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집중분석] 파격인사! 문재인 대통령의 용인술(用人術) 

‘3철’ 2선 후퇴는 대통령 작품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의중 헤아린 참모들의 이심전심 백의종군 결정… 개혁적 인사들이 일거에 내각과 청와대 대세 장악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은 문재인 정부에 그대로 적용되는 듯하다. 주요 보직 인선을 놓고 ‘대탕평’이라는 찬사부터 ‘보은인사’라는 혹평까지 평가는 분분하다. 인사의 특징을 분석해보면 새 정부의 지향점이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 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문 대통령 오른쪽부터)와 서훈 국정원장, 임종석 비서실장을 소개하고 있다.
1. 대통령께서 우리를 멀리하겠다고 하셨다

중용(重用)이 당연시되면서도 권력 중심에서 멀어진 이들이 단연 뉴스다. 새 정부 핵심 중의 핵심으로 여겨지던 이른바 ‘3철’(이호철, 전해철, 양정철), 문재인 대통령과 정치적 운명을 같이해 온 노영민·최재성 전 의원과 같은 인사들이 대표적이다. 대선 캠프의 호남 대표성을 강화해준 송영길 의원의 내각 입성도 멀어졌다. 정권 교체의 주역이면서도 정부 요직에서 배제된 이들 중 한 사람은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툭 되뇌었다. 놀라웠다. 실세급 인사들의 백의종군 내지 2선 후퇴 선언이 알려진 대로 자발적인 게 아니라 대통령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니. 이 인사는 “대통령께서 편하게 국정운영의 틀을 짜도록 하는 게 대통령을 모신 이들의 마땅한 처신”이라면서도 뭔가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는 못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입성과 동시에 ‘파격’과 ‘신선’, ‘전광석화’와 같은 긍정 수식어가 달린 인사를 단행했다. 그 파격의 첫머리를 장식한 게 문 대통령의 ‘복심(腹心)’이라던 이호철 전 참여정부 민정수석, 양정철 전 홍보기획비서관의 백의종군 선언과 해외 출국이다. 새 정부의 국정운영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공직을 맡지 않겠다는 뜻과 함께 짐을 싸서 아예 국내를 비운 것이다.

전해철 민주당 의원은 양 전 기획비서관이 뉴질랜드로 출국하던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진한 여운을 남기는 글을 올렸다. “패권, 비선 측근, 3철이라는 악의적 프레임은 결코 인정할 수 없다. 이제 저 스스로 자유로워지려고 한다.” 1963년 박정희 정권의 2인자로 민주공화당 창당 직전 해외로 떠나야 했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자의반 타의반(自意半 他意半)’ 외유를 떠올리게 한다.

일련의 과정은 ‘측근 배제’를 문 대통령 용인술의 ‘핵심’으로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문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다는 느낌도 받은 여권 인사들도 한둘이 아닐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문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정무특보를 지냈고, 이번 대선에서는 대선후보 대리인 TV토론에 나서기도 했다. 정권의 실세급 인사들이 2선으로 물러난 것과 관련해 권 의원은 “대통령 본인의 그림이라는 느낌이 확 와 닿았다”면서 “정권 초반 인사 구설수를 차단해 개혁에 총력을 기울이고자 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권 의원은 모든 인사의 설계자이자 시공자가 대통령 자신이라고 믿는다. “앞으로도 대통령이 인사 문제로 특정그룹의 영향을 받거나 누가 입김을 불어넣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새 정부 청와대 주요 포스트와 장관 후보자를 복수로 보고하는 보좌체계는 가동되겠지만 인사의 기본 방향을 정하고 결정하는 일은 오롯이 대통령의 몫이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 용인술이 조직관리 차원에서 2인자의 등장을 막고, 분할통치에 의존하는 기성 정치인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주변에서 말한다. 청와대에 입성해 문 대통령의 요직 인사를 지켜본 대선캠프 출신의 한 인사는 “참모들도 새로운 면모를 보여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기에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작업도 일사천리였다”고 설명했다.

