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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특집] 한·일 관계의 중요성과 복원의 길 

곧 ‘잃어버린 10년’… 정부가 나서 과거사 현안 풀어라 

긴밀한 양국 관계는 평화와 번영의 인도-태평양 만드는 핵심축
한·미 정상회담 외교 성과 살리려면 한·일 관계 개선도 서둘러야


▎2020년 11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화상회의로 열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정상회의 및 협정 서명식에 참석해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서명식을 지켜보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한·일 관계가 악순환 구조에 빠져 복합 다중골절 상태가 된 지 9년이 돼가고 있다. 올해 안에 관계 회복의 단초가 마련되지 않으면 곧 ‘잃어버린 10년’이 될 형편이다. 독립 후 20년 동안 미수교 상태에 있다가 14년간에 걸친 수교 교섭을 통해 1965년 국교가 정상화된 이래 한·일 관계에는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렇지만 예닐곱 차례의 크고 작은 위기를 잘 극복하고 꾸준히 발전해왔다.

그러나 2012년 이래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한·일 관계는 2015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 합의 채택으로 일시 회복 기미를 보였지만, 2016년 말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 문제로 다시 악화의 늪에 빠졌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함께 ‘리셋’의 기회가 있었으나, 2018년 10월 일제 강제동원에 관한 대법원 판결과 2015년 합의에 따라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이 해산하면서 오히려 더욱 악화했다.

이렇듯 한·일 관계는 장기 위기 상태가 지속하는 가운데 좀처럼 정상화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른 부작용은 한·일 관계 전반에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우선 한·일 양국이 상대방을 경원(敬遠)하는 현상이 심화하면서 아시아에 2개국밖에 없는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회원국이면서 가치 면에서 가장 가깝고 이웃인 한·일 양국이 자국 외교정책에서 상대방의 존재를 별로 고려하지 않는 이상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은 일본을 경시하고 일본은 한국을 무시하고 있다. 일본이 역사 수정주의로 흐르고 중국이 경제적으로 일본을 제치고 부상하면서, 한국은 중국을 과대평가하고 일본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일본은 과거사로 인해 전망이 없다고 보는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 대신에 인도-태평양 전략을 중시하면서 자국 외교정책에서 한국의 위상을 떨어트리고 있다. 일본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주요 물자의 지역 공급망 재편, 인프라 건설, 기후변화·팬데믹 대처 등을 쿼드(QUAD, 미국·인도·일본·호주 4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비공식 안보회의체)와 동남아를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다.

상대방의 중요성 올바로 인식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1999년 3월 20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청와대 단독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둘째 부작용은 한·일 양국이 양국 관계를 다루는 데 합리적 접근보다는 감정이 앞서, 인접국 관계에서 빈발하게 마련인 외교 문제나 분쟁 해결을 쉽게 헝클리게 한다는 점이다. 일례로 2018년 제주 국제관함식 행사에서 일본 해상자위대함의 참가가 욱일기 게양 문제로 실현되지 못한 일이다. 일본 해상자위대함은 10년마다 열리는 우리 관함식에,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시절과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시절 두 차례 참가했다. 또 2019년 중국 주최 국제관함식에도 참가했다는 점에서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린 것과 같다.

또한 2019년 일본 정부가 한국의 강제동원 문제 해결에 진전이 없는 데 대해 반도체 제조용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간이허가절차를 취소하고 한국을 백색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무역규제 조처를 한 것과 한국 정부가 대항 조치로 한·일 군사비밀보호협정(GSOMIA)의 종료를 통고한 것도 감정적 대응으로 사태를 급격히 악화시킨 대표적 사례다.

