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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정치분석] 국민의힘 전격 입당 결정한 최재형의 운명 

尹 결정적 흠결 없는 한 뒤집는 건 어려울 수도 

윤석열 네거티브 전쟁에 휩싸인 가운데 대권 구도 다크호스로 급부상
“등판 너무 늦었다” “인지도 굉장히 낮다” 등 부정적 전망도 만만찮아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7월 12일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 46용사 묘역을 찾아 거수경례로 전사자들에게 예를 표하고 있다. / 사진:김성태 기자
7월 8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부근을 지나던 사람들이 연신 웅성거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이희호 여사도 이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됐는데, 그때만큼 조문객이 많은 것 같아. 도대체 누구래?”

최재형(65) 전 감사원장의 부친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의 빈소가 차려진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근처를 지나던 사람들은 고인이 누구인지, 상주는 어떤 사람인지 연신 궁금해했다. 이날 장례식장 모습은 최 전 원장의 현재 위상을 그대로 보여줬다. 7월 7일 여러 언론에 정치 참여를 선언했던 최 전 원장이 보수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로 급부상 중인 것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대세론’이 이미 형성됐다는 판단이 대세이긴 하지만, 여권의 각종 네거티브 공세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고 있는 윤 전 총장과 달리, ‘무결점 후보’라는 측면에서 최 전 원장은 네거티브 공세에 대한 철벽 수비력을 자랑한다. 네거티브 전쟁에 휩싸인 윤 전 총장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최 전 원장은 보수 야권 대선 경쟁 구도에서 강력한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제1야당 국민의힘은 요즘 정권 탈환 절호의 기회를 놓쳤던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과정을 복기하고 있다. 그때의 참담한 실패를 이번 대선에서 또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되며 당시의 교훈을 차기 대선의 핵심 전략으로 끌어오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왜 20년 가까인 흐른 옛날 기억을 소환하는 것일까? 국민의힘으로서는 당시의 패배가 너무나 황당했기 때문이다.

16대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정부의 임기 말은 정권 교체의 서막이 이미 열렸다는 평가를 낳고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세 아들이 비리에 연루돼 연일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김 대통령은 “자식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책임을 통절하게 느낀다”면서 사과했다. 다음 대통령 자리는 무조건 당시 제1야당 한나라당(옛 국민의힘)이 거머쥘 것 같았다. 그런 과정에서 한나라당은 직전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불과 1.53%p 차로 아깝게 졌던 이회창 후보를 필승 카드로 또다시 내세웠다. 이 후보는 이부영·이상희·최병렬 후보 등과 당내 경선에서 대결, 68.0%라는 압도적 득표율로 한나라당의 대선후보가 됐다.

이 후보는 경기고-서울대 법대를 나와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뒤 공군 법무관으로 병역을 마치고 판사로 임용된 경력에다, 1981년 만 46세로 역대 둘째로 젊은 나이에 대법원 대법관에 올랐던 인물. 김영삼 정부 감사원장, 이후 국무총리로 임명됐고, 강직한 자세로 여러 사안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충돌하다 경질됐다. 대통령에게 덤벼든 강직함으로 국민적 시선을 끈 그는 이후 정치를 시작, 순식간에 ‘최고 대통령감’ 지위에 올라섰다.

당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은 노무현 후보를 내세웠지만, 대다수 언론이 “이번만은 이회창 대세론이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 후보와 비교가 되지 않는 스펙, 안정감을 주는 이미지, 그리고 김대중 정부 말기에 터진 잇따른 대통령 주변 비리는 “이번 선거는 일부러 지려고 해도 질 수 없는 선거”라는 낙관적 분석을 잇달아 내놓았다. 이회창 대세론이 워낙 강하다 보니 “노 후보로는 안 된다”는 민주당 내부 우려가 분출했고 재경선, 후보 사퇴 요구까지 나왔다.

