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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 ‘同行-고령사회로 가는 길’(7)] ‘열정 전도사’ 최성재 한국생애설계협회장 

“열정을 버리면 영혼이 주름진다”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은퇴설계의 한계, 생애설계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어… 인생 3모작 시기엔 사회·봉사활동에 좀더 비중 둬야

▎최성재 한국생애설계협회장이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노년의 삶에서 목표의식이 중요한 이유에 대해 역설했다. 인터뷰 후 서울 충무로 한국생애설계협회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최 회장.
최성재(72) 한국생애설계협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노인 문제 전문가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출신인 최 회장은 한국노년학회장,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 청와대 고용복지 수석비서관, 한국노인인력개발원장 등을 역임했다.

최 회장은 “은퇴설계가 은퇴 이후의 삶을 위한 준비라면 생애설계는 은퇴 이후의 삶은 물론이고 생애 전체의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라며 “청소년기에 생애설계를 시작한다면 진로를 선택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라지만 그래도 계획이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사회복지 분야, 그 가운데서도 노년 분야와 관련해 오랫동안 일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대학교수가 되는 게 꿈이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 졸업 후 복지기관에 취직했다가 결혼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됐다. 평소 노후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내가 나이 들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기도 했다. 귀국 후 이화여대에서 2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고, 모교인 서울대에서 26년 동안 노인복지 연구에 천착(穿搾)했다.”

올해부터는 한국생애설계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생애설계는 빠를수록 좋다. 적어도 청소년기부터 하자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자신의 삶을 고민하고 진로를 선택하고 경력을 설계하자는 것이다. 한국생애설계협회의 창립 목적도 여기에 있다. 우리 협회에서는 생애설계사 교육을 통해 민간자격증도 발급하고 있다. 한국생애설계협회에 오시면 생애설계와 관련해 상담을 받을 수 있고 교육과정을 거쳐 자격증을 딸 수도 있다.”

한국 노인들의 지위는 선진국과 비교하면 어느 수준인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4개국과 비교하면 노인 복지 관련 프로그램이나 관련 예산은 하위권이다. 공적연금제도 도입이 늦다 보니 노후소득 보장이 미흡하고, 조기퇴직으로 인해 60세 이상의 고용절벽이 심각하다.”

한국의 노인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소득 보장의 경우 기틀은 다 갖춰졌다. 건강 보장은 건강보험과 2008년부터 실시되고 있는 장기요양보험 등으로 양호한 편이다. 반면 주거 보장은 매우 미흡하다. 사회 서비스는 전반적으로 부족하나 노인복지관 서비스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도 지난해 8월 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됐다. 어떻게 진단하는가?

“2000년에 전체 인구의 7%가 노인인 고령화사회에 진입했다. 그런데 17년 만에 고령사회가 됐다. 앞으로 7~8년 후면 노인인구가 21%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정부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피부에 와닿는 것은 적다. 고령사회는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다.”

시니어 일자리, 직업별 아닌 직무별로 나눠야


노인 문제 가운데 빈곤이 가장 심각한 문제인가?

“그렇다. 건강보험제도와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잘 운영되고 있어서 건강 문제는 조금 걱정을 덜었다. 여러 조사 결과를 보면 40대 후반에 1차 퇴직을 하고, 50대에 들어가면 재취업이 어려워지고, 60대가 되면 고용절벽에 부딪힌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경제적 문제다.”

‘은퇴 후에도 일하는 노인은 불행하다’는 인식도 있다. 노인에게 ‘일’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가장 큰 이유는 소득을 보충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나는 아직 가치가 있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만하다’는 자존감이다. 일을 한다는 것은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60세 이후 30년을 살아야 한다고 가정할 때 취미만으로 시간을 보내기는 어렵다. 시간을 보낸다는 측면에서도 일은 중요하다.”

기존의 ‘노인 일자리’가 복지정책이라면, 최 회장이 주창하는 ‘60시니어 일자리’는 산업정책이라는 느낌이 든다.

“평균적으로 보면 노인은 주류(主流) 근로 세대와의 경쟁에서는 열세지만 일의 종류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근로자를 중년기 이후부터 교육·재교육시켜 직무 능력을 향상시키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대책이 추진돼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저출산·고령화사회에는 ‘60+’를 신성장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점차 큰 비율로 늘어가는 ‘60+’ 노인인구를 사회복지 제도로 부양하는 것은 전통적 산업사회의 사회정책이다. 고령화사회에서 복지제도로 인구 고령화에 따른 사회적 부담을 해결하기에는 생산가능인구(근로자)의 부담이 크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성 근로자를 유입시키는 데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국토가 좁기 때문에 이민정책도 제한적이다. 기존 근로자를 오랫동안 노동시장에 머물게 하는 것 외에 저출산으로 인한 인력 부족을 극복할 획기적 방법은 없다. 고령화 대책에서 복지 대책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경제 전반, 사회 전체의 체계가 바뀌고 대응해야 할 문제다.”

