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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특집] 여권 미래권력의 강점·약점 (5)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미 한 말에서 보탤 말도, 뺄 말도 없다”고 하지만…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문재인-이해찬-유시민으로 이어지는 노무현 정신의 상징성… 통합 이미지 약하고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려

▎10월 15일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취임식에서 악수를 나누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왼쪽)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 사진:연합뉴스
2019년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는 해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재단 소식지 ‘사람사는세상’ 송년 특별호에서 이사장으로서의 새해 포부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노무현재단의 활동이 우리 사회의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만들고, 시민의 정치 참여와 사회적 연대 확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모든 분들의 뜻과 지혜를 모아 가겠다.” 나아가 그는 “특히, 봉하마을 노무현대통령기념관과 서울 노무현센터 건립사업도 계획대로 잘 추진하겠다”면서 “후원회원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10월 15일 취임한 유 이사장은 이처럼 새해에 노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관련 사업에 치중할 의향을 피력하고 있다. 그가 밝혔듯이 노무현재단은 노 전 대통령의 가치와 정신을 확산하기 위한 추모·기념 시설 건립을 추진 중이다. 경남 김해 봉하마을 추모의집 부지에 들어설 대통령 기념관과 서울 종로구 창덕궁 옆 부지에 건립 예정인 노무현센터가 대표적인 사업이다. 둘 다 2020~2021년 준공 및 입주를 목표로 한다.

“대선 앞에서는 장사 없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 10월 15일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뒤 작성한 방명록 / 사진:연합뉴스
봉하마을의 노무현대통령기념관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노 전 대통령을 기려 ‘어떻게 해서 돌아가셨는가’ 하는 부분도 강조할 것이라고 이호철 대통령 기념시설건립추진단장은 밝혔다. 서울 도심에 들어설 노무현센터는 전임 이사장인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재임 당시 마련한 1772㎡(약 537평) 부지 위에 지하 3층, 지상 3층 건물로 건립된다. 지하에는 200명을 수용하는 공연장과 미디어센터가 자리하며 지상에는 서가, 전시 공간, 회의실, 시민 활동공간, 카페테리아 등이 시민들에게 개방된다고 천호선 노무현재단 이사는 소개했다. 봉하마을에 이어 서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리는 ‘성지(聖地)’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2009년 9월 23일 출범한 노무현재단은 2018년 6월 말 현재 약 544억원에 달하는 후원금을 모아 다양한 추모, 기념사업을 진행 중이다. 대통령 기념관과 노무현센터가 앞으로 진행될 대표적 기획이다. 노 전 대통령을 기념하는 이런 상징적 사업의 총책임자가 바로 유시민 이사장이다.

그는 지난 8월 민주당 대표에 선출된 이해찬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고심 끝에 뽑아 든 후임 카드였다. 한사코 이사장직을 거부하던 그를 이해찬 대표가 설득할 수 있었던 명분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2019년)를 책임 있게 준비할 사람’이었다고 정치권에 알려져 있다.

이 대표는 이사장 이취임식에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재단을 유시민 작가에게 넘겨줄 수 있어 다행”이라며 “유 작가는 2002년 선거부터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노 전 대통령의 가치를 가장 잘 실천하는 공직 생활을 했다”고 치켜세웠다.

유 이사장은 자신의 행보가 정치재개로 해석되는 걸 경계한 듯 이취임식에서 쐐기를 박는 말을 남겼다. “임명직 공무원이 되거나 공직선거에 출마하는 일은 제 인생에 다시는 없을 것이다.”

그와 오랜 세월 호흡을 같이해온 한 측근 인사는 “내가 알기로는 유 이사장은 잠룡이니 대선 도전이니 그런 생각이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인사는 “대선주자로서의 유시민을 생각해 보려 해도 도무지 형상이 떠오르지 않는다”면서 “더구나 그 스스로 정당이나 진영에 부채를 진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불출마에 무게를 뒀다. 2009년 국민참여당을 거쳐 2012년 통합진보당 대표를 역임한 그는 같은 해 탈당한 뒤 정의당에 입당했다. 2013년 정계은퇴를 선언할 때도 정의당 소속이었으나 지난 6월 정의당을 탈당해 지금은 당적이 없다.

정치권에서는 유 이사장 발언에 진심이 담겨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향후 정국에서 ‘호출’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정두언 전 자유한국당 의원은 언론 인터뷰 등에서 유 이사장의 ‘컴백’ 가능성을 언급했다.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취임했다는 것 자체가 정치행위이며 각종 예능 프로그램 출연 등으로 쌓은 남다른 인지도와 신뢰도가 자산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정 전 의원은 “우리나라는 대선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면서 “차기 대선에서 유력주자로 부상할 것”이라고 점쳤다.

