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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역지사지’ 판사의 길 걸어온 조병현 원로법관 

“법관이 귀 열면 서민은 행복하다” 

글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결말이 뻔한 사건일지언정 사연을 충분히 들어주는 게 판사의 업(業) 사법부의 대국민 신뢰도 충분히 높아… 의회의 사법부 입김 차단해야

▎조병현 원로법관은 한국의 사법 시스템이 비용과 속도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한다.
요즘 사법부는 여러모로 변신을 꾀한다. 법원조직법이 정한 판사의 정년(만 65세)까지 일하도록 하는 ‘평생법관제’가 그렇다. 사법연수원 동기가 고등법원 부장판사 또는 대법관으로 승진하면 나머지 동기 판사 대부분이 사표를 내던 관행을 뛰어넘어 법정 연한까지 판사로 일하게 하자는 취지다. 이른바 ‘법원장 순환보직제’와 ‘원로(元老)법관제’는 이를 실현하는 대표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엔 법원장 재직 기간 내에 대법관이 못 되면 법원장 임기 중 또는 임기 만료 직후 사표를 냈다. 그러다 2012년에 이르러 임기가 만료된 지방법원장 중 일부가 사표를 내지 않고 고등법원에 복귀해 부장판사를 맡았고, 이후 ‘법원장 순환보직제’가 대세를 이뤘다. 이에 더해 30년 이상 재판을 이끈 60대 판사들에게 1심을 맡기는 원로법관제도가 올 초 첫선을 보였다.

조병현 원로법관(62·사법연수원 11기)은 이러한 일련의 변화의 맨 앞에 서 있는 판사로 꼽힌다. 우선 그는 자신이 법원장으로 재직하던 법원으로 복귀한 첫 사례다. 2015년 2월 서울고법원장에서 물러난 바로 다음 날부터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일했다. 뒤이어 2년이 지난 올 2월 동료 법관 4명과 함께 첫 번째 원로법관으로 지명됐다. 2010년부터 법원장만 내리 5년을 역임한 그가 지금은 국민과 가장 가까이 있는 풀뿌리 법원이라 할 수 있는 광명시법원에서 1심 재판을 맡고 있다. 그는 광명시 관내의 소가(訴價) 3000만원 이하의 민사소액사건, 20만원 이하의 벌금·과료, 또는 30일 이하의 구류를 선고할 즉결심판사건, 이혼의사 확인사건 등을 처리한다.

사법부는 전직 대통령, 재벌 총수, 전현직 고위 관료 등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관련 당사자들의 재판을 진행 중이다. 현 정부 들어 사법부 스스로도 변화와 혁신의 물결을 타고 있다. 현직 판사 중 양승태 대법원장을 제외하고는 가장 고참 축에 속하는 조 법관에게 법원의 당면 과제와 미래 비전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판사님이 하라는 대로 할 테니 결론을 내려달라’


▎2013년 국회 법사위의 서울고등법원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는 조병현 당시 서울고등법원장 (앞줄 왼쪽).
먼저 사법부가 원로법관제를 도입한 취지는?

“현행 3심제 구조에서 1심 재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하겠다. 1심에서 내려진 결론이 거의 그대로 3심까지 가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소송관계인 모두가 1심 재판에 집중하게 되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1심 재판은 경력이 많지 않은 판사가 맡고, 경력이 많은 판사는 항소심을 맡아 온 것이 현실이다. 임기를 마친 법원장들도 예외 없이 항소심인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복귀했다. 원로법관제는 종래의 관행에서 탈피해 1심을 강화하겠다는 사법부의 의지를 나타내는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경력이 많은 법관으로 하여금 1심을 맡게 함으로써 심리에 충실을 기하고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 회복을 도모하자는 의미다. 1심 재판 중에서도 소액사건은 국민 생활과 가장 밀접한 분야이므로 원로법관제가 시행된 첫해 백발이 성성한 원로법관 5명 모두 소액사건을 담당하도록 한 것으로 이해된다. 앞으로 원로법관이 많아지면 다른 1심 재판, 예컨대 형사 단독이나 민사 중액(1억원 이하) 또는 합의사건도 맡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변호사 개업을 생각하진 않았나?

