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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진단] 민주주의 위기를 경고하는 징후들 

文정부 위험한 질주 브레이크가 없다 

의회와 정부 장악한 민주당 스스로 민주주의 가치와 전통 훼손
견제와 균형 무너지고 독선과 말 바꾸기에 국민 피로감 커져


▎21대 국회에 견제와 균형의 전통은 사라지고 분열과 독선만 남았다. 10월 28일 국회 시정연설을 위해 본회의장에 들어서는 문재인 대통령을 맞이하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의원들은 극명하게 엇갈린 태도를 보였다. / 사진:오종택
"우리의 민주주의는 정말로 지금 우리가 마주한 이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까요?”

21대 국회 첫 정기국회에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의 질문이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한때 변화의 가장 큰 동력이었던 사람들이 어느새 시대의 도전자가 아닌 기득권자로 변해 말로만 변화를 이야기할 뿐 사실은 그 변화를 가로막고 있는 존재가 되어버린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장 의원은 지적한다.

나아가 그는 “모두가 평등하고 존엄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서라면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싸우겠다던 그 뜨거운 심장이 어째서 이렇게 차갑게 식어버린 것이냐”고 묻는다. 장 의원은 “민주화의 주인공들이 민주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잡을 때, 그 권력이 지금껏 우리 사회의 케케묵은 과제들을 깨끗이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에 우리가 마주한 도전들에 용감히 부딪혀갈 것이라고 기대했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희망을 거둬들인 모양이다.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핵심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심화와 그에 따른 ‘민주공화국의 배신’이다. 동시에 ‘견제와 균형 그리고 분권 정치’는 사라지고 남은 건 ‘독점 정치’다. 독점 정치는 ‘독선과 반(反)시장의 계몽적 시도와 정책’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문재인 대통령은 협치를 요청한다. 21대 국회 시정연설에서 대통령은 “국가적 위기 속에서 협치가 위기 극복의 원동력입니다. 지금 같은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서 협치는 더욱 절실합니다. 국민은 여야가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국난 극복을 위해서는 초당적 협력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민생과 개혁이라는 국민의 요구에 부응할 때 협치의 성과는 더욱 빛날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은 주요입법의 신속한 처리도 국회에 요청한다. “상법, 공정거래법, 금융그룹감독법 등 공정경제 3법, 경찰법과 국정원법 등 권력기관 개혁법안 그리고 공수처의 신속한 출범” 등이 대표적이다. 코로나 위기 관련 입법과 법정기한 내 예산처리도 시급하다고 했다.

文 정부에서 더 강해진 ‘제왕적 대통령제’


▎장혜영 정의당 의원(사진)은 9월 16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586세대 의원들을 향해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싸우겠다던 그 뜨거운 심장이 어째서 이렇게 차갑게 식어버린 것이냐”고 역설했다. / 사진:장진영
절대다수 의석을 보유한 민주당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그들이 원하는 어떤 법안도 ‘합법적으로’ 처리 가능하다. 불행하게도 정부여당의 입법과 정책 독주를 막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야당엔 없다. 야당의 장외투쟁을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시대착오적이다. 국민적 공감을 얻기 어렵다.

야당의 존재와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 협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제도로서의 대통령’으로 모두의 대통령일 때 협치는 출발할 수 있다. 만약 분열과 갈등의 정점에 대통령이 있다면 협치는 불가능하다. 견제와 균형 그리고 분권 정치가 아니라 청와대로의 권력 집중일 때 협치는 공허해진다. 집권당이 ‘청와대 여의도 출장소’ 역할에 그친다면 의회정치도 사라지게 된다.

독점 정치는 민주당의 21대 국회 상임위원장 독식부터 시작한다. 총선 직후 김태년 원내대표가 “표결로 상임위원장을 선출하는 방안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을 때만 해도 많은 사람은 이를 ‘야당 압박용’이라고 봤다. 그는 “의석수 비율에 따라 상임위원장을 배정하는 것이 관행처럼 돼 있지만, 국회 개원을 무기로 야당이 발목 잡기에 나선다면 끌려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국회 상임위원장은 국회법상 본회의 표결을 통해 선출한다. 때론 길고 지루했던 여야 협상에 따른 ‘정치적 합의’를 본회의 표결이라는 형식으로 처리한 거다. 1988년 13대 국회부터 상임위원장은 관례로 의석 비율에 따라 배분해왔다.