최근 들어 여권의 잠재적 대선주자들이 낙마하거나 내상(內傷)을 입으면서 여권이 조만간 인물난에 허덕이리라는 전망은 유 이사장의 존재감에 힘을 실어준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여권은 현재 독보적이라 할 대선주자가 부재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명박 정부에서의 박근혜, 박근혜 정부 당시의 문재인과 같이 누가 보더라도 대표주자로 인정할 만한 인물이 눈에 들지 않는 게 여권의 현주소다. 현재 이낙연 총리가 선두로 나서고는 있지만 독보적 후보가 부재하다는 평가를 뛰어넘을 수준은 아니다.” 새 인물이 등장할 공간이 확대되는 쪽으로 여권의 권력지형이 형성될 수 있다는 말이다.

새 인물 갈망하는 진보의 속성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각종 방송 출연 등으로 인지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론조사기관의 한 고위 관계자도 2017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두 주자의 실각 기류로 인해 여권 내 대선 판도가 변하고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비서와의 스캔들로 낙마하지 않았거나 이재명 경기지사가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되지 않았다면 다른 주자들이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상황으로 굳어졌을 것인데 상황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배경에서다. “두 명의 유력 주자가 발목이 잡히면서 다른 잠룡들이 운신의 폭을 넓혀갈 공간이 생겼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게다가 진보진영은 새 인물의 등장을 갈망하는 경향이 짙은 편이다. 권투로 따지면 아직 링에 오르지 않은 장외 인물에 대한 기대심리가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유 이사장의 경우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치의 외곽에 자리하지만 언제까지 밖에 머문다는 보장이 없다”고 윤희웅 센터장은 분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사례가 하나의 잣대로 거론된다. 그는 과거 “정치 일선에 나서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누차 못을 박았다. 다들 그렇게 받아들였지만 당과 진보진영의 요구에 못 이겨 끝내 대선에 나서게 됐다. 즉 환경적 요인이 개인 의지적 요인을 압도한 경우다. 다시는 공직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다던 유 이사장도 진보진영에서 출마를 요구하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정치권의 경험칙이다. 현 집권세력의 핵심 인사들이 ‘너 아니면 진다’고 하면 그 누구든 선택지에 들게 마련이고, 처음에는 고사하겠지만 반복되는 권유에 대선주자로 굳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믿는 시각을 보자. 이승원 칼럼니스트는 “유시민 이사장의 공직 진출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을 듯하다”면서 “본인 의지는 피하고자 하나, 공명심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유시민 이사장은 애국적 분노가 있기 때문에 어떤 극한 상황이 왔을 경우, 의지와 무관하게 공직을 맡을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 오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유 이사장은 다음과 같은 입장을 월간중앙에 보내왔다. “이미 (이취임식에서) 들은 데서 보탤 말도, 뺄 말도 없다.” 그래서 더 이상의 언급을 사양한다고 덧붙였다.

작가라는 타이틀에 지적인 이미지

정치권 안팎에서는 유 이사장의 이미지 변신이 그의 지지기반 확장성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주목한다. 정두언 전 의원은 유 이사장을 ‘정치권을 떠나 있으면서 공백기를 갖고 자기 변신을 한 인물’로 설명한다. “방송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고. 싸가지의 대명사였는데 호감도를 엄청 높였다. 보수층도 좋아한다. 이제 작가라는 타이틀을 붙여 지적인 이미지를 풍긴다.”

게다가 개인적으로는 풍부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경북 경주 출신의 그는 대구에서 고교를 나와 서울대에서 학생운동에 헌신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으로 불릴 정도로 정계에서도 진보적 가치에 충실을 기했다. 진보 진영은 진보진영대로 그를 ‘노무현 정신’ ‘노무현 가치’의 대변자로 꼽는다. 문재인(2대)-이해찬(4대)-유시민(5대)으로 이어지는 노무현재단 이사장 명함이 모든 걸 설명해준다.

정치에서는 가능성이 늘 현실화하는 건 아니다. 먼저 대선 주자로 서자면 진보진영 내 맏형 격인 더불어민주당 경선이라는 관문을 뚫어야 한다. 개혁당, 정의당에서 활동한 그의 민주당 내 추종세력이나 지지기반은 미미한 편이다. 어쨌거나 본인이 불출마를 약속한 사실도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자기 말을 번복하는 데 따르는 리스크를 감당할 의향과 역량이 있어야 여권의 차기 주자 대열에 합류하는 자격을 갖게 된다.

대선주자로서의 통합 이미지 보강도 관건적 요인이다. 이승원 칼럼니스트는 “유시민은 대표적으로 극단적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인물”이라고 규정한다. “지지하는 사람들을 강하게 결집시키는 동시에 유시민 혹은 유시민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또 그만큼 비판 수위를 높이게 하는 인물이다. 기존의 날카로운 이미지는 정치 무대로 복귀하더라도 여전히 단점으로 작용할 듯하다.”

대중이 유 이사장에게 열광하는 이유도 더 면밀히 따져볼 필요는 있다. 대통령직에 합당한 능력까지 갖췄다고 보고 결집하는 것과 단순히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작가를 환호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차기 대선 인물군이 줄어드는 여권의 사정을 감안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유 이사장에게 쏠리는 시선이 증가할 가능성은 높다고 하겠다.

201901호 (201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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