민심 향배가 가른 측근의 운명

참여정부 출범 원년멤버로 조직관리에 일익을 담당한 한 인사도 측근 인사들의 용퇴를 대수롭지 않은 사건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그는 “원칙적으로 참여정부 멤버들의 초기 청와대 입성은 최소화한다는 공감대가 진작에 자리 잡았다”면서 “우리가 새 정부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는 게 마땅하다”고 수긍했다. 측근 배제는 집권 초 지지기반 유지·확충이라는 현실적 요구와도 맞닿아 있다고 덧붙였다.

“5월 초 이미 판세는 우리 쪽으로 확 기울었고, 내부적으로 대선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호남은 좀 달랐다. 안철수 후보를 찍겠다는 기류가 좀처럼 수그러지지 않았다. 그 연유를 물었더니 문재인 후보는 지지하지만 집권 후 주변에서 설쳐댈 사람들이 보기 싫어 다른 후보를 밀겠다고 하더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최순실, 3인방이 끼고 돌았듯이 문 대통령도 엉뚱한 측근들이 인의 장막을 치지나 않을까 우려한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고민이 깊어졌고,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도록 마음을 비우자는 공감대가 확산됐다. 측근세력의 교체는 이렇게 일어난 것이다.”

핵심 인사들의 2선 후퇴가 ‘이심전심(以心傳心)’의 결과물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과 참모 사이에 통하는 뭔가가 있다는 것. 전직 언론인으로 참여정부 시절 문재인 대통령과 측근 인사들을 취재한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교수는 “양정철 전 비서관 등 측근 인사들이 용퇴라는 감동의 드라마를 만들어 문 대통령에게 정치적 빚을 받아내려는 이들의 입막음을 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아마도 내년 중반 이후 코드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시점에는 이들 측근 인사가 복귀할 여건이 마련될 것 같다.”

청와대 수석에게 인사권이 주어질까?

여권 내부 기류에 정통한 민주당의 문희상 의원도 “그게 진정성이고, 문 대통령이니까 가능한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측근 인사 인선 배제는) 아무나 가능한 게 아니다. 권력 앞에서는 다들 눈이 먼다. 구조적으로 그렇다. 이전투구가 따로 없다. 문 대통령을 쭉 지켜봐온 경험으로 말하자면 그의 최고 장점은 신뢰감이다. 문 대통령이 하면 진실되다고 느끼다 보니 인사결정에 내부적으로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게 지도자의 최고 덕목 아닐까.”

이는 대중이 문 대통령을 바라보는 시각과도 궤를 같이한다. 심리학자인 황상민 전 연세대 교수는 대통령선거가 한창이던 올 4월 펴낸 <좋은 대통령이 나쁜 대통령이 된다>에서 문재인 후보를 대하는 유권자들의 심리를 이렇게 분석했다. “한마디로 문재인의 이미지는 ‘훌륭한 인격을 갖춘 구세주’이다. 대중이 문재인을 이렇다고 믿는다면 대중의 기대는 그의 능력이 아니라 인품에 있다. 문제를 해결하거나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라기보다 곁에 있기만 해도 좋은 사람으로 여기는 것이다.”

2. 사람 사이의 케미를 중시한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는 측근 그룹보다는 외곽 인사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진출했다.
당연한 얘기로 들리겠지만 문 대통령은 조화를 이루는 조직을 선호한다고 그의 한 참모는 이렇게 말했다. 케미스트리(chemistry, 화학 반응)의 약자로 호흡, 조화를 뜻하는 ‘케미’를 인사의 한 코드로 꼽았다. 자신이 참여한 대선 캠프 운용을 예로 들었다. “2017년 문재인 대선 캠프는 양정철 전 비서관이라는 구(舊)측근, 임종석 후보 비서실장이라는 신(新)측근 두 사람의 조합이라고 봐야 한다. 두 사람은 스타일이 다르다. 임 실장은 유들유들하고 현실정치가 몸에 밴 정치인이다. 양 전 비서관은 투박해서 호불호가 있고 선명성이 강하다. 그럼에도 둘은 조화를 이뤘다. 의사결정 과정에도 문재인 후보의 의중파악에 능한 양 전 비서관이 가닥을 잡으면, 여론 동향과 선거 흐름에 강한 임 실장이 완급조절·가감을 하는 식으로 정리했다. 문 캠프는 그런 케미(조화)를 이뤘다.”