“왜 하지 않았겠나? 우선 제가 법원장으로 있던 법원의 부장 판사로 복귀하는 첫 번째 사례가 된다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또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변호사 생활에 대한 기대를 접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교편을 잡고 있는 집사람 덕분에 상대적으로 덜 쪼들렸고 자식들도 잘 자라 부모의 도움이 꼭 필요한 정도는 아니어서 가족회의 끝에 법원에 남기로 했다. 솔직히 아들이 법관인 점이 크게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법관으로 33년간 재판을 해왔다. 재판을 하면서 가장 중요시했던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

“사건의 종류에 따라 심리 자세가 달라져야 함은 당연하다. 형사사건은 엄격한 증거법이 적용되고 필요한 경우에는 직권주의를 발동해 진실이 뭔가를 찾아내야 한다. 반면 민사사건은 기본적으로 양 당사자에게 주도권을 주는 변론주의가 지배한다. 판사는 모든 사건을 심리하면서 소송 관계인의 얘기를 유감없이 경청하고 증거조사에 대해서는 설사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충분히 숙고한 뒤에 결정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양 당사자로 하여금 적어도 절차적으로는 상대방에 비해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 재판장은 결말이 뻔한 사건일지언정 양 당사자의 얘기, 즉 하소연을 충분히 듣는 걸 업(業)으로 한다.”

원로법관이 주재하는 소액사건 재판이야말로 그런 경우가 많겠다

“소액재판 당사자는 대부분 서민이다. 그들에겐 3000만원이 적은 금액이 아니다. 1년 이상 벌어도 모으기 힘든 금액이라 승패에 민감하다. 그래서 할 말이 아주 많은데도 소송 상대방은 물론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할 수 없이 소송으로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선 양 당사자의 말을 들어줘야 한다. 결론이 빤히 보이는 사건일지라도 마찬가지다. 하고 싶은 말을 했다고 생각하는 당사자일수록 양보도 시원시원하게 한다. 법률적으로 원고가 100% 이길 사건도 20% 정도 양보하게 함으로써 피고가 자발적으로 채무를 갚도록 만드는 일이 바로 원로법관의 소임이라고 믿는다. 나름대로 할 말을 다했다고 생각한 당사자들이 ‘판사님이 하라는 대로 할 테니 결론을 내려달라’고 한 사건이 여러 건 있었다. 그동안 제가 진행한 재판의 법정 분위기에 대한 평판이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사법평의회 구상, 재판에 정치 개입 논란 부를 수도


▎판사실에 걸려 있는 한문 족자는 1977년 경기도 남양주군 조안면 진중리 재실(齋室)에서 고시 공부 할 때 조 원로법관이 지은 한시(漢詩)다.
조 원로법관이 주재하는 광명시법원 재판정은 여느 법정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방청석에서 봤을 때 오른편 벽면에는 금방 폭포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은 현대화가 사석원의 유화 <내연산 연산폭포>가 걸려 있다. 왼편 벽면에는 사진작가 김중만의 <나미비아 사막>이 방청객의 시선을 끈다. 재판을 받으러 온 소송 관계인도 잠깐 긴장을 풀고 감상할 만하다. 조 원로법관은 “긴장이 풀리면 대화도 잘 되는 법”이라며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재판정을 약간의 소품으로 꾸며봤다”고 웃었다. 그는 사진은 오래전에 작가로부터 선물받았고, 유화는 1년간 빌린 것이라고 일러줬다.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회가 내놓은 사법평의회 구성안도 법원 안팎의 관심사로 등장했는데 어떻게 보나?

“현재 거론되는 사법평의회안 내용 중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나만 지적하자면 16명의 평의회 구성원 중 8명을 국회가 추천하도록 돼 있다. 사법부 업무에 정치가 개입할 수 있는 통로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국회의원이 관계된 형사사건, 그중에서도 선거법 위반 사건에 관한 재판의 공정성도 문제가 될 것이다. 좀 더 깊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법평의회 구성안은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낮다는 사유로 정치권이 내놓은 방안 아닌가?

“대한민국 사법부의 신뢰도가 낮다고 말하지만 외국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지난해 하반기 세계은행이 발간한 2‘017 기업환경평가보고서(Doing Business)’를 보면 ‘법적분쟁해결(Enforcing Contracts)’ 분야에서 대한민국 사법부가 세계 1위로 평가됐다. 그 평가는 ▷소송 건당 소요되는 기간 ▷소가(訴價) 대비 소송비용 ▷조정이나 중재 같은 대체적 분쟁 해결 방안을 다양하게 갖췄는지 여부 등을 종합해 내린 결론이다. 한마디로 한국에서의 소송은 돈이 적게 들면서도 신속하게 진행되며 다양한 경로로 분쟁이 해결된다는 평가다. 민사·형사·행정 사건 거의 전 분야에 걸쳐 전문재판부가 구성돼 있는 점, 민사·행정 사건에서 전자소송으로 진행되는 비율, 법률정보 검색의 신속성 등에서 다른 나라가 따라올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다.”

사법부 개혁은 전문성과 다양성의 조화 문제로 귀결되는 듯한데.

