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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기자의 ‘인간혁명’] 세계화의 끝: 리쇼어링 

‘바이 코리아’ 30년 번영 막 내리나 

실리콘밸리와 셰일가스 장착한 미국의 신중상주의 드라이브
미·중 무역전쟁과 한·일 갈등은 국제분업 붕괴의 징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위스콘신 주 폭스콘 제조단지 착공식에서 스콧 워커 주지사(왼쪽), 테리 궈 폭스콘 회장(오른쪽)과 함께 시삽하고 있다. / 사진:EPA/연합뉴스
어느 날 퓰리처상을 3번이나 수상한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골프장에서 첫 스윙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처음 온 그에게 파트너가 친절히 티샷의 방향을 일러줬습니다. 멀리 보이는 휴렛팩커드 건물과 텍사스 인스트루먼츠 빌딩 사이로 티오프하라는 거였죠. 그러면서 두 건물 사이엔 조만간 골드만삭스가 입주할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2005년 프리드먼이 쓴 [세계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는 이처럼 그가 도심 근처의 골프장에서 첫 티샷을 하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미국 기업의 간판이 즐비한 그곳은 뉴욕도, 샌프란시스코도 아닌 인도의 벵갈루루였다는 설명과 함께 말이죠. 프리드먼은 “세계화와 아웃소싱으로 세상이 평평해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30년간 글로벌화의 바람을 타고 선진국들은 해외 투자를 확대하며 인건비를 아끼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습니다. 개발도상국은 새로운 산업을 유치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기술을 이전받아 자생력을 키웠죠. 그러면서 국가 간 교역량은 늘고 세계는 평평해져 갔습니다. 냉전 이후 전 세계가 함께 성장하고 그 안에서 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자유무역 시스템과 경제적 통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기울어지는 세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오른쪽 둘째)이 5월 13일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했다. /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평평해지던 세계가 이젠 다시 기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앞다퉈 해외 공장을 짓고 외국 회사에 투자했던 글로벌 기업들이 자국으로 유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국과 독일, 일본 등 선진국의 기업들이 해외 생산설비를 철수하고 국내 생산량을 늘리는 데 앞장서고 있죠. 이른바 리쇼어링(reshoring)입니다. 해외 아웃소싱을 늘리는 오프쇼어링에 반대되는 말입니다. 여기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가 미국이고요.

흔히 리쇼어링 하면 도널드 트럼프의 2016년 선거 캠페인을 떠올립니다. 그는 러스트벨트(오하이오·펜실베이니아 등 북동부 공장 지대)의 표심을 잡기 위해 제조업 부활을 공약했죠. 그러곤 글로벌 기업들에게 국내 투자를 압박했습니다. 실제로 트럼프는 애플의 위탁생산업체인 폭스콘이 위스콘신 공장에 100억 달러를 투자해 1만3000명을 고용키로 한 것을 큰 업적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폭스콘의 미국 투자는 1990년 워싱턴 컨센서스 이후 진행된 세계화의 흐름에 비춰보면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가 아닌 미국에 대규모의 새로운 생산설비를 투자하는 것은, ‘인건비가 저렴한 나라에 공장을 짓는다’는 세계화의 원칙과 배치되기 때문이죠. 미국의 비즈니스 저널리스트 찰스 피쉬맨은 “1990년대 오프쇼어링을 촉발했던 세계화의 힘이 이제는 거꾸로 리쇼어링을 이끌고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중국과 멕시코로 떠났던 기업들이 속속 자국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 포드의 픽업트럭 라인은 오하이오 주로, 상업용 밴은 미주리 주로 이전했습니다. GE도 냉장고와 온수기 등 가전제품 생산라인을 중국에서 옮겨왔고요. 심지어 외국 기업의 미국 투자도 대폭 늘고 있죠. 지난 5월 롯데의 신동빈 회장은 루이지애나 주에 31억 달러를 투자해 연간 100만t의 에틸렌 생산 설비를 갖춘 것을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면담까지 했습니다.

