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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화제] 돌아온 타이거 우즈 마법의 샷 비밀 

20대들보다 빠른 스윙, 그 원천은 건강한 허리 

양준호 서울경제 골프 전문기자
3월 PGA 투어 발스파 챔피언십에서 1타 차 공동 2위…2008년 이후 멈춰 선 ‘메이저 시계’까지 움직이게 할지 관심 집중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가 돌아왔다. 우즈는 3월 열린 PGA 투어 발스파 챔피언십에서 1타 차 공동 2위에 오르며 부활 가능성을 비쳤다.
타이거 우즈(43·미국)는 둘로 나뉜다. ‘골프 황제’라는 수식어가 모자랄 정도였던 전성기의 올드 타이거, 그리고 2009년 말 성 추문 이후 시름시름 앓다 이빨마저 빠져버린 초라한 타이거다.

골프 팬들은 최종 라운드에 입는 붉은 셔츠가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던 그때 그 시절의 올드 타이거를 옛 영상이나 머릿속에서나 만날 것 같았다. 2009년 메이저대회 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십에서 무명 양용은에게 충격의 역전 우승을 내준 뒤로 더는 예전의 그 압도적인 우즈를 만나지 못할 줄 알았다.

우즈는 2009년 이후로도 PGA 투어에서 8승을 더 거뒀지만 전성기 시절의 ‘포스’에는 미치지 못했다. 나이를 먹었고 허리 부상 악령이 따라다녔다. 지난해 4월이 네 번째 허리 수술. 이전까지 통증을 호소하고 좀 쉬다 돌아온 뒤 다시 통증이 도지는 악순환만 이어졌다. 당연히 은퇴설이 돌았다. ‘우즈가 돌아왔다’는 말에 사람들은 더는 흥분하지 않았다.

우즈는 10개월의 공백을 거쳐 지난해 12월에 또 돌아왔다. 10주 이상 공백을 기준으로 하면 통산 열 번째 복귀였다. 이번에는 뭔가 달라 보였다. 네 번째 허리 수술에 이어 긴 재활 기간을 거친 우즈는 비정규 대회 히어로즈 월드챌린지에서 18명 중 9위를 했다. 기록보다 허리가 안 아프다는 우즈의 말에 사람들은 다시 기대를 품었다.

기대는 헛되지 않았다. 우즈는 3월 PGA 투어 발스파 챔피언십에서 우승자 폴 케이시(잉글랜드)에게 1타 뒤진 9언더파 275타로 공동 2위에 올랐다. 나흘 내내 언더파 스코어를 적었고 나흘 내내 안정적이었으며 때때로 압도적이었다. 언론은 올드 타이거의 시대처럼 대회 예고에서 주저 없이 우즈를 우승후보로 꼽고 있다. 우즈는 “내 손을 다시 믿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우즈가 돌아왔다.

테이크어웨이 동작, 끊김 없는 ‘원피스’로


▎타이거 우즈가 2013년 캐딜락 챔피언십 4라운드 18번 홀에서 우승을 확정 짓은 뒤 모자를 벗어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발스파 챔피언십 3라운드 14번홀(파5)에서 우즈의 헤드 스피드는 시속 129.2마일을 찍었다. 올 시즌 PGA 투어 대회에 참가한 어떤 선수보다도 빨랐다. 볼은 페어웨이를 갈랐고 이렇게 치고도 허리를 만지지 않았다.

저스틴 토머스(미국), 저스틴 로즈(잉글랜드), 리키 파울러(미국), 더스틴 존슨(미국), 욘 람(스페인), 제이슨 데이(호주), 버바 왓슨(미국) 등 젊거나 힘이 남아도는 선수들도 우즈보다 느렸다. 우즈는 올 시즌 평균 헤드 스피드도 122.4 마일로 2위다. 마지막으로 풀 시즌을 뛰었던 2013년에 우즈의 평균 헤드 스피드는 118.3마일이었다. 당시 전체 28위였다. 서른여덟 살 때의 얘기다.