양 전 비서관이 참여정부 시절부터의 가신그룹에 속한다면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임 실장은 ‘박원순맨’으로 영입된 케이스다. 성향과 경력이 판이한 두 사람이 투톱을 이룬 대선 캠프는 정권 교체의 견인차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는 자부심을 이렇게 표현한 듯하다.


▎문 대통령과 참여정부 시절에 호흡을 같이했던 이호철 전 민정수석, 전해철 국회의원, 양정철 전 홍보기획비서관. 이들은 이번 새 정부 인사에서 한 발 물러섰다.
청와대 입성 후의 인재 발탁도 이런 케미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라고 이 참모는 덧붙였다. “사후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흠이 드러난 경우는 있지만, 최초의 인사 프레임은 개혁성·파격성·여성·전문가·측근을 고루 포진하는 쪽으로 짜인 게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내각과 청와대의 인선도 시너지 효과를 겨냥했다는 해석이다. 여성을 30% 발탁하겠다던 대선 공약도 남초(男超) 현상이 두드러졌던 내각에 조화와 균형을 꾀하겠다는 취지에서 비롯됐다고 이 참모는 말했다.

케미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부서의 리더가 인사권을 제대로 행사할 때 탄력이 붙는 게 팀워크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 점을 잘 아는 듯 2011년 출간한 저서 <운명>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참여정부)인수위 시절 수석으로 내정된 다른 분들은 대개 비서관 인사를 자신의 의중대로 하기 어려웠다. 당선인을 오래 모셨던 사람, 당선인이 직접 기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 사람들 중심으로 일괄적 큰 구성이 이뤄지고 나면 수석 개개인이 별도의 사람을 발탁할 여지가 많지 않았다.” 지금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는 어떨까? 진면목이 드러나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해답은 청와대 수석들이 가장 먼저 알게 된다.

문 대통령 인사 과단성의 뿌리는 참여정부

또 경제를 이끌어갈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동연 경제부총리,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등 3인은 문 대통령과 정책코드는 맞지만 캠프에서 함께 호흡을 맞춰본 사이는 아니다. 그래서 청와대 내부의 팀워크나 여당과의 호흡이 척척 맞아 돌아갈지 의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문희상 의원은 “팀워크는 자리가 만드는 것이며 그게 대통령의 리더십”이라며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정권에 참여하는 사람은 자리에 합당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소신도 중요하지만 자기 논리와 고집만 내세우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게 국정운영이다. 경제 컨트롤타워가 잘 돌아가도록 하는 게 대통령의 리더십이기도 하다. 노 전 대통령은 가슴이 뜨겁다면 문 대통령은 가슴이 따뜻하다. 격정에 휘말리지 않고 차분하게 휴머니즘을 실천하는 게 문 대통령의 스타일이다.”

3. 초반에 기선을 제압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 9일 청와대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에게 임명장을 준 뒤 김 부총리의 부인 정우영 씨에게 꽃다발을 건네고 있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교수는 문 대통령 용인술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했다. 좌고우면하지 않는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2011년 발간된 문 대통령 저서 <운명>에서 그 단초를 찾는다. <운명>은 참여정부 5년을 자책이라도 하듯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때 개혁 인사들이 한두 명씩 내각이나 청와대에 발탁됐다가 견디지 못하고 물러나오는 모습을 봤다. 그래서 나는 개혁적 인사들이 일거에 내각과 청와대의 대세를 장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무현) 당선인의 생각도 같았다.”

“다음에 더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정부가 들어섰을 때 개혁과제 가운데 과연 얼마나 할 수 있을까. 흔히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지만, 한 정부가 애를 써도 5년 임기 동안에 해낼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보수진영은 개혁과 복지한다고 공격하고, 진보개혁진영은 제대로 못한다고 공격하고, 그렇게 좌우 양쪽에서 협공을 받는 정부 역시 참여정부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을까.”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은 걸까? 문 대통령은 6월 13일 김상조 한성대 교수를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김 교수에 대한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을 거부하는 등 비토 의사를 분명히 한 야권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했다. 바른정당 오신환 대변인은 “소통과 협치를 하겠다는 문재인 정부가 불통과 독재로 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라며 강경한 논평을 내기도 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국회 임명동의안 표결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리라는 전망이 뒤따랐다.