이런 흐름은 미국뿐 아니라 다른 제조업 선진국도 마찬가집니다. 일본의 닛산은 올해 최신형 SUV 차량 ‘엑스트레일’ 생산라인을 외국에서 규슈 공장으로 이전했습니다. 도요타도 2015년 ‘렉서스RX’ 공장을 후쿠오카로 옮겨 왔으며 2017년에는 해외 생산하던 ‘캠리’의 10만 대 물량을 아이치현 공장으로 이전했습니다. 이탈리아의 패션 브랜드인 베네통, 보테가 베네타도 중국·베트남 등지의 생산 공장을 자국으로 옮겼고, 독일의 아디다스는 사물인터넷 등 최신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생산라인을 국내에 마련했습니다.

이처럼 세계화의 핵심이었던 오프쇼어링이 주춤하고 그 반대인 리쇼어링이 늘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자유무역과 개방경제로 세계를 하나로 묶었던 글로벌 질서가 선진국을 중심으로 깨지기 시작한 것은 왜일까요?

오늘날 선진국을 중심으로 빚어지고 있는 리쇼어링은 단순히 일시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어쩌면 지난 30년간 우리가 누려왔던 세계화의 흐름이 뒤바뀌는 전조일 수도 있습니다. 자유무역 질서에 균열이 나면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에는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역세계화’의 전조로 읽히는 리쇼어링 현상을 면밀히 살펴봐야 합니다. 오늘 ‘인간혁명’은 리쇼어링에 가장 적극적인 미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세계 경제의 새로운 질서가 어떻게 재편돼 가고 있는지 따져보도록 하겠습니다. 변해가는 국제 정치·경제 시스템 아래 한국은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 함께 고민해 보시죠.

토머스 프리드먼에 따르면 역사상 ‘세계화’는 총 3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1492년부터 1800년 전후까지의 시기입니다.

두 번째는 그 이후부터 대략 2000년까지로, 1·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주춤하긴 했지만 큰 흐름에서는 기술의 발전으로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세계화의 주체는 초국적기업이었습니다. 기업은 새로운 시장과 노동력을 찾아 끊임없이 세계를 확장했죠. 그러면서 인건비가 싼 나라로 국경을 넘었고 오늘날처럼 전 세계에 퍼졌습니다.

세계화의 첨병 ‘오프쇼어링’


세 번째는 2000년 이후입니다. 이때는 IT 기술의 발달로 세계가 더욱 평평해졌습니다. 특히 인터넷의 발전은 개개인을 하나로 연결했습니다. 하나가 된 세계에선 “미국 고객을 대상으로 한 콜센터 업무가 인도에서 이뤄지는 것”(프리드먼, [세계는 평평하다])과 같은 오프쇼어링이 확산됐습니다.

이 시기의 기업들은 앞을 다퉈 저개발국가에 생산 공장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 덕분에 많은 개발도상국이 30년 사이에 어마어마한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유치했죠.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경우 FDI 순 유입액은 1980년 10억 달러(USD)에서 2017년 2645억 달러로 급증했습니다. 중앙·라틴아메리카도 같은 기간 60억 달러에서 1463억 달러로 늘었고요.

특히 중국은 개방정책 이후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며 미국을 포함한 수많은 나라의 생산라인을 유치했습니다. 초국적기업들은 1980년대를 시작으로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했고, 저렴해진 운송비 때문에 이곳에서 생산한 제품을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하는 것이 효율적이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글로벌 생산네트워크로 연결됐습니다.

그러나 선진국의 노동자들은 오프쇼어링으로 피해를 봤습니다. 공장들이 개도국으로 넘어가면서 제조업 기반이 약해지고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사라졌죠. 자국 산업은 활력을 잃고 안정적인 고용창출도 어려워졌습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생산기지가 떠나면서 세입이 감소해 재정적 문제도 떠안게 됐습니다. 결국 일자리 감소와 세수 부족, 인프라 투자 저하 등의 악순환이 생기면서 오프쇼어링은 선진국의 새로운 위기로 부상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앤디 그로브 전 인텔 CEO는 “공장들이 해외로 떠날수록 미국의 혁신 기회는 줄어들고 일자리도 감소한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면서 “배터리 산업에서 겪었던 것처럼 오늘의 상품 제조를 포기하면 미래에 부상할 산업까지 스스로 차단하는 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해외로 떠났던 기업들이 자국으로 돌아오는 리쇼어링 현상이 나타난 거죠.

이유는 두 가집니다. 첫 번째는 경제적 측면에서 개도국의 저렴한 인건비 혜택을 더는 누릴 수 없게 됐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정치적 측면에서 미국 행정부가 의도적으로 리쇼어링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는 점이죠.