셋째로는 한·일 국민의 상호 인식·이해·기대·신뢰의 갭이 크게 확대되면서 관계 회복을 위한 동력을 만들기 어려운 부작용을 낳았다. 이런 현상은 양국 사회의 주류가 과거사에 관한 직접 경험이 없는 전후 세대로 교체되면서 양국 관계의 발목을 잡아온 과거사 문제를 대하는 태도에 양국 간의 격차를 벌리게 하는 것도 관련된다. 한·일은 민주국가여서 여론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런 만큼 양국 정치권의 반일 감정과 혐한 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경향이 관계 악화를 부채질함으로써 악순환 구조를 만들게 된다.

넷째 부작용은 관계 악화의 범위가 주로 정치적 영역에서 경제·안보 등 비정치적 영역으로 퍼져 전방위적이 되는 점이다. 과거에는 한·일 관계가 나빠져도 관련 사안에 국한되다 보니 조기에 수습됐으나, 최근에는 다른 분야로 쉽게 전이되고 있다. 과거에는 일시적으로 관계가 악화하더라도 정경 분리의 방호벽이 있어서 상호 의존관계에 있는 경제를 건드리는 행위나 조치는 자제했다.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문제와 관계가 없다고 하지만, 실상은 한국 정부의 이에 관한 조치가 늦어지는 것에 대한 반발로 통상규제 조처를 함으로써 이를 허물어버렸다.

한국 정부도 대응 수단으로 GSOMIA를 종료시키는 조치에 나섬으로써 어려운 여건에서 착실히 발전해온 안보 협력의 기반을 흔들었다. 양측이 상대방에 대한 대응 조처를 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내리막길로 치달을 위험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한·일 관계의 장기 기능 부전 상태는 양국에 상호 손실의 상황을 만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양국 국민은 상호 경원으로 인해 안정된 한·일 관계의 중요성과 관계 악화로 잃어버리고 있는 기회비용에 관한 인식이 부족하다. 따라서 양국 정부와 국민은 관계 회복을 꾀하는 데 상대방의 중요성을 올바로 인식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한·일 양국이 위치한 동북아는 미·중 격돌이 벌어지는 최전선이다. 양국은 전후 안보와 경제 발전을 미국 주도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통해 확보했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부터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이 질서를 만들고 유지하면서 국제 공공재를 공급해왔던 미국이 ‘트럼프 주의’로 대변되는 미국 우선주의, 동맹 경시, 일방주의, 신고립주의로 세계에서 지도적 역할을 방기(放棄)하면서 어려움에 봉착했다.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서 궤도를 수정하고 있지만, 미국 내에는 여전히 트럼프 주의가 온존하고 있어서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

개혁개방 정책 이후 연 10%대의 고속성장을 거듭한 끝에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된 중국은 공세적 외교안보정책으로 동아시아(서태평양)지역에서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을 강화하면서 세력권 구축을 꾀하고 있다. 2027년쯤 중국 GDP(국내총생산)가 미국 GDP를 넘어서고, 2035년이 되면 중국과 홍콩의 GDP가 미국과 일본의 합계를 초월할 것으로도 전망된다.

유럽의 경우 다수의 강대국이 세력 균형을 이룰 수 있고 지역 통합을 통해 규범에 기반을 둔 지역 질서가 확립됐다. 이와 달리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경제력이 나머지 모든 국가의 합보다 앞서는 압도적 존재가 돼 역외세력인 미국의 개입 없이는 세력 균형을 이루기 어렵다. 이런 가운데 지역 질서마저 흔들려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기 쉽지 않은 여건이다.

한·일은 아시아 경제 활력 근간인 제조업 중심국가


▎4월 1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한 후 공동 기자회견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일은 민주주의·시장경제·법치·인권존중 등 가치를 공유하는 선도적 민주국가이자 아시아 경제 활력의 근간인 제조업 중심국가다. 양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자유주의 지역 질서를 지키고 역내 경제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 미국이 한·미·일 3각 협력의 복원을 중시하고 한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원하는 이유다.

