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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이슈]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향한 삼성·정부의 2인3각 

李 앞장서고 文 지원사격 ... 해피엔딩 될까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heo.inhoe@joongang.co.kr
美·中의 진입장벽 뚫는 해법은 초격차 기술의 재현
133조 투자 약속이 파운드리 시장 석권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30년까지 파운드리 1위 목표를 내세웠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데이터가 새로운 시대의 석유라면, 반도체는 그것을 유용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내연기관과 같다.(If data are the new oil, chips are the internal-combustion engines that turn them into something useful.)”

지난해 12월,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데이터 기반 서비스 구현을 위한 고성능 반도체 시장이 빠르게 성장 중이며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하며 반도체를 이렇게 비유했다. ‘산업의 쌀’로 불렸던 반도체는 이제 ‘내연기관’으로 진화하는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총아로 주목받는다. 5세대 이동통신(5G),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 실현 과정에서 필수 핵심 부품이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크게 D램 등 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 등 비메모리로 나뉜다. 메모리반도체가 정보를 저장하는 장치라면, 비메모리반도체는 컴퓨터 CPU, 휴대폰 AP처럼 연산·분석기능을 담당한다.

대한민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반도체 강국’이지만 안팎의 여건은 그리 녹록지 않다. 주력 품목인 메모리 부문에서의 경쟁우위는 확고하지만 시장의 미래가 갈수록 불투명해지는 탓이다. 삼성전자의 올 1분기 매출은 52조385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5% 줄었고, 영업이익은 6조2333억원으로 무려 60.2% 급감했다. SK하이닉스 역시 올 1분기 매출 6조7727억원에 영업이익 1조3554억원에 그쳐,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2%와 69% 감소하는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총 수출의 20%를 책임졌던 반도체의 부진은 우리 경제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지난 1분기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수출 및 설비투자 부진 등으로 전 분기 대비 -0.34% 역성장했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여 년 만의 가장 낮은 경제성장률이자 5분기만의 역성장이다.

반도체의 경쟁력은 한국 경제의 경쟁력과 동전의 양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도체의 부진은 경쟁력 저하보다는 시장의 포화 내지는 퇴조 추세와 맞물려 돌아간다고 업계에서는 말한다.

대규모 시스템반도체 투자, 업계 환영 속 관망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4월 29일 정부의 ‘시스템반도체 비전과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양사의 매출이 급감한 이유도 메모리반도체의 속성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품종 대량생산’ 하는 메모리반도체는 ‘생산 후 판매’라서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으면 가격이 급변한다. 올 1분기 어닝쇼크는 지난해 말부터 데이터 센터, 모바일, PC 등 주요 시장의 수요가 정체되면서 메모리반도체 공급 과잉을 가져왔고 결국 매출 급감으로 이어졌다. 업계에서는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이르면 올 3분기, 늦어도 내년 초에는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주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순수하게 수요-공급 상황만 고려하면 2019년 말까지 공급과잉이 계속 심화될 것”이라면서도 “올해 주요 기업의 이익이 50% 감소하더라도 직전 호황기인 2015년의 2배 수준이므로 버블 붕괴는 정상화 과정일 뿐 시장의 침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바라본다.

반도체 가격과 기업의 이익이 다시 회복된다고 해도 실적은 언제든 요동칠 수 있다. 한국은 전체 반도체 시장의 30%에 불과한 메모리 분야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 경제에도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고자 정부와 삼성전자 등 반도체 업계는 관련 산업 전략을 재검토하고 있다. 메모리 시장 규모의 1.5배가 넘는 비메모리 시장에 본격 뛰어들 채비를 갖추기로 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4월 24일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분야의 연구개발(R&D) 및 생산기술 확충에 총 133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여기서 시스템반도체라함은 반도체 전문설계(팹리스)와 위탁생산(파운드리)을 포함해 메모리 분야를 제외한 모든 반도체 생태계를 일컫는다. 대표적인 품목으로는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와 차량용 반도체, 카메라용 이미지센서 등이 있다. 시장조사기관 IHS마킷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시스템반도체의 시장 규모는 2466억 달러로 메모리 반도체(1638억 달러)보다 크다.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시스템반도체가 60%에 달한다. 메모리와는 달리 주문양산 방식으로 수급 불일치에 따른 급격한 시황 변화가 적다는 것도 특징이다.

