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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눈에 띄네! 문재인의 ‘차관정치’ 

“그 친구 잘 알지~” 文과의 ‘케미(코드)’, 개혁 시너지 낸다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통일·외교·안보 분야 ‘장관+차관’ 2중 안전장치 가동… NSC 출신들, 참여정부 인연으로 긴밀한 네트워크 형성

▎문재인 정부에서는 국방부와 외교부, 통일부 등 주요 부처에 실세 차관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 15일 청와대에서 류희인 국민안전처 차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이날 27명의 공직자가 임명장을 받았다.
검찰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방산비리 혐의를 잡고 압수수색에 나서는 등 공개 수사에 착수한 7월 14일. 정치권에서는 권력형 비리에 대한 사정이 본격화하는 게 아닌지 설왕설래가 한창이었다. 여권의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새 정부 내부의 기류를 이렇게 전했다.

“보수정권의 이른바 ‘적폐’ 중에서도 군사, 방위산업 관련 비리가 심각하다는 게 여권 핵심의 판단이다. 구조화해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 특성 때문에 오랜 세월 속으로 곪았고, 그 비리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차세대 전투기 사업도 그렇고, 특히 사드 도입 과정에서도 비리 의혹이 거론된 것으로 안다. 현 정부가 사드 체계 배치 경위를 들여다본 데는 이런 배경도 자리한다.”

정치권에서는 KAI 비리 수사가 궁극적으로 구 여권 비리를 단죄하는 사정의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기류도 없지 않다. 방위산업 관련 주무부서인 국방부 동향에 시선이 쏠리는 건 당연한 이치다.

서주석 국방부 차관은 6월 23일 취임 후 첫 국회 국방위에 참석해 “방산 비리 척결 부분은 우리가 그동안 잘못됐던 부분들을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혁신과 더불어 관행의 혁파를 기도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서 차관은 참여정부 시절 외교안보의 핵심 요직에서 활동한 경력으로 인해 발탁 시점부터 정치권의 시선을 확 끌었다.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 수석비서관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 전략기획실장 등을 역임, 노무현 대통령의 국방정책 수립에 깊숙이 참여한 안보 전문가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국방개혁의 적임자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방산 비리 척결 관련 업무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낳는다.

文, “차관이 국정운영의 중심”

문재인 정부에는 이처럼 장관을 보좌해 부처를 통솔하고, 군기를 잡는 차관들이 적지 않게 포진해 있다. 9년 만의 집권인데다 코드와 전문성을 겸비하는 장관을 찾지 못한 부서일수록 내부 사정에 정통한 차관의 기능이 중시될 수밖에 없는 상황과 맞물려 있다.

정부도 차관 인선 작업은 철저한 능력 본위에 입각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차관 인사에서 연고나 인연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오로지 조직 내부의 평판과 신임, 활동 경력을 보고 인선했기 때문에 대통령인 저나 수석비서관들도 여러분을 잘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 15일 새 정부 차관들과 마주해 건넨 말이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차관이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중심이며, 장관이 임명된 후에도 최고 전문가로서 부처를 통솔하게 될 것”이라고 힘을 실어줬다.

일반적으로 장관 인선에는 대통령과의 코드가 고려된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이해하고 호흡을 같이하는 게 중요시되는 까닭이다. 외부에서 발탁된 장관은 현안 파악이나 조직 내 문화에 낯설 수밖에 없다. 과거 이런 말도 나돌았다. “정부의 실세가 아니거나 장악력이 약한 장관은 부하 직원들이 짜주는 숨가쁜 일정을 따라 ‘뺑뺑이’ 돌다 임기를 마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을 보완하는 게 차관이다. 정책과 조직 생리에 정통한, 진영 내 관료 출신 인사를 차관 자리에 앉혀 장관의 빈 구멍을 메워주는 역할을 하게 한다. 대통령의 의지를 받들어 수동적인 관료들을 독려하는 군기반장 역할도 때론 자임한다. 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은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은 참여정부 때 청와대 안보팀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며 “국가 안위가 달린 외교안보 부처의 차관 그룹은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투영하는 통로로 주목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1. 온건한 개혁 주도: 서주석 국방부 차관 | ‘꽃을 좋아하는’ 참여정부 원조 자주파