양국은 관계 악화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긴밀한 한·일 관계는 평화와 번영의 인도-태평양 지역을 만드는 핵심 축의 하나다. 바이든 외교가 가장 중점을 두는 지역은 중국을 의식한 동아시아이며, 쿼드 정상회의 개최, 한·일 양국과의 2+2회담, 미·중 고위급회담, 한·일 정상 미국 초청 등 일련의 외교 노력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양국은 미국과 함께 동아시아에서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유지를 통해 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확보하는 일에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5월 21일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도 확인된 바와 같이, 한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다. 한·미·일 3국이 협력하면 상당한 시너지효과도 기대되며, 규범에 기반을 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지역 질서를 만드는 추동체가 될 것이다.

또한 양국에 중요한 안보 이슈는 북한의 사실상 핵무장 국가화와 이에 따른 위협이다. 북한은 소형화·경량화·다양화된 60여 개의 핵탄두와 다양한 사거리 미사일을 개발·배치했으며, 가까운 장래에 미국 본토 공격 능력을 갖추게 될 전망이다. 이미 북한의 핵 위협 사정권에 들어와 있는 양국에 북한 비핵화는 한반도·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는 필수요건이다.

2018년 시작된 북·미 핵 교섭은 하노이 회담(2019년 2월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사실상 중단됐다. 바이든 정부가 대북정책 검토를 끝내고 대화와 교섭의 의향을 북측에 전달했지만, 북한은 아직 태도를 밝히지 않고 있으며 전례에 비춰 저강도 도발 가능성이 있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은 ‘계산되고 실용적인 접근(calibrated practical approach)’이라는 추상적 표현밖에 없고, 실제 내용은 교섭을 통해 구체화할 전망이다.

미국 고위당국자들의 발언을 보면 트럼프 정부의 포괄적 해결(everything for everything)과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nothing for nothing) 사이에 있는 단계적 접근(something for something)이 될 공산이 크다. 이러한 접근은 북한의 강한 핵 보유 의지를 고려할 때 의도와 달리 북한의 과거 핵을 인정하는 결과로 끝나기 쉽다. 북핵 위협에 직접 노출된 한·일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즉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목표가 달성되는 데 공통의 이해를 가지므로, 한·미·일 3각 공조를 통해 바이든 정부의 북핵 교섭이 제 궤도를 일탈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양국은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억지·방어에서도 미국을 매개로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이 동북아 안보에 연결돼 있고, 7개 주일 미군기지가 유엔사 후방기지로서 일본 정부의 동의 없이 사용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한·미·일 3국 간 긴밀한 안보협력은 필수다. 매우 짧은 시간에 적의 공격 여부를 판단해 즉각 대응해야 하는 현대전에서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가 필수라는 점에서 한·미·일 정보 공유체계의 구축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또한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전략적 결정을 하게 하려면 핵무기 보유와 경제 개발을 병행하는 병진정책이 실현 불가능하며 경제적 생존조차도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개혁개방으로 방향을 틀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한·일, 한·미·일 협조는 중요한 동력을 제공한다. 아울러 한국 주도의 통일을 이루고 통일한국의 북한 경제 부흥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는 데도 3조 달러에 달하는 세계 제1의 해외재산을 보유하고 아시아개발은행을 사실상 관장하고 있는 일본의 도움이 중요하다. 통일한국의 평화와 번영을 확보하는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을 포함한 주변국들의 이해와도 직결된다.

따라서 건전하고 안정된 한·일 관계야말로 통일한국의 미래에 대한 일본의 불안감을 잠재워줄 가장 큰 자산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통일은 민족 내부의 문제이자 국제 문제이므로, 일본을 포함한 주변국들의 축복 없이는 요원하다. 이를 위해 믿을 수 있고 매력 있는 한국·한국인에 대한 인식을 주변국에 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한·일 양국 경제는 경쟁 관계이기도 하지만 상호보완적 측면도 강하다. 양국은 세계 4대 제조업 강국에 속하고 4차 산업혁명의 큰 흐름에 놓여 있다. 다양한 신기술과 신산업이 생겨나고 상당 부분은 세계 공급망처럼 다양한 국가의 협력으로 이뤄진다. 한·일 양국의 장점을 결합하면 4차 산업혁명의 파도를 넘는 데 시너지효과가 클 것이다.

