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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초점] ‘정치인’ 추미애와 ‘검사’ 윤석열의 ‘끝장대결’ 

정치권엔 블랙홀, 국민엔 정치혐오 불렀다 

秋, 법무장관 권한 총동원해 청와대 겨눈 ‘윤석열 사단’ 해체 총력
尹, ‘검찰 독립’ 방패삼아 십자포화 버티고 임기 마쳐야 활로 열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0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윤석열 검찰총장(화면 왼쪽) 관련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장면 1

11월 12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 검찰 특수활동비의 법무부 사용 의혹을 놓고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논쟁을 벌였다. 박 의원의 질문을 끊고 추 장관이 반박하자 예결위원장인 정성호 민주당 의원이 나섰다.

정성호 위원장: 장관께서는 질문에 답변해주세요, 질문에. 다른 거 말씀하지 마시고, 질문 다 들으신 다음에 질문에 답변을….

정 위원장의 발언 도중 추 장관이 다시 끼어든다.

추미애 장관: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만, 질문 자체가….

결국 정 위원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정 위원장: 아, 그렇게 좀 해주세요. 좀! 정도껏 하십시오.

추 장관: 모욕적이거나 도발적이거나 근거가 없다면, 위원장님께서 제재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정 위원장: 그런 질문 없었습니다. 장관님, 협조 좀 해주세요.

#장면 2

10월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여당 의원들의 질타성 질문이 쏟아진다.

김종민 민주당 의원: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의) 지휘를 받게 돼 있죠? 지휘감독 관계는 분명한 거예요.

윤 총장은 준비한 원고도 보지 않은 채 작심한 듯 생각을 거침없이 토해낸다.

윤석열 검찰총장: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닙니다. 전국 검찰을 총괄하는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의 부하라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나 사법의 독립과는 거리가 먼 얘기입니다.

올해 초 검찰 고위직 인사 과정에서 총장 의견을 묵살했다는 야당의 비판에 추 장관이 “검찰총장이 저의 명을 거역한 것”이라고 말한 것을 겨냥한 말이다. 그러면서 윤 총장은 추 장관에게 가진 감정도 여과 없이 털어놓는다.

윤 총장: 특정 사건에 대해서 장관님과 막, 무슨 쟁탈전을 벌이고 경쟁하고 싶지도 않고… ‘중상모략’이라는 단어는 제가 쓸 수 있는 가장 점잖은 단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치 이슈 블랙홀 된 추-윤의 ‘말 폭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1월 12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과 손을 들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추 장관과 윤 총장이 정치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국무위원인 장관과 준사법기관의 수장인 검찰총장이 쏟아내는 날 선 발언에 여의도 정객(政客)들마저 혀를 찬다. 예전 정부에서도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갈등을 벌인 적은 있지만, 두 사람의 대립이 정치판을 뒤집을 정도는 아니었다. 과거의 법무부-검찰 갈등은 정치권력의 과도한 개입에 대한 저항의 성격이 뚜렷했다.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던 강정구 교수의 불구속 수사를 지휘하자 김종빈 총장은 사퇴로 저항했다. 2003년 초 검찰 ‘학살 인사’와 노 대통령의 ‘평검사들과의 대화’ 직후 4개월 만에 물러난 김각영 전 총장 후임에 오른 송광수 총장은 당시 여권의 대선자금 수사를 비롯해 임기 내내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그랬어도 대놓고 ‘나가라’고까지 하진 않았다. 송 총장은 정부여당의 우회적인 압박에도 꿋꿋하게 버텨 2년 임기를 채웠다.

추 장관의 폭주는 예고돼 있었다. 박상기, 조국 전 장관의 검찰개혁이 벽에 부딪히자 청와대가 꺼낸 히든카드였다. 국회에서 다진 ‘여전사’, ‘추다르크’ 이미지로 검찰개혁 완수라는 특명을 받았다. 조 전 장관은 지난해 10월 물러나면서 “나보다 더 센 분이 오신다”고 했다.

여당 대표를 지낸 5선 국회의원답게 추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거침없었다. 검찰은 물론이고 야당 의원들의 공세에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국회에 불려 나간 추 장관은 일당백이었다. 자신을 향한 의혹 제기에 “소설 쓰시네”(7월 27일 법사위 아들 병역 특혜 공방)로 받아쳤다.

