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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사정기관 전방위 정보 수집… 대기업 대관 담당들의 은밀한 세계 

“현 정부에서 정보시장 더 내밀해졌다”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청와대·총리실·5大 사정기관 기류 감지에 총력…대관 담당 증언, “정보는 돈에 정비례”

▎기업 정보맨인 대관 담당들은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는’ 삶을 산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분기점으로 한때 대관이 위축되기도 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정보의 가치가 사라진 것은 아니기에 대관 담당의 수요는 여전하다.
취재는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검찰·국세청 등, 정부 사정기관의 빈번한 압수수색에 전전긍긍하는 대기업들이 어떻게 정보를 관리할까’를 알아보던 중, USB 이야기를 접했다. 민감한 내용은 컴퓨터 본체 하드디스크에 저장하지 않고, USB에 넣어 휴대하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이럴 경우 분실 위험이 있다. 극비 정보가 회사 바깥으로 유출된다면 불안할 수 있다. 그러나 대기업 대관(對官) 담당을 만나자, 우문에 현답이 나왔다. “USB 보관은 이미 기본이다. 거의 10년도 전부터 그렇게 해왔다. 만에 하나 분실할 상황을 대비해 암호를 걸어놓는다.” 어쩌다 외부인이 입수해도 암호를 풀지 못한다면, USB에 있는 내용이 모조리 삭제되도록 설계된다. 첩보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보안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대관 담당들에게 “정보시장”이라는 표현을 들었다. 정보를 상품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자신들이 몸담은 기업과 총수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양질의 정보를 얻어내는 작업이 기업 대관 담당의 책무다. 비유하자면 그룹 내 국정원 같은 기능을 담당한다.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어딘가에서 일하는 존재들이다. 대기업 대관 담당을 ‘기업정보팀’이라는 용어로 지칭하기도 한다.

짐작했지만 이들은 언론에 자신들이 거론되는 상황 자체를 극도로 경계한다. 의도치 않게 신분이 노출되는 순간, 조직에 피해가 갈 수 있고 대관 담당의 수명도 끝장나기 때문이다.

접근이 어려운 영역일수록, 이야기의 보물창고일 때가 많다. 기업 대관 직원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일까? 그들이 겨냥하는 포인트는 어딜까? 주요 그룹의 대관 조직은 어떻게 관리되고 있을까? 보고 체계는 어떻게 작동할까? 어떤 자부심과 애환을 안고 살고 있을까? 국회보좌관 등, 대관 담당과 실제 접촉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까?

문재인 정부 들어서 기업 대관업무는 겉으로 보기엔 축소된 듯하다. 그렇다고 기업들이 손을 놓고 있을 리 없다. 기업 대관 담당의 세계는 곧 한국 사회의 촘촘하고, 내밀한 시스템을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익명을 전제로 어렵게 취재에 응한 대기업 대관 담당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 물음에 관한 답을 재구성했다.

한화 대관, 2014년 ‘정윤회 문건’ 입수


▎영화 [더 킹]의 한 장면. 한국적 현실에서 검찰의 파워를 꽤 현실감 있게 묘사했다. / 사진:NEW
대관 담당은 국회에서의 활동 위주로 언론에 알려져 왔다. 그쪽이 비교적 노출된 곳이기 때문이다. 실제 그곳에 대관은 존재한다. 특히 국정감사 때 그렇다. 그러나 대관의 진정한 역량은 사정기관으로부터 고급 정보를 얼마나 얻어내느냐에 따라 갈린다.

대기업 최정예 대관 담당들의 공략 포인트는 7개 정부기관이다. 청와대, 총리실, 국정원, 검찰, 경찰, 국세청, 금감원이다. 이들은 기업의 급소를 움켜쥘 수 있는 인력, 자금력, 권한을 갖추고 있다. 그런 만큼 기업도 대응 차원에서 어떻게든 이들 기관의 기류를 감지하고 싶어 한다. 여기서 대관의 수요가 생기는 것이다.

먼저 청와대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이 기업 관련 정보를 모으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산하에 검찰, 경찰, 국세청, 금감원 등에서 파견된 직원들이 들어와 있다. 물론 기업관련 정보 수집이 이들의 주 업무는 아니다. 공직기강비서관은 청와대 고위공직자의 인사를 검증한다. 청와대 직원 비리에 관한 감찰 활동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기업이 연루되는 케이스가 걸려들 수 있다.

