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공간철학자 신기율이 쓰는 현대인의 풍수] ‘사랑방’ 꿈꾸는 리더의 공간 

그 회사에는 ‘대표실’이 없다 

신기율 기율다원(己律茶院) 운영
권위·관습 중시하는 집무실이 경직된 조직 만들어…수평적으로 연결된 공간이 ‘물병자리 시대’ 담는다

시대가 바뀌면서 대중이 원하는 리더의 모습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권위와 힘이 아니라 공감과 소통이 리더의 자질로 꼽힌다. 이 시대 리더의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 박원순 서울시장과 연준혁 위즈덤하우스 대표가 가진 공간의 기술 ‘스페이스로지’를 분석해봤다.


▎소통하는 리더의 공간은 사람들이 수없이 오고 가는 ‘대합실’을 연상케 한다. 박원순 시장이 지난해 6월 ‘디지털 시민시장실’로 꾸민 집무실을 공개하고 있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북쪽 끝 검푸른 바다에 물고기가 있으니 이름을 곤(鯤)이라 한다. 곤의 크기는 몇 천 리가 되는지 알 수 없다. 어느 날 곤이 변해 새가 되니 그 이름을 붕(鵬)이라 한다.”

너무나 잘 알려진 [장자(莊子)]의 첫 구절이다. 이 대목은 보통 ‘자아의 초월적 비상(飛上)’으로 해석된다. 물고기가 스스로를 초월해 새가 되고, 물 밖 세상으로 나와 반대편 바다를 향해 비행을 시작한다는 것. 이는 읽는 이로 하여금 하늘 끝까지 날아오르는 붕새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원대한 시야를 갖게 한다. 나 역시 장자를 읽을 때마다 장쾌한 동양철학의 정수를 음미했던 구절이다.

그런데 최근 새로운 학문을 접하면서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서양의 고대천문학(Astrology)이 알려준 붕새의 비밀. 바로 ‘물병자리 시대’의 도래다.

고대천문학에 따르면, 2160년을 주기로 한 시대가 바뀐다. 지금 우리는 2000년 넘게 이어져온 물고기자리 시대의 말미에 살고 있다. 그리고 2100년 무렵부터 물병자리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이른바 ‘뉴에이지’의 도래다.

흥미로운 것은 시대가 바뀔 때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특정한 상징, 코드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수와 부처, 장자는 이 전 시대에서 지금의 물고기자리로 넘어가던 진동구간에서 태어났다. 불가에서는 지금도 목어를 두드리면서 새벽을 맞고 풍경 끝에 물고기를 매달아 놓는다. 항상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를 수행자의 표상으로 삼기도 한다. 기독교에서는 아예 물고기가 예수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써왔다. 마치 지금이 물고기자리의 시대임을 인증하는 것처럼.

공교롭게도 장자의 첫 구절 역시 ‘곤’이라는 물고기로 시작된다. 그리고 곤은 스스로를 변화시켜 붕새가 된다. 놀랍게도 새는 그 다음 도래할 물병자리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고대의 선인이 직관과 통찰로 다가올 새 시대를 예언한 걸까. 인간의식이 나아갈 길을 누군가는 ‘새’라는 문학적 비유로, 누군가는 ‘별자리’라는 우주적 장치로 설명했는지도 모른다.

친구 같은 ‘물병자리 리더십’이 통하는 시대


▎박원순 시장은 “각자도생을 넘어 사회적 우정의 시대를 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2월 23일 서울시청 본청 시장실에 만난 박 시장.
고대천문학은 미신으로 치부되곤 한다. 하지만 점사(占辭)를 제외한 점성학은 별과 인간이 수천 년간 이어온 공존의 역사이다. 일정한 주기로 순환하는 별자리는 사람의 몸과 마음이 그 주기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알려주는 역할을 해왔다. 수만 광년 떨어진 별에 놀라운 힘이 있어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장대한 우주에서 지금 내 위치의 공간적 의미를 알려주는 지표가 돼줄 뿐이다.

지금 우리는 이미 물병자리의 진동구간에 들어섰다. 물병자리의 시대. 그것은 ‘새’라는 상징이 보여주듯 개개인이 자유롭게 비상하는 시대다. 우리가 지내왔던 2000년간의 물고기자리 시대는 피와 피부와 성별에 따라 차별받고 억압받던 시대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차별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종교조차도 신분과 계급에 따라 연민과 자비를 베풀었다.