상임위원장 독식은 민주당의 자신감이자 조바심이다.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단독으로 과반을 넘겼고, ‘더불어 그룹’으로는 절대 과반에 육박한다. 민주당은 “현재 여야 의석은 단순 과반이 아닌 절대 과반”이라 “민주당이 상임위원장 전 석을 가지고 책임 있게 운영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리”라고 강변한다. 나아가 의석 비율에 따른 여야 협의를 통한 상임위원장 배분 때문에 “민주화 이후 국회가 발목 잡기와 동물국회, 식물국회가 됐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이런 인식은 1987년 이후 대한민국 국회의 역사와 관행, 그리고 의회 문화의 부정이다. 어떤 때는 여당으로, 어떤 때는 야당으로 그들도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 국회와 함께했고 오늘의 의회와 의회정치를 만들어왔다. 30년 관례가 국회에서 제도화되는 단계로 넘어가야 했는데 이번 일로 그게 끝난 거다.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의 상임위원장 독식이 더 안타까운 건 권력이 자제와 관용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의 국회 관례와 관행, 그리고 의회 문화의 파괴도 아쉽다. 정파 간 상호 관용과 자제의 규범은 당파적 적대감을 줄여 정치적 양극화의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자제와 관용이 사라지면 남는 건 ‘무능과 탐욕의 정치’다. ‘겸손과 절제’가 권력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독점 정치는 여의도 밖으로도 향하는 모양이다. 국회가 추천한 비(非)법관 중심의 사법행정위원회가 법원행정처를 대신해 법원 인사와 사법행정을 총괄한다는 여당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대법원은 위헌이라며 반대한다. 사법부 독립이라는 권력분립의 원칙에 반한다. 하지만 김명수 대법원에 대한 국민 신뢰는 역대 가장 낮은 걸로 알려져 있다.

독점은 독선으로 나타나고, 독선은 반(反)시장적인 정책 시도로 이어진다. 부동산 정책이 대표적 사례다. 정부가 내놓은 수십 번의 대책에도 불구하고 서울과 수도권을 넘어 이젠 지방으로 집값 상승세와 전세난이 확산하고 있다. 민주당 지지자마저 “집값이 오르는 걸 모르는 것인지, 알면서도 모른 척 방법을 안 찾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할 정도다.

잘못은 전(前) 정권 때문이라고 한다. “박근혜 정부 때 부양책으로 했던 정책들, 전세 얻을 돈으로 집 사라고 내몰다시피 하고 임대사업자에게 혜택을 줘서 집값이 올라갔다. 그 결과를 이번 정부가 떠안게 된 것”이라고 민주당은 화살을 돌린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가 임대사업자 특혜로 집값 상승세에 기름을 부었다”는 비판과 “설령 박근혜 정부에 책임이 있더라도 문재인 정부가 집값을 잡을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결국 둘 중 하나가 아닌가. 무능력하거나 아니면 그럴 의지가 없었거나. “부동산 문제는 건들면 건들수록 문제가 커지는데, 용기와 결단력으로 합리적 정책을 만들어 추진했어야 했다”는 자아비판은 그래서 나온다.

의회 장악한 민주당의 패권주의


▎1987년 6월항쟁 이후 개원한 제13대 국회에서 각 정당 의석수에 따라 상임위원장을 배분하는 관행이 처음 자리 잡았다. 1988년 5월 17년 만에 국회에 복귀한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노태우 대통령의 국회 개원 연설을 듣고 있다.
우왕좌왕 땜질식 처방은 세대 갈등마저 조장한다. ‘패닉 바잉(공황매수)’을 이유로 정부가 신혼부부, 생애최초 특별공급 물량 확대에 나서면서 일반공급 물량이 더욱 줄어들자 4050세대는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불평한다. 윗세대는 “누가 더 절실하게 주택이 필요한지를 한 번 더 생각해보고 그 절대 기준은 지켜줘야 정부 정책을 믿고 따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하고, 청년 세대는 소득 기준을 완화했기 때문에 오히려 경쟁이 더 심해질 것이란 걱정에 나름의 불만을 토해낸다.

모두 불만이다. 약간씩 구멍 생기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다 보니 문제가 폭발했다. 그런 측면에서 부동산 정책은 실패다. “시장이 무섭다는 생각을 한다. 자기를 곡해하고 잘못 다루는 사람에게는 여지없이 그 비용을 지불하게 한다”는 언급이 새삼 주목받게 된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코로나와 깊이 관련돼 있다. 코로나가 21대 총선의 분수령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총선 부재자 투표를 시작하기 전날 대구의 코로나 확진자는 0명이었는데 이때 야당은 막말논란에 휩싸여 있었다. 결국 여당에 압도적 승리를 안겨줬다. 지금도 코로나 상황과 대통령 지지율은 함께하는 모습이다.

