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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쟁점] 악재에 대처하는 민주당의 석연찮은 행보 

사과할 일 아니라는 슈퍼 여당의 자존심? 

총선 전 일어난 오거돈 부산시장 성추행 사건 사전 인지 의혹
양정숙 당선인 논란에 선거 전엔 눈치 보다 끝나자 강공 돌아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4월 23일 오전 자진 사퇴 기자회견을 한 뒤 자리를 뜨고 있다. 오 전 시장은 총선 전 여성 공무원을 성추행해 불명예 퇴진했다. / 사진:연합뉴스
2019년 10월 김세의 전 MBC 기자와 강용석 변호사가 운영하는 보수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는 오거돈 당시 부산시장이 여성 공무원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의혹을 제기할 때만 해도 루머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의심을 뒷받침할 근거도 부족했다. 오 시장은 “소도 웃을 가짜뉴스”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가세연 측에 5억원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제기했다. 의혹은 그렇게 수면 아래로 묻혔다.

그러다 4월 23일 오전 오 시장이 자진 사퇴를 알리는 긴급 기자회견을 연다고 했다. 그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이전부터 있었기에 건강 악화 때문이란 추측이 돌았다. 하지만 기자회견에서 오 시장의 입으로 나온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한 사람에게 5분 정도 짧은 면담 과정에서 불편한 신체 접촉을 했습니다. 강제추행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경중을 떠나 어떤 행동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총선 승리의 축배를 미처 내려놓기도 전이었다. 서울, 경기와 함께 빅3 지자체장으로 꼽히는 부산시장이 성범죄에 해당하는 일로 중도하차한다는 건 그 파장이 절대 가볍지 않은 일이다. 민주당은 2018년 성폭력 ‘미투(me too)’로 중도사퇴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악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은 오 전 시장을 서둘러 제명 처리하고 당 퇴출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성추행이 일어난 날은 4월 7일이었다. 이날 오 전 시장은 자신의 집무실로 여성 공무원을 불러 성추행했다. 이튿날 피해자는 부산 성폭력상담센터를 찾아가 피해 사실을 털어놨다고 한다. 이어 피해자는 오 전 시장에게 공개사과와 자진 사퇴를 약속받았다. 두 사람의 합의는 법무법인 ‘부산’을 통해 공증도 받았다. 법무법인 부산은 문재인 대통령이 소속됐던 곳이다.

성추행이 발생한 날과 자진 사퇴를 발표한 날 사이, 정확히 중간 지점에 21대 총선(4월 15일)이 끼어 있다. 청와대와 여권은 사고 사실을 몰랐을까?

사전 인지를 의심하는 쪽에선 합의를 공증한 법무법인 부산과 여권의 남다른 관계를 주목한다. 법무법인 부산은 1995년 당시 변호사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설립했다. 문 대통령도 한때 이곳의 대표 변호사를 지냈다. 지금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정재성 변호사가 대표로 있다. 정 변호사는 2018년 지방선거 때 오 전 시장 캠프에서 인재영입위원장으로 활동했다. 현 정부에서 법제처장으로 발탁했던 김외숙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도 이 로펌 출신이다.

오거돈 성추행 파문이 선거 전 불거졌다면


▎곽상도 미래통합당 의원이 5월 6일 오거돈 전 부산시장 사건 은폐 의혹 등을 수사해 달라는 고발장을 접수하기 위해 대검찰청에 들어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런 인연 때문에 청와대와 여권이 총선 전에 이 사실을 알았을 거란 의심이 나온다. 피해자로부터 피해 사실을 접수하고 법무법인 부산을 통한 공증을 안내한 곳은 부산 성폭력상담소다. 이곳은 김외숙 인사수석과 관련이 있다. 김 수석은 적어도 2017년 법제처장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부산 성폭력상담소 자문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오 전 시장의 정책보좌관으로 있다가 이번에 동반 사퇴한 장형철 부산시 정책수석보좌관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실 행정관으로 일했던 인사다. 그는 피해자 합의와 공증 등 사건을 비밀리에 수습한 핵심 멤버 중 하나다.

법조계에선 법무법인 부산에서 성추행 사건을 청와대나 여권에 흘렸을 가능성은 작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서초동에서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는 한 변호사는 “공증인법상 공증을 진행하는 변호사는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지 못한다. 변호사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기본 원칙”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또 다른 중견 변호사도 “다른 경로라면 몰라도 로펌에서 의뢰받은 정보를 정치적으로 유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고 했다.

