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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문재인 정부 1년 성적표는?] 전문가 평가 (5)신재생에너지 

에너지 전환과 전기료 동결 ... 상반된 정책 기조로 ‘혼선’ 

김창섭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
에너지 전환의 구체적 성과와 이슈화 부족… 기후 대응의 본질은 발전연료 전환보다 기술혁신이어야

▎탈원전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는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계속할지 여부를 각계 전문가와 시민이 참여한 공론조사위원회에 맡겼다. 공론조사 결과 공사 재개가 결정됐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원전 축소를 권고했다. 울산시 울주군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에서 늦춰진 공기를 맞추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에너지 분야에 외형상 많은 변화가 발생했다. 그 가운데 에너지 전환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다. 각 당의 대선후보가 너나 할 것 없이 탈원전과 원전 축소를 공약에 담기도 했다. 새 정부 출범 후 원전과 석탄을 줄이고 국가 전원을 가스와 신재생에너지로 채운다는 정책목표를 발표했다. 우선 지난 정부의 원전 계획은 대폭 축소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고리1호기 영구정지 기념식에서 더 이상 신규 원전 건설과 노후 원전의 계속 운전은 없다고 선언했다. ‘탈원전’의 시작이었다. 전력수급 안전성과 전기요금 인상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정부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를 택했다. 정부 승인 아래 건설하던 원전 공사를 일단 중단시키고, 계속 여부를 국민에게 물어보는 공론화 과정은 특기할 만한 사건이었다. 500여 명이 시민참여단으로 활동했다. 3개월간의 숙의 과정을 통해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재개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한편 탈석탄과 관련한 진행 중인 석탄발전 건설사업에 대한 논쟁도 일반 대중의 관심을 받지는 못했으나 뜨거운 쟁점이 됐다. 대체로 취소 없이 원안대로 건설을 진행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이 이슈들은 모두 탈원전, 탈석탄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에 근거해 추진된 것이다. 지난 1년은 이러한 공약 이행과 관련한 논쟁의 시기였다.

반면, 문재인 정부가 공약한 가스와 신재생 중심으로의 에너지 전환과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성과나 이슈화가 부족했다. 신재생 3020(2030년까지 신재생 발전비중을 20%로 확대)은 초기에 뜨거운 관심을 받았으나 지역사회 반발 등으로 그 열기가 예전 같지는 않다. 가스발전의 경우도 오히려 가장 대표적인 분산자원인 열병합사업이 퇴출 직전에 몰렸다는 관련 업계의 아우성만 가득하다.

이러한 현상은 에너지 전환을 담당하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실질적인 키워드에 대한 혼선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즉 산업부가 에너지 전환과 전기요금 동결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정책기조를 표방함으로써 이러한 혼선은 애당초 불가피한 것이었다. 현재 다수의 전문가나 시장에서는 산업부의 중심축은 전기요금 동결 정책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전력 분야의 수요 포화, 망 포화 등의 여건 변화와 기후 및 미세먼지 등에 의한 환경 규제의 강화 추세 등을 감안할 때 전력산업은 근본적인 변곡점에 도달해 있다. 지금은 지난 수십 년간의 에너지와 관련한 다양한 이슈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상황과 도전에 직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업부의 전기요금 동결 일변도의 정책에 대한 우려는 불가피하다. 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은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을 뿐 근본적인 대응에는 절대적으로 한계를 보일 뿐이다.

탈원전·탈석탄 공약, 논란 속에서 ‘후퇴’


▎신고리5·6호기 공론조사 발표를 하루 앞둔 지난해 10월 19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탈원전 찬반 집회가 열렸다. / 사진:연합뉴스
한편으로 2018년은 3차 에너지 기본계획, 2030 기후 로드맵, 기후 기본계획, 4차 에너지 기술개발 10개년 계획 등 에너지와 기후·환경 관련 중요한 계획들이 동시에 수립되는 해이기도 하다. 공약에 매몰돼 있던 상황에서 탈피해 완전히 새로운 계획을 통합적으로 수립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및 기후 정책이 이제야 정상적으로 수립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여전히 정부 내에서도 ‘경제급전’과 ‘환경급전’ 간의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여건이 조성된다는 점은 다행스럽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체계, 특히 전력 체계에 대한 상황 이해와 미래 전망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대단히 중요하다. 이 평가를 근거로 주요한 계획들이 원만하고 적정하게 수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간 꾸준히 유지돼 온 수요 증가에 제약이 발생해 수요가 포화하는 상황이다. 이는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격감하는 것을 의미하며 산업 입장에서 보면 처음 경험하는 상황이다. 미래가 없는 산업이 된 것이다.

