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커버 스토리 | 직격대담] 집권전략 설계자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국민들, 민주당이 또 정권 잡을까 불안해해” 

■ “통합당,약자와 동행하는 정당 되면 국민 인식이 달라진다”
■ “자유민주체제 지키되, 시대 변화 맞게 ‘실용 보수’로 인식 전환 필요”
■ “레임덕은 국민으로부터 오는 것… 다수의 횡포는 부정적 결과로 끝나”
■ “당의 문제 뭔지 잘 알아… 통합당의 대선 후보상은 ‘진취적 인물’”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6월 14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총선 참패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미래통합당의 모습은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놓인 항우의 처지 그대로다. 새로운 국회 원 구성 협상장의 거대 여당 앞에 선 제 1야당의 면모는 무기력하기만 하다. 차기 대통령 선거를 책임져줄 주자도 마땅치 않다. 보수 야당을 보는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게 식어 있다.

이런 미래통합당의 운명을 책임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뜻밖에도 자신감에 충만하다. 그는 늘 “통합당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처방을 갖고 있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다. 그에게는 정말 계획이 있는 걸까?

그의 구상은 산발적이고 파편으로 흩어져 있어 전반적인 모양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통합당 의원들조차 선뜻 김 위원장을 전적으로 따르기를 주저하는 것도 그런 데서 연유한다. 김 위원장의 복안을 이해하려면 흩어진 생각의 조각들을 한데 모아야 한다. 월간중앙 지상(紙上)에 김 위원장을 초대한 이유다. 대담은 6월 14일 오후 광화문 근처에 있는 김 위원장의 개인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김 위원장의 사무실에 들어서면 탁자 위에 놓인 기다란 투명 아크릴 격벽이 눈길을 끈다. 김 위원장과 내방객 사이를 머리 높이까지 갈라놓는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이후 설치된 것이라 한다. ‘생활 속 거리두기’의 일환인 셈이다. 격벽은 김 위원장을 찾아오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암시한다. 개인 사무실 방문객은 여와 야, 보수와 진보 구분 없이 다양한 듯했다. 월간중앙 대담 직전에도 꽤 알려진 여권 인사가 찾아와 정치권 뉴스 등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돌아가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나는 내가 정한 방향대로 간다. 내가 최선을 다하면 그게 통합당에 긍정적인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고 확언했다.

“변하지 않는 보수는 생명력 없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개인 사무실 책상 위에 투명 격벽이 설치돼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생활 속 거리두기’ 일환이다. / 사진:오종택
만나러 오기 전, 김 위원장 앞에선 ‘보수’란 표현을 아예 입에 올리지도 말라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보수란 표현을 잘 안 쓴다. 통합당이 보수정당이란 건 전 국민이 다 안다. 그런데 거기 대고 보수를 더 강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혁신에 관한 위원장의 의지가 결연하다는 건 알겠다. 김 위원장의 노선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헌법에 나와 있는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면 되는 거지 그 이상 특별한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나? 보수가 목표가 될 순 없지 않은가. 국민이 생각하기에 보수는 기득권을 보호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당이 좀 더 실용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보수는 급진적인 변화를 안 하는 것이지, 변화 자체를 안 하는 게 아니다. 시대에 따라 변해야 보수도 생존한다. 시대가 변하는데 변하지 않는 보수는 생명력이 없다.”

그래서 다른 용어로 ‘진취’를 내세운 건가?

“그렇다. 진취, 즉 ‘실용’으로 나가자는 거다. 우리나라 빈곤층이 미국 다음으로 높다(2017년 기준 한국의 빈곤율은 17.4%로 OECD 35개 국가 중 미국 다음으로 높았다). 그게 우리 현실이다. 우리가 국민 정당으로서 존재 가치를 가지려면 약자와 동행하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저 사람들은 기득권만 보호하는 정당’이란 이미지로는 선거에서 판판이 질 수밖에 없다.”

