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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제9회 ‘홍진기 창조인상’ 영광의 얼굴 

창조력 발휘해 국민 나아갈 길 밝히다 

글 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사회부문 여자 컬링대표팀, 문화예술부문 류재준 작곡가, 과학기술부문 박용근 KAIST 교수 수상… 5월 8일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이홍구 유민문화재단 이사장 등 참석한 가운데 개최

올해로 9회째를 맞은 ‘홍진기 창조인상’은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 발전기에 정부·기업·언론 분야에서 창조적인 삶을 실천하는 데 힘을 쏟았던 유민(維民) 홍진기(洪璡基·1917~1986) 중앙일보 선대회장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2010년 제정됐다. 이홍구 심사위원장은 수상자 선정 기준과 관련해 “기성세대의 과거 업적을 포상하는 기존 상들과 차별화해 인류 문명의 변혁기에 젊은 세대의 미래 가능성을 격려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제9회 홍진기 창조인상 시상식이 5월 8일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이홍구 유민문화재단 이사장, 박용근 교수(과학기술부문), 류재준 작곡가(문화예술부문), 여자 컬링대표팀 김은정·김초희·김민정 감독·김영미·김선영·김경애(사회부문),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창조적 사고로 어둠을 넘어 미래를 밝힌다.”

제9회 홍진기 창조인상 수상자들은 불굴의 창조력을 바탕으로 기존 가치를 넘어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5월 8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9회 홍진기 창조인상 시상식에서 박용근(38) KAIST 물리학과 교수 겸 토모큐브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과학기술부문, 평창올림픽 한국 여자 컬링대표팀은 사회부문, 류재준(48) 작곡가는 문화예술부문에서 각각 상을 받았다.

심사는 이홍구 전 국무총리, 송자 전 교육부 장관, 송호근 서울대 석좌교수,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이건용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맡았다.

박용근 교수는 3차원 홀로그래피 현미경을 만든 업적을 인정받았다. 이 현미경을 이용하면 살아있는 세포를 3차원 영상으로 관찰할 수 있다. 염색약을 사용하지 않는 까닭에 세포 손상도 피할 수 있다. 학계에서는 과거에 진단하지 못 했던 질병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한국 여자 컬링대표팀은 평창올림픽에서 세계 랭킹 1~5위를 차례로 격파하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컬링을 ‘얼음판에서 요강 굴리는 놀이’ 정도로 취급하던 컬링 불모지에서 써 내려간 드라마다. 고교 시절부터 10년간 한 팀으로 훈련해 온 이들 선수의 이야기는 팀워크의 가치를 곱씹게 하는 계기가 됐다.

류재준 작곡가는 한국 출신으로는 드물게 국제음악계에서 인정받는 젊은 거장이다. 현대 음악의 초석을 다진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85)가 공식 후계자로 인정했고, 2015년엔 폴란드 1급 훈장을 받았다. 류 작곡가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애가’를 작곡하는 등 소외받는 이들을 향한 따뜻함을 잃지 않는 점도 높게 평가받았다.

창조인상 심사위원장을 맡은 이홍구 유민문화재단 이사장은 “30년간 세계를 이끌어 온 세계화의 물결이 퇴조하고 있다. 올해는 한민족의 창조력이 테스트 되는 시기”라며 “상을 받는 분들은 창조력을 발휘해 국민이 나아갈 앞길을 밝혀준 선도자”라고 말했다.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은 “업적의 마지막에 받는 다른상과 달리 홍진기 창조인상은 그간의 업적을 인정받고, 또한 번 도약할 분들에게 드리는 상”이라며 “수상자들은 변방에서 세계무대로 진출한 대단한 업적을 세웠다. 젊은이들에게 훌륭한 귀감이 될 것”이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

과학기술부문 박용근 KAIST 교수 | “기술창업 두려워 말고 도전하라”


▎박용근 교수가 대전 KAIST 연구실에서 자신이 개발한 3차원 홀로그래피 현미경을 소개하며 활짝 웃고 있다.
살아 있는 세포 3차원으로 관찰할 수 있는 현미경 개발…창업지원기관 도움으로 설립 2년 만에 50여 개국에 수출

염색을 하지 않고 세포를 속까지 들여다볼 방법은 없을까. 일반 광학 현미경으로는 세포 속 관찰대상을 염색해야 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러나 염색 과정이 오래 걸려 세포 손상을 피하기 어렵다. 염색약이 대부분 유독성을 띤 탓에 관찰한 세포를 다시 체내에 주입할 수도 없다. 관찰한 면역세포·줄기세포를 체내에 다시 주입할 수 있다면 질병 진단과 치료에 새로운 전기가 열린다. 세포 연구에 있어서도 그렇다.