윤 총장을 향한 발언은 더 원색적이다. 6월 25일 민주당 초선의원 포럼에서 “총장이 지휘랍시고… 내 지시를 잘라먹었다”고 말하는가 하면, 11월 11일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서는 “사퇴하고 정치를 해야 하지 않나”라고 직설 화법을 구사했다. 이날 윤 총장은 여론조사업체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실시한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전국 성인 남녀 1033명,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p)에서 2.7%로 이낙연 민주당 대표(22.2%), 이재명 경기지사(18.4%)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추 장관은 검찰이 하는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 관련 수사가 “민주적 시스템 붕괴시키는 정치적 목적의 편파 과잉 수사”라고 맹비난했다. “(윤 총장이) 정치적 야망을 드러낸 이후 전광석화처럼 사건이 진행되고 있다”고 수사의 진정성을 흔들었다.

추 장관의 맹공은 말로 그치지 않았다. 10월 한 달간 추 장관은 윤 총장을 겨냥해 두 번 감찰을 지시했다. 10월 16일 라임 펀드사기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구속)이 옥중 자필 입장문에서 검사들에게 술접대를 했다고 폭로한 게 계기였다. 추 장관은 이례적으로 이날 오후 8시경 감찰 착수 사실을 법무부 대변인실을 통해 발표했다.

추 장관의 칼끝은 명백히 윤 총장을 겨냥한다. 김봉현의 자필 문건에는 ‘라임 사건에 윤 총장 운명이 걸려 있고’라는 문구가 나온다. 윤 총장이 사건에 간접적으로 연루돼 있다는 암시를 내비친 주장이었다. 법무부는 이틀 뒤(18일) “김봉현 조사 결과 야권 정치인과 검찰의 구체적 비위가 있었으나 수사가 안 됐다”며 “윤 총장은 보고를 받고도 철저한 수사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튿날에는 윤 총장을 수사 선상에서 배제하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추 장관은 “서울남부지검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독립적으로 수사한 후 그 결과만 총장에게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수사지휘권 발동은 헌정 사상 세 번째, 올해에만 두 번 나왔다. 지난 7월 [채널A]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의 유착 의혹 사건 때 윤 총장의 수사 지휘권을 박탈하는 지시를 내렸다.

윤 총장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중상모략”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허위사실을 공표한 법무부 관계자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맞섰다. 대검 대변인실을 통해 낸 공식 입장에서 상급기관인 법무부를 향해 ‘중상모략’, ‘허위사실 공표 수사’ 등의 표현을 쓰며 반발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10월 22일에는 라임 수사를 지휘했던 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이 감찰 지시에 반발하며 사퇴했다. 그는 “정치가 검찰을 덮어버렸다”는 일갈을 남겼다.

10월 말에는 옵티머스 펀드 환매 중단사태 초기 서울중앙지검이 고발 사건을 무혐의 처분한 것에 관해 대검 감찰부에 감찰을 지시했다. 여권에서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려 피해를 키웠다”며 윤 총장 책임론을 들고 나온 직후다. 명분은 중앙지검이 ‘봐주기’ 수사를 한 게 아닌지 확인하는 차원이지만, 윤 총장 압박용으로 해석됐다. 11월 6일에는 검찰총장의 특활비 집행내역 조사 감찰을 지시했다. 전날 국회 법사위 여당 의원들이 윤 총장 특활비를 문제삼자 기다렸다는 듯이 움직였다. 추 장관은 검찰 특활비를 “검찰총장의 쌈짓돈”이라고 표현했다. 추 장관의 공세는 가히 융단폭격이란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검사 출신 변호사는 “법무부 장관이 꺼낼 수 있는 무기는 거의 다 꺼내 든 셈”이라고 말했다.

추 장관의 폭주보다 이상한 건 청와대의 태도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은 추-윤 두 사람의 대치 상황을 보면서도 반응이 없다. 여권 내부 사정에 밝은 민주당의 한 인사는 “겉으로 보면 추 장관을 제어 못하는 거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 있겠지만, 사실 추 장관은 청와대가 원했던 인물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그는 추 장관의 역할을 “청와대의 방파제”라고 표현했다.