그러나 물병자리 시대는 ‘너와 나는 다르지 않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역설적이지만 그런 의식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코드가 ‘금수저·흙수저’ 논란이다. 출신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는 서글픈 담론은 ‘부모만 잘 만났다면 나도 너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수평적 사고가 깔려 있다.

이처럼 누구나 자기만의 세계와 철학이 있고 그것을 존중받고 싶어 하는 시대가 바로 물병자리의 시대다. 시대에도 인격이 있다면 부모의 보호와 통제로부터 벗어나 독립을 원하는 청년의 모습을 닮았다. 사람들은 점점 집단에서 개인으로 분리되고 권위와 관습으로부터 독립하려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물병자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의 하나는 ‘연결’이다. 홀로 있고 싶지만 고립되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연결의 감각을 추구하는 것이다. 트위터의 상징인 파랑새가 소셜 네트워크 시대를 열며 사람들을 연결 시켰던 것도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이처럼 시대적 감성이 변하면서 대중들이 원하는 리더의 모습 역시 바뀌고 있다. 이제는 권위와 힘을 내세우고, 대중을 가르치려 드는 리더십은 조롱받기 십상이다. ‘너와 나는 다르지 않다’라는 물병자리의 기본철학을 정치적 수사가 아닌 감성 깊숙이 갖고 있는 리더. 싫어하는 대상을 정복하거나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며 함께 가는 것, 이것이 옳다 말하며 끌고 가는 존재가 아닌 친구처럼 서로를 공감하며 나란히 걸을 수 있는 리더들을 대중은 알아보게 돼 있다. 그리고 그런 리더들이 점점 더 각광받는 새로운 시공간이 다가오고 있다.

기차역 대합실처럼 북적이는 시장실


▎박원순 시장은 시정(市政) 6년의 기록을 손수 파일로 정리했다. 박 시장의 손때가 묻은 파일들이 시장실 책장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다.
이곳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까. 서울시청 본청 6층의 시장실은 마치 북적이는 서울역 대합실 같다. 정중앙에는 대형 디지털 스크린이 서울시 현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열린 문으로 직원들이 자유롭게 드나든다. 한쪽 벽 천장에는 ‘방송중’ 이라고 써진 녹색등이 있다. 저 등에 불이 켜지면 이 공간은 고스란히 생중계 된다고 한다. 시장실에는 그 흔한 소파를 찾아볼 수 없다. 대신 10여 명이 회의할 수 있는 큰 회의 탁자가 눈에 띄었다. 시민들이 오랫동안 쓰던 가구를 재활용한 것이다. 서울시민들의 애환과 삶의 궤적을 느끼고 싶어 마련한 책상이라고 했다. 책상 가운데에 있는 의자는 늘 비워놓는다. 시민이 언제나 그곳에 앉아 듣고 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위해서다. 공간의 아주 사소한 것들에까지 시민과의 연결 장치를 배치했다.

반대편의 오래된 의자는 박원순 시장의 옛 동료였던 고(故) 조영래 변호사가 쓰던 의자다. 고락을 함께 했던 인권 변호사 시절과 앞서 간 이들을 잊지 않기 위한 다짐이자 약속일 것이다.

책상 위에는 서류더미가 가득하고, 책상 반대편 벽에는 수백 개의 파일이 가지런히 꽂혀 있다. 그런데 서류파일에 써진 글씨가 예사롭지 않다. 보통 이런 파일들의 제목은 프린터로 출력해서 붙여놓기 마련인데, 파일마다 똑같은 손 글씨가 쓰여 있다.

파일들의 손글씨가 똑같은데, 혹시 시장님이 직접 쓰신 건가요?

“맞습니다. 여기에 있는 파일들은 다 제가 직접 정리해서 만든 파일들이죠. 그래서 직원들도 뭐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릅니다. 서울시의 여러 가지 현안이 다 담겨 있는 거라 제게는 보물 1호나 다름없지요.”

그는 책상 밑에 대기 중인 새 파일들을 보여주더니 ‘잘 공개하지 않는다’는 숨겨진 공간도 보여줬다. 이곳도 100여 개에 이르는 시정파일로 가득했다. 파일 하나하나가 시장으로서 그가 남긴 역사적인 발자국들인 동시에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서울시의 발걸음들이었다.

