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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사랑학 개론(11)] 사랑에 대한 아포리즘 '카마 수트라' 

‘여성은 어떤 즐거움을 바랄까’ 

김환영 중앙일보 지식전문기자
서기 200~300년에 완성, 영·미에서 정식 출판된 것은 1962년…여성은 까다로운 존재, 남성보다 사랑에 빠지는 데 시간 더 걸려

▎이탈리아 토스카나 비아레조에서 매년 2월에 열리는 전통 축제 ‘비아레조 카니발’에서 표현된 ‘카마 수트라’. 이 축제에서는 포크 밴드, 무용수들이 함께하는 거대한 퍼레이드와 가면 퍼레이드를 즐길 수 있다.
사랑을 수식(數式)으로 표현한다면? 사랑=섹스, 사랑≠섹스, 사랑≒섹스, 섹스>사랑, 사랑>섹스, 사랑=눈물의 씨앗 등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다. ‘사랑=체위’는 어떨까.


▎국내에 번역 출간된 [카마 수트라] 표지. [카마 수트라]는 없는 게 없는 뷔페 같은 책이다.
[카마 수트라]는 흔히 섹스 매뉴얼, 체위 매뉴얼로 인식되는 고대 인도 문헌이다. 카마는 욕망·정욕·쾌락이다. 수트라는 “물건을 묶는 로프나 실”, 논문·논고(treatise)다.

영미권에서는 [카마 수트라]를 ‘사랑에 대한 아포리즘(Aphorisms on Love)’로도 번역하기도 한다. 산스크리트 문학의 백미 중 하나다. 이 분야 세계 문학사에서 최고(最古), 그리고 아마도 최고(最高)의 위치를 차지한다.

인도 학자인 시카고대 웬디 도니거 교수에 따르면 [카마 수트라]는 [아르타샤스트라(Arthashastra)](마키아벨리를 마더 테레사처럼 보이게 만드는 극적인 현실주의로 유명한 책), [다르마샤스트라(Dharmashastra)]와 더불어 고대 인도의 트로이카 문헌이다.

[카마 수트라]는 우리에게 ‘역사가 반드시 선형적(linear)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알려준다. 시대를 앞서가도 한참 앞서간 이 책은 그 후예들도 많았지만 그 전통은 죽 계승·발전하지 못하고 쇠퇴기를 겪었다. 영미권의 경우 [카마 수트라]의 전통을 계승한 것은 1200만 부가 팔렸다는, 알렉스 컴포트가 쓴 [조이 오브 섹스(Joy of Sex)](1972)다.

없는 게 없는, 뷔페 같은 책


▎영화 [카마 수트라]의 한 장면.
[카마 수트라]는 대략 서기 200~300년에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뿌리는 최소한 기원전 5, 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883년 처음 영어로 번역됐다. 영국과 미국에서 정식으로 출판된 것은 1962년이다. 그만큼 이 책에는 ‘미풍양속에 맞지 않는다’는 평가가 있다.

이 책을 처음 서구에 소개한 리처드 버튼(1821~1890)은 29개 언어를 하는 외교관·언어학자·스파이였다. 그는 몰래 메카로 순례 여행을 떠났다. 이 책을 몰래 발간해 투옥될 뻔했다.

서구에서 이 책은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에게 ‘섹스 매뉴얼’ ‘체위 매뉴얼’로 이해된다. 책에 64개의 체위가 나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책의 20%가 체위를 다루고 있다. 원본에는 그림이 없지만, ‘카마 수트라’가 책 제목에 들어가는 책들에는 좀 야한 그림·사진이 나온다. 글은 거의 없고 그림·사진이 주가 되는, [카마 수트라]를 사칭하는 책들도 많다.

아직도 세계 상당 수 나라에서 [카마 수트라]는 서점에서 ‘떳떳하게’ 진열돼 있지 않다. “[카마 수트라] 한 권 주세요”라고 말하면 서점 점원이 씩 웃으며 갖다 줄 것이다. ‘카마 수트라’는 콘돔, 에로 비디오 등 성 관련 제품 이름에 애용된다.