만약 이 사건이 총선 전에 불거졌다면 적어도 부산이나 영남 지역에서만큼은 판도가 달랐을 거라는 게 정치권 중론이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은 부산에서 3석을 가져갔다. 모두 2% 이내 초접전이었다. 부산 사하갑 최인호 당선인은 0.87%p를 앞섰고, 남을 박재호 당선인은 1.7%p, 북강서갑 전재수 당선인은 2%p로 신승했다. 그 밖의 전국 선거에서도 접전지의 결과가 사뭇 달랐을 수 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사건의 본질에 관해 “권력을 이용한 성추행 사건의 폭로마저도 여당의 선거일정 편의에 맞춰 조정됐다는 사실”이라며 “사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우선권이 여성의 인권 보호라는 공동체적 가치가 아닌 집권당의 총선 승리라는 당파적 이익에 주어졌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피해자의 인권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여성단체마저 이런 황당한 처리방식에 동의했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만든다”고 했다.

이준석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은 “사고가 터졌을 때 바로 이것을 당과 관련된 사람들과 전혀 상의를 안 했을까. 그건 개연성이 없다”고 했다. 미래통합당의 한 당선인은 “백번 양보해 청와대가 나서지 않았다 하더라도 선거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을 오 전 시장과 그 측근 몇 명이 피해자를 설득해 합의했다는 건 모든 리스크를 오 전 시장 측이 다 떠안았다는 건데 너무 순진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악재는 꼬리를 문다고 했던가. 그런데 공교롭게도 꼬리를 물고 찾아온 시기와 논란이 커진 시기가 총선을 중심으로 포진해 있다. 선거 전에 터졌으면 돌이킬 수 없는 악재의 연속이었겠지만, 총선 이후에 이슈화가 된 탓에 그나마 더 큰 화를 면했다. 오거돈에 이어진 ‘양정숙 쇼크’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 황당하다. 민주당과 양 당선인은 서로를 고발, 맞고소하면서 진흙탕 싸움을 이어가는 중이다.

양정숙 당선인은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 후보로 등록해 이번 총선에서 당선했다. 양 당선인은 2016년 20대 총선에서 민주당 비례 19번을 받았지만, 당선하지 못했다. 이후 민주당 법률위원회 부위원장과 민주당 추천 몫 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장 등을 맡아 재도전을 위한 경력을 쌓았다.

양 당선인의 도덕성 문제는 총선 직전 KBS의 탐사 보도로 처음 제기됐다. 언론에 보도된 민주당 선거대책본부 조사팀 내부 문건에 따르면 양 당선인은 4년 만에 재산을 44억원이나 늘린 것으로 확인됐다. 동생의 이름을 빌려 서울 송파구 송파동 상가 건물과 대치동 아파트를 차명 보유하고 있다는 의혹도 나왔다. 또 양 당선인의 어머니가 지분 절반을 보유한 잠실주공아파트도 양 당선인이 실소유자라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꼬리 문 악재에 판이한 민주당 태도


▎양정숙 더불어시민당 당선인은 총선 전부터 부동산 명의신탁 등 여러 도덕성 시비에 휘말렸지만, 민주당과 시민당은 선거가 끝난 뒤 양 당선인을 제명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 사진:연합뉴스
민주당은 총선 전 자체 진상조사와 함께 후보직 사퇴를 권고했지만, 양 당선인은 이를 거부했다. 총선을 나흘 앞둔 4월 11일이었다. 이후 총선 전까지 추가 조치는 나오지 않았다. 양 당선인이 속한 더불어시민당도 손 놓고 있긴 마찬가지였다. 선거는 치러졌고, 5번을 배정받은 양 당선인은 무난히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오 전 시장 사건과 양 당선인 의혹의 차이는 민주당이 알고 있었는지에 있다. 민주당은 오 전 시장 사건을 전혀 몰랐다고 극구 부인한다. 반면 양 당선인 의혹은 선거 전에 상세히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총선 전후 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의 급변한 태도는 문제를 일부러 축소하려 했거나, 조치를 늦추려 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민주당 조사팀이 총선 전 인지한 양 당선인에 관한 의혹은 부동산 명의신탁과 미투 피고인 무료 변론, 정수장학회 졸업생 모임 활동 등이다. 조사팀은 ‘양 후보가 적극적으로 주도해 탈세를 위한 명의신탁이 이뤄진 점은 중대하고 심각한 문제’라고 보고서에서 밝혔다. 도덕적 문제를 떠나 범죄행위에 이른다는 게 조사팀 판단이었다. 게다가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할 정도로 부동산 관련 의혹은 여권에서 민감한 아킬레스건에 속한다.

미투 가해자에 대한 무료 변론 역시 비난의 여지가 크고 여성 유권자의 이탈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게임업체 넥슨 대표에게 회사 주식을 무상으로 받은 뒤 되팔아 120억원대 차익을 얻은 혐의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된 진경준 전 검사장의 변론을 맡은 점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과 관계있는 정수장학회 졸업생 모임의 임원을 맡고도 몰랐다고 거짓으로 진술한 점 등을 조사팀은 문제로 지적했다.

