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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취재] MB 겨눈 검찰 칼끝의 종착지는… 

벼랑끝에서 정치셈법 작동?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강경 일변도 고집하다간 文 정권의 ‘정치적 고립’ 자초 가능성… 북측엔 관용, 정적엔 끝까지 불관용이라면 모두에게 도움 안 될 수도

이명박(MB)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적어도 평창겨울올림픽 기간(2월 9~25일)에는 소환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MB가 검찰의 포토라인에 서는 것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국민적 관심은 구속 여부다. 월간중앙이 이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고 있는 여야 관계자들과 접촉해본 결과 “구속까지 가는 건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주적(主敵)인 북한과도 대화하겠다면서 내부 정적(政敵)을 끝까지 죽이려 든다면 문재인 정권은 고립의 길을 자초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충돌’은 지난해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서부터 본격 예고됐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유세에서 “대통령이 되면 이명박 정부의 주요 사업을 다시 조사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司正)이 예고된 것은 근(近) 1년 전이다. 지난해 4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선거 유세에서 “대통령이 되면 이명박 정부의 4대강사업·방위산업·자원외교 비리 등을 다시 조사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대통령 당선 13일 만인 5월 22일 감사원에 4대강사업의 재감사를 지시했다. 대통령에게는 감사 지시권이 없다. 그러나 감사원은 “국민공익감사 청구가 있다”는 이유로 감사에 착수했다.

MB 정부의 국가정보원에 대한 조사도 빨라졌다. 국정원은 6월 1일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산하에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사건 의혹을 조사하는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를 세웠다. 서훈 국정원장이 7월 12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한 조사 대상 사건 13건 가운데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 댓글 사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 ▷‘박원순 제압 문건’ 등 6건이 MB 정부 때 있었던 일이다.

2007년 대선을 뜨겁게 달군 ‘BBK 사건’도 재거론됐다. 9월 1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김경협 민주당 의원은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이 전 대통령의 BBK 사건 연루 부분이 확인되면 재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총리는 “사실이라면 좀 더 명확한 규명이 필요한 문제”라고 답했다. 9월 14일에는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박상기 법무부장관에게 “BBK와 관련해 전면 재수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박 장관은 “검찰에서 판단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민주당은 MB 정부의 자원외교에 대한 수사도 압박했다. 홍익표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은 8월 10일 당 회의에서 “해외자원 개발은 무풍지대로 이명박 정부가 수십조원을 투자해 막대한 손실을 초래한 실패 사업”이라며 “이 전 대통령,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최경환 전 지식경제부 장관, 박영준 전 차관 등 모든 분에 대해 철저한 조사와 수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MB 측 핵심 관계자는 “이 정권 들어 검찰이 MB를 잡겠다며 소환한 사람이 100명쯤 되는 것 같다. 곰을 호랑이로 만드는 것이 지금의 검찰 아닌가”라고 꼬집은 뒤 “이건 통상적인 수사와는 분명히 다르다. 다른 한편으로는 MB와 관련해 명확하게 (증거가) 나온 것이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대대적인 사정을 예고한 지 8개월가량이 지난 시점에서 검찰 수사에 속도가 붙었다. 목표도 확실하다. 검찰은 MB를 주범으로 보고 있다.

MB 정부 시절 청와대의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2월 5일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을 재판에 넘기면서 MB를 뇌물수수 및 국고 손실 혐의의 주범으로 적시(摘示)했다. MB에 대해 다각도로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검찰이 혐의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은 평창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MB를 소환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안팎에서 “시점은 3월 말 또는 4월 초가 유력하다”는 말이 나온다.

MB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받은 의혹 수사는 크게 세 갈래로 진행되고 있다. ▷김백준 전 기획관이 수수한 혐의를 받는 4억원의 용처(用處) ▷총선 대비 여론조사비 유용 의혹 ▷민간인 사찰 입막음 의혹 등이다. 모두 MB가 주도해 이뤄진 일이라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MB 측 관계자의 말이다. “전병헌 전 민주당 의원은 대기업의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5억원의 뇌물을 챙긴 혐의를 받았지만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5억원을 수수한 일개 전직 국회의원도 그렇게 처리하는 마당에 MB가 특활비를 받았다 하더라도 구속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전직 대통령을 소환하기에는 금액이 너무 적기 때문에 박근혜 전 대통령 수준(36억5000만원 수수 혐의)으로 맞추고 있다는 말도 들리더라.” 박 전 대통령은 국정원에서 36억5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별도의 혐의로 1월 4일 추가 기소됐다.