[카마 수트라]는 인도 문학에도 깊은 영향을 준 명저다. 하지만 상당수 현대 인도인이 이 책을 국가적인 자랑이 아니라 수치로 생각한다. 왜 그렇게 됐을까. 한 가지는 영국 식민시대의 유산이다. 식민지였을 때 인도는 영국 청교도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최근에는 힌두 근본주의의 발흥이 이 책을 껄끄럽게 여기게 만드는 분위기를 형성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고 하지 않는가. 이 책은 디테일이 엄청나다. 예컨대 이 책의 권장 사항에는 이런 게 있다. 성교 후에 남편과 아내는 서로 쳐다보지 않고 각자 몸을 씻은 다음, 대화를 나누면서 가벼운 음료와 음식을 함께 즐겨야 한다. 이때 남편의 무릎은 아내의 베개다.

어쨌든 7권 36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체위는 제2권의 주제일 뿐이다. 책 전체 분량의 약 20%다. 나머지는 에티켓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없는 게 없는, 뷔페 같은 책이다. 이런 것들이 나온다. 구애, ‘밀당’, 유혹의 기술, 헤어지는 법(차는 법), 사랑 싸움, 피해야 할 남성·여성, 유부녀, 최음제·정력제, 페니스를 성애를 위해 변조하는 법 등등.

성매매 여성 관련 내용도 한 권을 차지한다(당시 인도에서 성매매 여성은 반드시 부끄러운 직업 종사자는 아니었다). 저자에 따르면 성매매 여성은 절대 사랑을 위해 돈을 희생하면 안 된다. 돈이 최고 우선 순위이기 때문이다. 덫에 걸린 남성을 마지막 남은 한 푼까지 탈탈 털어 알거지로 만들 정도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술잔치, 돈 버는 법을 논하는가 하면, 청결을 강조한다. 남성은 매일 이를 닦고 목욕하고, 손톱·수염은 나흘에 한 번 깎아야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철학자 바차야나(Vatsayana)이다. 그의 생몰연대는 알 수 없다. 책의 내용 중 일부는 기원전 5, 6세기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분석된다. 저자가 기존의 저서를 취합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라이프스타일 가이드, 인생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단 사랑·섹스가 중심이다. 인생학·사랑학 원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종의 자기계발서이기도 하다.

저자는 [카마 수트라]의 독자들이 그들이 도모하는 모든 일에서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자신한다. 이 책을 읽으면, 사회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이다. 왜일까? 사랑을 잘하는 남성이 사회에서도 인정받기 때문이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다. 가화의 핵심은 ‘밤일’이라는 게 저자의 인식이다.

책의 핵심인 카마는 다르마(Dharma)와 아르타(Artha)와 함께 놓고 이해해야 한다. 다르마는 올바름, 덕(德)이다. 일종의 의무이기도 하다. 우주적·사회적 질서에 순종해야 할 의무다. 다르마는 한자어로 달마(達磨)다. 아르타(Artha)는 삶의 수단인 재물과 권력이다. 의미·목표·본질을 의미하기도 한다. 욕망·정욕·쾌락인 카마(Kama)는 마음과 영혼의 도움을 받아 오감(五感), 즉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5가지 감각”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가화(家和)의 핵심은 밤일?


▎정통 멜로 연극 [멜로드라마]의 한 장면. 배우 조강현과 배해선이 수위 높은 키스 신을 선보이고 있다.
중요도에 있어서는 다르마·아르타·카마 순서를 따른다. 이 인도적 가치의 삼총사 간에 충돌이 발생하면 상위의 가치가 우선이다. 예컨대 다르마와 아르타가 충돌하면 다르마, 아르타와 카마가 충돌하면 아르타가 우선이다.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세 가지를 균형 있게 추구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책의 일차적인 타깃 독자층은 돈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상류층 도시 거주자, 멋쟁이 신사, 귀족, 고위층 공무원, 부유한 상인이다. 물질적·정신적으로나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다르마·아르타·카마를 실천하는 사람은 현세뿐만 아니라 내세에서 행복을 누린다”고 주장하는 저자가 그들을 위해 [카마 수트라]를 집필하게 된 동기는 다르마·아르타에 비해 카마가 무시되는 경향이다.