당에 오래 몸담은 쪽에서는 당의 정체성을 흐린다는 불만도 있다.

“통합당의 정체성이 뭔가? 보수가 정체성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게 통합당의 정체성이다.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자는데, 그러면 좌파라고 생각하는 엉뚱한 사고방식으로는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할 수 없다.”

비대위원장직을 왜 수락했나?

“처음 요청이 온 건 4월 18일이었을 거다. 총선 끝나고 심재철 당시 원내대표가 보자면서 당을 도와달라고 했다. 그땐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선대위원장만 하고서 투표 끝나면 내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당이 이렇게 큰 참패를 했으니 이래서야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제대로 갈 수 있을지 걱정이 좀 됐다. 이제 좀 쉬어야 할 나이인데 또 해야 하나 망설이는데 거리에서나 커피숍에서 모르는 시민들이 ‘통합당을 도와주면 안 되겠느냐’고 하더라. 통합당이 얼마나 걱정됐으면 그런 말을 할까 싶었다. 그래서 심 원내대표한테 돕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자강론이니 어쩌니 하더라. 그래, 자기들 스스로 해결하면 그게 제일 좋은 거니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러니 또 대다수가 비대위로 가야 한다고 하고. 나는 적당히 가서 과도기적으로 전당대회나 준비하는 그런 비대위는 안 한다고 했다. 그런 와중에 주호영 원내대표가 와서 심 전 원내대표랑 똑같은 얘기를 하더라. 혹자는 내가 무슨 감투를 쓰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얘길 하는데, 난 그게 내게 주는 제일 불쾌한 모욕이라고 생각한다.”

자리에 연연하거나 욕심이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인가?

“당연하다. 이 사람들은 자기들 지지기반을 확장하려고 날 찾아온 거 아닌가. 내가 보수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느니 그러는데,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나? 난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체제를 확고하게 보전하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좌냐 우냐, 이건 관심 없다.”

과거에도 인명진, 김병준 등 비대위 체제가 여러 번 있었다. 김종인 비대위는 과거와 다르리라 확신하나?

“난 나름대로 이 당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처방을 갖고 있다. 그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음 대선에서 국민의 지지를 끌어내기 어렵다. 보수대통합을 말하는데, 통합한 결과가 지난 총선에서 나타나지 않았나? 그런데도 그걸 끌고 간다고 지지기반이 확장될까? 난 총선 이후 지지기반 확장을 도우려고 온 거다. 그것 외에 다른 얘기는 나한테 할 필요 없다.”

특정 보수진영에선 김 위원장이 제시하는 방법론을 못마땅해하는 것 같다.

“그건 자기들 생각이다. 개인적인 자유고 글 쓰는 사람의 자유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동요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정한 방향대로 간다. 내가 최선을 다하면 그게 통합당에 긍정적인 결과로 나타날 거다.”

최근 원희룡 제주지사는 ‘진보의 아류’ ‘용병’이란 말을 써가며 김 위원장을 비판했다.

“그날은 흥분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원래 그런 사람 아니다. 내가 그를 잘 안다. 그 모임이 어떤 건지 성격도 알고. 거기서 흥분해서 말을 뱉다 보니 그랬지만, 그런 소릴 할 사람이 아니다.”

원 지사가 후에 따로 그 문제에 대해 연락한 적이 있었나?

“그 이후 여러 번 전화을 해왔다. 2007년 대선 경선에 출마했을 때부터 그를 잘 안다. 그때 옆에서 조언도 해줬다. 제주 갈 때마다 만나서 얘기도 하고. 그런 건 신경도 안 쓴다.”

“영남 유권자들 정권 되찾겠다는 열망 강해”


▎4·15 총선 투표 전날인 14일 당시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았던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황교안 후보와 거리 유세를 펼치고 있다. / 사진:오종택
원 지사 얘기가 나왔으니 더 묻겠다. 원 지사는 현역 자치단체장 중 대선 주자로 분류된다. 그의 성향이 김 위원장과 같이 갈 수 있다고 보나?