정부 참여 인사 물색은 3월부터 본격화

이런 과단성은 문 대통령의 검찰 인사 패턴에서도 읽혔다고 여권 인사들은 말한다. 문 대통령은 정부 출범 이틀 만에 비(非) 검찰 출신의 조국 서울대 교수를 청와대 민정수석에 임명하고,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사건 수사로 좌천성 인사를 당했던 윤석렬 검사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올렸다. 윤석렬 지검장을 일러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수사와 공소유지의 적임자”로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권칠승 의원은 검찰 인사를 대통령의 인사코드가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로 규정한다. 그는 “문 대통령은 검찰 수뇌부와 딜(deal)을 한다거나 어떠한 협의도 한 바 없다”면서 “평소 다져온 본인의 구상대로 검찰을 개혁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해 보인다”고 했다. “누구누구를 발탁했다는 것 이상으로 오래된 구상을 자기 방식대로 실행에 옮겼다는 점이 향후 인사와 용인술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념에 기초한 개혁드라이브 인선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 같다.”

청와대 정책실장에 ‘안철수 사람’으로 분류되던 장하성 고려대 교수를 임명한 것도 통합의 메시지일뿐 아니라 강력한 개혁 의지의 표출로도 이해된다. 차재원 교수는 “새 정부 인사는 문 대통령이 <운명>에서 서술한 그대로 가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문 대통령이 국정철학 구현과 정책 집행에 필요한 인사라면 야권의 반발을 무릅쓰고서라도 밀어붙이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4. 비주류 인재에 대한 애정과 욕심이 크다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발표하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오른쪽 둘째). 조 수석도 외부 발탁 케이스에 해당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인재관을 야당 시절 가까이 지낸 이들은 이렇게도 해석했다. 문 대통령은 새 인물을 발굴해 역할을 맡기는 데 마음이 가 있다는 말이다. 지난해 총선이 대표적 케이스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지지율 하락 등으로 정치적 궁지에 몰리면서 선거를 앞두고 당 대표직에서 물러난 문 대통령은 인재영입위원장을 자청한 적이 있다.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 표창원 경찰대 교수 등 뉴페이스들이 줄줄이 공천을 받는 인재영입 릴레이를 이끌었다. 대선국면에서도 인텔 수석매니저 출신의 유웅환 박사, 군내 대표적 미국통으로 불리던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발탁도 문 대통령의 작품이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을 줄곧 보좌해온 여권의 한 인사는 “지난해 총선 이후 대선까지 인재 영입은 대통령이 기획하고, 하부 단위에서 검증한 뒤 마케팅 기법을 통해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식을 취했다”고 돌이켰다.

대통령의 인재풀은 그의 인생 역정에 결부된다. 부산 인권 변호사, 시민사회 운동을 거친 문 대통령이 사회적 낙인에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한 인재들을 줄줄이 꿰고 있다는 말이다.

대선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한 인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당선을 전제로 인재 물색하게 된 시점은 민주당 호남권역 경선이 실시된 3월 2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주여대 유니버시아드 체육관에서 실시된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호남권역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60.2%의 득표율로 압승하던 날이다. 이 인사는 “호남 경선에서 승리하면서 대선 승리의 9부 능선을 넘게 된 것”이라며 “이때부터 내막적으로 대통령 준비에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그만큼 시간적 여유를 갖고 함께 일할 사람을 물색했다는 뜻이다.

물론 처음부터 인재풀은 차고 넘친 측면도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 대선 당시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에 참여한 교수가 1000명을 헤아렸고 과거 10년간의 진보정부에서 국정에 참여한 이들도 적잖이 문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 그래서 참여정부에 비해 문 대통령은 인력 활용에 여유가 있다며 이 인사는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인재풀이 빈약한 가운데서도 본인과 뱃속이 맞는 이들과 국정을 함께하려는 의지는 확고했다. 캠프 내부의 인사를 많이 등용한 배경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재풀이 넓은 데다 안희정, 박원순 등 상대방 사람들도 영입, 활용하고 있다.”