이처럼 문제의 심각성을 이미 파악하고도 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이 아무 조처를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더불어시민당이 처음 사퇴를 권고한 날짜는 4월 11일이다. 두 번째 사퇴 권고는 총선 뒤인 4월 26일에 했다고 한다. 하지만 4월 27일 양 당선인에 관한 의혹 보도가 나가는 것을 의식해 어쩔 수 없이 하루 전에 서둘러 사퇴를 권고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

언론의 추가 의혹 제기와 사퇴 권고, 양 당선인의 거부 등 4월 26~27일을 기점으로 논란이 확산했다. 그러자 이때부터 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의 태도가 돌변하기 시작한다. 시민당은 4월 28일 윤리위원회를 열어 양 당선인을 제명하기로 결정했다. 양 당선인이 재심을 신청했지만, 5월 7일 제명 방침을 최종 의결했다.

민주당과 시민당은 또 공동으로 양 당선인을 5월 6일 검찰에 고발했다. 공직선거법, 부동산실명법 위반 및 업무방해 혐의다. 총선 전 한 차례 사퇴 권고에 그쳤던 소극적인 태도에 비하면 전광석화와 같은 추진력을 발휘한 셈이다. 양 당선인에 대한 제명 결정도 별 효력은 없다. 양 당선인 스스로 의원직을 내놓지 않는 이상 그를 국회에서 내보낼 방법은 마땅치 않다.

‘공천 실패’ 사과가 구습이라는 ‘더시민’


▎우희종 더불어시민당 대표(왼쪽)는 양정숙 당선인에 대한 조치 과정에 대해 “사과할 게 아니라 오히려 칭찬을 들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양 당선인은 당의 태도 변화에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5월 초 시민당 윤리위 참석 후 기자들을 만나 “선거 전에 다 소명돼서 당선까지 됐는데, 그때는 전부 다 입증됐다고 하고 당선 이후에는 ‘그땐 맞았지만, 지금은 틀리다’고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민당이 선거 전에는 문제 삼지 않을 것처럼 했다가 선거가 끝나자 돌변했다는 지적이다. 결국 민주당과 시민당의 총선 전후 태도 변화가 양정숙 논란을 키운 셈이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권 인사들의 뻔뻔함의 일상화는 ‘조국 효과’”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자당이 추천한 당선인을 더불어시민당이 스스로 제명, 고발하면서도 당대표는 오히려 잘했다고 큰소리치고, 부동산 논란의 양정숙 당선인은 잘못한 게 없다고 맞고소했다”며 이같이 촌평했다.

시민당의 태도는 당당하다. 우희종 시민당 대표는 지난 5월 초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양 당선인 논란에 대해 “이번 건에 있어서 더시민은 오히려 칭찬을 들어도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우 대표는 “인지한 때부터 확실한 근거를 확인, 확보하기 위해 당의 조사위원들은 절차에 따라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민주당 측 후보라고 포장이나 축소 내지 회피하려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총선 전에는 확실한 근거를 잡지 못해 강하게 조치하지 못하다가 총선 후에 근거를 확보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다만, 그 근거를 실제 확보했는지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양 당선인 의혹에 대해 공당의 대표로서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가부장적 사고방식’이라고 되레 힐난했다. 그가 쓴 글의 일부다.

‘과거 우리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싸우면 잘잘못을 떠나 무조건 집 어른이 사과하는 모습이 있었다. 좋은 것이 좋다는 식의 미풍양속일 수는 있으나, 잘잘못 따지지 않고 웃어른이 사과하는 모습에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작동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상대방의 지적이 엉망이더라도 웃으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게 과거로부터 기본이었다. 그건 상대의 격한 감정에 일단 공감한 후 차분히 이야기를 들으려는 노력이 아니라, 상대방 주장은 이미 들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짓는 영혼 없는 웃음에 불과하다.’

반면 양 당선인을 추천한 민주당이 “당시 검증이 미흡했다”며 사과한 것을 두고 우 대표의 태도는 또 달라졌다. “더시민 조사에 협조하고 책임을 전가하기보다는 사과하고 입장을 분명히 해준 민주당에 감사드린다.” 자신이 요구받은 사과는 사라져야 할 가부장적 사고, 영혼 없는 웃음으로 치부한 것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그의 발언에 대해 정치권에선 ‘슈퍼 여당’의 자만심이 깔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런 태도로 새로 개원하는 국회에서 협치가 가능하겠느냐는 우려다. 유상진 정의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문제의 핵심은 공천 권한을 가진 당과 그 책임자들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잘못된 공천을 했는데도 칭찬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대 여당의 오만함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006호 (2020.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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