박근혜 정부 때,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으로 구속 기소됐던 박관천 경정은 청와대 공직비서관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했었다. 당시 청와대는 문건 자체의 진위 여부보다 유출 경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 과정에서 뜻밖에도 한화그룹 진모 차장이 등장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2014년 12월 한화 S&C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특이한 점은 이 건물 20층에서 근무하는 진모 차장의 개인물품과 사무실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수사 대상이었다. 진모 차장이 유출된 청와대 문건을 입수한 것으로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한화그룹 대관업무를 맡는 정보팀 소속이었다. 당시 한화 측은 “그룹에 관한 압수수색은 아니었다. 그룹과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박근혜 정권에서 기업 대관 업무가 권력 어디까지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를 짐작할 만한 단적인 사례였다.

공직기강비서관실에는 경찰 인력이 가장 많이 포진돼 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정보수집 활동에 있어서 경찰 출신 치안비서관과 긴밀히 교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한동안 치안비서관은 경찰청장으로 가는 자리로도 통했다.

이와 별도로 민정수석은 법조계(주로 검찰) 출신이 맡는다. 민정수석 지휘체계 아래에 공직기강비서관 외에도 민정비서관, 反부패비서관, 법무비서관이 포진한다. 이들 라인을 통해서 검찰과도 정보 공유가 이뤄진다. 이 라인은 관행적으로 검찰 인사에도 관여해 왔다. 기업 입장에서는 어떤 줄을 대서라도 이쪽의 움직임과 의중을 알고 싶을 수밖에 없다.

청와대와 더불어 총리실도 대기업 대관 담당이 챙겨야 할 지점이다. 국무총리비서실 산하 민정·민원비서관이 정보 수집을 담당한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에는 국무조정실 산하 부패척결추진단도 출범했다. 법무부, 검찰청, 국민권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관세청 등에서 선발된 공무원들이 공직사회는 물론, 공직사회와 관련된 민간분야의 부정부패와 비리 등을 들여다보는 조직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2017년 6월 정부합동 부패예방감시단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활동 시한도 2019년 말까지 2년 연장을 지시했다. 검찰과 경찰의 영역과 중복된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국회 정무위 소속 야당 의원들은 11월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에서 부패예방감시단 예산 전액 삭감을 요구하기도 했다. 어쨌든 총리비서실과 국무조정실, 투-트랙으로 전속 정보담당 직원이 광범위한 정부기관 사찰과 다양한 기업 동향을 파악 중인 셈이다.

文정부 5대 사정기관, 기업동향 파악 없다?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지방국세청 건물. 국세청의 정보력은 사정기관 중에서도 최상위권으로 통한다.
국정원, 검찰, 경찰, 국세청, 금감원은 기업 대관의 촉각이 집중되는 사정기관이다. 이들 기관의 구조를 파악하고, 누가 어디에 포진하는지를 알아야, 그 다음 단계로 어떻게 최적의 대관 담당을 차출할지를 떠올릴 수 있다.

한동안 국가정보원(국정원)은 모든 정부 부처와 정부 산하기관, 지자체, 재계, 언론 등을 상대로 전방위적 정보 활동을 전개했다. 심지어 검찰, 경찰까지도 정보망이 있었다. 국정원은 ‘정보 활동비’ 등 자금력도 막강하다. 재계는 박근혜 정부까지 10대 기업 위주로 체크를 했고, 나머지 30대 기업은 소수가 담당하는 형태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1처(해외)/2처(국내)/3처(대북파트) 중 재계를 총괄하던 국내파트 산하의 경제단과 그 하부조직인 경제처가 해체됐다. 공식적으로는 기업동향 관찰이 중단된 상태다. 조직의 특성상, 국정원의 세부구조는 베일에 가려 있다.

검찰은 전 정권까지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실 1과와 2과가 정·재계 동향 정보와 범죄 정보를 나눠 수집했다. 여기서 엄선된 정보가 대검차장을 거쳐 검찰총장에게 보고되는 체계였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등, 일선 지검 차원에서도 정보전담 수사관이 활동했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검찰은 이들 정보 수사관을 인사 조치를 통해 각 지검으로 분산시켰다. 그러다 일부가 서울중앙지검으로 다시 들어갔다. 특정 조직 없이 몇몇 부서에 분산 배치돼 정보수집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는 대관 담당의 전언이다. 이들은 윤석열 서울지방검찰청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영화 [더 킹]을 보면 검찰에 비밀파일을 보관한 창고가 나온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대검찰청 안에는 대기업의 목을 겨눌 수 있는 자료들이 비치돼 있다고 대관담당들은 확신한다.