먼저 중국의 인건비 상승은 초국적기업의 투자 매력도를 떨어뜨렸습니다. 임금이 올라갈수록 생산원가는 높아지기 때문에 기업은 생산라인을 다시 임금이 싼 나라로 옮기거나 자국으로 들여와야 했죠.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도시 근로자의 평균 임금(연간)은 2003년 1만5329위안에서 2016년 11만9928위안으로 7.8배 늘었습니다.

도시 근로자 임금이기 때문에 전체 평균보다 높게 나왔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중국의 임금은 이제 더는 저렴하지 않습니다. 같은 기간 OECD 국가의 평균 임금이 4만2702달러에서 4만9126달러로 13.1% 증가한 것과 대조됩니다. 그러나 비슷한 기간인 2003~2017년 중국의 1인당 GDP가 1274달러에서 8827달러로 6.9배 증가한 것을 따져보면 이 같은 임금 인상은 놀랄만한 수준이 아닙니다.

코트라가 국가별로 평균 임금(도농 구분 없음)을 비교한 자료를 보면, 2017년 중국 전체의 일반 대졸 사무직 월급 평균은 774달러로 필리핀(299.3달러), 베트남(350달러), 캄보디아(270달러) 등의 2배 수준입니다. 특히 최저임금은 시간당 3.5달러로 캄보디아(0.82달러)의 4배가 넘습니다. 홍콩(4.4달러)과는 불과 0.9달러밖에 차이가 나지 않고요.

고졸 생산직의 경우엔 평균 월급이 628달러로 일본(1438달러)의 절반가량(43.7%)에 달합니다. 최근 미국과 한국 등 초국적기업들이 생산기지를 중국에서 베트남 등 다른 나라로 옮기는 것은 이처럼 중국의 급격한 인건비 상승 요인이 큽니다. 물론 미·중 무역전쟁 같은 정치적 변수도 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당장 생산원가가 급증했기 때문에 공장 이전은 물론 추가 투자까지 꺼릴 수밖에 없는 것이죠.

리쇼어링은 오바마의 정치적 산물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은 8월 2일 방콕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가운데),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외교장관회담을 가졌다. / 사진:연합뉴스
러스트벨트에서의 선거 캠페인 때문에 리쇼어링이 트럼프의 업적으로 오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리쇼어링을 처음 정책에 도입하고 의회를 설득해 법안까지 제정한 사람은 오바마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오바마 행정부는 제조업 비중이 높은 독일과 일본 등의 국가에서 실업이 적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월드뱅크에 따르면 2009~2013년 평균 실업률은 미국(8.7%)과 프랑스(9.1%) 등 주요 선진국에서 높게 나타났고 OECD 국가 평균도 8%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독일(6.2%)과 일본(4.6%)의 실업률은 이에 훨씬 못 미쳤죠. GDP 대비 제조업의 부가가치 비중이 2001~2010년 평균 독일(20.1%)과 일본(21.1%)은 높은 수준을 유지했지만, 미국(12.8%)과 프랑스(12.1%)는 낮았습니다.

사실 미국은 1990년대 이전까지는 세계 제조업 생산 비중의 20%가 넘을 만큼 제조업 강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오프쇼어링으로 기업들의 생산기지가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기술과 인력도 함께 유출됐습니다.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게리 피사노 교수는 이를 ‘산업 공유지(industrial commons)’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산업 공유지는 제조업 공장과 숙련 노동자, 주변 대학과 연구소 등의 R&D 역량, 이를 뒷받침하는 정부의 인프라 등이 결합한 곳을 말합니다. 그런데 세계화에 따른 오프쇼어링으로 인해 기술혁신의 기반인 산업공유지까지 함께 이전하면서 제조업 경쟁력 또한 사라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는 2009년 제조업 부흥을 핵심 정책으로 설정합니다. ‘리메이킹 아메리카(Remaking America)’를 슬로건으로 다양한 정책을 내세웠고 가장 핵심적인 것이 리쇼어링을 촉진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바마 정부의 적극적 지원 아래 미국 의회는 2010년 ‘Make it in America’라고 불리는 제조업 활성화 법안들을 내놨습니다. 이중 가장 먼저 제정된 것은 ‘오프쇼어링 제한법’입니다. 미 의회는 2010년 8월 이 법안을 만들어 기업이 해외로 생산기지를 이전할 때 받을 수 있던 세금 혜택을 없앴습니다.