마흔셋 우즈는 드라이버 샷을 어렵지 않게 300야드 넘게 보내고 2번 아이언으로 예전의 그 스팅어 샷을 쏜다. 미스터리다. 허리가 불편해 제대로 걷기도 힘들다던 게 오래 전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즈의 전 스윙코치 행크 헤이니와 매튜 루디 등 전문가들은 “최근 몇 년 사이의 자세와 비교하면 왼발을 보다 많이 열어놓은 채로 어드레스를 취하고 왼손 그립은 스트롱에서 뉴트럴에 가깝게 바뀌었으며 테이크어웨이 동작은 조금의 끊김도 없이 ‘원피스’로 이뤄진다”고 분석했다.

이런 변화들로 인해 몸의 회전이 수월해졌다는 것. 볼에 힘을 싣기가 쉬워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백스윙 톱은 큰 실수와 부상을 피하는 최적의 포지션을 찾은 듯하며 톱에서의 멈춤 동작이 미세하게 확실해졌다는 분석도 덧붙여졌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우즈는 편하면서도 강력한 스윙을 장착한 셈이다. 우즈는 예전보다 조금 가벼운 드라이버 샤프트를 쓰는 게 스피드 내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도 했다.

가장 큰 요인은 역시 건강한 몸이다. 우즈의 네 번째 허리 수술은 이전 세 차례 수술과 달랐다. 세 차례 미세 추간판 절제술에도 통증이 재발하자 우즈는 지난해 척추 유합(癒合) 수술을 받았다.

우즈는 “여러 시술을 받았지만 효과가 없었고 남은 건 유합 수술뿐이었는데 운이 좋았다”고 돌아봤다. 척추 유합 수술은 위아래 척추체를 고정하고 척추체 사이 디스크 공간에 특수기구를 넣는 수술이다. 부작용 가능성이 있지만 우즈는 체계적인 재활을 통해 기른 근력과 유연성으로 부작용 위험을 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증이 있던 시절에는 자기도 모르게 허리를 의식한 스윙을 하던 우즈는 지금은 마음껏 원하는 스윙을 하고 있다. 우즈는 “허리가 아플 땐 특히 오른쪽 팔과 목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지금은 그런 문제들이 사라졌다”며 “내 손을 다시 믿을 수 있게 됐고 원하는 샷을 구사할 수 있다”고 했다.

정신적 지주였던 아버지 얼 우즈(2006년 작고)와의 기억도 큰 역할을 했다. 우즈는 “처음 아버지한테 골프를 배울 때 익혔던 것들을 되새겼다”고 했다. “아버지는 항상 말씀하셨어요. 골프클럽과 직접 접촉하는 유일한 것은 손이니까 너의 손을 믿어야 한다고.” 기본으로 돌아가 손의 감각을 찾는 데 몰두한 우즈의 노력은 그 어떤 전문가들의 도움보다 강력한 효과를 냈다. 우즈는 “그렇게 세게 스윙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데 실제로는 믿을 수 없는 스피드가 나온다”고 했다.

손의 감각 찾기로 돌아간 것은 지난 몇 년간 시달린 쇼트게임 입스(불안증세)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우즈는 플로리다주 주피터에 있는 자택 뒷마당에 4개의 그린을 만들어 쇼트게임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구름 갤러리에 시청률도 들썩…타이거 이펙트


▎1. 2008년 6월 14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US오픈 3라운드 13번홀에서 이글 퍼트를 넣은 뒤 포효하는 타이거 우즈. / 2. 2001년 타이거 우즈가 마스터스 전통에 따라 전년도 우승자 비제이 싱이 입혀주는 그린 재킷을 입고 있다.
4개 중 하나는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 대회장 그린과 같은 종의 잔디 씨앗을 뿌려 조성했다. 아널드 파머 대회에서 우즈는 여덟 차례나 우승했다. 시즌 첫 메이저대회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의 코스관리 책임자도 고용했다. 우즈는 대회 직전 연습라운드 때 퍼트와 쇼트게임만 1시간~1시간30분쯤 점검한다. “3~4시간씩 샷 연습하던 때도 있었지만 더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불안감에 몰아치기식으로 샷 연습하던 때와 달리 우즈는 조급증을 버린 모습이다.

