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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얽어도 유자’ 흠이 있어도 제 값어치 한다 

껍질은 향신료로 쓰고, 유자 씨는 기름 짜 식용유나 화장품용 향료로 활용…일본에서는 향과 껍질기름기를 내는 유자를 목욕탕에 띄워 감기 예방하기도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꿀물을 부어 만든 유자청과 유자차.
'얽어도 유자’란 말은 가치 있는 것은 조금 흠이 있어도 본디 갖춘 제 값어치는 지니고 있음을 빗댄 말이다. “석류는 떨어져도 안 떨어지는 유자를 부러워하지 않는다”고 하니 석류와 유자는 모두 신맛이 나는 열매로 석류는 익으면 떨어지고, 유자는 안 떨어져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데서 누구나 다 저 잘난 멋에 살게 마련임을 일컫는다.

유자나무(Citrus junos)는 운향과(芸香科)에 드는 소형 관목으로 줄기에 큰 가시가 많이 나고, 높이 4m 남짓이다. 잎은 달걀 모양이고,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으며, 긴 잎자루(엽병, 葉柄)에 날개가 달린다. 꽃은 양성화로 5∼6월에 소담스런 꽃망울이 아주 새하얗게 버는데, 꽃잎은 5개씩이고, 수술은 20개가 통처럼 합쳐져 난다. 한방과 민간에서 익지 않은 유자를 탱자 대용으로 약용한다.

유자는 중국 양자강 상류거나 티베트 지역이 원산지이고, 지금도 그 원종(原種)이 야생으로 자라고 있다 한다. 유자 등의 감귤류를 통틀어 시트루스(citrus)라 부르는데 이는 유자식물의 학명(속명, 屬名)을 그대로 따서 부른 것이다. 암튼 감귤·탱자·오렌지들은 종간(種間), 속간(屬間) 교배로 만들어진 복잡다단한 잡종으로 돌연변이 종도 있다 한다.

우리는 유자(柚子)라 부르고, 일본은 유주(yuzu), 중국은 향등(香橙)이라 부른다. 유자는 주로 동아시아(한국·중국·일본)에서 재배, 생산되고 있는데 한국산이 제일 향이 짙게 풍기고, 껍질이 가장 두껍다. 당나라 때 한국과 일본으로 도입돼 재배·개량됐고, 일본에서는 과일 대신 꽃을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flower yuzu(花柚子, 화유자)’로 개량해 즐긴다고도 한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향과 껍질기름기를 내는 유자를 목욕탕에 띄워 감기를 예방하고, 피부를 부드럽게 하는 목욕을 즐긴다고 한다. 게다가 일본은 지금도 여러 품종을 개량하고 있고, 우리도 그들의 개량품을 도입하기도 하니 ‘한라봉’이 대표적이다.

유자나무 열매인 유자는 한 쪽으로 치우친 공 모양이고, 향이 물씬 풍기며, 신맛이 난다. 풋것은 진녹색이지만 익으면 샛노랗게 변하며, 껍질은 매우 두꺼워 7㎜나 되고, 우묵우묵, 울퉁불퉁 얽었다. 본래 가지고 있는 흠에다가 또 다른 흠결이 겹쳐 있음을 핀잔하여 ‘얽거든 검지나 말지’라 하고, 얼굴이 얽은 곰보를 추어주고 낯을 세워 줄 때 “얽은 구멍에 슬기 든다”고 하는데, 외양만 보고 사람을 평가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암 성장 억제 효과도

유자 열매는 보동 지름이 5.5~7.5㎝이지만 큰 것은 자몽(grapefruit) 크기에 가까운 10㎝가 넘는 것도 간혹 있다. 한국에는 840년(문성왕 2년)경에 신라 장보고가 중국 당나라 상인에게서 얻어와 널리 퍼졌다고 한다. 국내 주요 산지는 전라남도 고흥·완도·장흥·진도와 경상남도 거제·남해·통영 등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자열매로 유자청(柚子淸)·유자화채(柚子花菜)·유자차(柚子茶)외에도 유자정과 유자단자·유자된장 등을 만들어 먹었고, 요새는 유자샐러드도 즐긴다고 한다. 유자청은 씨를 빼낸 부드러운 열매살(과육)에 밤과 대추, 석이버섯채와 설탕을 함께 섞어 소를 만들어서 유자에 다시 채워 넣어서 꿀물을 부어 재워둔 것이다. 은은한 유자향이 풍기는 귀한 음료이다. 그리고 유자차는 늦가을 유자로 유자청을 만들어서, 겨울철에는 더운물에 타서 차로 마시고, 여름철에는 냉수에 타서 음료수로 상큼한 향을 즐긴다.

그리고 유자화채는 유자 껍질, 유자 속살, 배, 석류 알갱이에 꿀물을 부어 잣을 띠운 것으로 석류 알이 보석처럼 아름답고, 달콤한 맛과 유자의 향긋한 냄이 참 잘 어울리는 것이 천하일품으로 궁중에서 즐겨 먹던 음료이다. 차게 해 두었다가 시원하게 마시면 그 싱그러운 맛이 입안에 가득 깃들어서 더할 나위 없는 산뜻한 후식이 된다.

또한 과육은 잼·젤리·양갱 등을 만들고, 과육에 설탕을 넣어 짙게 조린 잼인 마멀레이드(marmalade)나 과자 등에도 이용되고, 즙으로는 식초나 드링크를 만든다. 껍질은 얼려 진공 건조한 뒤 가루를 내어 향신료로 쓰고, 유자 씨는 기름을 짜서 식용유나 화장품용 향료로 쓰며, 신경통이나 관절염약으로도 이용한다. 술을 담그기도 하는데 기관지 천식과 잔기침, 가래를 누그러뜨리고 없애는 데 효과가 있다 한다.

유자는 레몬이나 귤보다 모름지기 한 끗 위로 비타민C 함유량이 곱절 이상 많기에 감기나 피부 미용에 좋고, 노화와 피로를 방지하는 유기산이 많이 들어 있다. 또 당뇨나 비만 예방뿐만 아니라 대장 질환에도 효과가 있고, 염증 유발과 암 성장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최근 연구 결과도 있다 한다.

그 밖에 비타민B와 당, 단백질들이 다른 감귤류 과일보다 퍽 많고, 모세혈관을 보호하는 헤스페리딘(hesperidin)이 들어 있어 뇌혈관 장애와 중풍을 막아 준다. 헤스페리딘은 감귤류 과일에 많이 존재하는 플라보노이드계 색소의 일종인 플라바논(flavanone) 배당체인 비타민P로 노화를 지연시키는 항산화효과, 항염증효과 등이 있을뿐더러 모세혈관(실핏줄)을 보호한다. 노인에게도 좋은 유자라고 칭찬이 자자하니 이참에 좀 챙겨 먹여 보리라.

유자나 귤의 생산지가 북상하고 있지만 아직도 제주를 첫째로 꼽는다. 옛날에는 큰 귤나무 한 그루만 있으면 자식을 대학공부까지 시켰다고 했다. 이제는 품종 개량에다 키우는 방법도 좋아져서 귤이 많이 흔해졌지만 우리가 어릴 때는 오렌지나 감귤이 있다는 말만 들었지 정녕코 꼴도 못 보고, 먹어 보지 못했던 귀물이었지!

그리고 신맛보다는 단맛과 쓴맛이 좀 더 강한 미국산 배꼽오렌지(navel orange)는 꼭지 아래쪽이 배꼽 모양을 하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것은 원산지인 인도에서 브라질로 전파된 것이 다시 미국으로 퍼져 네이블오렌지가 되었다고 한다.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808호 (2018.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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