 이 제품은 잘못 조준된 사격포인트까지 세분화해 실시간으로 분석해주고, 발사 횟수와 조준의 정확도를 높였다. 제품은 주사위만한 센서 하나다. 블루투스 기능으로 앱에 연결만 하면 된다. 센서도 140달러로 저렴한 편이다.

#3. 헤드셋을 착용하고 총을 들자 화면에서는 뇌파를 읽기 시작했다. 뇌의 신경계 활동을 인식할 수 있는 장비다. 타깃을 향해 조준을 하고 있으면 뇌파의 진동폭이 커지기 시작한다. 조준 영역에 가까워질 때 즈음, 장비에선 ‘딩딩딩’ 알람이 울린다. 그때 방아쇠를 당기면 명중률이 훨씬 더 높아진다. 오퍼 리드스키 대표는 “사격을 하기에 최적의 뇌파음이 탐지될 때 방아쇠를 당기는 훈련 시뮬레이션으로 실전에서 판단 능력과 집중력을 높여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6월 6일(현지시간) 텔아비브에서 열린 이스라엘 국제방산 전시회 ISDEF(International Defense and Security Exhibition)의 열기는 대단했다. 6일부터 8일까지 3일간 열린 ISDEF는 전 세계 300여 개 방산업체가 모일 뿐 아니라 약 1만5000명이 참가하는 이스라엘 최대 방산전시회다. 사이버 보안, 수색 조난, 장거리통신시스템, 전술 군수지원, 차량 보호 기술, 에너지 절약 기술 등 세계의 다양한 방산업체를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방산전시회에 참가한 업체 관계자들은 대부분 ‘실전경험’을 강조했다. 군에서의 경험이나 특기를 살려 창업하고, 전문화하는 방식이다. ‘세인트프로(SAINTPRO)’ 대표는 14년 군복무를 한 경험을 살려 제품을 개발했다. 그는 “부상병들을 돕는 끈”이라며 시범을 보였다. 언뜻 보면 기다란 노끈이지만 활용도는 매우 뛰어나다. 끈을 어깨와 허리에 메고 병사한 명을 빠른 시간 안에 구출할 수 있는 간단한 아이템이다. 그는 “실전에서 내게 가장 중요했던 건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다”며 “당시에도 아군 부상병을 가장 빠르게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를 고민하다가 개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총을 잡는 자세까지 교정해주는 훈련용 애플리케이션 ‘타게타이즈 에임 센서(Targetize Aim sensor)’.
이스라엘에서는 크고 작은 전투가 많다 보니 업체들은 공격무기뿐 아니라 실전에서 자주 활용할 수 있는 ‘틈새시장’ 아이템을 개발했다. 전시장 자체의 규모가 큰 것도 화려한 것도 아니지만 제품들은 마치 ‘콜럼버스의 달걀’과도 같았다. “아, 왜 이 생각을 못했지?”라며 무릎을 칠 만한 아이디어들로 가득했다. 무인기를 재밍(jamming) 해 교란시키는 소총, 화생방호복에 정화통 세 개를 등 뒤에 연결하는 방식 등 일반적이지만 활용성이 뛰어난 제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이스라엘 방산업체의 아이디어에 전 세계에서 온 참가자들도 혀를 내두른다. 스웨덴에서 온 한 관람객은 제품을 이리저리 만져보며 “정말 멋지다!”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ISDEF에 동행한 부승찬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이스라엘은 다른 국가들이 따라올 수 없는 아이디어를 무기체계에 접목하는 기술이 빼어난 것 같다”며 “수출을 기반으로 하는 이스라엘 방위산업이 발전한 이유를 알겠다”며 극찬했다.