2002년 ‘이회창 대세론’ 패배의 기억


▎최재형(왼쪽) 전 감사원장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7월 8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최 전 원장 부친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의 빈소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사진:조문객
하지만 분위기는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이 후보는 대선이 임박해오면서 본격적인 네거티브 공격을 받기 시작했고, 대세론은 급격히 흔들렸다. 이 후보의 아들이 병역 비리에 연루됐다는 이른바 ‘병풍(兵風) 사건’은 이회창 대세론을 휘청거리게 한 대표적 네거티브 공세였다.

더욱이 병풍 사건은 여당인 민주당의 발표 형식이 아니라 부사관 출신의 예비역 군인 김대업이 주도적으로 주장하고 민주당이 가세하는 형태를 띰으로써 “단순한 정당의 공세가 아니라 정말로 뭔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강하게 불러왔다. 이해당사자인 상대 정당 관계자들이 아니라 독립적 위치에 있는 제3자가 비리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논란을 더욱 키운 것이다.

이 의혹은 당초 김대중 대통령과 이 후보가 맞붙은 15대 대통령 선거 당시에도 문제가 됐지만, 그 당시에는 병역 비리가 아니라 이 후보 아들의 단순 고의 감량 의혹이었다. 그러나 16대 대선에서는 병적 기록표 조작 의혹에다, 한나라당 관계자들이 조직적으로 대책회의까지 열었다는 권력 관여 의혹까지 집중적으로 제기되면서 파문은 일파만파로 커져갔다.

노무현 후보 측은 김대업 전 부사관의 주장을 받아 들고 선거가 끝날 때까지 지속해서 물고 늘어졌으며, 정치 쟁점으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언론은 이를 받아 썼고, 전체 대선 보도 대부분을 병풍이 도배했다.

이회창과 닮은꼴, 그러나 철통 수비력 갖춰


▎자신을 기용한 집권 세력을 향해 용기 있게 각을 세웠다는 점에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닮았다. 사진은 2002년 12월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
네거티브 공세가 이 후보를 향해 무섭게 쏟아져 내리면서 이 후보의 강고한 지지율은 무너졌다. 깨끗하고 공정한 이미지의 ‘대쪽 판사’ 이회창의 깨끗한 청렴 선비 이미지는 병풍 앞에서 산산이 조각났고 부정적 이미지가 이 후보의 얼굴을 덮기 시작했다.

이회창 후보 아들의 불법적 병역 기피 의혹은 이후 결국 무혐의 처분으로 종결됐고,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김대업 전 부사관은 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이미 선거는 끝났고, 이회창 후보는 패배했다. “없는 사실도 만들어내는 네거티브 공세가 대선판에서 통한다”는 속설이 현실로 확인된 장면이었다.

사실 이 후보를 향했던 네거티브 공세는 병풍뿐이 아니었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 100여 평짜리 호화빌라에 산다”, “이 후보 아들이 미국에서 원정 출산을 통해 애를 낳았다” 등의 공세가 줄을 이었다. 당시 이회창 총재와의 관계 때문에 이름 밝히기를 주저한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눈 깜짝할 사이에 원칙주의자, 신뢰의 공직자, 깨끗하고 강직한 후보 이미지가 사라져버리고 그는 부패 정치인에다 호화롭게 살아가는 귀족이 돼버렸다”며 “정책 제안 등 포지티브 선거 캠페인보다 네거티브 캠페인이 유권자들에게 훨씬 더 강하게 파고든다는 교훈을 얻었고, 이후 우리 대선에서는 네거티브 공격에 대한 수비력이 강화됐다. 진영 논리가 강해진 이번 대선은 더욱 수비가 강해져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 졸업, 사법시험 합격, 판사 생활, 감사원장 경력, 대권 도전의 문턱에서 부친을 여의고 상복을 입었으며 그 과정에서 강한 대권 결의를 다졌다는 점(이회창 후보도 2002년 두 번째 대권 도전을 한 달여 앞두고 부친 이홍규 옹이 별세), 자신을 기용한 집권 세력을 향해 용기 있게 각을 세웠다는 사실 등에서 최 전 원장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너무나 닮았다.