정치공학의 시각으로 여권에서도 대체로 이 해석에 동의한다. 문재인 정권의 최대 위협은 윤석열이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 비위 은폐 의혹, 조국 전 장관과 일가족 관련 사건 등의 수사가 윤 총장 취임 후 본격화했다. 모두 현 정권의 명분을 훼손할 수 있는 중요 사건들이다.

체면 내던진 추미애의 ‘윤석열 고사 작전’


▎윤석열 검찰총장이 10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조 전 장관의 중도 낙마는 정부여당에 뼈아픈 부분이다. 조 전 장관은 책략가에 가깝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검찰개혁의 밑그림 구상에서 역할이 컸다. 그의 가족 문제가 발목을 잡지 않았다면 검찰개혁은 본래 설계대로 순조롭게 진행됐을지도 모른다. 윤 총장 취임 후에도 검찰은 정부의 개혁 방침에 대체로 순응하는 태도를 유지했다. 검찰의 태도가 달라지고 검찰이 주도권을 가진 건 조 전 장관 관련 의혹들이 터지면서부터다.

조 전 장관은 장관이 되기 전까지 싸움이라곤 SNS에서 벌어진 학자적 논쟁에 참여한 게 전부다. 검찰과 정치권, 여론 세 방향에서 동시에 들어온 공세를 견디기 어려웠을 거라고 정치권에선 본다. 조 전 장관의 중도 퇴진을 청와대는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당초엔 조국 후임에 친문 핵심 전해철 의원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전 의원 본인도 지난해 10월 하마평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고심 중에 있다”며 설 자체를 부인하지 않았다.

추 장관이 낙점된 건 다소 의외였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조 전 장관의 약점인 뚝심과 맷집을 최우선 자질로 본 것 아니겠느냐”며 “지금 보니 추 장관을 선택한 게 신의 한 수”라고 말했다. 실제로 추 장관이 취임한 뒤 청와대로 직결되는 수사는 대부분 답보 상태에 빠져 있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수사팀의 팀장이었던 김태은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장은 지난 8월 중간간부 인사에서 대구지검 형사1부장으로 발령됐다. 현 정권 인사 다수가 개입됐다는 의혹을 받는 라임·옵티머스 사건을 각각 맡았던 조상원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장과 오현철 서울중앙지검 조사1부장도 같은 인사에서 자리를 옮겼다.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사건을 맡아 조 전 장관을 기소한 이정섭 서울동부지검 형사6 부장도 전보 조처됐다.

추 장관의 대척점에 서 있는 윤 총장도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윤 총장은 또래보다 9년 늦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23기인 그는 어린 동기들 사이에 ‘큰형님’으로 통했다고 한다. 그의 별명 중 하나인 ‘꼴통’이 성격을 보여준다. 윤 총장의 연수원 동기인 이정렬 전 부장판사는 2017년 5월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되자 한 시사 인터넷방송에서 “윤석열은 모르는 부분은 완벽히 이해할 때까지 파고드는 성격이었다. 교수님과 논쟁이 붙어도 밀리지 않을 정도”라고 떠올렸다. 또 다른 연수원 동기인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친할 기회는 없었지만, ‘거친 남자’였다는 느낌만 남아 있다. 늘 그랬듯이 그 사람 원래 꼴통이라는 얘기가 법조계에서 흘러다니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여권은 윤 총장이 검찰개혁에 반기를 들었다고 보지만, 윤 총장의 성격과 걸어온 길로 볼 때 이는 정치적 해석일 뿐이다. 현 정부 출범 후 검사장으로 퇴직한 한 법조인은 윤 총장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윤 총장은 검찰의 존재 이유가 ‘거악 척결’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정치권력의 위법 행위를 보고도 못 본 체하길 기대했다면 그건 청와대의 오산이다. 칼을 뽑아 들고 적당히 춤만 추다 집어넣을 사람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 레임덕 막을 최후의 보루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지난 4월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경기도 수원남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오고 있다. 김 전 회장은 라임자산운용 사태와 관련, 검사들에게 향응·접대를 했다고 주장했다. / 사진:연합뉴스
윤 총장은 선이 굵은 장수의 면모를 풍긴다. 지략을 앞세우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스타일이다. 특수통의 엘리트 코스였던 대검 중수부 1, 2과장을 거치며 강골 검사로 자랐다. 복싱으로 치면 맷집 강한 슬러거(slugger)다.