측근→가족→본인 수사… 2009년의 ‘데자뷔’


검찰이 MB를 겨냥한 수사를 본격화하면서 이 전 대통령의 주변 인물들이 연이어 검찰에 소환되고 있다. 측근을 넘어 가족으로까지 수사가 확대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와 데자뷔(기시감·旣視感)라는 말도 나온다.

MB 일가 중 처음으로 수사선상에 오른 이는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다. 이 전 의장은 MB의 친형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송경호)는 이 전 의장을 1월 26일 소환했다. 이 전 의원은 국정원에서 수억원의 불법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조사받았다.

공교롭게도 노 전 대통령 수사 때도 형이 가장 먼저 수사 선상에 올랐다. 노건평씨는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에 개입해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자녀들도 수사 대상이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와 딸 정연씨 부부도 검찰 조사를 받았다. 600만 달러 수수 의혹과 정연씨의 미국 아파트 구매자금 출처 의혹 때문이다. 권양숙씨와 건호·정연씨 등에 대한 수사는 노 전 대통령 서거와 함께 종결됐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지난해 10월 뇌물공여 혐의로 권양숙씨 등을 고소했고, 이 사건은 서울중앙 지검이 수사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는 다스 의혹과 관련이 있다. 다스는 이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회사다. 시형씨는 다스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일하고 있다. 다스의 해외법인 9곳 가운데 4곳의 대표를 맡고 있다. 다스 비자금 조성 의혹과 실소유주 의혹을 푸는 데 있어 조사가 불가피한 인물이다.

대통령 부인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것도 비슷하다. 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씨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600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 전 대통령의 부인인 김윤옥씨는 국정원 특활비를 받아 이 전 대통령의 해외 순방 기간에 명품 쇼핑을 했다는 의혹에 휘말려 있다. MB 측은 관련 의혹을 제기한 박홍근 민주당 의원을 검찰에 고소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김윤옥씨가 소환조사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두 전직 대통령을 옥죄는 방식도 비슷하다. 검찰과 국세청을 총동원해 화력을 집중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2008년 7월 박연차 회장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가 발단이었고, 수사는 당시 ‘검찰총장의 직할부대’였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맡았다.

국정원 특활비 상납 의혹, 다스 의혹, 국정원·군(軍) 정치 댓글 의혹 등으로 나눠 진행되고 있는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서도 국세청은 빠지지 않았다. 국세청은 2월 4일 다스에 대한 특별세무조사를 실시했다. 이 전 대통령 측에 대한 수사는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특수부·첨단범죄수사부, 서울동부지검 다스수사팀 등이 맡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 수사와 이 전 대통령 수사는 여러모로 닮은 점이 있다”며 “측근부터 겨누기 시작하던 칼끝이 가족과 부인을 거쳐 대통령 자신에게까지 미칠 때 느끼는 심적 압박감은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MB 정부 청와대 관계자는 “친노·친문 핵심은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뇌물 수수 의혹을 드러냈다는 데 대한 분노가 지금도 가라앉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저들이 끝내 파국을 택한다면 언젠가 자신들도 같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일갈했다.

“MB가 전두환·노태우와 동급?”


▎2015년 11월 22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를 찾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인사하고 있다. /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불행한 역사’의 최초를 기록한 이는 전두환(재임 기간 1981~88년)·노태우(재임 기간 1988~93년) 전 대통령이다.

1996년 3월 11일 오전 10시 서울형사지법 417호 대법정에서는 12·12 및 5·18 사건의 첫 재판이 열렸다. 전·노 두 전직 대통령이 나란히 법정에 섰다. 검찰은 12·12 사건을 군사 반란, 5·18 사건을 내란행위로 규정했다. ‘성공한 쿠데타’에 대한 단죄였다.

‘최순실 게이트’를 자초한 박근혜 전 대통령(재임 기간 2013~2017년)은 퇴임 후 구속된 세 번째 전직 대통령이다. 만일 MB가 포토라인에 서는 데 그치지 않고 구속 수감된다면 헌정 사상 수의(囚衣)를 입는 네 번째 대통령이 된다.

MB 정부 청와대 관계자의 주장이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구속은 YS(김영삼 전 대통령) 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명분 아래 가능했던 일이다. 둘은 군사반란·내란 등 국기(國基)를 뒤흔든 죄가 명백했기에 구속됐다. 설령 MB가 국정원에서 특활비를 받아 썼다고 하더라도 전두환·노태우에게 비하겠는가? 수억원을 챙긴 일개 전직 국회의원도 불구속 재판을 받고 있다. 사안의 경중(輕重)은 정확히 객관적으로 따져야 할 것이다.”

