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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이문열 작가가 본 ‘윤석열 시대 대한민국’ 

“윤석열, 본인이 믿은 방향대로 가라”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헌법질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확립이 최우선 과제”
“박빙의 표차로 당선된 윤 당선인 집권 기반 의외로 취약”
“애매하면 몰라도 명백하고 확실한 비리는 묻히기 어려워”


▎이문열 작가는 “윤석열 당선인의 일성(一聲)이 자유민주주의라는 건 준비되지 않고서는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이문열 작가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지난 1월 따로 만나 대통령 선거 전반에 대한 의견을 교환할 계획이었다. 두 사람은 월간중앙이 준비한 대담 기획에 참여할 의사가 있었고 일정 조율을 거의 끝냈다. 윤 후보는 이 작가에게 대선 관련 조언을 구하고자 했고 이 작가 역시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만남은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 이준석 대표의 거취 논란 등 국민의힘 내부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시기를 놓치고 끝내 무산됐다. 그 뒤 서로 만난 적은 없지만 두 사람은 여러 차례 전화 통화를 주고받으며 자유민주주의 신념, 시장경제, 사유(私有)의 존중 등에 관해 정신적 교감을 나누어온 듯했다.

이 작가는 문학적 영향력과 도서 판매량에서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문인이다. 그는 이념적 색채를 드러내길 꺼려 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대의 병폐를 저격해온 정통 우파의 지성(知性)이기도 하다. 나름의 눈썰미로 벌써 오래전부터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주의 깊게 살펴봤다는 이 작가는 더 망설이지 않고 이번 대선과정에서 대한민국 대통령감으로 공개 지지하게 됐다고 밝혔다. 3월 11일 경기도 이천 설봉산 자락의 문학사숙 ‘부악문원’에서 진행된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이 작가는 “정권은 바뀌어야 했고, 실제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보수 진영의 유력 문인 중에는 처음으로 윤석열 후보 지지를 선언하셨지요?

“윤 후보는 대선 과정에서 민주 공화주의, 사유(私有) 시장경제, 현실주의적 통일외교 등 자유민주주의 신념에 기초한 정책과 노선을 내놓았습니다. 얄팍한 탈(脫)이념이나 정체 모를 중도 지향에서 대담하게 벗어나 우리나라가 갈 길을 정확하게 제시한 후보였고, 문재인 정권의 부당한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자기의 길을 간 결기 있는 정치인이었지요. 제왕 같은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수사를 전광석화처럼 밀어붙이는 뚝심과 일관성도 돋보였지만, 변신 과정에서 기미를 포착하고 진퇴를 결정하는 방식도 볼 만한 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출정식 때는 좌파 문단의 거물들을 망라한 듯한 지지성명이 있었는데, 윤 후보 쪽에는 단 한 사람도 지지성명이 없더군요. 그래 마침 다른 일로 인터뷰 나온 신문 지면을 통해 혼자만이라도 공개적인 지지를 밝히기로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독선을 넘어 폭압적”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월 10일 새벽 국민의힘 개표상황실을 찾아 꽃다발을 받은 뒤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멀리서 지나쳐 보는 윤석열 당선인은 어떤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던가요?

“선거 유세가 시작되기 전 텔레비전 화면이나 신문 보도 사진으로 볼 때는 건들건들하고 대충대충 갈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막상 유세가 시작되어 상세하게 드러나는 걸 보니 그렇지는 않은 것 같더군요. 세밀하고 정심(精深)한 그런 데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통화가 연결되어 얘기를 나누다 보니 변화에 대처하는 게 기민하고 때로는 발상의 번득임 같은 것까지 느껴지더군요. 이를테면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 처리나 너무 일찍 보일 것 안 보일 것 다 드러내버린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일탈 또는 저항 처리 문제 같은 데서. 어쩌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통합에서까지. 하하, 이거 너무 지나치게 당선인을 치켜세우기만 하나? 내가 직접 들은 거라고는 전화기 저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뿐이었는데. 남 다 보는 텔레비전 화면이나 일간지 행간에서 읽은 것뿐인데. 그렇지만 꿈보다 해몽이 좋은, 질 낮은 아첨으로는 여기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전처럼 전화 한 통이라면 모를까, 달리 만날 일도, 다시 의논할 일도 없을 듯하니.”

문재인 정부 집권 5년을 어떤 마음으로 관전하셨는지요?

“젊을 때부터 정치에 관한 신문 칼럼을 가끔 써서 보수우파로 몰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정치에 관여한다는 의심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003년에 한나라당 국회의원 추천심사위원을 맡게 되면서 드디어 보수정당의 파트론(Patron, 후원자)으로 확정되어 그 뒤 몇 번 보수당의 정치적 결정에 관계된 일에 이따금 불려나감으로써 보수 문인에서 보수꼴통 소리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어떤 때는 준(準)당원같이 참여할 때도 있었지요. 하지만 일흔이 넘고부터는 정치적 결정에 끼어드는 일이 싫더군요. 실제로 내 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나 또한 아는 척하지 않겠다는 기분이 들어 되도록 정치 얘기도 피했습니다. 내게는 이제 길고도 희미한 세월이 좀 있을 뿐이라는 기분에서였지요.”