경찰은 본청과 지방청으로 구분돼 있다. 본청 정보국은 한남동에 있다. 각 정부기관, 사회단체, 기업관련 정보 수집에 관여했다. 정치권과 언론 관련한 동향 파악도 보고 대상이었다. 서울지방경찰청 산하에도 1·2·3 분실까지 운영됐다. 이들이 수집한 주요 정보는 경찰청 본청까지 보고되는 구조였다. 그리고 본청은 범죄정보 외에 정·재계 동향을 청와대 치안비서관을 통해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에게 알렸다. 검찰처럼 경찰 역시 문 정부 들어 공식적으로는 기업 동향에서 손을 떼고, 오직 범죄정보에만 집중하는 노선을 표방했다. 과거 정권에서 본청 정보국은 요직이었다. 문 정부 들어 반대로 물을 먹고 있는 분위기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경찰정보원들이 기업 정보맨들과 계속 만나고 있다. ‘정보가 권력’이라는 속성은 변치 않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본청 세원정보과에서 검찰과 경찰이 수행하는 것과 동일한 정계와 재계 정보를 수집한다. 기업 대상으로 탈세 등에 관한 세원(稅源) 정보 수집에 집중한다. 서울지방국세청에서는 ‘국세청의 중수부’로 불리는 특별조사 4국 1과 7반이 이를 전담했다. 현재는 4국 산하 1개과에서 활동을 유지하고 있다. 아무래도 대기업 본사 대부분이 서울 소재이기 때문에 세원 정보 획득에 강점을 가진다. 대관직원들 사이에서 “국세청 정보맨에 대한 정보시장의 평가가 가장 좋다”는 평을 듣는다. 국세청의 보유 정보가 그만큼 대기업이 손에 넣길 원하는 성질의 것이란 의미다. 정보라는 것은 속성상, 인맥에서 추출되는 법이다. 다른 사정기관에 비해, 국세청 정보맨들과 기업 대관담당들의 접촉이 상대적으로 잦다고 볼 수 있다.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금융기관을 감시·감독하는 특수기관인 금융감독원(금감원)은 금융서비스개선팀에서 금융 관련 비리 정보 및 정·재계 일반 동향 정보를 수집한다. 금감원 정보팀은 국회 쪽에 인맥이 강하다는 정보시장 평가를 얻고 있다.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삼성의 정보망은?


▎경찰이 한 대기업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10월까지 삼성 10회, 현대차 5회, SK 8회, LG 3회, 한진 18회에 걸쳐 정부 각 부처의 압수수색이 진행됐다고 집계했다. / 사진:연합뉴스
이렇게 강력한 정부기관을 상대할 기업 대관팀들도 최적의 라인업을 꾸려 대응해 왔다. 지금은 과거형에 가깝게 됐지만 재계 1위 그룹인 삼성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정보력을 자랑해 왔다. 대기업 현역 대관담당은 “삼정원이라고 들어봤느냐?”고 반문했다. ‘삼성+국정원’의 조합어로 그만큼 삼성의 정보력이 막강했다는 뜻이다. 1994년 김일성 사망을 국정원(안기부)보다 삼성이 먼저 알았다는 루머가 돌았을 정도였다. 근거는 없지만, 그만큼 삼성이 빠르고 정확하다는 세간의 인식이 배어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드러나 2017년 해체되기까지 삼성 대관업무의 컨트롤타워는 미래전략실이었다. 비서실→구조조정 본부→전략기획실→미래전략실로 삼성의 브레인은 시대에 따라 명칭을 달리해서 기능했다. 총 7팀으로 구성됐던 미래전략실에는 200명 정도가 근무했는데 이 가운데 60명 안팎으로 운영된 기획팀에서 대외 정보 수집을 전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대관은 정부 모든 부처를 비롯해 사정기관, 국회, 대기업, 사회단체 등 가리지 않고 정보를 모았다. 구체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여타 기업에 비해 삼성의 대관업무는 역할이 세분화돼 있었다. 정보시장에서 “삼성은 (자신들에게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특정 주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라는 평판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곤욕을 치른 것도 삼성의 정보력이 막강한 탓(?)으로 볼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를 어디보다도 먼저 감지해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사석에서 “우리는 몰라서 못했다”는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삼성 정보 파워의 원천은 돈이다. 한 대관직원은 “삼성 미래전략실이 정보 수집을 할 땐 활동비의 제한이 없었다. 사안에 따라선 사후 결재도 가능한 시스템이었다”라고 전했다. 미래전략실이 기능했을 때, 삼성은 계열사별로도 대관팀을 운영했다.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국정농단이 불거지지 전까지, 삼성 대관직원들은 모든 상임위를 돌았다. 전부 기록해서 보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인상 깊었던 점은 삼성전자 사람이 전자 쪽 일을 다루지 않았다. 왜냐면 티가 나니까. 삼성화재 대관이 환노위나 정무위 등을 돌면서 삼성전자에 관련된 동향을 파악하는 식이었다. 다만 예전에 컨트롤타워가 미래전략실이었던 것을 모두 알았다. 그러나 미래전략실이 없어지고 난 지금은 어떻게 정보를 취합해서 올리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삼성그룹이 수난을 겪은 뒤, 대관 업무는 몰라보게 축소됐다. 국회에서는 “삼성 쪽 대관이 다 빠져나갔다”는 얘기도 나왔다. 겉으로 보면 문재인 정부 들어 대관을 해봤자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많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대관담당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움츠러든 것은 맞지만 사라지진 않았다는 뜻으로 들렸다. 오히려 “삼성의 대관이 음성화되고 있다”고 봤다. 부적절한 청탁을 남모르게 하고 다닌다는 게 아니라 굳이 오해를 사지 않도록 조심한다는 뜻에 가깝다.