“2007년 대선 경선에도 나왔으니 대권 후보로는 빠질 게 없는 사람이다.”

당이 지향할 미래 가치와 부합하는 것 같나?

“상당히 진취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김 위원장이 앞서 미래통합당의 지향점을 ‘보수’가 아닌 ‘진취’라고 강조했던 점을 상기해보면 원 지사를 ‘진취적인 사람’으로 평가한 대목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다만 김 위원장은 원 지사를 비롯해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들에 대해 평가하기를 꺼렸다.

최근에 원 지사가 영남권 정서를 업기 위해 일부러 우클릭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그 사람이 영남권 표 얻으려 그런 소리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남권 유권자들은 정권을 되찾아와야겠다는 열망이 어디보다 강할 거다. 그동안 영남권이 권력을 장악해오지 않았나. 권력에 대한 향수가 없을까? 제일 많을 거다. 그러니 다음 대선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절실함도 갖고 있을 텐데, 보수를 강조 안 한다고 그 사람(원희룡)을…(내칠까). 그렇진 않다고 본다.”

영남권 의원들은 김 위원장의 노선에 저항하는 경향이 엿보인다.

“한두 명이 그런 성향 보이는 것 같긴 한데 아직까지는 뭐, 내가 간 지 이제 보름 됐다. 앞으로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당이 정상적으로 가는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될 거다. 그런 건 신경도 안 쓴다.”

지난 총선에서 통합당은 수도권에서도 참패했다. 수도권 유권자를 끌어안을 수 있는 인물이 나온다면 영남권에서 대선 후보로 밀어줄까?

“수도권의 판단이 가장 중립적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 자유당 때인 1958년 4대 총선에서 서울시민이 자유당 정권에 철퇴를 내린 적 있다. 그 여파가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어졌고, 자유당이 무너졌다.”

“후속 조치는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따라와줘야”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설계했다. 2012년 10월 중소기업 정책간담회에서 박근혜 당시 후보가 김 위원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다가오는 대선이 미래통합당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날 기로”라고 강조했다. 그만큼 절박한 상황을 인식해야 한다는 당내 구성원들을 향한 주문이다. “지난 총선의 패배 원인을 면밀히 분석해 대선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총선 참패 백서’는 6월 1일 취임한 김 위원장이 당 사무처에 내린 1호 지시이기도 하다.

이론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오늘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그 문제를 야기한 사고방식으로는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미래통합당에 대입해보자면 현재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면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위원장에게는 해답이 있나?

“미래통합당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한데 이 사람들이 사과문을 낸 적도 없고, 반성의 모습을 보인 적도 없다. 그저 비박, 친박 옥신각신 싸우다 이번 선거에서 대패했다. 선거 직전 보수대통합만 하면 과반 의석은 차지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결과가 어땠나? 이렇게 죽 쑨 건 처음이잖은가. 소위 말해 수도권에서 철퇴 맞은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고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보수대통합론에 대해 수도권 유권자들이 왜 그런 판단을 내렸을까?”

수도권 유권자들 기대와 통합당 인식의 간극이 크다는 건가?

“이 당에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고 도와달라니까 왔지만,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올 수는 없는 거 아닌가. 당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지금 그걸 고치려고 첫 발걸음을 뗀 거다. 이런 소리 저런 소리 하는 것에 대해 신경 쓸 거 없다고 생각한다.”

김 위원장은 현 상황을 미래통합당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전환할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복안은 이렇다.

“통합당은 야당이다. 우리가 국민에게 어필할 수 있는 건 ‘통합당이 변했구나’라는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우리에게 정권을 맡겨도 되겠다는 인상을 심어줘야 한다. 이걸 수행할 수 있는 후보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 후보를 만들어낼 역량을 기르는 게 우선이고.”

위원장의 말이 큰스님이 던지는 화두같이 들린다. 당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한데.