Part 2. 세계최초 방공무기체계 완성 | 미사일 막는 신(神)의 무기 ‘아이언 돔’ 개발사, 라파엘을 가다


▎300여 개 업체가 참가한 ISDEF 전시회에는 3일간 1만5000여 명의 관람자가 몰렸다.
“한반도 방어에 사드 체계는 맞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방산업체 라파엘사에서 30년 가까이 엔지니어로 일한 아리 셰셔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방어를 위한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효용성에 대해 고개를 저었다. 그는 “기술자로 봤을 때 한반도와 같이 종심 거리가 짧은 곳에서 사드는 유용하지 않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북한에서 공격을 시도한다면 그 원점은 북쪽 국경 지역 아니라 내륙의 어느 한 지점이 될 것입니다. 또 타깃이 되는 남한의 주요 시설도 중부 이북에 있으니 (미사일이) 휴전선을 넘어 들어올 때 실질적인 공격거리는 50~60㎞ 정도입니다. 그런 미사일이 발사된다면 실제 공중에 있는 시간은 2.5분 정도죠. 그때 사드가 발견하더라도 사드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라파엘사의 ‘데이비드 슬링’도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최근 이스라엘은 세계 최초로 다층 미사일 방어체계를 완성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전장환경과 위협을 철저히 분석해 자국 지형에 적합한 방식으로 무기체계를 개발하고 실전 배치해 위협에 대처하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의 3단계 미사일 방어 시스템이 좋은 예다. 이스라엘은 고도 100㎞에서 미사일을 막는 애로우3, 고도 30~50㎞구간의 데이비드 슬링, 4~7㎞ 구간에서 막는 아이언돔의 3중 방어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다층 미사일 방어 시스템은 예루살렘과 텔아비브 등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설치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시스템을 개량해 국토 전역에 대한 다층 방공망 구축을 준비하고 있다. 다층 요격 시스템이 완성된 이후 이스라엘은 주변국의 로켓 공격으로부터 한 명도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언돔’과 ‘데이비드 슬링’을 만든 라파엘(Rafael)사는 다층 미사일 방어체계를 층층이 쌓아 올린 주역이다. 6월 5일(현지시간) 라파엘사를 통과하는 검문도 까다로웠다. 깊은 산 기슭에 위치한 이곳은 3중 검문소를 거치고 카메라와 녹음장치를 다 가리고 나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아이언 돔(Iron Dome)은 문자 그대로 이스라엘 하늘 전체를 둘러싼 ‘강철 지붕’이다. 라파엘사와 IAI의 산하 엘타사가 만든 아이언 돔은 최대 70㎞의 사거리를 가진 ‘타미르’ 미사일을 사용해 적의 단거리 지대지 탄도탄과 포탄, 박격포탄, 방사포탄 등을 요격한다.

“사드, 한반도 아닌 일본 배치가 더 효과적”


▎라파엘사가 저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아이언돔’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아이언 돔을 만들게 된 배경은 2006년 7월 이스라엘-레바논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 당시 헤즈볼라 측이 쏜 4000여 발의 박격포, 무유도 로켓탄으로 인해 민간인 피해가 막대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2009년 7월 시스템 개발을 완료해 실전 배치했다. 무엇보다 아이언돔의 요격률은 90%에 달한다.

아이언 돔보다 더 높은 고도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건 ‘데이비드 슬링(David’s sling, 다윗의 돌팔매)’이다. 올해 4월 실전 배치된 데이비드 슬링은 헤즈볼라(Hezbollah)에서 쏘는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비드 슬링은 라파엘이 레이시온과 공동 개발했다.

현재 한국에 배치된 사드와 비교되는 이스라엘 요격체계가 ‘애로우(Arrow·화살)’다. 애로우는 ‘이스라엘제 사드’라고도 불린다. 대기권 밖 탄도미사일 요격이 가능하다. 미국 정부의 지원과 미 보잉사와의 기술 협력을 바탕으로 IAI사가 10년 동안 20억 달러를 들여 만들어냈다. 이스라엘은 올해 3월 예루살렘 북부에 설치한 애로우를 실전에서 사용하기도 했다. 1990년대 말부터 배치된 애로우가 실전에 쓰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이언돔과 데이비드 슬링, 애로우 시리즈와 같은 미사일방어체계는 사거리와 요격고도가 서로 중첩되도록 배치되기 때문에 소형 로켓부터 중·단거리 탄도미사일까지 그 어떤 유형의 미사일이 수십 발 이상씩 날아오더라도 대부분 요격할 수 있다. 셰셔는 “이스라엘은 다층 방어체계로 쉽게 말해 아이언돔, 데이비드 슬링, 애로우 순으로 적의 미사일을 막는다. 이런 기준으로 봤을 때 사드가 배치돼야 한다면 한반도가 아닌 일본 지역에 배치되는 게 더 효과적이다”라고 덧붙였다.


▎IAI사가 개발한 차세대 요격미사일 ‘애로우-3’. ‘이스라엘의 사드’라 불린다.
한국의 전장환경에 맞는 무기체계를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라파엘사의 지원을 받고 있는 ‘파인텔레콤’ 로니 코헨 대표는 한국의 방위산업의 구조에 대해 지적했다. 현재 한국은 방산업체가 개발에 성공해도 기술 소유권은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갖고 있다. 따라서 업체가 수출해도 기술료는 ADD가 가져가는 구조다. 코헨 대표는 “이스라엘은 기초부터 양산, 아웃풋(결과)까지 단일 시스템으로 간다. 방산업체들 간 경쟁도 하지만 합작도 많이 하는 이유다. 한국도 연구 설계와 개발팀을 통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Part 3. 유대인 恨 품은 마사다&홀로코스트 | “우린 두 번 다시 함락되지 않는다!”


▎이스라엘 군 장교들은 임관식에서 마사다 최후를 재현하며 ‘절대 잊지 말라’는 다짐을 마음에 새긴다.
이스라엘의 안보의식은 굉장히 확고하다. 도심과 같은 일상에서도 빈번히 테러가 일어나는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안보는 생존과 직결된다. 자주국방 의지를 이스라엘을 연구하는 많은 국내외 학자는 역사에서 비롯된 ‘정신(멘탈)’에서 찾는다. 다시는 민족이 절멸될 수 없다는 강박관념이 역사를 통해서 끊임없이 국방력 강화에 대한 자극을 주는 것이다.