정부도 두팔을 걷고 나섰다. 정부는 4월 30일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시스템반도체 비전과 전략’ 발표회를 가졌다. 시스템반도체 분야 R&D 지원과 인력 양성 등을 통해 2030년까지 팹리스 시장 점유율 10%대, 파운드리 시장 세계 1위를 달성한다는 청사진이 공개됐다.

기업과 정부의 새 투자 전략과 관련해 한태희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표한다.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실리콘밸리를 품은 미국은 하이테크 기술로, 거대 내수시장과 정부 지원을 배경으로 하는 중국은 엄청난 물량 공세로 시장을 공략하는 중이다. 현재의 한국 기술과 자본, 인력 수준으로 당장 이들과 경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메모리 분야의 감정을 지렛대 삼아 EU, 일본 등 여타 국가들을 충분히 제칠 수 있다는 게 한 교수의 진단이다. 한 교수는 “비메모리 석권을 천명한 삼성전자, 메모리 분야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SK하이닉스 등 세계적 수준의 기업이 대한민국 반도체산업의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높은 수준의 유무선 통신 인프라와 IT에 민감한 국민적 특성도 장점으로 거론된다. 다만 경쟁 기업들이 이미 선점한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 선제적으로 치고 들어갈 분야가 마땅히 안 보인다는 건 국내 기업들에게는 큰 도전 요인으로 와 닿을 것이라고 한 교수는 덧붙였다.

시스템반도체 육성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8~2016년 사이 두 차례에 걸쳐 저변 확대를 위한 ‘시스템IC 2010’, ‘시스템IC 2015’ 사업을 추진했다. 그럼에도 2018년 기준 시장점유율은 3.1%에 그쳤고, 기술력은 미국의 80% 수준으로 성장이 정체된 상태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글로벌 50대 팹리스 중 한국 기업은 단 1곳에 불과하다.

어쨌든 정부와 삼성전자에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자 업계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예컨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업계가 ‘반도체 설계 툴(EDA Tool)’을 공동 구매하는 사업을 지원키로 했다. 그에 드는 예산 46억원을 국회에 제출된 추경안에 반영했다.

반도체 설계 툴(EDA Tool)은 팹리스 업체가 반드시 갖춰야 할 핵심 소프트웨어지만 높은 개발 비용이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팹리스 별로 10~50종의 설계 소프트웨에어를 갖추는 게 보통이다. 그 설계 툴 개발 비용은 1종당 대략 1억~2억원을 오간다

자동차 카메라용 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 업체 넥스트칩 관계자는 “정부 발표를 보면 팹리스 업체들에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고심한 모습이 보인다”며 “설계 툴 개발에 들어갈 비용의 상당액을 절감할 수 있어 업계에서는 큰 기대를 표하고 있다”고 업계 기류를 전했다.

산업 전체의 파이가 커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반도체 디자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알파홀딩스의 관계자는 “칩을 설계하는 팹리스 업체가 많아지면 대량 양산할 수 있도록 중간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자인 설계 회사도 증가하고 인력 수요도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반도체 전공정에 해당하는 팹리스 규모가 커지면 당연히 후공정 업체도 늘어나게 마련이고 결국 산업 전체의 볼륨이 커지게 될 것”이라고 반겼다.

외국이 장악한 팹리스 “인력 확보가 가장 큰 숙제”


▎메모리 반도체 매출 급감 속 반도체 산업의 대전환이 시작됐다. / 사진:삼성전자
업계에서는 웨이퍼 위에 회로를 만드는 과정을 전공정, 웨이퍼 위에 만들어진 회로들을 하나하나씩 자르고 외부와 접속할 선을 연결하고 패키징하는 과정을 후공정이라 한다. 후공정을 담당하는 패키징 업체인 시그네틱스의 관계자도 “삼성과 같은 큰 파운드리 업체가 시장에 많은 물량을 공급하면 연쇄적인 파급효과를 낳게될 것”이라며 삼성과 정부의 투자를 청신호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업계 관계자는 “아직 먼 얘기라 어떤 방식으로 매출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며 “시스템반도체 분야가 워낙 넓어 업체마다 최적화된 맞춤형 지원이 가능할지는 지켜봐야 할 듯하다”고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메모리반도체의 경쟁력은 미세공정 전환을 통한 원가절감인 반면 시스템반도체는 설계 능력에 핵심 경쟁력이 좌우된다. 업계 관계자는 “시스템반도체의 경쟁력은 최소한의 소자를 이용해서 업체가 요구하는 사양을 충족하도록 칩을 설계하는 능력에 있다”며 “동일한 성능을 가진 제품이라도 설계 능력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설계로 구현할 수 있으며, 제조원가 또한 크게 차이 날 수 있다”고 말한다. 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 업체의 수준이 우리나라 시스템반도체의 성공을 좌우할 것이라는 의미다.