그사이 심경의 변화를 겪으셨군요.

“선거가 가까워져 오면서 아무래도 그냥 보아서는 안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지난 5년 문재인 정부가 독선을 넘어 폭압에 가까울 정도로 진행시킨 ‘인민민주공화국화’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수입한 장비까지 동원해 휴전선 지뢰를 제거한 것에 이어 북(北)에서 남(南)으로 오는 길의 장애물을 줄이고 바다에 처져 있던 침투 방지 철망도 걷어냈으며 이루 다 들 수 없을 정도의 군비 축소와 무장 해제를 단행하였습니다. 다시 한번 더 이 땅에 지난번과 비슷한 정권이 들어선다면 태극기, 국가는 물론 대한민국 자체가 존립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문재인 정권을 계승할 정권의 대통령 후보는 문재인보다 더욱 정체 모를 이데올로기를 지닌 듯했습니다. 여러 해 전 어떤 선거에서 언뜻 들쳐 보인 ‘경기동부연합’과 밀접하다는 의혹만 있을 뿐, 도무지 이념적 좌표를 드러냄이 없이 선심 공세만 퍼부어댔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를 계승한 정권이 수립된다면 다시 5년 뒤 이 땅이 어떻게 되어 있을지는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것입니다. 태극기, 애국가는 물론 없어지고, 극단 하게는 보트로 망망대해를 떠돌거나 결박되어 인민재판에 끌려나갈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노인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나도 그런 기우에 빠진 노인일지 모릅니다.”

이명박·박근혜 수감 오버랩 되는 대선 표차


▎2008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그런데 선거 결과 윤석열 후보가 아슬아슬한 표차로 승리를 얻었습니다. 초박빙의 표차로 끝난 대선 결과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결과적으로 국민의힘이 승리한 셈이지만 마음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아요. 이 승리를 승리라고만 할 수 없는 기억 때문이지요.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530만 표 차로 당선했지만, 광우병 파동으로 곤욕을 겪었습니다. 단 한 사람의 희생자도 없었던 광우병을 앞세운 시위는 낭설, 허위 소문에 근거해 서울 도심을 마비시키고 나라를 반신불수로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잘못된 정보를 퍼뜨린 주역(특히 보도한 방송국 프로듀서)이나 시위의 주모자들에게 제대로 죄를 묻지도 못했지요. 이명박 정부는 그 일로 2년 넘게 허송세월하면서 몰락의 길로 바로 접어들었습니다.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108만 표 차이로 이겼지요. 1987년 개헌 이후 과반 득표에 최초로 성공한 박근혜 대통령이었지만 곧 해난 사고인 세월호 사건에 발목이 잡힌 데다, 3년을 끌려다니다가 최순실 사건이 터지면서 탄핵으로 치달았잖아요.

윤석열 당선인은 고작 24만7077표 차이로 당선했어요. 0.73%p 차로 당락이 갈라진 것이지요. 좋은 결과를 앞에 두고 말하기 싫으면서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게 바로 이런 것이지요. 득표 격차를 1%도 채 못 채운 승리를 안고 출발하는 윤석열 당선인의 집권 기반이 그만큼 취약할 수 있어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윤석열 정부를 반대하는 이들이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처럼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정권을 흔들기 시작하면 버텨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국회는 야당이 될 민주당이 과반 훨씬 넘는 의석을 차지하고 있지요. 거기에 굽히지도 펴지도 못하는 지역감정에 골수 좌파들이 요사를 부려 앞에서는 승복하는 척하면서도 나중에 뒤에서 뒤통수를 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요.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감됐던 현실이 그 배경을 잘 말해줍니다. 이번 대선 결과를 보니까 더욱 으스스하게 그 유사한 사이클도 떠올리게 됩니다.”

“검찰 공화국, 검찰 독재? 이해하기 어려워”


▎2019년 10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 요구 집회에 수많은 시민이 몰렸다.
윤석열 당선인은 선거 운동 과정에서 ‘민주당 사람들은 제가 대통령이 되면 나를 탄핵할 수도 있다고 떠들고 다닌다’고 했지요.

“민주당이 마음을 먹고 한다면 한 1년 정도 이리저리 정권을 못 견디게 만들어놓고, 국민의 생각에 탄핵도 좋다는 기분이 들 때라면 확 움직일 거고, 그러면 가능할지도 모르죠.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헌법기관이고, 의원 정수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한다면 탄핵안은 가결되는 것 아닙니까.”

작가님은 언젠가 중국 고전을 인용해 ‘나라가 망하기 전에 말이 망한다’고 하셨는데요. 정치적 동기에 따라 동일한 단어에 다른 의미를 담기 시작하면서 말의 힘, 언어의 역할이 위축되는 것 같습니다. 억지와 궤변, 협박, 모순이 어느 순간인가 참신함, 새로움으로 포장되고 둔갑하는 시대 같기도 합니다.