기존 산업 분야에서도 한국의 제조·시장 개척 능력과 일본의 자본·기술을 결합하면 제3국 인프라·플랜트·자원 개발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으며, 이미 2010년대 말 3년간 약 1조7000억 엔의 실적을 올린 바 있다. 그리고 표준화·데이터·특허 등에서도 양국이 손을 잡으면 미국과 유럽의 독주를 견제하고 아시아의 정당한 몫을 확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 주도 통일한국 이루는 데도 일본 도움 중요


▎5월 22일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공동 기자회견장에 입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양국 모두 인구절벽으로 경제 운용에 어려움이 있다. 일본은 이미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고, 한국은 초고속 고령화 사회로 출산율이 OECD 평균 절반에도 못 미치는 심각한 상황이다. 양국이 인구 위기를 극복하는 데 공조한다면 상당한 상호 이익으로 연결되고 앞으로 유사한 상황에 놓일 아시아 국가들에 좋은 선례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이미 한국 청년 2만 명이 일본 일자리시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도 양국 협력의 열매 사례로 볼 수 있다.

한·일 양국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만큼 양국을 넘어 다양한 지역·글로벌 이슈에서 협력할 수 있다. 한·일 격차가 많이 해소돼 한국이 중견 국가로서 대외 기여를 늘리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협력 잠재력이 확대되고 있다. 한국은 유엔총회에서 매년 다뤄지는 의제의 약 70%에 관해 일본과 입장이 같다. 이는 유럽·호주·캐나다·뉴질랜드 등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만큼 양국이 동아시아나 세계에서 공동 관심사를 공동 의제로 만들어 실현을 위해 협력할 여지가 크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렇듯 한·일 관계의 정상화가 가져올 실익은 명확하다. 그러나 장기 관계 악화로 인한 관계의 손상은 이런 잠재력을 실현할 동력을 빼앗고 있다. 5월 26일 한국경제연구원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양국의 상호 호감도가 한국 16.7%, 일본 20.2%로 가장 높았던 악화 직전 수준의 약 3분의 1에 불과하다. 희망적인 사실은 한국 78.0%, 일본 64.7%가 양국 정부가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답했다는 점이다. 장기 관계 악화로 상호 인식과 신뢰에 타격이 있었지만, 현재의 난관을 조기 극복해야 한다고 봤다. 양국 정부가 과거사 2대 현안을 협력적으로 풀어나가려는 강한 정치적 의지를 보인다면 타개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한·일 관계 회복의 긍정적 요소는 바이든 정부가 동아시아 정책을 추진하는 2개의 축을 한·미, 미·일 동맹에 기초한 한·미·일 협조 체제와 쿼드·쿼드플러스로 삼고, 가장 약한 고리인 한·일 관계의 회복을 위해 적극 움직이려는 점이다. 한·미·일 협조 체제는 과거 주로 북핵 문제를 다루기 위해 작동했다.

그러나 미국은 5월 21일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보듯이 대중 견제의 차원까지 확장하려 한다. 미국은 동맹국인 한·일 문제에 직접 개입하기를 꺼리고 공식적으로는 자제하고 있지만, 물밑에서는 양국의 관계 개선을 위한 외교 노력을 기울여왔다. 오바마 정부는 2014년 3월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한·미·일 3국 정상회담 주최를 비롯해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 이르는 과정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미국도 한·일 관계 개선 위한 외교 노력 기울여


▎4월 12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트럼프 정부도 2019년 11월 일본의 통상 규제와 한국의 GSOMIA 종료로 인한 파국을 막기 위해 양국 사이에서 외교 노력을 기울여 타협을 이뤄냈다. 바이든 대통령 자신도 2013년 12월 부통령 시절 아시아 3개국 순방 시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막으려 노력했으며, 2016년 7월 호주 출장길에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차관회담에 직접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한·미·일 협력 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할 만큼 관심이 많다.