제조 설비 없이 설계만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 산업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2017년 기준, 퀄컴, 브로드컴, 엔비디아 등 미국에 본사를 둔 팹리스 반도체 기업은 전 세계 팹리스 업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다음은 대만(16%), 중국(11%), 유럽(2%), 일본(1%) 순이다.

한국의 팹리스 설계 역량은 중국에도 밀린다는 평가다. 세계 팹리스 상위 10개 기업 중 중국 기업은 2개(하이실리콘, 유니그룹)인 반면, 한국 기업은 상위 50개 기업 중 하나에 불과하다. LG그룹 계열사 실리콘웍스가 매출 7억 달러(19위)로 체면치레한 수준이다.

산업연구원의 김양팽 연구원은 “우리나라 팹리스 기업은 2010년대 초반 모바일 영상처리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했다가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전환 등 시스템반도체 수요 환경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뒤로 쳐졌다”고 말한다. 김 연구원은 “중국은 정부가 나서 팹리스 기업 세제지원, 인프라 구축 등에 열을 올린다”면서 “자국의 우수한 인재들이 창업하기 수월한 환경이 조성되면서 팹리스 기업이 급속도로 발달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상대적으로 국내 팹리스 업체의 상황은 열악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상장된 팹리스 업체들의 매출을 보면 1000억이 넘는 회사들이 많지 않다”면서 “중국 팹리스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매출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은 구조”라고 토로한다. 중소·벤처 팹리스 업체에 근무하다가도 경력이 쌓이면 국내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수배의 연봉을 받고 중국으로 이직을 하는 현실도 국내 팹리스 업계의 경쟁력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팹리스 산업을 일으키자면 인재 양성이라는 선결과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산업의 규모는 인력의 규모와 비례한다”면서 “기본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안 상무는 “현재 반도체 업계에 연 1만 명 수준의 신입 인력이 공급되지만 대부분 업무에 앞서 재교육을 받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국내에는 반도체를 전공으로 하는 학과가 없다. 신규 인력을 곧장 현장에 바로 투입해 성과를 내기가 힘든 구조라는 게 안 상무의 시각이다. 그는 인력 문제가 가장 우려스럽다고 거듭 말했다. “인재가 부족한 상황에서 기술개발 가능성 등 산업 성공을 따지는 것은 사치스러운 상상”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밝힌다. “반도체학과를 만든다 하더라도 현장 투입까지는 최소 6~7년은 걸릴 것이다. 정부에서 내건 2030년이 돼야 제대로 된 인력이 공급될 수도 있다. 연구기반 조성과 인력 양성이 제대로 이뤄질지에 반신반의하는 기류가 강하다.”

팹리스와 함께 시스템반도체의 한 축인 파운드리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에서 보여준 ‘초격차’ 기술을 앞세워 대만의 TSMC가 지배하는 파운드리 시장을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파운드리 1위 석권 열쇠는 보안?


▎문재인 대통령(가운데)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4월 30일 경기도 화성 삼성전자 EUV동 건설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2014년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5.1%로 4위에 머물렀다. 메모리 시장 최강자 위치에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었다. 이에 2017년 기존 시스템LSI 사업부를 팹리스 사업부와 파운드리 사업부로 분리하는 등 파운드리 진출 의지를 구체화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1분기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는 점유율 48.1%로 1등을 달리고 있고 삼성전자가 19.1%로 그 뒤를 쫓고 있다.