“그렇다. 우리 사법제도는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동안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왔다. 우선 오랜 기간 우수한 인재를 법관으로 뽑아 인적 자원을 확보했고, 거의 전 분야에 걸쳐 전문 재판부를 구성함으로써 신속한 재판 진행과 판결 결과에 대한 믿음을 줬다. 또 법관들에 대한 끊임없는 연수를 통해 전문성을 높였다. 이제는 다양성에 눈을 돌릴 시기가 왔다고 생각한다. 재판 능력이 우수하냐 여부로 모든 것을 결정하던 시스템은 이제 그 효용을 다한 것 같다. 판사와 나아가 대법관까지 다양한 직역에서 다양한 생각을 가진 자 중에서 뽑아야 한다는 말이다. 새로 취임할 대법원장의 우선 과제다. 다만 이 시점에서 사법개혁을 말하는 데 있어 사법부 초기부터 전문성보다 다양성에 중점을 뒀다면 우리 사법부가 지금의 수준으로까지 발돋움하기는 어려웠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지금은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곧바로 판사로 임명되지는 않는 걸로 안다.

“그렇다. 이른바 법조일원화를 위해 원칙적으로 10년 이상 경력자를 법관으로 선발하도록 하되, 인력 수급을 조절하고자 경과규정을 뒀다. 올해 말까지는 3년 이상, 내년부터 2021년까지 5년 이상, 2022년부터 2025년까지 7년 이상 법조 경력이 요구된다. 오랜 법조 경력이 요구될수록 변호사와 교수, 인권운동가 또는 기업인 등 다양한 경력자가 법관으로 선발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할 수 있다.”

올해는 서울행정법원 개원 20년이 되는 해다. 서울행정법원장과 행정재판발전위원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감회가 새로울 듯하다.

“2000년부터 3년간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 재판장을 맡았고, 서울고등법원 행정부 재판장 2년, 서울행정법원장 1년6개월, 2011년 세계난민판사회의 한국 대표로 연설 등 적어도 행정재판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경험과 애착이 많다고 자부한다. 돌이켜 보면 1998년 행정소송법의 전면 개정으로 행정재판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국가 공권력 행사를 규범적으로 통제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면서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 함께 올라갔다. 하지만 행정재판이 갖는 제도적 한계로 인해 국민의 불만도 점증하는 추세다. 특히 행정청의 거부처분에 불복해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해 해당 행정처분을 취소하라는 승소 판결을 받아도 행정청이 이행처분을 하지 않을 경우 이를 강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 그러하다.”

법원에도 법률안 제출권 줘야


▎조 원로법관은 행정청의 이행처분을 강제할 수 있는 행정소송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행정소송법을 개정하려는 노력이 있었지 않나?

“법원의 판결로 행정청으로 하여금 바로 이행처분을 하도록 강제하는 의무이행소송을 신설한다면 국민의 권리 구제는 한층 쉬워진다. 그런 방향으로의 행정소송법 개정이 절실한데도 관련법 개정 작업은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는 실정이다. 대법원이 2006년 행정소송법 개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회에 입법 의견을 제출했으나 폐기된 바 있다. 그 뒤 법무부 주도로 법원·행정부·헌법재판소·대한변호사협회·학계 등 유관기관이 참여한 행정소송법 개정위원회을 구성, 개정안을 마련하고 2013년 3월 입법 예고까지 했으나 국무회의에 상정되지도 못한 채 사장되고 말았다.”

그 해결 방안은 뭐라고 보나?

“재판에 적용되는 법률의 문제점은 법원이 가장 잘 안다. 사법부로서는 법원에도 법률안 제출권을 주면 가장 좋겠지만, 적어도 행정부로 하여금 법원이 만든 법률안에 의견을 부기해서라도 국회의 소관 상임위에 회부하도록 했으면 한다.”

재판을 하다 보면 법정의 검사와 변호사가 안쓰러워 보일 때도 있을 법하다. 왜 영화 같은 데에 예기치 않은 증인, 증거가 나오면서 재판의 희비가 일순간 엇갈리고 변호사 혹은 검사가 사면초가로 몰리기도 하던데.

“그런 장면은 1년에 한두 번 나올까 말까 한다. 최근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은 그렇지 않지만 일반 형사재판은 재미가 없고 더구나 드라마틱한 사건은 정말 찾기 어렵다. 다만 법정에서 변호사들이 의뢰인(피고인)에게 면박을 당하는 일은 더러 생긴다.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변호사가 재판장이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 못 하고 우물쭈물하면 이를 보다 못한 의뢰인이 변호사를 제치고 직접 나서서 답변하기도 한다. 다혈질인 의뢰인 중에서는 법정에서 대놓고 변호인을 몰아세우는 이도 있다.”