서주석 국방부 차관은 노무현 정부 때 국방개혁안을 만든 장본인이다. 이 때문에 일찌감치 문재인 정부에서도 자리의 문제일 뿐 중용이 당연시됐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문“ 대통령이 굉장히 신임하는 인사”라고들 말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근무자는 “(국방부 차관에) 군 출신이 아닌 서 차관을 임명한 것은 더 이상 군에만 자체 개혁을 맡기지 않겠다는 뜻이 반영된 것”이라고 짚었다. “문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고, 국방개혁의 방향을 가장 잘 아는 서 차관이 장관 못지않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문재인 후보 대선캠프 안보 분야에서 활동한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서 차관 임명에 대해 “이제 한·미 관계가 안정화될 것”이라고 평했다. 현 정부 출범 초기 사드 체계 배치 문제와 관련해 한·미 양국이 긴장국면에 처한 적이 있다. 사드 국내 반입 건을 놓고 청와대 안보실이 부실 보고를 이유로 국방부를 다그치는 등 정부 내에서도 불협화음이 일었다. 서 차관이 매끄러운 일처리로 교통정리에 나서리라는 게 이 인사의 관전평이었다. 미국이 한국 정부에 가질 수 있는 의혹과 불만도 조기에 해소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덧붙였다. 서 차관은 지난 6월 한국국방연구원(KIDA) 책임연구위원 신분의 기고문에서 문재인 정부가 한·미 동맹을 재조정하기보다 강화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2006년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무궁화회의에 참석한 각군 장군들의 모자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그는 KIDA에서 30년 가까이 일했다. 북한 군사전략을 포함한 안보 분야를 연구하다가 2002년 대선 당시 발탁돼 노무현 대통령의 외교안보 핵심 브레인으로 자리 잡았다. 16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통일 안보분과 위원으로 활약한 그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전략기획실 실장(1급)을 거쳐 통일외교안보수석으로 일했다. 인수위에서 청와대까지 안보의 길목에는 늘 그가 있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서 차관과 김대중 정부와 참여정부의 인수위 두 번을 함께한 인연이 있다. 참여정부 시절 국방 보좌관실에서 일한 김 의원은 NSC 전략기획실의 서 차관과 호흡을 맞출 일도 많았다. 김 의원은 서 차관을 국방개혁의 최고 권위자라고 인정했다.


▎서주석 차관이 6월 27일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에서 사드배치에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과 면담하고 있다.
2003년 국방부와 청와대 NSC에서 만든 ‘협력적 자주국방개혁안’이 나중에 ‘국방개혁 2020’ 안으로 발전한다. 최종 결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논쟁에 관여하고, 결론을 도출한 인물이 서 차관이라고 김 의원은 돌이켰다. 김 의원은 이른바 ‘정치적인 대화’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상명하복과 딱딱한 기율에 익숙한 군대에 대통령의 의지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고 이를 정책으로 전환하게 하는 통로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군대에 대한 문민 통제를 실현할 인물로서 차관을 꼽았다.

전문관료 집단 저항 이겨낼까


서 차관은 참여정부 당시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라인이자 ‘자주파’로 분류됐다. 상대적으로 ‘온건한 자주파’로 기억하는 이가 많다. 2007년 8월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영해선이라고 하면 위헌적인 주장’이라는 글을 기고해 논란을 낳았다. 그의 주장은 당시 NLL이 50여 년간 실질적 해상 경계선 역할을 해왔으므로 ‘영토적 개념’으로 봐야 한다던 주류적 시각과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정권교체는 그에게도 시련을 안겼다. 이명박(MB) 정부 들어 친정인 KIDA로 복귀했으나, 몸담은 파트에는 외부의 연구 의뢰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알려진다. 이 시기 방송통신대 원예학을 전공한 서 차관에게 주변에선 ‘꽃을 사랑하는 원예학도’란 애칭을 붙였다. 그의 페이스북은 화훼 관련 사진으로 단장돼 있다. 그를 일러 ‘샤이 가이(shy guy)’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취향과 무관하지 않다는 반응이다. 참여정부 시절 서 차관을 취재했던 전직 언론인은 “매사에 조심스러운 사람이고 모든 위험 요소를 최소화하는 성격을 가졌다”고 기억했다. 지나치게 신중한 스타일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추진력이 강한 이미지는 아니었지만 최근 주변에서는 성격이 담대해졌다더라”고 전했다.