박용근(38) KAIST 물리학과 교수는 생명과학계의 오랜 염원을 해결해 준 과학자다. 박 교수는 미국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가 연합해 운영하는 의공학 대학원에서 의학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곳에서는 이미 CT촬영의 원리를 현미경 수준에서 구현하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사람 몸을 2차원 단면 영상으로 촬영하듯 세포 단면을 촬영하는 방법이다. 박 교수는 기존 연구에 레이저 홀로그래피 기술을 적용해 3차원 영상을 구현해냈다. 2015년 개발된 3차원 홀로그래픽 현미경 ‘HT-1’이 그 결과물이다.

박 교수는 연구실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2015년 8월 HT-1을 개발·제작하는 벤처기업 ‘토모큐브’를 설립했다. 창업한 지 6개월 만에 3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하고, 1년 만에 미국·독일 등지에 HT-1 수출을 시작했다. 현재는 MIT·하버드의대·독일 암센터 등 전 세계 50여 개 기관에서 HT-1 현미경을 사용하고 있다. 박 교수는 “현재는 연구 장비 수준이지만, 주요 기관들과 협업해 질병 진단장비로 발전시키는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토모큐브는 출범 3년차인 올해 매출액을 15억원 수준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보다 4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교내 창업지원기관인 KAIST 창업원에서 초기 시행착오를 줄이는데 큰 도움을 줬다. 스타트업 전문 투자업체들도 초기 투자뿐만 아니라 인원을 보강하고 사업 방향을 코치하는 역할을 해주었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박 교수는 “여러 창업지원기관이 도움을 준 덕분에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며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기술창업은 더 이상 맨 땅에 헤딩이 아닙니다. 투자업계도 분야별로 전문화됐고, 중소기업벤처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도 합리적인 것이 많거든요. 기술창업과 안정적인 직장 사이에서 고민하는 청년이 있다면 꼭 도전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사회부문 여자 컬링대표팀 | “베이징에선 세계 챔피언 될 것”


▎가운데 김민정 감독을 중심으로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영미, 김선영, 김은정, 김경애, 김초희 선수. 컬링 여자대표팀은 전원 김씨로 구성돼 ‘팀 킴(Team Kim)’으로 불린다.
‘컬링 불모지’에서 올림픽 첫 출전해 은메달 거머쥔 ‘팀 킴’…의성컬링훈련장에서 한솥밥 먹으며 팀워크 다진 10년의 결실

"저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팀이 아닙니다. 10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씨를 뿌리고 발아하기까지 누군가의 30년 인생이 있었습니다.”

여자 컬링대표팀 김민정(37) 감독은 5월 8일 제9회 홍진기 창조인상 시상식에서 그간의 소회를 이렇게 말했다. 김 감독이 말한 ‘누군가’는 그의 아버지이자 한국 컬링의 개척자인 김경두(67) 경북컬링훈련원장(전 대한컬링경기연맹 부회장)이다. 김 감독은 “여자 컬링대표팀은 김경두라는 한 사람의 인생이 길러낸 나무에서 핀 꽃”이라며 김 원장에게 공을 돌렸다. 김 감독과 함께 연단에 선 김은정(28)·김영미(27)·김경애(24)·김선영(25)·김초희(22) 선수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김경두 원장은 1994년 경북컬링협회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당시 대구·경북 지역을 통틀어 빙상장은 대구실내빙상장한 곳뿐이었다. 컬링 전용 연습장이 아닌 탓에 늦은 밤에 대관해 빙판 위에 물감으로 선과 하우스(표적)을 그려 놓고 연습했다. 김 원장은 “페인트로 하우스를 그렸다가 쫓겨날 뻔한 적도 있다”고 회고했다. 마침내 2006년 경북도청과 의성군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고향 의성에 국내 최초의 컬링전용경기장을 지었다.