노인들이 비교우위를 가질 만한 일자리로 어떤 것이 있을까?

“시니어라고 해서 교육 수준이나 건강 수준이 다 같을 수는 없다. 직업별로 나눌 게 아니라 직무별로 나눠야 한다. 꼼꼼하고 차분히 처리해야 할 일자리, 종합적인 판단을 해야 할 일자리는 노인에게 적합하다. 학술적 측면에서 살펴보자. 생후에 취득하는 지능이 전체의 60~70%를 차지하는데 이를 결정화(結晶化)지능이라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지능이 축적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60~70대가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 대표적인 분야가 서비스업이라고 본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2016년 6월 종사자 100인 이상 기업 1081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고령층 고용을 꺼리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 ‘고령 근로자의 자질과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답변은 7%에 불과했다. ‘고령자에게 적합한 직무가 부족하다’는 기업이 34.7%로 가장 많았고, ‘안전을 비롯한 환경상의 문제’(21.7%)라는 이유가 다음이었다.

‘노인 인력을 고용했을 때 어려운 점’에 대해서도 기업 10곳 중 3곳(33%)은 안전 문제를 꼽았다. 업무 능력과 생산성 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보는 기업은 각각 8.5%, 4.2%에 불과했다. 최성재 당시 한국노인인력개발원장은 “기업들은 인건비 지원이나 세제 혜택뿐 아니라 고령층을 위한 업무환경 개선이나 고령자 적합 직무 개발, 고령층 건강관리에 대해 정부 지원을 필요로 한다”며 “노인 고용 확대를 위한 정책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인생의 주기마다 준비하고 계획하라


최 회장은 20여 년 전부터 “중산층 노인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금도 유효한 생각인가?

“‘복지’ 하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에게 국가가 무상 지원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정부 부처나 정치인들도 그렇게 생각하더라. 복지제도는 크게 ▷소득 보장 ▷의료 보장 ▷주거 보장 ▷사회 서비스 보장이다. 소득 보장 중 연금제도는 국민 전체를 위한 것이고, 저소득 계층에 무상 지원하는 공공부조(국민기초생활보장·기초연금 등)는 선별적으로 경제적으로 자립이 어려운 계층에게 제한적으로 제공할 수밖에 없다. 의료 보장도 의료보험·건강보험·장기요양보험은 모두 보편적 복지제도이고, 저소득층의 의료비를 무상 또는 일부 부담으로 지원해주는 의료급여제도가 있다. 주거복지도 주택을 시장 공급에 맡겨두면 수급에 응하지 못하는 국민이 많기 때문에 공공주택 공급(임대 등)이 필요하다. 선진국에서는 중산층을 위한 제도로 많이 운영하고 있다.

사회 서비스는 소득 수준이나 경제적 사장을 고려해 이용을 제한하기 대단히 곤란하다. 그런 경우 서비스를 받는 사람은 저소득층으로 낙인 찍히기 때문에 이용자가 크게 줄어들 것이다. 또 사회 서비스는 다양하기 때문에 일일이 그 수급 자격을 따지기 곤란할 뿐만 아니라 비용도 많이 든다. 따지고 보면 노인을 위한 복지도 보편적인 것이 꽤 있다. 특히 비물질 서비스인 사회 서비스는 소득 계층을 구분해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 따라서 거의 모두 보편적으로 저소득층과 중산층 구분 없이 모든 국민에게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바람직하다.”

인생 2모작이나 은퇴설계라는 개념은 익숙하다. 그렇다면 인생 3모작은 무엇인가?

“인생 2모작은 가장 오래 일한 직장에서 퇴직 후에 다시 한 번 일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2모작은 수입을 얻는 직업 활동과 연계해서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인생 2모작을 위해서는 은퇴설계·노후설계가 필요하다. 그러나 인생 2모작이 곧 은퇴설계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인생 2모작을 위해 은퇴설계가 필요하지만 은퇴설계가 반드시 인생 2모작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은퇴설계는 일, 재무(경제), 가족·사회 관계, 사회봉사, 여가 활동 등 은퇴 후 다양한 노후 생활의 측면에 대해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인생 3모작도 은퇴 후 두 번째 일하는 것이므로 은퇴·노후 설계로 준비가 가능하다.

인생 2모작이든 3모작이든 은퇴설계·노후설계만으로 준비하는 데 한계는 크다. 시작하는 시기가 너무 늦어 제대로 준비하지 못 하게 되고 선택의 여지도 너무 좁다. 은퇴 후, 노후만을 위한 대비이기에 은퇴 직전에 준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생애 전 과정이 노후까지 이어지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은퇴·노후 설계는 중년기 초기나 청년기 때는 거의 관심이 없다. 이 때문에 노후까지 잘 준비하지 못한다.”