‘국방개혁’은 어려운 숙제다. 역대 정부에서도 꾸준히 시도됐지만 늘 실패로 돌아간 게 국방개혁이다. 예산을 중시했던 MB정부 때 기획재정부 출신의 장수만·이용걸 국방차관도 국방개혁에 실패했고, 박근혜 정부에서도 구호만 요란했다. 군부와 이익 당사자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저항 때문이다. 참여정부 NSC 출신 여권의 한 관계자는 “6개월 만에 결판난다”며 “전문관료집단이 장악한 국방부에 서 차관이 포위 내지 포획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 오죽하면 국방부 쪽은 아직 정권교체가 안 됐다는 얘기가 나올까”라고 말했다.

현 정부는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던 ‘국방개혁특별위원회’ 발족을 서두른다는 전언이다. 번번이 헛발질에 그쳤던 이 과제를 서 차관이 어떻게 다룰지 정치권과 군부 양쪽에서는 주의 깊게 지켜본다.

2. ‘재기’의 아이콘: 천해성 통일부 차관 | 통일부 정통관료, 남북 대화 재개의 미션


2014년 2월 3일 박근혜 정부 대통령안보전략비서관 발탁.
2014년 2월 11일 박근혜 정부 대통령안보전략비서관 경질.


천해성 통일부 1차관의 이력서다. 새 부서에 짐을 푼 지 8일 만에 짐을 쌌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승승장구’의 아이콘이 ‘역행군’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군 출신 강경파들이 득세하면서 상대적으로 온건한 천 차관이 배척당했다는 이야기부터 여성 문제, 비리 문제까지 설이 무성했다. 무엇이 진실일까? 관가에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지난 6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장을 건네는 순간 천해성 통일부 신임 차관의 부인은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천해성 차관은 정책통이라는 평을 받아온 인물이다. 참여정부 때 NSC에 몸을 담았고, 2003년 정책조정실 정책담당관으로 일했으며, 통일부 남북회담기획부장으로 남북회담에 깊숙이 관여한 햇볕정책의 실무적 주역이었다.

약국집 아들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학창 시절엔 동기와 후배들 사이에서 ‘뒤통수만 봤다’는 유행어가 돌기도 했다. 늘 앞서 시상대에 올라가 있는 모습만 봤다는 뜻에서다. 원만한 성격에 엘리트 의식이 별로 없다고 그를 접해본 정치권 인사들이 말한다.

1988년 행정고시 30회로 공직에 첫발을 내디뎠다. 1997년 외교안보수석 통일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근무했고, 이후 참여정부 때인 2003년 NSC 정책조정실의 정책담당관을 맡았다. MB정부 때 대변인과 정책실장을 역임하는 등 통일부 내 요직을 거쳤다.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 정책실장이었던 천 차관은 2년4개월 만에 열린 남북 당국 회담의 수석대표로 장관급회담을 위한 사전 실무접촉을 진행하기도 했다.

탄탄대로의 경력으로 2014년 2월 3일 NSC 안보전략비서관으로 임명된 그는 8일 만에 전격 경질됐다. 당시 청와대는 “똑똑하고 유능하지만 통일부의 필수, 핵심 요원이라 통일부로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는 석연찮은 이유를 댔다. 이미 부처와 논의를 마친 인사를 번복한 해명으로는 어설프다는 지적이 나왔다. 민주당은 당시 “강경파 위세에 축출당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박근혜 정부의 군 출신 강경파들이 상대적으로 북한에 대해 온건한 입장을 가진 천 실장을 배척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교체인가, 경질인가