반면 부동산은 대통령 지지율에 부정적이다. 최근 “부동산 문제에 민감한 20∼40대가 서울에서 (여론이) 돌아섰다”는 의견이 많다. 부동산 정책에 대해 국민 10명 중 7명이 ‘잘못하고 있다’고 답한 조사결과도 있다. 대통령이 부동산 문제에 너무 안일하다는 비판적 시각이자 부동산 문제에 대한 지지층의 강력한 경고다.

총선 후 ‘양정숙 재산, 윤미향 의혹, 인국공 사태, 부동산, 박원순 추문 그리고 김홍걸 재산’ 등 여권의 악재가 이어졌다. 개인사이자 돌발적인 일들이어서 여진은 오래가지 않았다. 하지만 부동산은 다르다. 처음 문제가 된 것도 아니다. 충분한 준비와 대비가 가능했다는 말이다.

정세균 총리는 지난 7월, 정부부처 고위 공직자들에게 다주택 처분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총리 권고는 전혀 이행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이미 예상된 일이라는 의견이 많다. 관보에 재산을 공개해야 하는 1급과 달리 2급 이하 공직자는 재산공개 대상자가 아니다. 총리에게조차도 이들의 다주택 보유 여부를 확인하거나 처분을 강제할 아무런 법적 권한이 없는 것이다. “사생활과 사유재산 측면이 있다”고 실토할 수밖에 없는 일인데 감정적으로 대응한 거다.

이낙연 대표가 당 소속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의원을 대상으로 다주택 현황 전수조사에 나서고 다주택 처분 상황을 향후 공천심사에 반영하겠다고 천명한 것도 마찬가지다. 정책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를 정치로 해결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나빠지는 여론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는 ‘정치적 헐리우드 액션’이다.

현재 시행 중인 임대차법 부작용을 최소화할 대책은 없고 시장 혼란을 더 가중하는 법안까지 등장했다. ‘임대의무기간 6년’ 확대 법안이다. 초등학교 학제가 6년이기 때문에 임대의무기간도 이에 맞춰 연장해야 한다는 게 법안을 제안한 핵심 이유란다. 최근 상황에서 임대의무기간을 3+3년으로 더 늘리면 전세난은 더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시장의 판단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시장을 무시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한다. 인터넷에는 “인생 60년 사니까, 30+30년이 적당해 보인다”는 조롱까지 등장한다.

정책이 아닌 정치 수단으로 시장 통제 시도


▎부동산 관련 민간단체 회원들이 8월 1일 서울 여의도에서 정부의 부동산 규제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임대차3법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진:임현동
부동산거래분석원(또는 부동산감독원)을 설립하겠다는 법안도 논란의 대상이다. 부동산거래분석원은 문 대통령이 지난 8월 지시하고 정부가 입법을 추진하던 기구다. 그러나 임대차 3법 시행 이후 전세난이 악화되자 입법시기가 미뤄졌다. 정부의 지나친 감시가 오히려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시장은 법안 내용을 충격적이라고 인식한다. 이 법안에는 ▷부동산 관련 업종의 등록·신고제 ▷부동산 교란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 ▷조사를 위한 각종 정보요청 권한 강화 방안이 담겼다. 부동산 교란 행위 조사를 위해 금융·조세 정보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고, 관계 기관에 각종 수사 관련 정보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시세조작, 허위정보 유포 등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3년 이하 징역 3000만원 이하 벌금 등 처벌 조항 등도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민주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민주당이 이 법안을 당론으로 통과시킬 것이라는 관측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한다.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부동산 민심’이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오히려 부동산감독원 ‘속도 조절론’을 꺼내 여론을 무마하려 한다. 그런데도 시장은 여전히 불안하다. “정보통신(IT) 기술의 발달로 부동산 시장 교란 세력이 진화하고 있는 만큼, 그런 새로운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울리는 차원의 의미도 있다고 생각한다”는 게 민주당 일부의 인식이기 때문이다. 시장과 인간 본성에 대한 이들의 근본적 인식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책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적 접근과 반(反)시장적 대안 모색은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떨어트린다. 정책과 말 뒤집기, 즉 ‘양념’으로 문제의 본질을 덮는다. 정책 뒤집기의 대표사례는 ‘임대주택사업자등록’이다.

2017년 8월 정부는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 도입을 예고했고, 그해 12월 ‘다주택자 임대사업 등록 활성화 대책’을 내놓는다. 주요 내용은 ▷2021년까지 임대주택 등록 시 취득세·재산세 차등 감면 ▷8년 이상 장기임대 소형주택 임대시 재산세 감면 ▷8년 이상 임대주택의 장기보유특별공제 비율 50%에서 70%로 확대 ▷임대사업자 등록 시 임대소득의 70%까지 비용 인정 등이다.