‘쾌락은 불행의 씨앗’이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바차야나는 사람이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쾌락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물론 쾌락을 추구할 때 절제와 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쾌락을 멸시하거나 무시하면 안 된다. 쾌락은 인생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기 때문이다.

다르마·아르타·카마의 추구는 인생의 단계에 따라 무게 중심이 바뀐다. 유년기에는 학문을 연마해야 한다. 청년기와 중년기에는 아르타와 카마를 추구해야 한다. 노년기에는 모크샤(해탈)을 위해 다르마에 집중해야 한다.

바차야나에게 사랑은 ‘신성한 결합’이다. 또 섹스 자체는 나쁜 것은 아니다. 그의 관점은 비도덕적이 아니라 탈도덕적(amoral)이다. 그는 출산, 특히 득남을 위한 출산이 아니라 섹스를 위한 섹스를 표방한다. 당시 인도인들의 관념과 달랐다.

같은 시대에도 보편과 특수는 구분된다. 오늘날 서울과 뉴욕이 공유하는 보편적인 사랑·섹스 방식도 있지만, 뉴욕·서울에 특수한 것도 있다. 하물며 2000여 년 전으로 올라가는 [카마 수트라]는 현대인들이 보기에 특수하거나 심지어 ‘역겨운’ 것도 있다.

여성의 성욕이 남성보다 8배 강렬하다!


▎돌에 새겨진 [카마 수트라].
저자는 ‘남녀 성기 사이즈는 만족도에 중요하지 않다’는 현대 성과학(sexology)와 다른 주장도 했다. 바차야나는 남녀 성기 사이즈를 대·중·소로 나눈다. 남성의 성기를 종마·황소·토끼, 여성은 코끼리·암말·토끼로 분류했다. 그는 남녀의 성기 사이즈가 맞아야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바차야나는 1950년 발견된 G-스팟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아직 G-스팟의 존재에 대해 논란이 있다). 그만큼 근대적·현대적인 내용을 펼친 저자였다. 21세기 남녀에게 영감을 줄 내용도 많지만, 지금 봐서는 이상한 내용, 무시할 내용도 많다.

[카마 수트라]는 금을 칠한 공작이나 하이에나의 뼈를 오른손에 묶으면, ‘여성이 거절할 수 없는 남성’이 된다고 주장했다. 또 ‘변강쇠’로 만들어 주는 그 시대의 비아그라로 ‘우유에 끓인 참새 알을 버터기름과 꿀과 섞은 음료’, ‘양과 염소의 고환을 설탕을 첨가한 우유에 넣어 끓인 음료’를 제시했다.

[카마 수트라]에는 터부(taboo)가 없다. “사랑에는 다양성이 필요하다. 사랑은 다양성을 수단으로 삼는다”고 주장한 저자는 포옹이나 키스뿐만 아니라, 깨물기·할퀴기·때리기, 신음소리 내기를 성애의 스킬로 제시한다. 여성의 자위행위, 오럴섹스와 동성연애도 가치 판단 없이 다뤘다.

진보나 페미니즘이라는 오늘의 잣대로 보면 [카마 수트라]에 화낼 내용도 있다. 오늘 기준으로 보면 성희롱·강간에 해당하는 것도 바차야나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는 여성의 노(no), 항의나 고통 호소를 남성을 자극하기 위한 ‘술책’ 정도로 여러 번 이해했다. [카마 수트라]의 남성은 가정을 꾸린 다음 집안의 왕처럼 군림했다. 눈살을 찌푸릴 만하다.

하지만 당시 기준으로 보면 [카마 수트라]는 이례적으로 여성을 존중한 텍스트다. 여성의 욕구를 인정했다. 저자에 따르면 여성의 성욕은 남성보다 8배 강렬하다. “여성은 만족시키기 힘들다”며 “남편이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아내가 남편을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여성을 만족시킬 것인가. 남편과 아내가 함께 절정에 도달하는 게 이상적이라고 본 저자는(이 또한 근대적인 관점이다), 충분한 전희가 필요하며 지구력을 연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은 남성이 단순히 자신의 ‘욕심’을 만족시키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카마 수트라]의 남성은 여성의 눈치를 보는 남성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남자는 여성의 행동을 관찰해 그 여성의 성향과 그 여성이 어떤 즐거움을 바라는지 파악해야 한다.”