현 시점에서 미래전략실이 해체되자 기존 삼성 정보맨들은 대부분 계열사로 인사발령을 받았다. 그룹이 이 사람들을 대놓고 기용하지는 못할 것이다. 익명을 요청한 대관 담당은 “삼성그룹의 대관기능이 삼성물산 대외전략실 중심으로 재편됐다”고 진단했다.

현대차그룹은 정책조정팀과 정책지원팀 소속 약 50~60명이 분야별로 담당을 나눠 대관업무를 했다. 현재는 약간 규모가 축소된 것으로 알려진다. 현대차 전략기획담당 사장이 총괄 지휘를 해왔다. 현대자동차그룹 대관은 정보시장에서 평균 이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SK그룹은 브레인에 해당하는 수펙스추구협의회 산하 10~15명 직원이 정보 전담 및 대관업무를 수행한다. 이밖에 모든 계열사마다 정보 전담 직원을 두고 있다. 전체 대관담당 수는 50~60명 선이 유지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관 담당은 “SK 정보 인력은 과다한 측면이 있었다. 정보시장에서 가장 흔하게 접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SK는 텔레콤, 이노베이션, 하이닉스 등 업무 관련성이 적은 계열사들을 거느리고 있어서 대관이 필요하다.

LG그룹은 특이하게 LG경제연구원 내에 그룹정보팀 형태로 대관담당을 관리하고 있다. 5~6명으로 꾸려진 소규모 집단이다. 그러나 현 정부가 들어서기 전, 내부 알력이 발생했다고 한다. 팀장과의 갈등으로 에이스로 통하는 정보맨이 LG 계열사로 이동했고, 이후 정보력이 현격하게 약화됐다는 업계 평가다.

한화그룹은 경영기획실 산하 정보 부문에서 대관업무 및 정보수집 활동을 병행한다. 한화 대관의 특징은 자금 지원이 많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대관담당의 처우에 관심을 기울인다. 대관직원들은 거의 대부분 이쪽 일을 그만하고, 계열사로 복귀할 때 인사 혜택을 받는다. 그러나 회사생활 대부분을 대관만 한 직원이라면, 말년에 돌아갈 곳이 마땅치 않다. 이럴 때 한화는 그 어느 기업보다 ‘퇴역’한 대관 담당을 화끈하게 챙기는 것으로 타 기업 정보맨들의 부러움을 산다. 타 기업 대관 담당은 “한화는 그룹 사훈에 ‘신용과 의리’를 넣은 기업이다. (정보맨의 은퇴 후 보장은) 김승연 회장의 의리가 강하게 투영된 것”이라고 평했다.