따라서 한·일 관계 회복의 열쇠는 양국 정부가 현안을 극복해 회복 궤도에 올릴 수 있을 것인지에 달려 있다. 한국 정부는 2020년 9월 스가 정부 출범 이래 박지원 국정원장과 김진표 한일의원연맹회장의 방일을 통해 대일 관계 개선을 꾀하기 시작했다. 이어 올해 1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양국 관계 개선 의지를 밝힌 데 이어 도미타 코지 이임 일본 대사 접견에서 적극적 의향을 피력했다. 바이든 정부의 출범과 도쿄올림픽을 통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재활성화 등을 염두에 둔 행보라 해석된다.

이에 대한 일본의 반응은 신임 강창일 주일대사의 신임장 제정도 전과 달리 많이 늦어지고 양국 외교부 장관 접촉도 고의로 기피하는 사실에서 보듯이 냉담에 가깝다. 한국은 과거사와 한·일 협력을 분리하는 투 트랙 접근으로 유연한 입장이지만, 일본은 과거사 현안에 대한 해법이 나올 때까지 한·일 협력을 유보하는 원 트랙 접근을 고집하고 있다.

양국 모두 국내 정치 일정으로 핵심 사안인 강제동원 문제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외교 절충을 모색할 정치 동력을 얻기 힘든 상황이다. 한국은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의 계절에 들어갔고, 일본도 스가 총리의 계속 집권을 결정할 9월 자민당 총재선거와 10월 이전 중의원 선거가 예정돼 있다. 반일과 혐한 여론의 사이에 끼여 한·일 어느 쪽도 쉽게 양보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따라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2022년 5월 한국에서 신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양국 관계를 잘 관리해 본격 회복을 위한 여건 조성에 힘써야 할 것이다. 강제동원 문제는 이해당사자가 많고 일본의 협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정부가 중심이 돼 기존 해법 가운데 가장 현실적이고, 한·일 협력을 통해 현안으로서의 최종 해결이 가능한 방안을 골라 특별입법을 통해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현 정부가 어느 단계까지 소화할지 모르지만, 최소한 일본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압류된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가 이뤄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법원에서 관장하고 있기 때문에 방치할 경우 정부 의사와 관계없이 진행돼 자산이 매각되면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3자 대위변제 등을 통해 최종 해법을 마련하기 위한 시간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강제동원·위안부 문제, 최종 해결 방안 찾아야


▎2016년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한인 강제동원 피해자 추모제. / 사진: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재단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올해 1월과 3월 동일 사안에 대한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이 상호 배치되는 결과로 대법원 판결을 기다려야 하게 돼 당장 시급히 처리해야 하지는 않게 됐다. 그러나 열일곱 분밖에 남지 않은 생존 피해자들의 요구는 진정한 사과에 있는 만큼 화해치유재단 미사용액 57억원과 한국 정부가 조성한 100억원을 합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연구·교육·기념 사업을 하고, 고노 관방장관 담화를 기초로 한 사죄 서한을 주한 일본 대사가 피해자에게 직접 전달하는 방식으로 해결함이 바람직하다. 재(在)사할린 한인 문제가 양국의 협력 체제를 통해 원만히 해결됐음을 선례로 삼아야 한다.

한·일 관계의 조기 회복은 한·일 양국의 전략적 이해에도 부합한다. 나아가 한·미·일 협력체제의 복원은 북핵 위협에 실효적으로 대처하고, 유동적인 동아시아 전략 환경에서 독자적 전략 공간을 마련하며, 흔들리는 자유주의 지역 질서를 지키고, 불확실한 포스트코로나19 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중요 기제다. 5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동맹 중심의 외교정책 전환을 시작한 만큼 이를 살리는 방향으로 한·일 관계도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 신각수 전 주일 대사 ksskorea@gmail.com

202107호 (202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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