로마군에 맞선 저항군의 최후 격전지인 마사다(masada). 히브리어로 ‘요새’를 뜻한다. 바로 이스라엘 국방 정신을 지탱하는 ‘반면교사’의 현장이다.

헤롯왕이 건설한 마사다는 그리스계 로마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 벌어진 1차 유대전쟁 때 예루살렘이 함락된 직후 열성당원들이 가족들을 데리고 도망친 곳이다. 434m 높이에 평균 너비 120m, 길이 620m, 둘레 1300m인 평지. 사방은 절벽이라 적군이 오르기에 쉽지 않은 지형이다. 남아있는 1000명의 유대인 저항군은 로마군에 게릴라전을 펼치곤 했다. 로마는 공성전까지 펼쳐 마사다 주변을 차단하고 어떤 지원과 탈출도 원천 봉쇄했지만 유대인들은 그곳에서 2년을 버틴다. 로마군은 투석기로 돌을 던져 성벽을 부쉈다. 마사다에 남아있던 저항군들은 수세에 몰리자 온 가족을 데리고 자결을 한다. 생존자는 여자 2명과 아이 5명뿐이었다. 서기 73년 5월 2일의 일이었다. 마사다에서 보여준 불굴의 저항정신은 유대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됐다.

예루살렘 동남쪽으로 100㎞가량 떨어진 마사다. 사해(Dead Sea)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마사다는 뜨거운 사막 한가운데 언덕처럼 우뚝 솟아있지만 정상은 누군가 일부러 밀어낸 것처럼 평평한 지대다. 35도에 육박하는 열기가 방문객을 맞는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 마사다는 허허벌판처럼 보였다.

마사다 항전에 대한 역사는 기록이 드문 편이다. 그나마 대지에서 접하는 건 돌덩이거나 곳곳에 산재한 삶의 흔적 정도다. 그 와중에 작게 이어진 수로나 저장고를 보면 1000명 유대인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저절로 떠오른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마사다를 늘 기억한다. 이스라엘 방위군들은 장교 임관식을 할 때 마사다 서쪽 벽을 향해 걸어 올라 마사다 역사를 재현한다. 죽음을 불사한 투쟁의 신념을 마음 깊이 새기자는 다짐이다. 젊은 장병들은 “마사다를 절대 잊지 말라”고 외친다고 한다.

이후 로마와 3차전쟁까지 치른 유대인들은 전 세계로 흩어진다. 디아스포라(Diaspora, 이산)의 시작이다. 1948년 독립 전까지 약 2000년간 영토를 잃고 떠돌던 이들에게 더 가혹한 시련이 찾아온다. 바로 제2차 세계대전 독일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holocaust)다. 당시 유대 민족 660만 명이 숨진 비극의 트라우마가 서려있는 곳이다.

“희생과 비극 반복적으로 되새겨”


▎홀로코스트 박물관은 수많은 유대인 희생자의 유품과 사진을 전시해놓았다.
6월 12일 예루살렘에 위치한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Yad Vashem Holocaust) 박물관은 관람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10개의 전시관으로 이뤄진 이곳은 생존자들의 영상 증언뿐 아니라 가스실에서 수거된 머리카락, 사진, 신발 등의 유품으로 가득했다. 나치에게 희생된 유대인을 추모할 목적으로 건국 후인 1953년 세워졌다. 이후 증·개축을 거듭하며 2005년 현재의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고 있다. ‘희생자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곳’을 뜻하는 이곳은 유대인들이 나치 집권 이후 게토(ghetto·유대인 집단 거주지역)로 쫓겨나 대량 학살을 당하는 과정을 시기별로 담담하게 보여준다. 한 남성 관람객은 기념관 앞에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 4월 기념관을 방문해 “홀로코스트의 교훈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나를 이끌고 있다”며 “반드시 우리를 위협하는 적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왜 이스라엘이 ‘생존’을 늘 강조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스라엘이 건국된 1948년, 2000년간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다시 모였을 때 순수 혈통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언어도, 인종도, 생김새도 달라져버린 이들을 하나로 묶어내고 지켜낸 건 ‘유대인’이란 정체성 하나였다. 부승찬 연세대 통일 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이스라엘의 자주국방의 원동력은 역사를 관통하는 생존에 대한 절박함”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과 이스라엘의 차이점을 이렇게 역설했다. “안보를 자기 자신에게 의존(self-reliance)하는 이스라엘은 국제사회나 강대국에 크게 기대지 않는다. 반면 안보를 동맹에 의존하는 한국은 강대국 그늘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스라엘과 한국은 묘하게 닮아있다. 크지 않은 영토에서 늘 주변 국가의 위협에 시달린다. 비극적인 민족사나 한(恨)이 서린 역사적 고통마저 비슷하다. 올해는 한국과 이스라엘 수교 55주년이기도 하다. ‘작지만 강한 나라’ 이스라엘은 한국의 안보현실에 여러 시사점을 던져준다. 자주국방의 숙원을 안은 대한민국의 새 정부가 한반도의 안보 딜레마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주목되는 이유다.

- 이스라엘 =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201707호 (2017.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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