민주당에서 전략 부문을 담당했던 관계자는 현실적 측면에서 보수의 결집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MB 문제와 관련해 당 차원에서 대응하지는 않겠다”고 강조했지만 MB가 수의를 입는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란 해석을 곁들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MB마저 구속된다면 보수로서는 더 잃을 것이 없게 된다. 보수진영의 결집으로 인해 정국은 치킨게임으로 내몰릴 것이다. 지금은 논란이 있지만, MB가 실제로 구속된다면 정치보복이라는 그림도 보다 선명해진다. 그렇다면 6·13 지방선거도 진보와 보수 일대일 프레임이 짜이게 된다. 주요 신문 1면에 수의를 입은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실린 모습을 상상해봐라.”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정권 핵심 인사들의 발언을 주목하라고 귀띔했다. 정봉주 전 의원 등 일부는 “MB는 중형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하지만 정작 당 지도부는 말을 아끼고 있다. 정 전 의원은 2007년 대선 당시 MB의 BBK 실소유주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명박 당신은 절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했다가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했다. 정 전 의원은 지난해 연말, 문재인 정부 특별사면 때 정치인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피선거권이 회복된 그는 지방선거 출마를 검토하고 있다.

지난 1월 중순 MB와 청와대 간의 정치보복 설전(舌戰) 때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전 대통령이 ‘정치보복’ ‘보수궤멸’ 등 격한 표현으로 검찰 수사를 비판했지만 이는 억지 주장”이라며 “이 전 대통령이 조금이라도 나라를 생각하고 애국하는 마음이 있다면 (전직) 국가 원수의 품위를 잃지 말고 당당하게 사법당국의 수사에 협조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도 “이 전 대통령 측의 의도는 권력형 비리사건 등 범죄의 실체가 드러나자 이를 감추기 위해 소위 전·현 정권, 보수와 진보 프레임 전환 시도에 불과하다”며 “분명히 말하지만 지금 검찰 수사는 범죄행위를 수사하는 것이다. 거기에 진보·보수가 무슨 필요가 있으며 보복은 웬 말인가”라고 일갈했다.

고비마다 작동한 ‘임(任)-임(任) 라인’


▎2월 9일 강원도 용평 블리스힐스테이에서 열린 올림픽 개회식 리셉션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의 환영사를 듣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민주당 관계자는 “청와대와 교감하는 당 핵심 라인에서는 MB 구속이라는 말을 거의 꺼내지 않고 있다. MB를 비판하면서도 말을 조심하는 것이 느껴진다”며 “전체적으로 행간을 읽어보면 검찰 수사와는 별개로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2월 9일 평창겨울올림픽 개회식이 열린 강원도 평창 올림픽플라자 리셉션장에서 마주쳤다. 문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이 만찬장 좌석에 앉자 먼저 다가가 악수하면서 올림픽 유치에 대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

문 대통령은 “올림픽을 유치해 이런 훌륭한 잔치를 열게 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했고, 이 전 대통령은 “날씨가 좋아져서 다행이다. 평창올림픽은 훌륭한 일이니 성공적으로 마쳤으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평창 겨울올림픽은 노무현 정부 때 2003년과 2007년 두 차례 유치하는 데 실패한 끝에 MB 정부이던 2011년에 마침내 개최권을 따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양측의 사전조율을 통해 이뤄졌다. 검찰 수사의 강도가 높아지는 와중에 청와대가 MB를 올림픽 행사에 초청했고, MB는 이를 수락했다. 초청도 수락도 다소 의외였다.

앙앙불락(怏怏不樂)하던 양측이 출구를 모색하게 된 데는 ‘임(任)-임(任) 라인’이 작동했다는 후문이다. 구여권 관계자는 “양측이 충돌할 때마다 파국을 막기 위해 임종석 현 청와대 비서실장과 임태희 전 비서실장이 핫라인을 가동했다”며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일이 발생할 때마다 임 실장이 임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청와대가 1월 30일 이 전 대통령 초청 방침을 밝히기 얼마 전 임종석 실장은 임태희 전 실장을 통해 이 전 대통령의 참석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전 실장이 “초청에 응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하자 임 실장은 “무슨 뜻인지 알지만 문 대통령께서 국가적 행사인 만큼 이 전 대통령을 정중하게 모시라고 하시니 잘 논의해달라”고 거듭 요청했다는 후문이다. 이때 검찰 수사와 관련한 얘기도 오갔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12월 임 실장의 아랍에미리트(UAE) 특사 방문을 놓고 논란이 일었을 때도 ‘임-임 라인’이 가동됐다고 알려졌다. 당시 야권은 “현 정부가 이명박 정부의 UAE 원전 수주 과정 뒤를 캐다가 UAE 왕세제가 반발하자 이를 무마하러 간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임 실장은 임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 전 대통령의 뒷조사를 한 게 아니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양측 간 정면충돌 기류는 크게 누그러졌다.