발스파 챔피언십은 우즈가 우승 경쟁에 뛰어들면서 뜻밖의 흥행 ‘대박’을 터뜨렸다. 일단 입장권이 15만장이나 팔렸다. 우즈가 없던 지난해보다 3만8000장이 더 나갔다. 이른바 ‘타이거 이펙트’가 돌아온 것이다. 프로암과 연습라운드에도 갤러리가 몰렸고 대회 내내 600여 명의 팬이 우즈 주위에 진을 쳤다.

또 이 대회를 중계한 NBC의 최종 라운드 시청률은 5.1%로 집계됐는데 이는 2013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이후 메이저대회를 제외한 PGA 투어 대회 시청률로는 가장 높은 수치다. 3라운드 시청률은 3.26%였는데 2006년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브리지스톤 인비테이셔널 이후 가장 높은 3라운드 시청률로 기록됐다. 2006년 브리지스톤 대회에서 우즈는 스튜어트 싱크(미국)와의 연장 끝에 우승해 130만 달러를 받았다.

4년 반 만의 PGA 투어 우승 기대를 부풀린 우즈는 우승자 이상의 관심을 받았다. 스폰서십 분석기관인 에이펙스마케팅그룹에 따르면 우즈는 발스파 챔피언십에서 우승자 케이시보다 미디어에 3배 더 노출됐다. 또 앞선 4개 대회 우승자인 필 미컬슨, 테드 포터 주니어, 버바 왓슨, 저스틴 토머스(이상 미국)를 합친 것보다도 12% 더 많이 노출됐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스포츠용품사 나이키와 에너지드링크를 만드는 몬스터에너지 등 우즈 후원기업들도 어마어마한 홍보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했다. 테일러메이드, 브리지스톤골프, 어퍼데크, 풀스윙, 코와, 히어로모터그룹 등도 우즈를 후원한다. 특히 우즈의 골프백에 자사 로고를 새긴 몬스터에너지가 크게 주목받고 있다. 이 회사는 우즈가 세계랭킹 600위권에서 헤매던 2016년 말에 계약해 주변을 어리둥절하게 했지만 결과적으로 당시 계약은 최고의 선택이었던 셈이다.

우승 배당률, 100분의 1에서 10분의 1로 ‘껑충’


내년 호주 멜버른에서 열릴 프레지던츠컵 대회도 덩달아 기대를 모으고 있다. 프레지던츠컵은 격년제로 열리는 미국과 세계연합팀의 남자프로골프 대항전. 우즈는 2019년 대회 미국팀의 단장(캡틴)으로 최근 선임됐다. 단장에게는 선수 기용 등을 결정하는 역할이 주어지는데 팬들의 관심은 우즈가 선수로도 뛸 수 있느냐에 쏠린다. 단장이 선수로 경기도 뛰는 ‘플레잉 캡틴’은 1994년 헤일 어윈(미국)이 유일했다. 우즈가 지금 같은 기량만 유지한다면 25년 만의 플레잉 캡틴도 충분히 기대할 만하다.

2009년 말의 성 추문 뒤 크고 작은 부상까지 겹치며 우승 없는 치욕의 2년을 보낸 우즈는 2012년 3승을 올리며 부활 조짐을 보였다. 2013년에는 5승이나 챙기며 세계랭킹 1위로 이듬해를 맞았는데 허리 수술을 받으면서 또 한 번의 긴 암흑기를 거쳐야 했다.

돌아보면 2013년에도 올드 타이거의 귀환을 느낄 만큼 우즈는 강력했다. 메이저급 대회라는 WGC 대회 우승이 두 번이었고 ‘제5의 메이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트로피도 들었다. 그러나 완벽한 부활이라고 하기에는 어딘지 조금 부족했다. 메이저 우승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해 우즈는 4대 메이저에서 마스터스 공동 4위, US 오픈 공동 32위, 브리티시 오픈 공동 6위, PGA 챔피언십 공동 40위의 성적을 남겼다.

