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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 기사 언론사는 파산”… 윤석열, 언론중재법은 반대한다면서 왜? 

 

이화랑 월간중앙 인턴기자
■ ‘파산’ 언급에 파문 확산되자 尹 ‘언론중재법 반대’ 재천명
■ 언론단체·전문가 “무지와 내로남불, 불안감의 표현” 비판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2월 12일 전남 순천역에서 정책 공약 홍보를 위한 ‘열정열차’에 탑승해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언론사 파산’ 발언이 언론중재법에 찬성하는 의도로 읽히면서, 도마에 올랐다. 논란이 커지자 윤 후보 측은 “언론중재법에 반대하는 입장”이라며 수습에 나섰지만 대선후보로서 민주주의 핵심 기능인 언론에 대해 사법 시스템을 통한 ‘파산’을 언급한 것은 위험한 인식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 후보는 2월 12일 “진실을 왜곡하는 기사 하나로 언론사 전체가 파산하게 할 수 있는 강력한 시스템이 자리 잡는다면, 언론을 자유롭게 풀어놔도 공정성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후보는 이날 전남 순천역을 방문한 뒤 국민의힘 정책 홍보 열차인 ‘열정열차’에 탑승해 여수역으로 향하던 중 ‘공영방송 지배 구조 개혁 방안’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미국 같은 경우는 규모가 작은 언론사는 허위기사로 회사가 가는(파산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꼭 그래야 된다는 게 아니라 그런 정도로 언론사와 기자가 보도할 때는 막중한 책임을 갖고 해야 한다”며 “언론 보도의 진실성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거기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이라든가 이런 사법절차를 통해서 허위보도에 대해서 확실하게 책임 지우는 일을 한 번도 해온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언론 책임을 강조한 발언이지만 허위·조작 보도에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언론중재법)에 찬성하는 것처럼 비치며 언론 통제 우려가 일었다. 윤 후보는 지난해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언론중재법 개정안 국면에서 언론의 자유를 강조하며 반대 입장을 폈던 바 있다.

비판이 쏟아지자 국민의힘은 수습에 나섰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같은 날 “후보의 발언 취지는 끝까지 법적 절차에 의지할 수 있는 상황이 됐을 때의 원칙론적인 주장”이라며 “민주당에서 주장하는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거나 제약하기 위한 여러 강화된 조치는 후보도 전혀 동의하는 의견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윤 후보도 2월 13일 자신의 전날 발언이 언론사 파산에만 초점이 맞춰져서 보도됐다”면서 “저는 언론 자유를 조금이라도 훼손시키려는 시도에 대해선 강력하게 반대한다고 분명히 말했다”며 “(언론에) 책임을 어떻게 묻느냐는 것은 판사의 판결과 결정으로 하는 것이지, 대통령이나 정치 권력자나 이런 정치적·행정적 차원에서 언론에 대한 책임 추궁은 원칙적으로 반대한다”고 말했다.

언론계에서는 윤 후보 발언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단순 해프닝성 발언으로만 볼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기자협회·방송기자연합회·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한국영상기자협회·한국PD연합회 등 언론현업단체 6곳은 15일 발표한 공동 성명에서 윤 후보의 언론관에 대해 “무지와 내로남불로 점철된 언론관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언론에까지 무차별적으로 들이대는 그의 사법 만능주의적 태도”라며 “’언론 파산’을 입에 담는 인식으로는 언론 자유가 질식하고, 권력 감시가 불가능한 과거회귀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2월 12일 전주역에서 ‘열정열차’에 탑승해 취재진과 인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피해구제법’ 개정 반대는 반대 위한 반대였나”

민주언론시민연합도 2월 14일 성명에서 “그의 발언 취지대로라면 언론보도에 공정성 문제가 불거질 경우 국민의힘이 강력하게 반대한 언론중재법과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강력한 제재를 가하겠다는 것으로, ‘언론피해구제법’ 개정을 ‘언론재갈법’이라며 반대한 것이 결국 반대를 위한 반대였음을 스스로 증명한 꼴”이라고 지적했다.

학계에서는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본인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에 불만을 표시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월간중앙 전화 통화에서 “지난 1년 내내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반대해왔던 윤 후보가 이런 발언을 한 것은 큰 문제”라며 “공인으로서 자신의 인격권에 대한 불안감의 표현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정치인·기업인뿐만 아니라 고위공직자의 경우 언론에 의한 명예훼손이나 일반적인 인격권 침해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다. 의혹이 제기되면 입증해야 할 책임이 있기에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미 언론 중재 제도가 있고 명예훼손이 형사처벌 대상이기에 민사까지 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다. 더불어 민사소송 등 수많은 개인 피해 구제 방식이 있는데도 그런 발언을 한다는 것은 처벌을 강하게 하고 싶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바라봤다.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도 월간중앙 전화 통화에서 윤 후보가 ‘파산’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점에 주목하며 “(지켜야 할) 금도를 깨버렸다는 점이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진단했다. 유 교수는 “언론·미디어 관련해 법이 일부 개정되거나 추가될 필요성은 있지만, ‘파산’이라는 말에서 (윤 후보의) 언론관이 드러나는 것 같다”며 “본인 입맛에 맞으면 공정 언론이고, 맞지 않으면 파산시켜야 할 나쁜 언론이라는 시각이 극명하게 보인 느낌이다. 이건 굉장히 무서운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 이화랑 월간중앙 인턴기자 hwarang_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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