파일들을 보면서 새삼 그의 집무실에 붙이고 싶은 이름이 생각났다. ‘움직이면서 봐야 제대로 보이는 공간.’ 가만히 멈춰있는 사람의 눈에는 이곳이 복잡하고 정신 없는 기차역 대합실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 떠나려고 차례대로 대기하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러운 풍경이 된다. 박 시장의 집무실은 바쁘게 움직이지 않으면 불편한 공간이다. 반면 끊임없이 걷고 일하는 사람에게는 최적화된 공간이다. 어디든, 누구든, 어떤 현안이든 바로바로 연결될 수 있는 최고의 플랫폼인 셈이다.

걸어서 닿는 곳까지가 공동체의 경계


▎도심을 가로지르는 철도는 사람과 지역을 둘로 쪼갠다. 보행로는 쪼개진 도시를 치유하는 아교다. 작년 5월 시민들에게 공개된 ‘서울로 7017’의 모습.
박 시장이 디자인하고 있는 서울이라는 공간 역시 어디로든 연결되는 거대한 플랫폼이 되고 있다. 그가 만들고 있는 인간의 길. 보행로를 통해서 말이다. 취임 이후 ‘보행도시’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박 시장은 그의 약속대로 서울 곳곳을 걷고 싶은 도시로 만들고 있다. 차 없는 거리가 늘고 보행로는 한결 넓어졌다. 끊어져 있던 길들을 하나로 이어 뚜벅 걸음으로만 서울을 관통할 수 있게 될 날도 머지않았다.

얼마 전 보행로로 탈바꿈한 서울역 고가도로를 걸었다. 이 길은 남산으로, 남대문시장으로 촘촘히 연결돼 있었다. 차가 완전히 사라진 고가 위에서 천천히 바라보는 도시의 풍경은 놀랍도록 새로웠다. 이 길을 느릿느릿 ‘산책’하는 사람들의 표정에도 여유와 생기가 흘렀다. 똑같은 길임에도 차가 아닌 사람이 다니는 길은 이전과 전혀 다른 에너지로 채워져 있었다. 정서를 회복시키는 인간의 길이 연결될 때 사람과 도시 간의 길도 새롭게 연결될 수 있음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자동차를 위한 기계의 길이 아닌, 오직 인간을 위한 길을 걷다 보면 본래 ‘나의 속도’로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인류탄생 이래 가장 빨라진 요즘 시대에서 걷는다는 것은 타고난 나의 호흡, 내면을 성찰하고 회복하는 일이다. 박 시장이 만들고 있는 보행도시가 개인적으로는 그 어떤 랜드마크보다 반가운 이유다. 자본과 물질중심의 사회로 빠르게 재편되는 시대에 사라졌던 인간의 길이 살아난다는 것은 최소한의 균형을 지키고 공동체로서의 생명력을 복원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저는 걷는다는 것이야말로 삶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걸으면서 육체적으로 건강해지고 머리로는 생각하고 사물을 보면서 배울 수 있죠. 지금까지 서울은 자동차에 주인을 내준 도시였는데 보행로가 생기면서 시민들이 다시 주인이 돼 가고 있어요. 이미 있는 길들을 조금씩만 연결하면 걸어서 서울 어디든지 갈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보행로를 통해 연결될 때 시민들도 서로 돕고 다 같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장님께서 만들고 싶은 서울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제가 이번 신년사에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각자도생의 세상을 넘어 공동체적 삶에 기반한 사회적 우정의 시대를 열자’ 요즘 사회가 갈수록 파편화되고 1인 가구, 2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삶의 무게를 혼자 짊어지고 가는 시대가 왔기 때문에 함께 나누는 공동체의 삶, 사회적 우정이 있는 서울을 만들고 싶습니다.”