이에 따라 임대사업자 수가 폭등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임대사업자 수는 2018년 6월 33만 명에서 2019년 5월 52만3000명으로 2년 새 20만 명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등록 임대주택 수도 115만 가구에서 159만 가구로 44만 가구 늘었다. 당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청와대 유튜브 공식 계정을 통해 “임대사업자로 등록하게 되면 세제, 금융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다주택자들이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좋겠다”며 임대사업자 등록을 적극적으로 권유한 덕분이다.

하지만 정부는 1년 만인 2018년 9·13 대책을 통해 ‘임대사업자 세제 및 대출 혜택 축소’를 발표하며 정책을 뒤집었다. 임대등록 주택의 매도 금지로 시장에 매물이 공급되지 않아 집값 상승을 유발했고, 과도한 혜택은 1주택자를 다주택자로 유도하는 데 그쳤다는 비판 때문이다.

이어 몇 개월 만인 올해 7월 정부는 ‘주택시장 안정 보완 대책’을 통해 신규 임대 등록 시 세제 혜택 대상을 10년 이상 장기임대 하는 빌라나 다가구주택 등 아파트 이외 주택으로 제한했다. 4년 단기임대와 8년 장기 일반임대 역시 폐지되는데, 이에 따라 아파트를 새로 장기임대로 등록하거나, 기존 단기임대를 장기임대로 전환하는 건 불가능해진다. 기존 임대주택은 의무임대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등록이 말소된다.

야당 견제 무력화하려 입법권 남용


▎백혜련, 박범계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소속 법사위원들은 10월 21일 공수처장 후보자추천위원회 정상화를 국민의힘에 촉구하면서 야당의 비토권을 무력화하는 법 개정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사진:오종택
정부정책에 따라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이들은 억울하고 황당해한다. “임대 등록을 하면서 집을 마음대로 팔지도 못하고, 임대료도 법에서 정한 대로 2년에 5%밖에 올리지 못했는데 이제 와서 투기꾼 취급당하는 셈”이라는 거다. 1년도 채 안 돼 오락가락하는 정책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는 얘기다. 자가 주택시장과 임대시장이 혼재해 있고, 가계자산의 75%가 부동산이며 전체 임대주택의 80% 이상이 개인 소유 형태인 한국적 특성을 무시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마디로 시장을 무시한 계몽적 시도라는 말이다.

민주당은 그동안 공수처가 ‘정권 친위 수사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야당 비판에 “후보추천위원 7명 중 2명이 반대하면 공수처장 후보 추천이 불가능하다”며 비판을 차단해왔다. 현행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장 후보는 추천위원 7명 중 6명 이상이 동의해야 추천이 가능하다. 야당 교섭단체 몫 추천위원 2명이 모두 반대하면 후보추천이 불가능해진다. 야당 몫 추천위원 2명이 강력한 ‘비토권’을 쥐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계속 추천위원 선정을 미루자 민주당은 공수처법 개정안을 발의한다. 후보추천위원회 구성을 ‘여야 각각 2명씩’에서 ‘국회 추천 4명’으로 바꾸고, 추천위원회 의결 정족수를 현행 6명에서 5명으로 낮추는 게 골자다. 야당이 쥔 비토권을 무력화하겠다는 노골적인 의도를 굳이 숨기지 않는다.

민주당은 야당 추천위원의 과거 세월호 특조위 활동과 공수처 반대 발언 등을 문제삼았다. 더 나아가 야당의 추천 철회를 요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공수처법 개정까지 할 수 있다며 압박한다. “공수처 출범을 지연시키거나 방해하는 행위는 후보 추천위의 일이 아니다”, “끊임없이 야당이 비토권을 행사하면 공수처장 임명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수처법 개정 논의는 계속 진행해야 한다”는 게 민주당의 입장이다. 야당이 “공수처장 선정 때 야당의 견제장치를 두겠다는 기존의 민주당 주장이 허울에 불과했다”고 말하는 이유다. “현행법에 따라 후보 추천위원회를 꾸리고 일도 시작했는데 이와 동시에 밖에서는 법 개정을 추진한다면 추천위원회를 계속할 수 없지 않겠느냐”는 비판도 뒤따른다.

지금까지 기술한 예들은 민주주의의 퇴행을 경고하는 징후다. 민주주의를 복원·발전하는 전환점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라는 새로운 문제에 우리는 직면해 있다. 민주화 주도세력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선출된 권력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시대를 마주하는 건 아이러니하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권력의 견제와 균형, 분권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독점과 독선의 정치는 인간 본성과 시장에 도전하는 정책과 입법 독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정책과 말 뒤집기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에 완성이란 없다. 민주주의 모범국으로 꼽히는 미국의 대선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이런 교훈을 분명하게 전달한다. 민주주의 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려면 권력의 겸손과 절제 그리고 권력 분립은 필수적이다.

-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012호 (202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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