이런 점에서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회창이 걸었던 길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최 전 원장이 2002년의 비극을 희극으로 바꿔놓을 적임자로 꼽고 있다. 최 전 원장이 네거티브 공격에 시달리면서 결국 대통령 꿈을 날려버린 20년 선배의 전철을 밟지 않을 ‘철통 수비력’을 자신하고 있으니 대선 레이스에 가세했다는 것이다.

네거티브 공격에 대한 ‘철통 수비력’, 즉 최 전 원장의 도덕성은 문재인 정부가 확실히 인증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1월 2일 청와대에서 최 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 자리에서 “스스로 자신을 엄격히 관리해오셨기 때문에 감사원장으로 아주 적격인 분이시다.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를 건넸다. 엄격한 자기 관리에 대해서만은 문 대통령이 직접 합격점을 준 것이다.

병풍 의혹으로 무너져 내린 이 전 총재가 겪었던 네거티브 공세를 직접 최 원장에게 대입해봐도 최 전 원장의 수비력은 검증된다. 최 전 원장 집안은 유명한 병역 명문 가문이다. 그의 부친 고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은 6·25 전쟁 때 참전, 무공훈장 3차례 등 모두 6차례나 훈장을 받은 전쟁 영웅이다. 최 전 원장이 육군 법무관으로 3년간 복무한 것을 비롯해 최 전 원장 형제들 모두가 장교 출신이다. 최 전 원장 아들 2명도 모두 해군과 육군에서 각각 복무했다. 최 전 원장 임명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앞장서 병역 명문가 집안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최 전 원장은 재산도 18억원가량을 신고(지난 3월 기준)했는데, 서울 아파트 가격이 고공행진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서울 양천구 목동에 아파트 한 채를 갖고 있다)하고, 1986년 판사 임용 이후 30년 넘는 법관 생활, 그 이후에도 감사원장으로 재직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재산 부분도 네거티브 공세를 견뎌낼 만한 상당한 수비력을 갖췄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 시각이다.

실제로 윤 전 총장 주변을 둘러싼 이른바 X파일 논란에 대한 해명을 잇달아 촉구해온 여권은 공격 대상 1호 윤 전 총장의 재산에 대해서 네거티브 공격을 집중하고 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6월 30일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 아침]에 출연해 “주권재민의 국민께서 문제를 제기해놨다. 2000만원밖에 없던 검사가 어떻게 60억원 이상의 막대한 재산을 공개하냐”며 윤 전 총장의 재산에 의문을 제기했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 따르면 윤 전 총장은 모두 71억6900여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이 중 윤 전 총장의 재산은 예금과 보험 등 2억4484만원이었고, 나머지는 아내 김씨의 재산이다. 이를 두고 추 전 장관은 “윤 전 총장은 이미 검사 시절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별검사로서 ‘경제공동체’라고 한 바 있다”며 “본인도 역시 경제공동체의 입장에서 제대로 밝혀야 한다”고 따져 물었다.

2017년 12월 국회에서 열렸던 인사청문회. 감사원장 후보자로서 인사청문 무대에 선 최 원장에게 여당은 물론 야당 의원들까지 나서 “미담이 많네요”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그래서 정치권에서는 그를 두고 ‘까미남’이라는 얘기도 한다. 까도 까도 미담이 나온다는 의미다.

강골 기질 갖춘 ‘까미남’, 권력기관도 주저없이 감사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월 2일 청와대에서 열린 감사원장 임명장 수여식 후 최재형 감사원장과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사진:청와대 사진기자단
최 전 원장과 가장 절친한 친구여서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강명훈 변호사 얘기는 최 전 원장의 인간 됨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두 사람은 교회 친구이자 고교-대학교-사법연수원에서 함께 수학(修學)했는데 최 전 원장은 학창 시절을 보내는 동안, 그리고 사법연수원에 가서까지 다리가 불편한 강 변호사를 업고 다녔다.