'대표실’ 명패와 함께 권위를 내려놓다


▎연준혁 대표의 공간에는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는 그의 철학이 짙게 배어있었다. 2월 7일 위즈덤하우스 사옥에서 만난 연 대표.
물병자리 시대의 또 다른 주요 키워드는 바로 독립과 은둔이다. 이를 보여주는 리더의 스페이스로지를 찾아 떠난 곳은 일산에 위치한 정발산. 이곳에 최악의 불황 속에서도 안정적인 성장을 하고 있는 출판사가 있다. 바로 위즈덤하우스다. 250만 부가 넘게 팔린 윤태호 작가의 만화 [미생]과 100만 부가 팔린 허영만 작가의 [꼴]이 이곳에서 출판됐다. 그 외에도 다수의 밀리언셀러가 위즈덤하우스의 이름으로 활발히 출간되고 있다.

정발산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선택한 명당으로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그래서 위즈덤하우스의 정체성이 담긴 사옥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콘텐트를 다루는 출판사답게 재기 넘치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나의 세속적인 예상과 달리 회사는 오래된 상가 건물 한편에 담담히 세 들어 있었다. 너무 소박한 나머지 위즈덤하우스 사무실 앞에서 이곳이 맞나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특히 대표실은 사무실과 다른 층에 떨어져 있어 더욱 찾기 힘들었다. 승강기나 층별 안내 표지판 어디에도 대표실을 찾을 수 있는 안내가 없었다. 결정적으로 입구에조차 ‘출판미래전략실’이라는 이름이 걸려 있었다. 마치 비밀스런 은자(隱者)의 공간처럼. 은빛의 머리와 수염을 기른 연준혁 대표의 온화한 모습 역시 그런 느낌을 닮아 있었다.

“대표실이라고 하면 불필요하게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져요. 특별한 목적 없이 인사차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필요 이상의 부담을 느끼는 사람도 있죠. 그런 오해와 번거로움이 싫어 아예 이름을 붙이지 않았어요.”

연 대표는 직원들과 함께 토론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역할을 할 뿐, 회사를 대표하는 것은 회사의 이름이지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대표라는 이름이 주는 권위와 편견도 내려놓고 싶어 ‘출판미래전략실’이라는 이름을 대신 걸었다고도 했다.

이런 대표의 마인드는 공간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그의 공간에는 리더의 공간에 당연히 있는 ‘구심점’이 없다. 모든 공간에는 그 공간의 중심이 되는 구심점이 있기 마련이다. 공간의 동선은 구심점을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거실에서 TV가 구심점이면 쇼파와 탁자 여타의 소품들은 TV 시청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배치된다. 안방에서 침대가 구심점이면 침대의 방향이 곧 다른 가구들의 위치를 좌우하게 된다. 대부분의 대표실은 업무를 보는 대표의 책상을 중심으로 동선이 만들어진다.

이런 구심점들은 공간에 상식적인 배열을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처음 가본 공간에서도 대충 이곳에는 뭐가 있고 저곳은 어떤 물건이 있을지 예측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연준혁 대표의 공간에는 그런 구심점이 보이지 않았다. 심플하게 잘 정돈된 공간이었지만 각각의 가구들이 의외의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공간은 삼면으로 창이 나있어 일산의 멋진 풍경을 어디든 둘러 볼 수 있는 곳이다. 이런 곳이라면 대부분 앞이 탁 트이고 해가 드는 남쪽의 호수공원을 향해 책상을 두게 된다. 하지만 그의 책상은 정반대편에 있는 북쪽 정발산을 향하고 있었다. 산이 낮아 답답할 정도로 시야를 가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남향에 충실한 정발산 아래의 대형 건물들은 모두 대표실을 향해 서있다. 결국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상이 되니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집무실에서 그가 가장 아낀다는 안락의자의 위치도 그랬다. 잠시 숨을 돌리거나 독서를 하며 휴식을 취할 때 쓴다는 의자는 밖의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하며 쉴 수 있는 곳에 있지 않았다. 창을 등지고 천장에 닿아있는 높은 책장을 마주하고 있다. 의자에 앉으면 책장의 책들이 쏟아질 듯 올려다 보인다. 더구나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연 대표의 얼굴과 마주치게 된다. 이 역시 쉬기에 편한 구조는 아니다. 그에게 이런 구조를 갖게 된 이유를 물으니 간단하고 명료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게 있는 것이 제게 가장 편하니까요.”