CJ그룹은 회장실 부속 전략지원팀에서 대관업무를 맡고 있다. 특히 경찰 출신이 많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담당 임원이 경찰대 출신 B씨이기 때문이다. 경찰대 출신과 검찰수사관, 국회 보좌관 출신이 골고루 포진하고 있다. 경험도 많아서 경찰, 검찰은 물론 국회 대관업무까지 퀄리티가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대기업과 금융사들의 대관 시스템


▎미국 로비스트를 소재로 다룬 영화 [미스 슬로운]. “단순히 설득하려 하지 말고, 그들이 누굴 믿는지 알아내고 누굴 화나게 하면 안 되는지 알아내서 그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라”는 대사가 나온다.
현대그룹은 홍보실에서 정보수집 업무를 담당한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정보를 아주 중시하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그룹 홍보라인이 아니라 언론사 출신에게 대관 지휘를 맡기기도 했다.

한진그룹은 과거에는 구조조정실 산하에 소규모 조직으로 정보팀이 운영됐다. 상대적으로 대기업 중에선 정보시장 참여가 더딘 편이었다. 이후 2000년대 초반부터 대관을 강화했고, 정보시장에서 급성장했다. 그러다 2년 전에 정보팀을 해체했다. 해체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후 국회팀만 가동돼 정보보고 업무를 수행 중이다. 최소한의 대관만 하고 있는 상태다.

파리바게뜨를 소유한 SPC도 오너 리스크에 대비해 대관 업무를 강화했다. 회장 비서실 산하에 국세청, 검찰, 경찰 전담 대관을 지정해 정보수집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보팀에서도 정보 수집을 지원하는 협업 체계다.

금융기관도 대관업무에 소홀하지 않다. 우리은행, 국민은행, 신한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은 비서실 소속 직원 일부가 정보수집 및 보고를 수행해 왔다. 교보생명 등 보험회사도 인사팀이나 홍보팀 출신에서 정보업무를 담당해 왔다. 특이한 대목은 금융기관 대관담당들끼리 정례적인 정보모임이 있었고, 교류가 유지된다는 점이다.

정보맨도 결국 회사원이다


▎국정감사 때 연례행사처럼 펼쳐지는 풍경. 국회 대관 담당은 의원보다 보좌관 공략에 주력한다.
전직 대관 담당은 “1주일에 9번 술을 마시고 살았다”고 돌이켰다. 결국 사람에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나는 일이 대관이다. 강한 체력은 기본이다. 세련된 매너와 친화력 있는 언변은 필수적이다. 만나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빨리 파악할 수 있는 센스와 ‘밀당’을 할 줄 있는 담력도 덕목이다.

기업 대관의 전성기는 2000년대 중반부터 최순실 국정농단 이전 무렵까지라고 한다. 국세청, 국정원, 검찰 고위층에게 올라가는 보고서를 대관 담당도 입수하는 수준이었다. 정보시장을 경험한 대관담당은 이렇게 정의했다. “정보는 100만원을 쓰면 100만원짜리 정보가 나오고, 200만원을 쓰면 200만원짜리 정보가 나온다.” 그러나 기업 중에서는 확실히 취득이 보장되지도 않는 정보를 얻는 비용이 아깝다고 여기 기도 한다. 정보가 당장의 이득으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관을 통해 얻는 정보는 다이너마이트와 같다. 평소에 큰 효용이 없어도 결정적 한방으로 총수를 구하거나 기업의 급소를 방어할 수 있다. 지금이야 미래전략실 해체로 과거의 위용을 잃었지만 삼성의 대관이 강력했던 것은 정보의 가치를 이해한 데 힘입었다.

대관 담당은 얻은 정보를 전부 보고하지 않는다. 위에서 정말 필요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정보만 선별해서 올린다. “국회의원보다 국회의원 보좌관이 더 많이 알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대관담당도 결국 회사원이다. 정확한 정보 9개보다 잘못된 정보 1개가 자신에 대한 조직의 신뢰를 깨뜨릴까 경계한다. 기자가 특종 욕심보다 오보를 더 조심하는 심리와 흡사하다.

대관 담당이 그룹 오너나 최고위층과 대면할 일은 없다고 보면 된다. 대관은 보고체계가 확실하다. 딱 자기가 정보를 전달할 ‘보스’ 한 명만 안다. 이래야 설령 문제가 생겨도 ‘위’를 보호할 수 있다. 결국 이 ‘보스’의 생명력이 대관 팀 전체의 운명을 가른다. 다면평가가 불가능한 구조 상, 이 사람의 인사평가 단 하나에 생계가 걸려 있는 셈이다. 그가 영전하면 팀원 전체에 힘이 실리고, 만약 그가 실각하면 조직 자체가 휘청거릴 수 있다.