“비대위에서 논의해 여러 가지 안건을 내면 후속조치는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따라와야 한다. 그렇게 움직이지 않으면 당이 유기적인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당내 소통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은 어떻게 보나.

“논의를 안 거쳤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개별 의원들이 연구하고 생각해서 각자 의원입법도 할 수 있고 그런 것 아닌가. 비대위가 물고기를 잡아서 회를 뜨고 초밥까지 만들어서 입에 넣어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우리는 재료를 주는 거고 나머진 스스로 공부해서 각자 알아서 해야지.”

좋은 재료를 주는데도 의원들이 따르지 않고 버티면 어떻게 할 건가.

“그럼 할 수 없는 거지. 혼연일체가 되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지, 자꾸 삐딱해지면 못한다. 내가 총선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할 때 정부와 예산을 조정해 100조원 정도를 마련해서 가장 어려운 계층,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들 생계대책을 세워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통합당 사람들이 포퓰리즘이니 뭐니 자꾸 딴소릴 하더라. 이러면 저 당은 확고한 방향이 있는지 의심받게 된다. 유권자들 보기엔 자기들끼리도 의견이 잘 안 통하는구나 생각하지. 내가 하는 말이 당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도 심사숙고해야 당이 발전할 수 있다. 각자 자기 노출하려고 말하기 시작하면 방법이 없다.”

당내 공론의 장을 활성화하자는 요구도 있다.

“공론장은 만들어져 있다. 의견이 있으면 사람들이 내게 찾아와서 물어볼 수도 있고 토의할 수도 있다. 내가 한 사람 한 사람 쫓아다니면서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김 위원장은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때 소신껏 하다가 안 되면 손을 터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그때에는 자진해서 간 것도 아니다. 본인(박 전 대통령)이 여러 번 얘기하고 약속도 했으니 간 거지. 그런데 약속을 안 지키면 방법이 없지 않나? 그러니 내가 그런 태도를 취한 거지. 결국 박 전 대통령이 저렇게 된 것도 국민에게 한 약속을 안 지켜서 그런 것 아닌가.”

“대선 치를 여건 만들면 내 임무 끝”


▎2016년 1월 27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김종인 위원장(오른쪽)과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표.
총괄선대위원장을 하면서 막말파동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한 모습이 인상 깊었다.

“정당은 솔직해야 하지만, 선거 때에는 말을 삼갈 줄도 알아야 한다. 내 말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후보)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도 생각해야 한다. 그런 걸 모르고 자기 위주로 얘길 하니 서로가 불편한 상황이 되는 거다.”

김 위원장은 당 노선 재정립을 통해 통합당을 새로 정비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큰 그림을 그리는 것 같다.

“그것도 안 할 바에 내가 이 짓을 할 필요가 있나. 대선을 치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내 임무는 끝난다.”

구체적으로 어떤 구상인가?

“그건 지금 얘기할 수 없다. 앞으로 진행 과정을 보면 알게 될 거다.”

김 위원장은 기본소득과 한국 교육 재설계를 언급했다.

“경제를 전문으로 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미래에 관해 가장 걱정스러운 건 출생자 수가 줄어간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출생자가 세계에서 가장 적다(지난해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역대 최저인 0.92명으로, OECD 국가 중 최하위였다). 젊은이들이 교육을 제대로 시키기 어려우니 차라리 애 낳기를 포기한다. 이런 환경을 바꿔주는 게 정치의 역할이다. 그런데 다들 무관심하다. 코로나 이후 전개될 여러 경제·사회적 변화를 우리가 선도적으로 뚫고 나가겠다는 복안을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기본소득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어떤 뜻에서 화두를 꺼낸 건가?

“기본소득을 당장 하자는 게 아니다. 마치 당장에라도 할 것처럼 언론이 보도하니 그걸 자제시키려고 한 얘기다. 계속 연구해서 어느 시점에 성숙하고 여건이 합당하다면 그때 결심하자는 얘기다.”