연 대표는 늘 정발산을 보고 싶어 그곳에 책상을 뒀을 뿐이다. 뻗어나가는 산줄기와 녹색의 식물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충전이 된다. 안락의자도 마찬가지다. 책장을 보고 앉는 게 편해 그곳에 앉을 뿐이다. 나와 책장 사이의 좁지만 아늑한 거리가 먼 풍경보다 훨씬 안정감이 든다는 것이다. 각각의 가구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상황에 맞는 기능을 공평하게 수행할 뿐이다.

위즈덤하우스의 경영철학을 닮은 ‘아메바 공간’


▎연준혁 대표의 사무실에서 바라보이는 정발산의 모습. 왜 남향을 택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게 있는 게 가장 편하다”고 답했다.
이처럼 연준혁 대표의 집무실은 자기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만들 수 있는 공간이다. 이는 자신의 판단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이런 신뢰의 미학은 회사의 경영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었다.

위즈덤하우스는 ‘분사형 시스템’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분사는 5~6명 단위로 조직돼 분사장 중심의 자치권을 가진다. 분사장은 자체적으로 계획을 짜고 책임을 진다. 정년이 보장되고 오너의 개입은 최소화 돼 있으며 결과물로 평가받는다. 실적을 낸 분사는 그만큼의 인센티브를 가져간다. 이런 분사형 경영 방식을 ‘아메바 경영’이라고 한다. ‘아메바 경영’은 일정한 크기에 이르면 더 이상 크기를 키우지 않고 둘로 나뉘어 증식하는 아메바처럼 조직을 작은 크기의 단위로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상태가 잘 유지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바로 분사에 대한 ‘신뢰’다. 내가 컨트롤하지 않고 관여하지 않아도 스스로 잘 해나갈 것이라는 믿음이 전제가 되지 않는 이상 분사 시스템은 유지되기 힘들다. 합리적이지만 아직 다른 출판사들이 도입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실적을 내지 못하는 분사를 몇 년씩 두고 볼 수 있는 경영자는 많지 않다.

그러나 바로 이런 시스템 덕에 빛을 본 작품이 바로 미생이다. 미생의 윤태호 작가를 섭외한 직원은 거의 10년 동안 실적이 없던 직원이었다. 그런데 그 직원이 슬럼프를 겪고 있던 윤태호 작가에게 바둑 만화를 출간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마침내 미생이라는 작품이 나왔다. 실적 중심의 중앙 집권적 시스템이었다면 직원은 이미 사표를 냈을 테고 미생도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연준혁 대표의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관객이자 주체는 결국 나 자신이다.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공간의 가장 편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이런 식의 조율은 구심점 없이 변화무쌍한 물병자리 시대가 암시하는 독립된 공간의 모습이기도 하다.

조직을 하나의 생명체로 본다면 리더의 공간은 그 조직의 ‘거울뉴런’이라고 할 수 있다. 거울뉴런은 타인의 행동이나 감정을 모방하는 신경세포를 말한다. 사람들은 리더의 공간을 통해 그곳이 암시하는 많은 것을 추종하고 따르게 된다. 그래서 시대를 이끄는 리더의 공간을 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리더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일단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해버리고 만다. 우리가 생각하는 리더란 나같이 평범한 사람과는 거리가 먼 권력과 명예의 상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육아나 공부 혹은 간신히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다. 내가 끌고 가고 있는 무엇이 있다면 나는 이미 충분한 리더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리더의 공간은 바로 내 공간에 대한 담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식의 사유가 바로 물병자리의 철학이다.

서두에 언급한 붕정만리의 고사에서 사람들이 언급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물고기가 새가 되는 모습은 바로 자신이 가장 무서워했던 천적으로의 변화라는 것이다. 그 과정은 너무도 두렵고 외로웠을 것이다. ‘곤’이 두려움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그 변화의 에너지가 바로 자신에게서 나오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주위의 다른 힘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에너지를 통해 변화를 만들어 가는 것. 그렇게 내면의 에너지가 투영된 공간은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터전이 될 것이다.

※ 신기율 - 과학·종교·철학 등 다양한 학문을 횡단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대학 졸업 후 약 15년간 철학자로서의 세상과 사람의 깊은 본질을 마주해 국내 최초로 ‘직관’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직관과 마음 치유 그리고 차(茶)를 결합한 기율다원(己律茶院)을 운영한다. 저서로는 2015년 베스트셀러 [직관하면 보인다]가 있다.

/images/sph164x220.jpg
201804호 (2018.03.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