▎2005년 8월 17일 8·15 축전 북측 대표단 일행이 청와대를 방문해 노무현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한 뒤 기념사진을 찍었다. 뒷줄 왼쪽이 천해성 당시 NSC 국장이다.
‘우연’에 의한 경질설도 그럴싸하게 나돈다. 익명을 요구한 통일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안보전략비서관은 안보실장에게 임명 권한이 있다. 천 차관이 출근까지 한 상황에서 어느 날 갑자기 박근혜 대통령이 김장수 안보실장을 호출했다. 이때는 천 차관 인사가 보고되기 전이다. 박 대통령이 ‘얼마 전 보니까 전성훈 통일연구원장이 토론도 잘하고 참 똑똑한 것 같던데, 자리 하나 만들어서 쓰시지요’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말 한마디에 자리의 주인이 뒤바뀌었다.” 천 차관의 원대 복귀는 이런 윗선의 지시에 따른 결과지 정치적 배제라든가 핍박으로 해석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질 두 달 만인 그해 4월 천 차관은 남북회담본부 본부장으로 복귀해 12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다시 통일부 정책 실장으로 근무했다. 이 과정에서도 연거푸 고배를 마신다. 두 번의 통일부 차관 인사에서 행시 후배인 황부기(행시 31기)· 김형석(32기) 차관에게 밀렸다. 천 차관은 김형석 차관이 취임한 이후 공직을 떠나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천 차관에겐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가 어울린다. 과거의 굴곡진 공직 경험이 문재인 정부에서는 든든한 자산으로 작용한다. 서훈 국정원장과는 남북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호흡을 맞춰봤고, 윤영찬 국민소통수석과는 서울 영등포고 동기동창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대화를 강조한다. 현 정부의 통일부는 참여정부 통일부에 버금가는 위상을 가질 전망이다. 남북대화, 교류협력, 경협, 개성공단 재개, 이산가족 상봉 등 복원해야 할 이슈도 많다. 이 모든 게 천 차관 활동 반경을 예측해볼 수 있는 조건들이다.

3. 위기관리 전문가: 류희인 국민안전처 차관 | 제2의 원전사고, 세월호 참사 막으려면…


‘안전도 안보’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국민 생명과 안전에 관련한 ‘포괄적 안보’ 개념을 청와대에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이 류희인 국민안전처(새 행정자치부) 차관이다.

그는 군에서도 인정할 만큼 특수한 경력의 소유자다. 경기도 파주 출신으로 휘문고·공군사관학교(27기)를 졸업했다. 외국어대(독일어과), 독일 참모대학, 숙명여대 국제대학원(석사)을 마친 학구파이기도 하다. 조종사 출신으로 국방부 군비 통제실에서 근무하던 그는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에 들어 간 뒤 소장으로 진급할 때까지 위기관리 분야 업무를 맡아왔다. 진보정부 10년간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 위기관리 센터장·사무차장, 대통령비서실 위기관리비서관을 거쳤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NSC(국가안전보장회의)의 ‘위기대응 실무매뉴얼’에 대해 류희인 전 NSC 위기관리센터장에게서 보고를 받고 있다.
류 차관은 참여정부 때 NSC 위기관리센터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2003년 그는 총 33개의 국가 위기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다. 1999년 서해교전과 2000년 6·15 정상회담 등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남북관계를 보면서 만든 ‘국가위기관리 지침서’다. 군사·외교 분야 13개, 재난 분야 11개, 국가 핵심 기반 체계 분야 9개 등 상세 매뉴얼까지 포함하면 분량이 총 2800권에 달한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류 차관은 청와대 근무 시절 두 번 진급했다. 두 번의 진보정부를 거치며 오롯이 청와대 붙박이로 일한 그에게 주어진 ‘보은인사’란 논란을 낳았다. 2007년 4월 임기제 준장에서 소장으로 진급하자 당시 국회 국방위 소속 김학송 한나라당 의원은 “전역을 전제로 일정 기간 근무하는 조건으로 준장(임기제)으로 진급했던 류희인 대통령 위기관리비서관이 준장으로 진급한 지 1년6개월 만에 또다시 소장으로 진급한 근거가 뭐냐“고 따졌다. 인사 규정을 무시한 보은인사라는 게 김 의원의 주장이었다. 당시 공군에서도 “진급의 형평성이 결여된 청와대 특혜”라는 반응을 낳았다.