강 변호사는 중학교 때까지 그의 어머니가 업어 등교시켰지만 이후 만원 버스를 타고 등하교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자 최 전 원장이 “내가 네 지팡이가 되겠다”고 나섰다. 두 사람은 나란히 1981년 사법고시에 합격했고 사법연수원에서도 최 전 원장의 ‘지팡이 역할’은 계속됐다. 당시 사법연수원 13기 동기들은 최 전 원장의 행동을 보고 모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사법연수원 13기로 최 전 원장을 잘 아는 성윤환 전 국회의원은 “언론에 나온 최 전 원장의 성품에 대한 보도는 과장이 아니다. 정말 연수원에서 강 변호사를 연수 기간 내내 업고 다녔다”면서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정치권에서 최 원장에 대한 러브콜이 많은데, 사람을 제대로 본 것”이라고 했다.

‘까미남’ 이야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최 전 원장은 두 아들을 입양했다. 두 딸이 각각 중학생·고등학생이던 때 생후 9개월 된 아들, 그로부터 6년 뒤에는 또다시 열 살 된 아들을 입양해 키웠다.

“아이들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랑이라는 웅덩이에 풍덩 빠져 자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이 고아원 같은 시설이나 위탁 부모에 의해 육아되는 것보다는 완전한 가정의 소속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입양이 권장돼야 한다.” 2011년 5월 [법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입양의 의미를 설명한 그의 말은 큰 울림을 던졌다.

‘까미남’이지만 감사원장 재직 시절 보여준 것처럼 강골 기질도 갖고 있다. 그는 감사원장 시절 기관운영 감사가 전무했던 국정원은 물론, 또 한 곳의 감사 성역이었던 검찰청에 대해서도 기관운영 실태 감사를 했다. 정권 핵심부를 겨냥한 월성원전 1호기 폐로 과정에 대한 전격적 감사, 그리고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됐다”는 결론을 도출해낸 것 역시 강한 남자 ‘강재형’을 잘 드러내는 부분이다.

최 전 원장은 6월 28일 감사원으로 출근한 뒤 원장직 사의 의사를 표명했는데 이때 매고 나온 넥타이 색깔이 빨간빛이었다. 국민의힘을 상징하는 색깔이어서 그의 넥타이는 큰 시선을 끌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감사원장직을 수행하기는 했지만 그를 아는 대다수 사람이 그는 보수 성향의 인물이라는 평을 하고 있다. 그가 빨간색 유니폼과 등번호 2번을 별다른 이의 제기 없이 달 것이라는 예측을 하는 것이다.

제3지대 체류 대신 국민의힘 직행 이유


▎2002년 11월 15일 후보 단일화를 위해 자리를 함께한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통령 후보.
정치 참여를 선언한 최 전 원장은 부친 고 최영섭 예비역 대령과 상의해 자신의 정치 행보 시동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6·25 전쟁 때 대한해협 해전의 영웅으로 불리는 부친의 유지를 이어받아 이를 자신의 정치 신념의 기초로 할 가능성이 크다. 최 전 원장은 7월 9일 부친 빈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몇 해 전 부친이 자신에게 준 글귀를 떠올리며 정치 참여를 선언한 현재의 결의와 연결했다. 최 전 원장은 감사원장에 임명되기 전날 부친이 건넨 ‘단기출진(單騎出陣), 불면고전(不免苦戰), 천우신조(天佑神助), 탕정구국(蕩定救國)’이라는 글귀에 대해 기자 질문을 받자 “지금 와서 제 처지와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긴 하다”고 말했다.

부친의 글귀는 “홀로 출진하니 고전을 면키 어려우나 하늘의 도움으로 난을 평정하고 나라를 구한다”는 의미다. 감사원장을 중도 사퇴하고 정치 참여 의사를 밝힌 가운데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복하고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현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부친이 강조했던 강한 안보의식, 애국의 가치를 내세워 이를 발판으로 정치를 시작한 그는 윤 전 총장과 달리 정치 개시 선언과 함께 강한 안보, 유능한 경제를 기치로 내걸고 있는 국민의힘으로 직행했다. 정치 철학이 분명한데 제3지대에 머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최 전 원장은 7월 15일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이준석 대표를 만나 전격 입당 의사를 밝혔다. 그는 “정권 교체의 중심은 국민의힘”이라며 “청년 위한 나라를 만들자”고 말했다.