지난해 8차 수급계획에서 수요가 7차와 비교해 12.7기가와트(GW) 줄어든 것이 그 징표다. 물론 사용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에 불과한 가정 부문에서 다소 수요 확대 가능성은 남아 있고, 동시에 전기차 등 수송 부문에서의 전기화도 진행될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4차 산업 혁명의 효과에 대해서도 어떤 수준으로건 영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난방은 이미 전기에너지로 이전이 완료됐고, 산업 부문에서의 수요 증가 가능성은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기후 규제가 본격화할 경우 수요 관리에 대한 요구는 더욱 증대될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 전기 수요는 이제 지난 시기의 고도성장이 어려울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전력은 인프라이면서 동시에 산업이다. 전력 산업은 향후 설비 투자 없이 연료 투입만으로 생태계를 유지해야 할 상황에 봉착했다. 이제 고도성장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성장하지 않는 산업으로 바뀌었다. 이것이 전력 산업이 변곡점에 도달했다는 주장의 가장 중요한 근거다. 그렇다고 전력계가 수출을 통해 먹거리를 확보하기 엔 여러 가지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나라의 전력 시스템은 급격히 노화될 가능성이 크며 이는 시스템 노후화와 대정전의 불확실성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현재 논의 중인 기후변화 대응은 또 다른 심각한 이슈다. 우리나라는 국제 사회에 2030년까지 온실가스에 관해 37%의 국가 감축 목표를 표명했다. 이는 국제적으로 합의된 협약인 1차 INDC(자발적 감축 목표)에 근거해 제출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상당한 부담을 갖게 된 것임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조만간 2차 INDC를 제출해야 한다. 우리는 그간의 노력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1차 INDC 37%에 대한 로드맵 조치도 수립하지 못한 실정이다. 게다가 지금껏 우리의 노력은 원전 줄이기, 석탄 늘리기로 오히려 비중 측면에서 고탄소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수요가 줄어들어 감축 목표 달성 가능성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는 하나 결코 좋은 변명거리가 아니다. 국제사회의 도덕적 비판이 실질적인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인가가 관건이다. 현재로서는 그다지 큰 위협으로 평가되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기후 규제가 가질 장구한 영향력을 고려할 때 무언가 국가의 일관된 입장이 필요하다.

비용이냐, 친환경이냐 치열한 논쟁 필요


▎정부는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로 늘리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지난해 7월 25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주최로 ‘신·재생에너지 3020 전략 포럼’이 열렸다. 참석자들이 다양한 종류의 태양전지 모듈을 살펴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018년에는 에너지 시스템의 새로운 혁신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운영체제인 시장제도의 개편, 신재생 3020 실행안 마련, 기후 정책의 확정 및 공감대 확보, 세제 개편, 에너지 기술의 혁신 시스템 개선, 사용 후 핵연료 이슈, 분산화·분권화 논의, 미세먼지 대책, 전력망 논쟁, 4차 산업혁명의 현실화 등 어마어마한 이슈들이 산적해 있다. 이 논의들은 모두 연계된 이슈로 인해 복잡성은 전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지금껏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복잡한 문제에 우리가 대응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복잡해진 이슈에 대해 더욱 어지러워진 의사결정 체계, 더 복잡한 이해관계, 선형체제에 익숙한 오래된 전문역량 등을 감안해 보면 문제 해결 가능성에 의구심이 든다. 이대로 높은 예비율과 저유가에 탐닉하다가 일순간에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 속으로 빠져들 가능성도 큰 것이 사실이다.

정부와 우리 사회는 선택의 시기에 당면해 있다. 더욱 솔직해져야 한다. 연료비가 싼 순서대로 급전지시가 내려지는 ‘경제급전’을 유지할 것인지 혹은 친환경성을 고려한 ‘환경급전’을 채택할 것인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여야 한다. 현재 산업부의 전기요금 동결 정책이 그간 우리나라가 견지해 온 경제급전의 원칙에 부합되는 것인지도 고민해 봐야 한다.

완전히 새로운 여건을 맞이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발상의 전환도 이루어져야 한다. 예컨대 기후 규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도 중요한 판단이다. 가령 이 같은 발상이 가능하다. “기후는 독이다. 그러나 잘 사용하면 약이 된다.” 독을 약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용기와 지혜가 동시에 필요하다. 독을 약으로 바꾸기 위한 매직의 원천은 기술혁신이다. 기후 규제를 단순히 비용이 아닌 기술 혁신으로 대응할 수 있다면 기후 규제는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위한 약이 될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기후 대응의 본질은 기술혁신이어야 한다. 발전연료의 전환이 아닌 에너지 생산과 소비 전반의 포괄적인 전환이 필요하며 그 전환을 기술혁신 방식으로 이뤄내야 한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 타당한지 그리고 현실적으로 수용 가능한 것인지 등을 두고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진행돼야 한다. 이제라도 우리 사회가 기후와 관련해 어느 길로 갈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기술 혁신은 쉽지 않다. 실패할 가능성이 큰 옵션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현실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2018년은 그 노선을 선택해야 할 해다. 3차 에너지 기본계획, 기후 기본계획, 2030 기후 로드맵, 4차 에너지 기술개발 10개년 계획 등 중요한 정부 계획이 시작됐다. 새롭게 시작된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및 기후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잘 지켜봐야 한다.

- 김창섭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

201805호 (201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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