김 위원장이 생각하는 기본소득이 여권에서 주장하는 것과 어떻게 같고 다른지 좀 더 설명해달라.

“그건 앞으로 시간이 가면 자연히 구분될 테니 염려 안 해도 된다.”

전 국민 고용보험제는 비판적이더라.

“그건 보험의 원리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다. 보험의 원칙은 보험화할 수 있는 사람을 가입시키는 거다. 고용되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고용보험에 집어넣나? 아무리 정치적이라지만 논리상 맞지 않는 일은 정치적으로도 할 수 없다.”

6월 3일 초선의원 강연에서 ‘실질적 자유를 어떻게 구현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는데.

“자유의 여러 형태 중 형식적 자유는 의미가 없다. 헌법에 보장된 언론·종교의 자유와 같은 형식적인 것 그 자체는 국민이 사는 데 큰 문제가 없다. 결국 물질적 자유가 중요하다. 이걸 향상시켜주는 게 정치인의 과제다. 배고픈 사람이 뭘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김 위원장의 설명은 정당의 존재 이유로 이어졌다.

“정당은 표를 먹고 산다. 제도적으로는 정권을 놓고 경쟁하는 정치집단이다. 그럼 뭘 해야 하는지 금방 알 수 있지 않은가? 어떻게 하면 표를 제일 많이 얻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국민 전체로 볼 때 고소득자와 저소득자 중 어느 쪽이 표가 많겠나? (당연히 저소득자가 많다.) 그러니 선거 때마다 재분배하자는 구호들이 나오는 거다. 이런 현실을 부정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주는 걸 싫어하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긴급재난지원금을 99%가 신청했다지 않는가. 통합당은 그게 현실이란 걸 알아야 한다.”

그러나 포퓰리즘과의 경계선이 모호하다.

“퍼주는 한계를 지킬 줄 알면 된다. 과거 무상급식 얘기가 나올 때 어땠나? 지금 우리가 빈곤한 나라는 아니다. 그런 나라에서 초등학생들 밥 먹이자는 것조차 반대한다면, 그 정당을 국민이 지지하겠나?”

우리 경제가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65세 이상 기초연금 공약을 내가 만들었다. 기초연금 줬다고 대한민국 경제가 갑자기 이상해졌나? 모든 걸 시장에 맡기면 다 된다고들 하는데 시장이 해결 못 하는 것도 있다. 시장이 해결 못 하면 사회 불안으로 나타나는데 정치가 그걸 방치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옛날에 레이건 같은 사람도 신자유주의 한다면서 작은 정부 추구하고 지출을 줄였지만 끝내 복지비는 줄이지 못했다. 그게 정치 현실이다. 이번에 솔직히 민주당이 총선에서 큰 덕을 본 것도 코로나 핑계로 정부가 합법적으로 돈을 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게 적지 않게 작용했다고 본다.”

“유승민, 경제 진보라는데 내용이 중요하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미래통합당을 ‘약자와 동행하는 정당’으로 체질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 사진:연합뉴스
당내에서 보수적인 기존 체제에 익숙해 있는 현역 의원이나 지지층을 설득할 수 있을까.

“앞으로 소통할 수 있는 문제니까 걱정 안 한다.”

김 위원장은 통합당의 대선 가도를 닦는 중책을 맡고 있다. 이른바 킹메이커로도 불린다.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를 발굴하고, 그에 맞게 당의 체질을 바꾸는 게 그의 역할이다. 자연히 대선 후보로 마음에 점찍어둔 인물이 있을까. 혹은 자신만의 인물론으로 궁금증이 모였다.

당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그릇이 큰 대선 후보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대선 후보들 다 집합시켜보면 그중에 가장 잘난 사람이 나올 거다.”

지금은 마땅한 사람이 없나?

“앞으로 생길 수밖에 없지 않겠나. 지금은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다. 다들 냄새만 풍기고 있는 거지.”