선수들이 컬링을 시작한 것도 그 즈음부터였다. 의성여고 동창생인 김은정과 김영미는 방과후 활동으로 컬링을 시작했다. 김영미의 친동생 김경애는 컬링장에 들렸다가 얼떨결에 입문했고, 김선영이 나중에 팀에 가세했다. 김경애가 교실 칠판에 ‘컬링 할 사람’이라고 적어놓은 걸 보고 친구인 김선영이 팀에 합류했다고 한다. 이들은 졸업 후에도 방 세 개짜리 아파트에서 합숙하면서 컬링대표팀의 꿈을 키워 나갔다.

의성에서 뿌린 씨앗은 평창에서 꽃으로 만개했다. 여자 컬링대표팀은 예선에서 세계랭킹 1~5위 팀을 연달아 꺾은 데 이어 4강 전에서는 연장전 끝에 라이벌 일본을 물리쳤다. 올림픽 첫 출전에서 이룬 쾌거다. 국민들도 아찔한 승리에 함께 환호했고, 결승전 후 선수들이 흘리는 눈물을 보면서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올림픽 이후 대국민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0%가 컬링을 가장 흥미롭게 봤다고 답할 정도도 컬링은 단숨에 인기 겨울스포츠로 떠올랐다.

주장인 김은정 선수는 “우리만 잘해서 메달을 목에 걸고 인기를 모은 게 아니다. 김경두 원장님을 비롯해 경북체육회의 다른 감독·코치님들이 다 함께 노력한 결과”라며 소감을 밝혔다. 김영미 선수는 “베이징 겨울올림픽에도 출전해 세계 챔피언이 되고 정상에 서는 것이 목표”라며 포부를 밝혔다.

문화예술부문 류재준 작곡가 | 정상에 선 음악가, 소외된 곳을 응시하다


▎류재준 작곡가는 림프종 투병으로 힘든 와중에도 작곡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진혼 교향곡’ ‘마림바 협주곡’ 등 세계적 교향악단서 초연(初演)…‘음악은 소리를 넘어 메시지’이란 스승의 가르침 따라 작곡활동에 매진

류재준(48) 작곡가는 해외에서도 이미 거장 반열에 오른 음악가다. 서울대 작곡가를 졸업하고 폴란드 크라쿠프음악원 대학원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현대음악의 전설’로 불리는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85)를 만나 사사하면서 자신의 음악관을 구축했다. 그는 2008년 폴란드 루드비히반 베토벤 음악제에서 발표한 ‘진혼교향곡’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2015년에는 폴란드 정부로부터 1급 훈장인 ‘글로리아 아르티스’를 수여받기도 했다.

펜데레츠키의 음악세계는 휴머니즘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히로시마의 생존자를 위한 애가(哀歌)’(1960)와 폴란드 민주화를 위해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폴리쉬 레퀴엠’(1984) 등을 작곡한 그는 음악을 통해 현실과 소통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소신은 뚜렷하다. “음악은 단순한 소리를 넘어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며, 그것은 ‘희망의 메시지’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류 작곡가 역시 “예술가는 표현할 자유를 넘어 그 결과물에 대해 져야 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를 세상에 알린 진혼 교향곡은 폐허에서 다시 일어서야 했던 한국의 전후(戰後)세대에 바치는 작품이었다. 2015년에는 세월호 참사를 목격하며 느꼈던 절망과 안타까움을 담아 마림바 협주곡 2악장으로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애가’를 작곡했다.

“2016년 10월 폴란드의 세계적인 교향악단인 ‘신포니아 바르소비아’가 방한해 이 곡을 연주했습니다. 이때 세월호 유가족 분들이 공연장을 찾으셨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에 유가족 분들을 만나 뵙고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죠. 그런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류 작곡가는 안타깝게도 지난해부터 림프종으로 투병 중이다. 2년 여간 세 번이나 쓰러지면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야 했다. 최근에는 하루 두세 시간 집중하기도 어려울 지경으로 체력이 약해졌다. 그런 와중에도 올해에만 세 곡을 써냈다. 서울국제음악제 음악 감독을 맡고 있는 류 작곡가는 2020년까지 프로그램과 연주자도 확정해 놓았다.

“치료약이 독한 탓인지 매일 15시간씩 잠에 빠져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깜깜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그래서인지 요즘 작곡한 곡을 접한 분들께서 ‘왜 이렇게 슬프냐’고 물어 올 때가 있어요. 나를 좀 더 사랑하고 용기를 가지자, 그래서 청중이 위로받고 행복해질 수 있는 곡을 다시 쓰자는 것이 제 다짐입니다.”

- 글 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 사진 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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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호 (2018.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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