보고 방식은 예전에는 외부에서 ‘하드 카피’를 해 올렸다. 최근에는 이메일 보고도 흔한데 해외계정을 활용한다는 전언이다. 어쩌다 공개돼 소모적 오해를 사거나 정보원이 노출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다.

대관 담당들끼리는 서로의 존재를 잘 안다. 단 일종의 불문율은 있다. 단적인 예로 A, B, C가 서로 아는 사이라고 치자. 그래도 A와 B 누구도 ‘C를 안다’고 먼저 얘기하지 않는다. 이들은 평판에 죽고 산다. 그 이너서클에서 ‘못 믿을 사람’으로 낙인찍히면 이 바닥에서 배겨날 수 없다. 대관 담당들끼리 자리를 만들어 사람을 소개 받는 협업도 이뤄진다고 한다. 정보도 교류한다.

대관 담당의 현실적 걱정은 불확실한 미래다. 당장은 ‘조직에서 인정받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에 취할 수 있다. 대우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부서 안에서도 ‘저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인가?’라는 의구심 어린 시선을 받기 일쑤다. 안에서도 신분을 노출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다.

이러다 보니 정작 생산성에 도움이 되는 업무 경험을 쌓지 못한다. 대관 업무를 그만두면 계열사로 복귀한다. 그러나 업무 적응이 쉽지 않다. 대관 담당은 “정보 수집 일로 임원까지 올라가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나?”라고 반문했다.

메신저와 로비스트의 경계에서

그렇다면 대관을 상대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까. 국회 보좌관 출신 C씨는 순기능부터 말했다. “피감기관이 기업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대관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료요청 등 메신저가 될 수도 있다. 예전에 현대제철에서 사고가 났을 때, 국회 요구사항을 대관이 가지고 들어가 대안을 마련하는 순기능도 있다.”

그러나 대관의 목적이 ‘이익의 관철’인 이상, 로비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2010년 청목회(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 입법로비 같은 사건이 대표적이다. 특히 기업은 입법 과정이나 국정감사 때 집요해진다. 특히 기업의 이해관계와 직결되는 정무위, 산자위 같은 국회상임위는 한창 때, 문턱이 닳았다.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 일상적 친목부터 시작한다. C씨는 “고교 친구가 찾아왔다. 알고 보니 A그룹 대관이었다. 일단 만나는 것부터 성사되어야 하니까 보좌관, 비서관과 관계가 이어질 사람을 선정한다. 저녁식사 자리를 함께 하고, 친분이 생기면 거절하기 힘들어진다. 필요한 경우에는 금품제공도 있었다고 들었다. 돈보다는 자기회사 상품권을 제공했었다. 그런 것들이 문제가 되니까 아예 만나지 않았다. 보좌관들 중에는 대관 담당과 저녁을 아예 안 먹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현 정부 들어 기업 대관 담당과 선을 긋는 풍토가 강해지고 있다. 대관 입장에서도 “실질적 힘을 지닌 의원들과 만나야 하는데 쉽지 않아” 매력이 떨어진다. ‘김영란법’(청탁금지법)까지 존재하니 더 몸을 사린다. 월간중앙은 취재 과정에서 제보 하나를 들었다. D국회의원의 보좌관이 모 이익단체에 과도한 요구를 하다 일이 터졌다. 그 이익단체가 ‘갑질을 공개하겠다’고 역공을 취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을의 입장인 이익단체로선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전보다 투명해졌다지만 여전히 악어와 악어새 같은 구조의 잔재는 남아 있다는 방증이다.

기업 대관 중에는 국회 보좌관 출신이 적지 않다. 야박하게 무조건 문전박대할 순 없는 노릇이다. E 보좌관은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선후배들인데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며 조심스러워했다. 비단 국회만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사정 기관들도 비슷한 메커니즘일 터다.

기업이 국회나 경찰·검찰 출신을 대관으로 선호하는 이유를 한 보좌관은 “크래킹(불법적 접근을 통해 내부 시스템을 파괴하는 행위)”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점은 불법적이지 불법은 아니란 것이다. 기업이 외부에서 수혈하는 대관 담당은 실력보다 인맥을 보고 뽑아간다고 할 수 있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1812호 (2018.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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