법정에서 보는 변호사의 애환이라고 봐야 할까?

“변호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의뢰인의 변호사에 대한 가장 흔한 추궁이 ‘담당 판사를 만나봤느냐’는 다그침이다. 로비를 했느냐는 물음인데…. 판사가 만나주지 않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나. 그런 사정을 얘기하면 무능하다고 몰아세 운단다. 거의 없어진 폐습이지만 아직도 이를 악용하는 변호사가 일부 있어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변호사단체에서 좀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고 보니 문재인 대통령과는 경남고 동문이다.

“문 대통령이 3년 선배여서 학교를 같이 다니진 않았다.”

따로 만날 인연은 없었나?

“2010년 제가 부산지방법원장으로 부임하고서 자리를 두어 번 한 적이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은 2008년 초 대통령 비서실장에서 물러난 뒤 변호사로 활동 중이었다. 당시 저는 우리 법원의 재판에 대한 보다 솔직한 평가를 듣기 위해 따로 몇 분의 변호사를 초청해 점심을 함께한 적이 있다. 그때 문 대통령이 제가 잘 아는 변호사의 추천으로 참석했다. 당시부터 문 대통령은 여러 곳으로부터 정계 진출을 요구받고 있었는데, 제가 문 대통령에게 어떻게 하실 거냐고 물어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답은 단호한 부정이었다. 적어도 당시로서는 문 대통령이 정치할 생각이 없었다는 말이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나중에 정치를 했고, 지금은 대통령이다.”

포항에서 태어나 중학교도 포항에서 나온 것으로 안다. 그런데 왜 고등학교는 부산의 경남고로 가게 됐나?

“공부는 잘하는 편이었지만, 집안 사정상 외지로 유학을 갈 형편은 못 됐기에 포항의 고등학교로 진학할 예정이었다. 고등학교 원서 접수를 며칠 앞두고 마침 고향에 다니러 온 부산의 당숙이 제 얘기를 듣고선 자기 집에서 다니면 되니 경남고에 진학하라고 적극 권유했다. 그래서 급하게 경남고로 진로를 틀었다.”

대통령 탄핵은 법치주의의 실천

개혁 색채가 뚜렷한 김명수 대법원장 시대가 열리면 사법부에 기수와 서열을 깨는 혁신 바람이 분다는 전망이 나온다.

“제가 서울고등법원장으로 있을 때 김명수(사법연수원 15기) 대법원장 후보자는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재직했다. 대학으로는 3년, 사법연수원으로는 4기 후배다. 서울고등법원에는 부장판사만 50명이 넘어 법원장이라도 부장판사를 자주 만날 기회는 없다. 그렇지만 회식이나 면담에서 몇 번 만나본 기억으로는 김명수 후보자를 자신의 주장을 명확하게 밝히는 소신이 뚜렷한 법관으로 기억한다. 미국 대법원장은 ‘Chief Justice’라고 부른다. 사법행정의 책임자라기보다 수석 대법관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사법행정 업무보다 재판 업무가 주된 일로 알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국민이 원하는 사법부의 역할이 바뀌었다. 우리나라 대법원도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보다 신속하게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우리 사회의 분쟁과 갈등을 보다 원만하게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전원합의체 판결은 많이 나올 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헌법재판소의 박 전 대통령 탄핵 결정이 국민의 의식구조와 법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현직 대통령을 탄핵했으니 국민에겐 충격으로 와 닿았을 것이다.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일지라도 잘못하면 탄핵당해야 한다는 법치주의의 원칙이 실천되고 있음을 충격적으로 증명한 셈이 된다. 대통령 탄핵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고 우리나라의 민주화 정도가 세계적 수준임을 과시한 것으로 생각한다.”

법조인으로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2013년 2월부터 대전고등법원장으로 근무하다가 당시 서울고등법원장이 헌법재판관으로 지명되면서 2013년 4월 서울고등법원장으로 발령이 났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군법무관으로 전역한 아들이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로 발령난 날이었다. 같은 시간에 장소만 달리해 취임식(서울고등법원)과 임명장 수여식(대법원)이 열렸는데 집사람은 저에게 오지 않고 아들한테 갔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도 흐뭇하다.”

약력

▷ 경북 포항 출생
▷ 포항중·경남고·서울대 법대 졸업
▷ 사법시험 21회. 사법연수원 11기
▷ 1984년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 임명
▷ 2010년 부산지방법원장
▷ 2011년 서울행정법원장
▷ 2012년 대구고등법원장
▷ 2013년 대전고등법원장
▷ 2013년 서울고등법원장
▷ 2015년 서울고등법원부장판사
▷ 2017년 원로법관 지명,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광명시법원 판사

- 글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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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호 (201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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