철저한 검찰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는 법대생 시절부터 오로지 검사만 꿈꿔왔다고 한다. 서초동에 사무실을 운영하는 한 변호사는 “검찰은 사법부에 대응하는 기관이다. 윤 총장은 적어도 수사의 영역에서만큼은 정치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이상적인 검찰을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런 윤 총장을 위험인물로 본 건 조국 일가 문제가 터지기 전부터였다고 한다. ‘윤석열 사단’이라 불린 특수통 검사들이 윤 총장과 약진할 때부터다. 민주당의 한 친문 인사는 “윤석열의 능력을 너무 맹신했고, 특수부 검사들을 너무 얕잡아 봤다”고 요약했다. 검찰 내에서 특수부 ―그중에서도 윤석열 라인―의 힘을 빼고 형사부 등 비주류로 여겨졌던 검사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시작한 이유는 이런 뒤늦은 인식에서 비롯됐다.

추 장관과 여당이 때릴수록 윤 총장은 강해지고 있다. 윤석열 신드롬은 정치권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에 이르렀다. 대선후보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현직 검찰총장이 대권 잠룡에 오른 것도 이례적이지만, 한때 선호도 1위를 차지할 만큼 여권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른 건 이변에 가깝다. 석 달 전만해도 윤 총장은 대선후보 여론조사에 이름이 언급되길 꺼렸다. 8월 20일 한국리서치가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를 할 때 대검의 요청으로 윤 총장이 제외됐다. 올해 초 [세계일보]가 윤 총장을 처음 조사에 포함하자 윤 총장이 강하게 항의했다고 한다. 2월에는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검찰총장이 정치인들과 함께 여론조사 대상으로 이름을 올리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여론조사업체와 언론사에 자신을 빼줄 것을 공식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윤 총장의 태도는 전과 확실히 다르다. 더는 여론조사에 자신이 포함되는 것을 문제삼지 않는다. 10월 국정감사에서 퇴임 후 거취를 묻자 “우리 사회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그런 방법은 천천히 퇴임하고 나서 한번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방법에 정치도 들어가느냐”는 물음에 “그건 제가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여지를 남겼다.

윤 총장은 임기를 마치기 전까지 다시 대중 앞에 공개적으로 자기 입장을 밝힐 기회가 있을까. 수시로 국회에 나가 발언하고, SNS를 활용하는 추 장관과 달리 윤 총장은 국민에게 직접 의견을 개진할 채널이 거의 없다. 여과 없이 공개되는 국정감사장은 사실상 유일한 통로였다. 그가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면, 총장 임기는 내년 7월 24일에 끝난다. 올해 국정감사는 그에게 보장된 마지막 공식 무대였다.

윤 총장이 별도의 공식적인 자리를 만들어 자기 입장을 피력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침묵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소속 한 중진 의원은 “윤 총장은 추 장관과 현 정권에 핍박받는 모양새를 계속 유지하는 게 좋다. 그래야 정권에 피로감을 가진 보수와 중도 유권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검사 본색’ 드러낸 검찰의 ‘큰형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 추천위원 위촉식이 10월 30일 국회 접견실에서 열렸다. / 사진:뉴시스
반면 추 장관의 파죽지세는 여권을 위협할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여권 내부에서도 ‘추미애 피로감’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비문으로 분류되는 정성호 의원의 ‘적당히 하라’는 발언은 상징적이다. 추 장관의 정공법이 오히려 민주당을 위태롭게 했던 전례들이 새삼 주목받는다. 지난해 유행한 ‘조적조(조국의 적은 조국)’란 말에 이어 올해는 여의도 정가에 ‘추나땡’이란 말이 돈다. ‘추미애가 나서면 땡큐’란 뜻이다. 추 장관이 자기 발등을 찍었던 사건들을 돌이킨 풍자다.

시초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건이다. 2004년 3월 당시 새천년민주당 상임중앙위원이었던 추 장관은 동교동계와 뜻을 맞춰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다. 비주류로 몰렸다가 간신히 친문의 마음을 얻어 당대표가 됐는데 드루킹 사건을 불러들였다. 2018년 1월 문 대통령을 비방하는 내용의 포털 댓글을 문제 삼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엉뚱하게 범인은 여권 지지세력인 드루킹 일당이었다. 친문 핵심 김경수는 이 사건으로 1, 2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아 정치적 생명이 위태로워졌다.