최 전 원장의 입당에 국민의힘은 반색하고 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윤 전 총장도 좋지만, 대체재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2002년 대선에서 민주당은 네거티브 전략도 잘 써먹었지만, 노무현이라는 좋은 후보를 가진 동시에 월드컵 화제 인물 정몽준이라는 대체재를 잘 활용함으로써 대선판에서 이길 수 있었다고 국민의힘은 분석하고 있다.

정치 근육은 尹이 한 수 위, 역전 쉽지 않을 수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최재형(오른쪽) 전 감사원장이 7월 15일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숨겨진 진주’ 최 전 원장이 스스로 대선 링에 올라서는 것을 결심하면서 강력한 다크호스로 떠올랐지만, 보수 야권 여론조사 지지율 1위 윤 전 총장의 대세론에 대해 점수를 훨씬 더 높게 주는 사람이 여전히 더 많다. 우선 길을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닌 스스로 길을 내야 하는 정치판에서 윤 전 총장과 최 전 원장, 2명 모두 실전 투입 역량이 검증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상대와 싸우는 ‘정치 근육’은 윤 전 총장이 이미 검증을 받은 것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당내 대선주자 간 세력 모으기 경쟁 때문에 이름을 밝히기 어렵다는 국민의힘 한 3선 의원은 “최 전 원장은 정말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지만 이번 대선은 ‘누가 어떤 비전과 콘텐트를 가졌느냐’로 붙는 싸움이 아니다.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나가야 하는 판”이라며 “윤 전 총장은 ‘반(反)문재인’을 외치는 국민의 열망에 힘입어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고 이미 큰 정치 세력을 만들었다. 최 전 원장이 근처까지 따라는 오겠지만 뒤집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선 캠프에 몸담아본 경험이 있는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도 “최 전 원장 등판은 너무 늦었다.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나 월성원전 감사를 알지, 절대다수는 잘 모른다. 최 전 원장의 인지도가 굉장히 낮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보수의 핵심 지지층인 대구·경북(TK) 최근 여론조사([매일신문] 7월 7일 발표)에서 윤 전 총장이 이미 40%를 넘었고 최 전 원장은 4.9%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선택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 뒤집기는 늦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윤 전 총장 대세론과 관련,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가 격돌했던 2007년 제17대 대선 경쟁을 사례로 들기도 한다. 2002년 대선 때 네거티브 공세에서 큰 재미를 봤던 민주당은 이명박 후보에 대해서도 맹렬한 네거티브 공세를 취했다. “주가조작 사건 등에 연루된 BBK와 이 후보가 관계돼 있고 이 후보가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고 부인한 자동차 부품 회사 다스가 실제로는 이 후보 것이 맞다”는 등의 주장을 민주당이 줄기차게 내놓았다.

하지만 5년 전 공격보다 더 세면 세지, 약하지는 않았던 맹렬한 네거티브 공격에도 불구하고 2007년 대선에서는 이 후보가 쏟아진 의혹 제기를 물리치고 대권을 거머쥐었다. 그것도 역대 대선에서 가장 큰 표차로 정동영 후보를 물리쳤다.

국민의힘 한 초선의원은 “윤 전 총장에 대해 당내 비토 세력이 있고, X파일 등의 네거티브 공격도 적지 않지만, 반드시 이길 후보를 선택하겠다는 전략적 투표 경향이 보수 지지층 사이에서 점점 강해지고 있다”며 “윤 전 총장은 보수 지지층이 지지를 철회해야 할 정도의 결정적 흠결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지금 정도의 네거티브 공격으로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며 최 전 원장의 기세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수 있다고 바라봤다.

-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koala@imaeil.com

202108호 (2021.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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