구여권 관계자는 “1956년생인 임태희 전 실장이 1966년 생인 임종석 실장보다 열 살이나 연상이다. 두 사람은 16대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서 함께 일하면서 가까워졌다”며 “진영(陣營)을 떠나 가까운 관계인 건 맞다. 임 실장이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재직할 때도 임 전 실장에게 이따금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가 2002년 9월 한 시민방송 개국 행사에서 이명박 서울시장과 악수하고 있다.
또 다른 구여권 관계자는 ‘임-임 라인’의 실체를 인정하면서도 ‘경계심’를 늦추지 않았다. “사람들은 임종석 실장을 청와대 실세라 하고, 친노 핵심이었던 백원우 민정비서관을 적폐청산 드라이브의 운전자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일부만 보고 하는 말이다. 임 실장은 메신저, 백 비서관은 비서관에 불과하다. 적폐청산이라는 큰 그림 아래 전체적인 매니저(운영자)는 따로 있는 것으로 안다. 베테랑 정치인으로 매우 강성인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강성이더라도 정치적 셈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정도의 계산은 되는 사람이니 이토록 오랫동안 정치를 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 관계자의 말이 이어진다. “그동안 ‘임-임 라인’이 가동된 사안은 주로 국익에 관한 것이었다. 청와대는 공식적으로는 ‘검찰 수사에 전혀 개입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평창올림픽 이후 검찰 수사를 보면 청와대의 진짜 속내를 알게 될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승계를 자처하는 문재인 정부는 대화를 통한 남북 평화 정착의 당위성을 천명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신(新)베를린 선언’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독일을 방문한 문 대통령은 7월 6일(현지시간) 옛 베를린 시청에서 열린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에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 협력을 위해 남북 간 대화가 필요하다”며 “여건이 갖춰지고 한반도의 긴장과 대치국면을 전환할 계기가 된다면 언제 어디서든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12월 28일 청와대 본관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함께 만찬장으로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노 대통령의 왼쪽 뒤는 문재인 비서실장, 이 당선인의 오른쪽 뒤는 임태희 당선인 비서실장.
청와대가 평창겨울올림픽에 북한을 초청하고 남북 단일팀 구성을 추진했던 것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평창올림픽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2월 10일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과 만났다.

文 대통령, 정쟁 중단 대국민 담화 발표?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만난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윤옥씨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와 인사하고 있다. /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김 부부장은 김정은 위원장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담은 친서를 전달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을 빠른 시일 안에 만날 용의가 있다. 편하신 시간에 북을 방문해 주실 것을 요청한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초청 의사를 구두로 전달했다.

북측의 초청이 곧바로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4강과의 이해관계, 특히 북한에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미국과 풀어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운전자’인 문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다면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 위원장의 제의에 문 대통령은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고 화답했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여야의 정치적 이해득실은 섣불리 따지기 어렵다. 표면적으로는 여권에 유리한 것처럼 비치지만 되레 보수 결집을 초래할 수도 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돼 있는 상태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마저 수의를 입힌 뒤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된다면 반문(반 문재인) 정서가 극대화될 수 있다.

구여권 관계자는 “일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북 단일팀 추진, 김여정을 비롯한 북측 인사들은 환대(歡待)하면서 정적에겐 끝까지 칼을 겨누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이 정권에도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북측에는 무한 관용, 이명박에겐 절대 불관용’이라면 정치적으로 어떤 결말이 맺어질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 한다.”

현 여권 관계자는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전제로 개최 시점을 10월로 예상했다. 그 근거로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이산가족 문제 등과 관련한 실무진 논의 ▷6월 지방선거 ▷7~8월 혹서기 ▷9월 북한 정권 수립일(9·9절) ▷11월 미국 중간 선거 등을 들었다. 노 전 대통령의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10월에 성사됐다는 점도 10월 개최설에 힘을 싣는다.

“집안(남한) 단속도 하지 않은 채 외부(북한) 사람과 만나겠다고 하면 가족(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지방선거를 전후로 문 대통령이 정쟁(政爭) 중단과 국민 대화합을 촉구하는 담화문 같은 것을 발표하지는 않을까? 정치적 상황에 따라 8·15 때 특단의 조치가 있지 않을까? 문 대통령이 관용의 정치를 한다면 얻는 게 더 많지 않을까?”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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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호 (2018.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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