라임사태 김봉현의 검사 술접대 주장이 나오자 추 장관은 “술접대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고 국회에서 밝혔다. 그러나 아직 검찰은 의혹이 사실인지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검찰총장 특활비를 문제 삼았지만 유용했다는 증거가 없어 유야무야 넘어갔다. 오히려 법무부의 검찰 특활비 유용 논란을 자초했다.

이런 이력에도 추 장관은 청와대가 버릴 수 없는 카드다. 정권의 숙명인 레임덕 리스크는 임기 말이 가까워올수록 커진다. 친문의 당 장악력을 유지하고 정권을 재창출하려면, 레임덕을 최소화하고 최대한 늦추는 게 관건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실 보좌관은 “추 장관을 버리는 건 난공불락인 성의 문을 열어주는 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정부도 추 장관 교체에 뜻을 두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르면 이달 말 1차 개각에 이어 연말쯤 2차 개각이 이뤄질 예정이다. 우선 내년 보궐선거 출마 희망자를 교체하는 개각과 바이든 정부 출범을 고려한 외교·안보 라인 쇄신 차원에서 개각이 있을 예정이다. 추 장관은 유임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추 장관도 사퇴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11월 16일 국회 법사위에서 서울시장 출마 의향을 묻자 “오로지 검찰개혁에 사명을 갖고 이 자리에 왔기 때문에 그 일을 마치기 전까지는 정치적 입장을 갖지 않겠다. 일단 검찰개혁이 완수될 때까지 장관직을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때릴수록 강해지는 윤석열과 힘 빠지는 추미애

그렇다면 추 장관이 장관직을 내려두는 시기는 언제일까. 아직 단언하기 어렵지만, 우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이 첫 변곡점이 될 수 있다. 공수처는 현 정부의 역점 정책이다. 임기 3년인 공수처장이 임명돼야 완성된다. 야권에선 공수처가 “정권 관련 수사를 막고 문 대통령 임기 후 안전을 보장할 방패”라고 비판한다. 의도가 무엇이든 공수처가 출범하기 전까지 추 장관의 임무는 끝난 게 아니다.

만에 하나 추 장관이 공수처가 출범하기 전에 사퇴한다면, 그의 정치 인생은 치명상을 입는다. 이미 추 장관에 대해 “표를 깎아 먹는 장본인”(민주당 비문계 A 의원)이란 불만이 여당 안에 있다고 한다. 사퇴해도 여의도에는 추 장관이 돌아갈 자리가 없다. A 의원은 “공수처를 출범시켜야 추미애만의 정치적 자산이 생긴다. 윤 총장을 누르고 검찰개혁에 성공한다면 ‘행정부 군기반장’(국무총리)으로 역할을 넓혀볼 만도 하다”고 말했다.

여당 안에선 추 장관의 권력 의지를 높게 본다. 격식을 걷고서 검찰을 압도하고, 야당의 공세를 가볍게 넘기는 남다른 전투력이 ‘강한 지도자’라는 인상을 지지자들에게 심어준다는 것이다. 추 장관의 대범함과 권력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다. 민주당 내 사정에 밝은 여러 관계자가 전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와의 일화다.

당시 이 지사는 ‘혜경궁 김씨’ 의혹으로 친문 진영의 공세에 시달렸다. 문 대통령을 비방한 트위터 주인이 이 지사의 부인이란 의혹이 제기됐고, 경선 경쟁자 전해철 후보가 고발에 나서기도 했다. 민주당 지도부도 사안을 심각히 여겨 이 지사의 예비후보 지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 지사의 최대 정치적 위기였다. 이때 당대표였던 추 장관이 이 지사 예비후보 박탈 요구를 물리치고 경기지사 당선에 이르는 길을 열어줬다. 당선 후 감사 인사를 한 이 지사에게 건넨 답이 의미심장하다. “캐시예요, 어음이에요?”

경기지역의 한 민주당 의원은 두 사람의 싸움을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두 명분의 충돌을 막아주지 못하는 정치력의 부재(不在)를 아쉬워했다. “추 장관의 정치적 야망과 윤 총장의 검사적 이상은 반목할 상대가 아니다. 명분이 만날 수 있게끔 클릭을 조정해줘야 할 임명권자(대통령)가 삼자적 시점으로 바라보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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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호 (202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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