임동욱 대통령학연구소 부소장(한국교통대 교수)도 “인사의 전체적인 틀을 보면 준비된 모습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사들을 발탁함으로써 인재의 외연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는 것. 하지만 통합과 조정을 얼마나 잘 이끌어내느냐에 따라 문 대통령 용인술의 성패는 결정된다고 그는 지적했다.

5. 청와대는 사람 보는 안목을 기르는 곳이다


▎6월 12일 국회 본회의 시정연설을 마친 뒤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를 찾아가 악수를 건네는 문재인 대통령.
참여정부 시절 정무수석으로 문 대통령과 호흡을 맞췄던 유인태 전 의원은 4년 가량의 청와대 근무 경험이 시야를 넓히는 통로 역할을 했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은 비서실장과 시민사회수석을 지냈고, 민정수석은 두 번 역임했다. 야인으로 물러난 기간 중에도 대통령 정무특보라는 감투가 따라다녔다. “부산에서 줄곧 활동해온 문 대통령에게 청와대 생활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을 선사했다”는 게 유 전 의원의 생각이다. “참여정부 청와대의 인사추천위원회의위원장은 비서실장이고, 민정수석은 핵심 멤버다. 청와대 인사의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자리에 문 대통령이 있었다. 여러모로 사람 보는 눈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 청와대의 속성과 권력의 작동 원리를 이 시절 터득했으리라는 추측이 나옴직 하다.

지금의 청와대 인사의 길목에는 임종석 비서실장이 자리한다. 86학번인 그를 비서실장으로 세움으로써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과 호흡을 맞춘 80년대 초·중반 학번들을 자연스레 뒤로 물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문 대통령과 동지적 관계에 있거나 편하게 말을 섞을 수 있는 인사들 대신 외곽 인사들로 청와대 비서실을 채운 것이다. 여권은 문 대통령이 임 실장을 낙점한 이유를 이런 데서 찾기도 한다.

권력의 생리에 가장 밝은 이가 문 대통령

이게 가능한 건 문 대통령 본인이 권력의 생리에 정통하고 청와대 돌아가는 사정에 밝기 때문이라고 문재인 선거 캠프 관계자는 풀이했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 본인이 인사의 달인이라 다소 약체로 보이는 임종석 실장을 전면에 내세워도 문제없다고 여기는 건 아닐까”라고 되물었다.

그럼에도 참여정부 시절의 문 대통령은 사람 욕심이 없었다고 한다. 정치할 생각이 전혀 없던 관계로 사람에 대한 관심이 덜한 걸로 비쳤다는 것. 차재원 교수는 “참여정부 시절의 청와대에서는 그저 사람 좋은 문재인으로만 통했다”고 회고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자기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 인사권과 무관한 자리에 존재하는 사람으로 비쳤다. 그래서 특별히 가깝게 둔 사람도 드물고 모두에게 좋은 상사로 지냈다. 누구의 말이든 귀 기울여 들어주는 비서실장, 수석이었던 셈이다.” 그랬던 문 대통령이 집권 후 배제와 포용, 선택과 집중으로 해석되는 특유의 인사 스타일을 펼쳐 보이기에 정치권이 내심 놀라는 것이라고 차 교수는 부연했다.

정치는 상대가 있는 게임에 비유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임명으로 야권은 대여(對與) 강공모드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새 정부 조각과 관련해 보수진영에서는 ‘친문, 보은 인사’로 몰아치고 있다. 여권이 스스로가 정한 공직 배제 원칙을 깨는 인사를 강행했다는 점도 후속인사에서 짐이 될 전망이다. 국민의 정부에서 민정수석을 지낸 김성재 전 문화관광부 장관은 “정권이 박수 받는 출발점에 서다 보면 들뜨게 되고,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면서 “어려운 개혁을 완수하자면 아파도 원칙을 지켜내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201707호 (2017.06.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