2800권 위기관리 매뉴얼, MB정부 때 사라져


▎6월 19일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원전 1호기. 국내 최초 상업용 원자력발전소로 40년간 가동한 고리1호기는 이날 0시를 기해 영구정지에 들어갔다.
부처에도 변화가 있다. 국민안전처의 해체는 예정돼 있다. 소방과 해경은 독립시키고, 나머지 안전처 조직을 재난안전관리본부로 축소해 행자부로 통합하는 것이다. ‘헤쳐 모여’ 과정에서 어수선해지기 쉬운 조직의 분위기를 추스르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이와 관련해 류 차관은 “지자체를 관할하는 행자부로 통합되는 만큼 지자체의 현장 재난관리 기능에서는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라며 의욕을 보였다. 안전처가 통합이 되면 류 차관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으로 사실상 재난안전 업무를 총괄·지휘하게 된다.

국민안전처는 특수재난, 신종·복합·미래 재난 등과 관련한 자료를 분석해 오는 12월 ‘미래재난 분석 보고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외국의 감염병이나 원자력발전 등 동향을 분석하고 국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재난과 위험을 사전에 예측하는 내용을 담는다.

류 차관은 원전 분야에도 정통한 편이라고 알려져 있다. 참여정부 때 그가 만든 33개 국가 위기 대응 매뉴얼에도 원전 문제가 포함돼 있다. 또 원전 건설이 한창인 중국 등 주변국의 원전 사고에 대처하는 ‘인근 국가 원전사고 매뉴얼’도 그의 작품이다.

그는 탈원전주의자다. 지난 4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원전사고가 보유국 순위대로 난다”며 “지진이 발생한 경주는 원전에 방폐장까지 있으니 6위인 우리나라도 안전하진 않다”고 경고했다. 나아가 “당장 전면 폐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해도 설계 수명이 만료되면 즉각 폐기하고 신규 원전도 짓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원전업계뿐 아니라 보수진영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안전 전문가인 류 차관이 정부의 대응 논리 개발에도 일익을 담당하리라는 전망이다.

4. 유일한 보직 유임: 임성남 외교부 1차관 | ‘중국계 미국인’이라 불릴 정도로 미·중 업무 정통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부터 1차관직을 수행해온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은 현 정부의 유일한 유임 사례에 속한다.

미·중 외교 전략통으로 꼽히는 임성남 차관은 4강(미국·일본·중국·러시아) 대사 경험이 없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보완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한·미 정상회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정부 초기 대형 외교 행사가 그의 손을 거쳤다.

그 역시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으로 근무한 이력이 있다. 1958년 서울 출생으로 대신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외무고시 14회로 주중대사관 공사, 주영대사관 대사를 거쳐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 북미국장 등을 역임했다.

실무 경험이 풍부한 그는 강경화 장관이나 청와대 외교안보 라인을 지원 사격할 적임자로 일컬어진다. 그에게 운이 따랐다는 지적도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동시에 사드 논란이 번지면서 한·미 관계에 정통한 그의 기능과 역할을 주목받아 중용된 측면이 없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강 장관이나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은 외교부를 떠난 지 오래다. 4강 외교나 북핵 외교 등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국내파로 낙점받은 게 임 차관인 셈이다.

임 차관은 전형적인 미국통이면서도 중국 쪽 업무에도 정통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변에서는 그를 ‘중국계 미국인’이라고도 부른다. 외교부 관계자에 따르면 “본인이 똑똑하다 보니 밑에 요구하는 기대치가 높아서 직원들은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평화로운 한반도’·‘안전한 대한민국’의 주역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은 미국과 중국 외교에 모두 정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차관이 6월 20일 오전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양제츠 중국 국무위원을 예방했다.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실세 차관 중 3명이 NSC 출신이다.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NSC 조직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하겠다. 문재인 대선 캠프 출신의 한 인사는 “진보진영은 외교안보 인력풀이 상대적으로 적다”며 “문 대통령이 신뢰하는 인재를 발탁하다보니 과거 참여정부에서 일한 인물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무에 밝은 이들 차관이 문재인 정부 국정철학을 각 부처에 전파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청와대와 겉돌기 쉬운 관료사회를 다독이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차관은 직책 특성상 청와대 비서관과도 긴밀히 교감한다”며 “결정은 장관이 하지만 실무의 연결고리는 차관”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 4대 비전의 하나인 ‘평화로운 한반도’·‘안전한 대한민국’을 구현하는 짐이 이들 차관의 어깨에 놓여 있다.

-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201708호 (201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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