아울러 특허청에 신청된 120만 개의 특허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미국 특허 보호법’, 자국 기업이 생산에 필요한 자재를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조업 강화법’ 등을 함께 제정했죠.

정부와 의회의 제조업 강화 노력은 곧바로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AT Kearney’에 따르면 2010년 16곳에 불과했던 리쇼어링 기업 수가 오바마의 ‘리메이킹 아메리카’ 발표 1년 만에 64곳으로 급증했습니다. 오프쇼어링 기업에 세금 혜택을 주던 법안을 폐지함으로써 기업들은 해외투자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됐고 자국 제조업 기업이 생산 자재를 싸게 사들이도록 하면서 생산원가를 크게 낮췄습니다.

2012년 1월 오바마 대통령은 다시 한번 대대적인 제조업 강화 정책을 발표합니다. 새해 첫 어젠다로 백악관이 공표한 ‘미국을 위한 청사진(Blueprint for an America Built to Last)’에는 기존에 추진해 왔던 제조업 강화 정책과 앞으로 실행할 계획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핵심은 리쇼어링 기업에 지원과 보상을 해주고, 양질의 노동자를 훈련해 일자리를 창출하며 천연가스 공급을 안정적으로 실시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35%인 법인세를 28%로 낮추는(제조업은 25%) 방안을 제시했죠.

이중 천연가스 생산 증대 정책은 기업에 안정적이고 값싼 에너지를 공급함으로써 리쇼어링 현상을 더욱 촉진했습니다. 국제정치경제학의 권위자인 브래드퍼드 딜먼은 그의 책 [국제정치경제 입문]에서 “중국 노동자 임금의 급격한 상승과 함께 미국 내 천연가스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미국 기업들이 제조설비를 모국으로 이전하는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미국의 천연가스 생산량은 2009년 러시아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섰습니다. 2011년 한 차례 러시아에 1위 자리를 내준 것을 제외하면 현재까지 계속 선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죠. 미국의 천연가스 생산량은 2005년 5117bcm(billion cubic meter, 10억㎥)에서 2017년 7677bcm으로 무려 50.1%나 증가했습니다. 반면 러시아는 같은 기간 6287bcm에서 6947bcm으로 10.5% 증가하는 데 그쳤고요.

때마침 찾아온 ‘셰일가스’ 혁명


▎미국 오클라호마 주 내 셰일가스 생산광구에 설치된 시추기. 수직으로 1.6㎞를 파고 내려간 뒤 다시 수평으로 1.6㎞ 암석을 파쇄하면서 가스를 채취한다. / 사진:SK폴리머스
이처럼 미국 정부와 의회의 대대적인 지원에 힘입어 미국의 리쇼어링 기업 수는 2012년 104곳에서 2013년 210곳으로 급증했습니다. 특히 AT Kearney가 데이터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0년부터 누적 기업 수를 따져보면 2010~2012년 3년간 184곳이 증가했는데, 2013년 한 해 동안 지난 3년보다 더 많은 리쇼어링 기업이 생겨났습니다.

OECD에 따르면 이와 같은 전 방위적인 노력에 힘입어 미국의 제조업 생산지수는 2010년을 기준(100)으로 놓고 봤을 때 2017년 107.6으로 상승했습니다. 같은 기간 영국은 105.2 프랑스는 102.2, 일본이 102로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상승률입니다.

제조업 강화 정책은 트럼프 정부에서도 계속됐습니다. 이는 오바마 정부의 정책 중 트럼프 대통령이 계승한 가장 핵심적인 정책이기도 합니다. 대선 당시부터 트럼프의 주된 관심사는 ‘러스트벨트’를 복원하는 것이었죠.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의 국내 제조업을 살리고 일자리를 늘려 다시 강한 미국으로 만들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캠페인 기간 내내 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외쳤죠.

한동안 국내에선 자국의 제조업을 살리기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이 지지기반을 공고하게 하기 위한 선거 전략의 하나로만 인식됐습니다. 그러나 제조업 강화와 이를 통한 리쇼어링은 원래 오바마 행정부의 작품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블루칼라의 지지를 얻기 위한 트럼프의 선거 전략만이 아니었다는 이야기죠.