우즈의 ‘메이저 시계’는 2008년에서 멈춰 섰다. 그해 US 오픈에서 1언더파 283타로 메이저 통산 14승을 작성한 게 마지막이다. 잭 니클라우스(미국)가 가지고 있는 메이저 최다승 기록 18승에는 여전히 4승이 모자란다. 벌써 10년째다.

열 번째 복귀 무대인 이번에야말로 메이저 가뭄 해갈로 완벽한 부활을 선언할 수 있을까. 4월 5일 시즌 첫 메이저 마스터스의 개막을 앞두고 그 기대감은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도박업체의 배당률이 이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올해 마스터스 우승 배당이 시작된 지난해 8월만 해도 우즈의 우승 배당률은 100분의 1이었다.

그러나 이후 우즈의 복귀전 일정이 잡히자 50분의 1이 됐고 복귀전을 치르는 동안 25분의 1, 15분의 1로 계속 낮아졌다. 우승 배당률이 낮을수록 우승 가능성을 크게 본다는 뜻이다. 마스터스 우승을 놓고 우즈에게 걸리는 판돈은 계속 불어나고 있다. 발스파 챔피언십 직후 배당률은 10분 1까지 낮아져 유력한 우승후보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우즈의 역사를 말할 때 마스터스를 빼고서는 얘기가 안 된다. 1997년 스물둘의 나이에 우즈는 처음 마스터스 우승자가 입는 그린재킷을 입었다. 최연소이자 백인이 아닌 선수로는 처음으로 마스터스를 정복했다. 오거스타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흑인의 출입을 금지하던 곳이었다.

완벽한 부활 선언의 필요조건…그린재킷


▎2014년 8월 미국 파이어스톤 골프장에서 열린 WGC 브릿지스톤 인비테이셔널 최종라운드 2번 홀에서 타이거 우즈가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샷을 하는 모습. 이 샷을 한 뒤 우즈는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기권했다.
그곳에서 우즈는 2위 톰 카이트(미국)를 무려 12타 차로 제치며 골프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마스터스를 통해 처음 메이저 챔피언 타이틀을 얻은 우즈는 2001·2002년과 2005년에도 그린재킷을 입었다. 마스터스는 우즈가 PGA 챔피언십(4회)과 함께 가장 많이 우승한 메이저대회다.

허리 통증 탓에 지난 2년간 마스터스를 거른 우즈는 오거스타와 3년 만의 재회를 앞두고 있다. 처음 허리 수술을 받은 것도 마스터스를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건강하게 돌아와 오거스타로 향하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우즈는 지난 2년간 메이저 무대에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최근 치러진 27개 메이저대회 중 12개를 걸렀다. 10년 전 서른셋에나 가능했던 메이저 우승을 마흔셋에 다시 할 수 있다는 건 어쩌면 영화 같은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확 달라진 우즈의 샷과 자신감에서 그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한 메이저 챔피언은 미국 골프다이제스트에 “우즈가 풍기는 ‘아우라’는 여전히 무시 못한다. 일단 우승이 가능한 순위에만 오른다면 그 다음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일 거라고 예상한다”며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 경쟁자들에게는 우즈가 내뿜는 분위기 자체가 위협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PGA 투어 대회를 두 차례 이상 우승한 한 선수도 “이미 지난해 12월 히어로즈 월드챌린지에서 우즈는 토머스와 같은 조로 경기한 적 있다. 토머스는 2017년 PGA 투어 올해의 선수인데도 움츠러드는 기색이 보이더라. 매우 흥미로운 장면이었다”고 돌아봤다.

최근 몇 년 간 PGA 투어는 20대 초중반이나 30대 초반의 젊은 선수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우즈는 PGA 투어 판도를 바꿀 하나의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올드 타이거로 돌아온 우즈와의 동반 라운드가 젊은 선수들에게는 큰 변수이기 때문이다.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과 우즈의 아우라를 견뎌내는 자체가 그들에겐 큰 도전이다.

우즈의 샷 하나하나는 그의 전성기를 지켜본 팬들에게는 향수를, 젊은 팬들에게는 역사에 묻혀 있던 전설을 마주한다는 설렘을 선물하고 있다.

- 양준호 서울경제 골프 전문기자 miguel@sedaly.com

201804호 (2018.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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