글로벌 파운드리 산업을 이끌어온 TSMC의 경쟁력은 웨이퍼 제조 기술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패키징 기술에 있다. 아울러 설계와 생산을 함께하는 삼성전자와 달리 순수 파운드리 업체라는 점도 강점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퀄컴 등 경쟁사들은 최신 주력 모델 생산은 TSMC에 맡기고, 유출 우려가 상대적으로 덜한 물량들을 삼성전자에 맡기는 기조가 뚜렷하다”고 귀뜸했다. 경쟁사들이 세계 최고의 IT기업의 하나인 삼성전자에 설계 도면을 고스란히 공개하는 걸 꺼린다는 말로 해석된다. 최근 대만 팹리스 업체인 미디어텍의 릭 차이(Rick Tsai) 공동CEO(최고경영자)가 “TSMC와 비교해 삼성전자와 고객사(팹리스) 사이의 관계가 더 복잡하다”고 발언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된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삼성전자는 정색하고 반박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보안성이 철저하게 지켜지지 않고 내부 공유가 있었다면 퀄컴과 같은 고객사를 아예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그런 기술 유출 관련 우려는 정식으로 제기된다기보다 시장에서 뜬소문 정도로 언급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에 김양재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중장기적으로는 삼성디스플레이처럼 파운드리 부분도 분사될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내다봤다. 삼성전자가 과거 디스플레이 사업을 본격적으로 키우고자 삼성디스플레이를 분사한 뒤 자회사로 둔 것처럼 반도체 위탁생산을 담당하는 파운드리 사업부도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2017년 삼성전자가 시스템LSI 사업부를 팹리스와 파운드리 사업부로 분리하면서 고객사 확보가 쉬워졌다고 보는 업계의 시각도 있다.

갖가지 추측 속에서도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1위를 향한 ‘초격차’ 기술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5월 14일 열린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19(Samsung Foundry Forum 2019)’에서 삼성전자는 ‘차세대 3나노 GAA 공정’과 새로운 고객 지원 프로그램인 ‘SAFETM-Cloud’를 소개했다. 최신 공정 대비 소비전력을 줄이고 속도를 크게 향상시킨 GAA기술은 파운드리 세계 1위 TSMC보다 1년, 인텔보다는 2~3년 앞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아가 삼성전자가 공개한 새 고객 지원 프로그램 ‘SAFETM- Cloud’는 팹리스 고객사들에게 보다 저렴하고 빠른 반도체 제작 환경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삼성은 강조한다. 결국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그랬듯이 월등한 기술력을 앞세워 점유율을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아리송한 대규모 투자 발표 시점


▎극자외선(EUV)을 활용한 미세 공정 기술로 주목받는 삼성전자 화성공장. /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의 광폭 투자 발표에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도 없지 않은 실정이다. 삼성전자가 비메모리 관련 연구개발(R&D)과 시설에 투자키로 한 133조원을 연간 금액으로 나누면 평균 11조원 수준이다. 이는 매년 삼성전자가 투자해 왔던 규모에서 크게 늘어난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에 삼성전자는 “지금까지는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의 투자 금액을 구분하지 않고 공개했다”며 “이번에는 파운드리를 포함해 시스템반도체에만 133조원을 투자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규모로 봤을 때 훨씬 늘어난 것”이라고 밝혔다.

투자 계획 발표 시점도 공교롭다는 반응을 낳았다. 법조계에선 경영권 승계 관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법원 상고심 판결이 5월께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이 부회장은 지난해 2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동안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의 중요성을 몰라서 투자를 안 했겠나”라며 “삼성바이오로직스 관련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 발표는 정권을 향한 일종의 제스처라는 인식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과거 이명박 정부가 녹색성장을 내걸면 기업은 기술투자 계획으로 화답했고, 박근혜 정부 당시 창조경제도 마찬가지였다”며 “정부가 이끌고 기업이 따라간다고 해서 정책이 현실화될지는 더 지켜봐야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자신의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는 반도체산업 진출 당시의 분위기가 잘 드러나 있다. 1974년 12월, 고민 끝에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선진국과 기술 격차가 크고 막대한 소요 자금, 라이프사이클이 짧은 데 따르는 위험성, 전문인력 부족 등 당시 우리 실정은 사면초가와 다름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서든 기술을 확보해야 했다.”

이병철 선대회장과 이건희 회장이 메모리반도체에 선택과 집중을 했다면 이 부회장은 비메모리반도체에 화살을 겨누고 있다. 비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이 부회장이 마주한 상황은 이건희 회장이 한국반도체를 인수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부회장은 올해 초 문 대통령과 가진 기업인 간담회에서 “반도체 업황이 좋지 않지만 이제 진짜 실력이 나오는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 부회장의 결단과 의지가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정부는 어떤 전략적 행보를 보일지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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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호 (2019.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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