잠룡은 대체로 드러나 있지 않은가.

“모르겠다. 그건 관심 없다. 각자 나타나면 경쟁하는 과정이 생기겠지.”

유승민 전 의원은 ‘경제는 진보적, 안보는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김 위원장의 프레임과 결이 비슷해 보이는데 어떤가?

“그걸 모른다. 전반적인 걸 까놓으면 그때 봐야지. 경제가 진보라 해도 그 내용이 무엇인가가 중요하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만날 수 있다고도 했다.

“만나는 게 어렵겠나? 본인이 무슨 생각을 갖고 만나려는지 두고 봐야지. 내가 그 생각마저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니.”

지난 대선에서 이미 안 대표 마음을 다 읽지 않았나?

“그때도 뭐, 의견을 충분히 교환한 건 없었다.”

안 대표가 통합당과 행보를 같이할 가능성은 없을까?

“그건 두고 봐야지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다. 아직 얘기도 안 해봐서 본인이 원하는지도 알 수 없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어떤가?

“현직에 있는 사람을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건 그 사람한테 실례다. 그건 지금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보수 지지층은 윤 총장에 대한 기대를 가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윤 총장이 권력의지가 없는 게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소문으로만 얘기할 수 없다. 특히 현직에 있는 사람에 관해 얘기하는 건 실례다.”

“현직에 있는 윤석열 얘기하는 건 실례”


▎6월 1일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에 취임한 김종인 위원장이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해 남긴 방명록. / 사진:연합뉴스
여의도연구원(여연)의 연구 기능을 바로 세울 적임자는 누구로 보나?

“여연이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하도록 곧 정리할 거다. 여러 사람을 생각해보고 있지만 지금 구체적으로 얘기할 때는 아니다.”

국회 원 구성이 열흘 동안 진척이 없다.

“지난 30년 동안 지켜진 관행이란 게 있다. 그 관행을 거대 여당이 됐다고 해서 파괴하려는 건 상식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의회는 여야가 상존했을 때 역할이 있는 건데, 야당 없이 무슨 기능을 하겠나? 거대여당 됐다고 너무 힘을 과시하려 하지 말고 좀 절제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우리 의회 발전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법사위를 내주고 산자위(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받자는 주장도 통합당 안에서 나왔다.

“위원장 하고 싶은 사람이 그런 소리를 하는지는 모르겠다. 끝까지 관철하려고 해보고 차후에 도모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말부터 해버리면 협상이 제대로 안 된다. 원 구성에 관해선 주호영 원내대표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하니까 내가 별로 의견을 내진 않는다. 주 대표를 믿고 기다리고 있다.”

원 구성에 임하는 민주당에 어떤 충고를 하고 싶은가?

“지금의 거대여당은 유권자가 한 번 준 기회다. 다시는 이런 의회 구성이 안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한 번 있는 기회인데 나쁜 선례를 만들어놓으면 대한민국 의회 발전에 큰 장애가 될 수 있다. 그깟 법사위원장 준다고 해서 못 할 일이 뭐가 있나? 민주당이 절제력을 발휘해주길 바란다.”

민주당은 레임덕이 없을 거라고 자신만만해한다.

“없다고 하면 없어지나? 레임덕은 국민으로부터 오는 거지 자기들이 없다고 해서 없는 게 아니다. 지금 코로나 이후 경제 문제가 산적해 있다.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국회 정상화가 선결과제다. 설사 야당이 제 기능 못 한다고 해서 자기들 맘대로 추경안 통과시키고 그러면 그 결과에 대해 100% 책임질 자신이 있는지 묻고 싶다. 과거 역사를 봐도 다수의 횡포는 결국 다 부정적인 결과로 끝났다.”