리쇼어링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 살리기 정책의 효과는 다양한 측면에서 입증됩니다. 미국 경제조사국(BEA) 자료(자회사의 자산과 매출이 2500만 달러 이상인 기업 대상)에 따르면 초국적기업의 자산이 해외의 경우 2009년 22조1578억 달러에서 2016년 27조4604억 달러로 5조3026억 달러(23.9%) 증가했습니다. 반면 국내에서는 같은 기간 27조6307억 달러에서 40조4069억 달러로 12조7762억 달러(46.2%) 늘었습니다. 국내 자산의 증가율이 해외 자산 증가율의 약 2배에 달할 만큼 높습니다.

리쇼어링은 그동안 우리가 경험해 왔던 세계화와는 정반대되는 ‘탈세계화(Deglobalization)’의 대표적 현상입니다. 현재는 미국과 일부 선진국에서만 한정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지만,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개도국의 임금은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으며, 기술혁신으로 인해 생산비용 전체에서 인건비 비중이 감소하면서 상대적으로 높았던 선진국의 임금 부담은 오히려 줄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유주의의 황혼

“기술발전으로 인간 노동의 종말이 오고 있다”는 제러미 리프킨의 지적대로면 미래에는 저임금이 기업 투자 행동의 절대적 변수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울러 기술집약적 사업의 부가가치가 계속 커질수록 전문 기술인력이 밀집해 있는 선진국이 좋은 투자처로 꼽힙니다. IT 인재가 몰려 있는 실리콘밸리에 혁신적 기업이 많이 있는 것과 같은 논리죠.

리쇼어링이 심화된 미래에는 기술이 발달한 선진국으로 기업의 생산설비가 집중되고, 후진국은 적은 투자와 낮은 기술력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생겨날 것입니다. 이는 국가 간 발전 격차를 더욱 키우고 새로운 형태의 세계체제가 탄생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글로벌화로 평평해지고 있던 세계가 다시 기울기 시작한 것이죠.

이런 상황이 한국에는 큰 위기입니다. 리쇼어링에 적극적인 나라들은 대부분 기술력이 높고 내수시장도 커 무역의존도가 한국처럼 높지 않습니다. 또 미국의 셰일가스처럼 부존자원도 풍부해 에너지와 연료 문제에서도 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상황은 다릅니다. 국내에서도 2013년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국내로 돌아오는 기업의 세금을 인하하고, 설비 투자를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그 성과는 미미했죠. 정부의 정책 의지가 미국만큼 크지 못했고, 자원과 인건비 등 경제적 메리트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GM처럼 국내 공장을 철수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산업 전반에 큰 타격을 입었죠.

최근의 미·중 무역전쟁과 한·일 갈등은 지난 30년간 세계화가 걸어왔던 자유무역의 길과는 정반대입니다. 정치·경제적 패권을 놓고 벌어지는 경제전쟁에서 각국의 정부는 더욱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고 심지어 왜곡하려는 행태도 보입니다.

이 가운데 자유무역의 수호자처럼 행동해왔던 미국은 더는 그 역할에 흥미를 못 느끼고 있습니다. 미국은 무역전쟁에 앞서 일찌감치 정부정책과 입법, 보조금 등을 통해 산업을 유치·보호하며 오랫동안 ‘신자유주의’에서 ‘신중상주의’로 패러다임을 전환해 왔습니다.

이렇게 급변하는 국제 정치·경제 시스템 속에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지금 우리가 벌이고 있는 한·일 경제 전쟁이 미래에 미칠 파급력은 어디까지일까요. 변화하는 세계 질서 안에서 우리의 전략과 목표를 분명히 세우지 않는다면 다가올 미래는 매우 어둡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현재 미국 등을 중심으로 심화하고 있는 리쇼어링은 우리가 더욱 진지하고 깊이 있게 살펴봐야 할 중요한 이슈입니다.

※ 윤석만 기자/중앙일보 이노베이션랩 - 국회·청와대·교육부 등 다양한 출입처를 거쳤다. 2012년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고려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경희대에서 미래사회를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과학·기술·산업만이 아닌 인간과 문화, 의식과 제도의 측면에서 조망하며 미래인문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휴마트 씽킹] [리라이트] [인간혁명의 시대] [미래인문학] 등이 있다.

201910호 (2019.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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