[카마 수트라]는 남성만 보라고 쓴 책이 아니었다. 남녀 모두가 독자층이었다. 저자는 여성의 취미·여가 생활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아내가 그림·글쓰기·꽃꽂이·마술·요리·운동·음악·독서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남성이 피해야 할 여성으로 냄새 나는 여성, 땀이 많이 나는 여성, 피부병이 있는 여성, 이름이 이상한 여성, 탈모 증세가 있는 여성 등을 열거했지만, 동시에 여성이 피해야 할 남성으로 입 냄새가 심한 남자, 말이 너무 많은 남자를 지목했다.

정복하려면 헌신하라


▎판타지 사극 영화 [조선마술사]. 마술사 환희(유승호, 오른쪽)와 사랑에 빠지는 조선의 공주 청명(고아라).
[카마 수트라]는 사랑·섹스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에 신뢰·자신감이 놓여 있다고 본다. 사회에 성매매 여성이 필요한 이유도 남성이 결혼 전에 자신감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책은 결혼식 후 10일 동안 부부가 관계를 하지 말라고 권장한다. 아내가 남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신뢰·자신감을 주기 위해서다. 정력이나 기교보다 중요한 것이 신뢰·자신감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사랑·섹스 성공 방정식은 아주 간단하다. 저자가 전제(assumption)는 남녀 모두 성적인 쾌락을 추구한다는 것. 하지만 제 짝을 찾는 스타일이 남녀가 다르다는 것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사랑에 빠지는 게 힘들다.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 지극히 까다로운 게 여성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한편 남성은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고 [카마 수트라]가 지적한다. 그렇다면 답은 나와 있다. 남성이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저자는 여성을 ‘정복’하려면 그의 신뢰를 얻기 위해 집요한 헌신이 필요하다.

저자는 성교와 사랑을 전쟁에 비유한다. 전쟁에 임하는 전사처럼 여성을 대하라는 뜻이다. “사랑과 전쟁에서는 모든 게 공정하다(All is fair in love and war)”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전쟁을 하건 하지 않건 첩보가 필요하다. 또 전쟁을 막거나 이미 발발한 전쟁을 평화로 되돌리려면 중개인이 필요하다. [카마 수트라]는 사랑에서 첩보와 중개인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여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 때로는 자신의 능력을 뽐낼 필요도 있다고 한다. 그 정도는 양반. 저자는 별로 올바르지 않은 방법도 제시한다. 연적(戀敵)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트리는 것도 전략이라는 것. 심지어 점쟁이로 위장한 친구를 보내 ‘그 친구는 크게 될 인물입니다’라는 점괘를 내놓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것.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명상에 파묻힌 독신 생활 속’에서 이 책을 집필·편집했다. 믿기 힘들지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카마는 신의 이름이기도 하다. 우리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이렇게 나온다. “인도 신화에 나오는 애욕의 신. 쾌락의 여신인 라티(Rati)의 남편으로, 활과 화살을 들고 뻐꾸기와 꿀벌 따위를 거느리는 아름다운 청년으로 묘사된다.” 카마는 ‘큐피드의 화살’을 연상시킨다. 전쟁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사랑이라는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과 같은 저자의 말에 유념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런 행복도 누릴 수 없다.”

“어떤 남자가 아무리 어떤 여자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그 여자에게 말을 많이 걸지 않고서는 그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 김환영 - 중앙일보 지식전문기자. 지은 책으로 [따뜻한 종교 이야기] [CEO를 위한 인문학] [대한민국을 말하다: 세계적 석학들과의 인터뷰 33선] [마음고전] [아포리즘 행복 수업] [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말하다] 등이 있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스탠퍼드대(중남미학 석사, 정치학 박사)에서 공부했다.

201810호 (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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