북한의 대남 비난수위가 점점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미 관계에선 미묘한 난기류가 감지된다. 이수혁 주미 한국대사가 지난 6월 3일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화상 간담회에서 “한국이 이제 선택을 강요받는 국가가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국가라는 자부심을 갖는다”고 말해 설화를 자초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부쩍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강조하는 취지였다지만, 미·중 관계가 첨예한 갈등의 칼날 위에 서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불필요한 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 국무부는 즉각 “한국은 수십 년 전 권위주의를 버리고 민주주의를 받아들였을 때 이미 어느 편에 설지 선택했다”고 반박하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수혁 주미대사의 발언이 파문을 낳고 있다.

“주미대사 발언의 취지가 잘 이해가 안 된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추구하는 나라다. 미국은 우리와 체제도 같고 그동안 대한민국이 존재하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불가분의 관계였다. 갑자기 그런 말을 해서 왜 상대방을 불쾌하게 했는지 납득이 안 된다. 무슨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지….”

우리 정부 북한에 너무 믿음 줘

북한이 상당히 공격적이다. 원인이 뭐라고 보나?

“우리 관심사는 북한의 비핵화를 얼마나 빨리 하느냐다. 그런데 우린 비핵화시킬 능력이 없다. 우리가 얘기한다고 해서 저들이 비핵화를 당장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북한이 남한테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우리의 한계를 제대로 알고 대응해야 하는데 그걸 제대로 정리하지 못해 오늘의 사태가 난 거다.”

우리 정부의 전략적 미스라는 건가?

“우리가 북한에 바라는 것과 북한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그게 해소되지 않으면 관계를 풀 수 없다. 우리가 뭘 해주고 싶어도 유엔 결의 때문에 한계가 있다.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재개와 같은 건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은가. 북한은 ‘너희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구나’, 이렇게 판단하지 않겠나.”

코로나19 이후 한국 사회의 화두는 무엇일까?

“우리 경제, 사회의 틀이 바뀌게 돼 있다. 예를 들면 비대면 사회로 진입하는 거다. 경제는 플랫폼으로 넘어갈 테고, 거기서 발생하는 고용 문제나 종속된 사람들의 문제가 풀어야 할 현안이 될 거다.”

그런 문제에 관해 해법을 구상하고 있나?

“구상은 갖고 있다. 이제는 우리 시선이 미래를 향해야 한다. 과거 얘기만 하면 국민에게 닿지 않는다. 지금 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 과거사 청산, 적폐 청산 이런 건 전부 과거의 이야기들이잖나. 그러니 통합당은 미래의 정치·사회 제도에 초점을 맞춰서 어떻게 조화롭게 맞춰갈 것인가를 이야기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경제와 안보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통합당이 변해서 집권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 지금 (국민이) 불안해하는 건 민주당이 또 정권을 잡을까봐 그런 거다. 총선에서 (민주당은 불안하고 통합당은 마뜩치 않다는) 신호를 그렇게 보냈는데도 그걸 감지하지 못하고 옛날처럼 있으면 (집권은) 영원히 불가능해진다.”

냉정히 말해 다음 대선에서 야당이 이길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통합당을 변화시키는 데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거다. 통합당이 실용정당으로서 약자와 동행하면 된다. 빈곤율 제일 높은 나라에서 정치권이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이길 수 있겠나? 발상을 전환해 약자를 기본으로 두고 변화하면 국민의 인식이 달라질 거다.”

변화를 이끌자면 당내 설득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 국민은 기득권자를 보호하고 약자를 도외시하는 정당으로 통합당을 인식해왔다. 이런 인식을 그대로 두면 선거에서 절대 표를 못 얻는다. 지난번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떻게 이겼나? 새누리당이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경제민주화를 한다고 해서 새로운 뭔가를 하려나 보다 하는 기대감 속에 이긴 것 아닌가.”

오늘의 얘기를 통합당 잠룡들도 공감할까?

“그걸 이해 못 하면 대선 후보가 될 수 없다. 내가 얘기한 건 상식적으로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통합당은 그렇게 갈 수밖에 없을 거다.”

- 대담 박성현 월간중앙 편집장 / 정리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202007호 (2020.06.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