2015년 12월부터 2년간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을 이끌어 왔다. 어떤 정책에 역점을 뒀으며 어떤 성과를 거뒀나?

“2005년 12월 27일 개원(開院)해서 설립위원으로 참여했다. 퇴임할 때까지 2년1개월 정도의 시간이었다. 공익·사회봉사 측면이 강한 일자리보다는 최저임금이 보장되는 취업·창업 프로그램에 역점을 뒀다. 정부에서 말하는 노인일자리 사업은 기초연금 수급자 대상 중 공익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현재는 수당으로 월 27만원을 지급하고 있으며, 2020년까지 월 40만원으로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물론 그것도 필요하지만 제대로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는 취업·창업 일자리를 만들자는 게 제 목표였다. 2015년 12월 취임한 이후 공익활동 일자리를 계속 늘리면서 추가적으로 시장형 일자리, 즉 60세 이상이 최저임금 이상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일자리 개발에 주력했다. 그 결과 재임 2년 동안 2만 개 정도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목표의식 있으면 시간 부족할 정도로 바쁘게 살아


▎조기(早期) 생애설계의 당위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최성재 한국생애설계협회장.
공익형 노인일자리 사업이란 ‘지방자치단체 및 공공기관에서 공공서비스 향상 및 지역사회 현안 해결 등을 목적으로 창출된 일자리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고 사회적으로 유용성이 강한 일자리’ 사업을 말한다. 실제로는 전문 기술이 없거나 고령으로 다른 직업 기회를 갖기 어려운 노인층이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지역사회 환경개선·보호사업, 초등학교 급식도우미사업, 폐현수막 재활용 사업, 스쿨존 교통지원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만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기초연금 수급권자가 지원 대상이다.

노인일자리 사업 규모는 모두 46만7000개로 그 가운데 공익형이 33만7000개로 72.2%를 차지했다. 노인일자리 사업 10개 가운데 7개가 공익형인 셈이다. 정부는 그동안 공익형 활동 참여자에게 22만원을 지급해 오다 현 정부 출범 후 5만원을 올린 27만원으로 상향조정했다. 정부는 2020년까지 공익형 수당을 40만원까지 인상할 방침이다.

‘생애설계’는 기존의 은퇴설계, 노후설계와는 다른 말인가?

“은퇴설계, 노후설계는 은퇴 이후의 삶, 노후 이후의 삶을 설계하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을 보면 먹고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 중산층의 경우 사회적으로 기여하고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크다. 그런데 그런데 관심은 있지만 계획이 없다. 은퇴하기 6개월, 1년 이전에 교육시키는 것으로는 한계가 크다. (준비 시점을) 앞으로 당겨서 주체의식이 생기는 청소년기부터 진로 지도할 때부터 해야 한다. 자기 인생의 큰 밑그림을 그려놓고 가야 한다. 계획을 세워 실천하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는 크다. 노후를 위한 은퇴설계가 아니라 노후까지 포함한 생애설계를 세우고 실천하도록 해야 한다.”

최 회장은 건강한 노년을 위해 어떻게 살고 있는가?

“지금 하는 일도 봉사 차원이다. 주말에는 교회에 가서 봉사한다. 봉사활동이 제 삶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평생 한 일이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이다 보니 죽을 때까지 하는 것이 소망이다. 고령사회에서 60대 이후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의미 있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삶의 미션(misson)을 정해놓고 그것에 따라 살아 나가면 좋을 것 같다.”

동년배들을 위한 조언이 있다면?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 그다음엔 운동이다. 저는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고 아침 5시에 일어난다. 아파트 헬스장에 가서 일주일에 서너 번은 운동을 한다. 그리고 오전 8시30분에서 9시쯤 사무실에 도착한다. 또 하나는 목표다. 목표를 잡아두면 체계적인 삶을 살게 된다. 목표의식이 있으면 시간이 없어서 다 못할 정도로 자신을 바쁘게 만든다. 104세까지 살았던 일본의 한 학자는 죽기 얼마 전까지 1~2년 후 강의 목표를 세운 걸 봤다.”

인터뷰 말미에 최 회장은 독일 시인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이 프린트된 A4 용지 1장을 내밀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유명한 맥아더(1880~1963) 장군의 애송시란 설명도 곁들였다. 1950년대 미국 남성의 평균수명은 65세 정도였으나 맥아더 장군은 70세에 참전했을 만큼 열정이 넘쳤다.

“(…) 세월은 피부를 주름지게 하지만 열정을 버림은 영혼을 주름지게 한다. (…) 그대가 안테나를 올리고 낙관주의 전파를 잡는다면 그대는 팔십 세일지라도 청춘으로 죽을 수 있으리라.”

-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201807호 (2018.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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