“정치권은 사람이 어떤 말을 하면 일단 덮어씌우고 봅니다. 이런 걸 프레임 걸기라고 하나요? 선거운동 당시 윤석열 후보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가정해 ‘킬체인이라고 하는 선제타격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어요. 이를 두고 민주당 등 여권에서는 위험한 전쟁 도발 주장, 호전주의자, 전쟁광으로 윤 후보를 몰아붙였지요. 사실 북한이 쓰는 선제타격과 우리가 말하는 선제타격은 다른 의미를 담고 있지요. 북한이 핵을 쏠 거라는 게 명확해질 때 우리가 나갈 길이 없지 않으냐, 그때는 선제타격밖에 없다는 말인데 그걸 호전적인 사람으로 선전해요. 전후 사정은 싹 떼어내고 사람을 전쟁광으로 만드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것이죠. 진보 진영은 그런 덮어씌우기, 낙인찍기에 능하고 그걸 자주 구사해요. 대장동 몸통이 윤석열이라는 주장이 말이 되는 겁니까. 형식논리로는 어떻게든 꿰맞출 수는 있겠지요. 그러면 미리 시간을 충분히 주고 진위를 판단케 해야 하는데 선거 며칠 앞두고 ‘대장동은 윤석열이 다 했다’는 식으로 폭 덮어씌우는 것은 정말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아마 민주당은 그 주장으로 점수를 적잖이 까먹었을 겁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면 검찰 공화국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당선인과 같이 검찰에 몸담았던 인사들이 힘깨나 쓰는 사람이 될 거라는 추측은 가요. 인간적인 결속력도 상당하겠죠. 그런데 그게 검찰 공화국, 검찰 독재 이런 형태가 될 것인지는 저는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제가 검찰 내부의 사정을 잘 모르기도 합니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정치보복을 했다고 세상은 해석을 하나요? 저는 그렇게 해석하지 않거든요. 탄핵이 돼서 왔으니까 법 적용을 한 것 아닙니까. 다만 좀 이상한 게 있다면 탄핵 과정의 (박근혜- 최순실) 경제 공동체 같은 논리죠. 이게 나중에 말썽이 되고 좀 전에 언급한 정치보복으로 될 수도 있는데, 그러자면 그전에 문재인 정권 사람들 혹은 그 앞의 진보 진영 사람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뭘 (보복 같은 것을) 받아야 했지 않나요. 당시 진보 진영은 그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선거에서만 졌지 특별한 불이익을 받은 적은 없지 않나요. 그래서 보복이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보복이라는 개념은 그 전에 당했기 때문에 한다는 것인데 문재인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에게 당했나요? 특별하게 박 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을 잡아넣거나 그런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약간의 지나침 있다고 영부인 역할 없애서야”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가 문재인 정권에 대한 적폐청산 수사에 나서겠다고 밝히자 더불어민주당은 정치보복 선언이라며 발끈했습니다. 정권의 비리와 불·탈법을 벌하고 바로잡는 것과 정치보복의 경계를 어떻게 가를 수 있는지요?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다고 해도 지금 수사에 투입된 인력은 아마도 문재인 정부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겠지요. 하여간 사안 자체가 애매하거나 불확실한 데가 있으면 모르지만 지금 일반적으로 얘기되고 있는 것처럼 명백하고 확실한 것이라면 그냥 묻히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윤 당선인은 영부인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제2부속실도 두지 않겠다고도 했지요. 윤석열 정부에서 김건희 여사의 활동 반경은 역대 정부의 영부인에 견줘 대폭 축소될까요?

“미국이나 프랑스와 같이 대통령 중심제 국가의 퍼스트레이디라는 자리는 명확하고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나요? 우리가 제도는 대통령 중심제를 취하면서 퍼스트레이디 기능을 없애겠다는 건 좀 이상해요. 정치의 많은 부분은 전례, 관례가 지배합니다. 이분(김건희 여사)이 처음 영부인이 된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에는 10명이 넘는 영부인이 있었습니다. 약간의 지나침이라든가 약간의 일탈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역할을 없애라는 건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우리는 영부인 역할에 대한 기대를 일정하게 가지고 있지 않나요. 외교에서도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은 엄연히 있는 거고 외국을 가더라도 의전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윤석열 정부가 감당해야 할 시대적 과제를 짚어주신다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로 세우는 게 일차적 과제 아닐까요. 윤 당선인이 선거운동 과정에 공정과 상식,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지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 같은 기본적 가치가 득표 전략에 큰 효과를 가져왔을 겁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기본적인 가치에 대한 입장을 제대로 밝힌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늘 돈을 퍼주고 적폐를 청산한다고는 했지만, 남북 분단 상황에서 정권의 이념적 지향에 대해서는 함구하다시피 했지요. 국민에게 뭘 물은 적도 없지만, 우리가 물어본 걸 대답한 적도 없었습니다. 내가 가장 견딜 수 없었던 부분입니다. 그건 이재명 민주당 후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안보 현안과 관련해서도 개별 정책에 관해서는 얘기해도 북한 자체에 대한 언급은 저는 거의 듣지를 못했어요.”

이번 대선에서도 보수와 진보로 나라가 둘로 나뉘었습니다. 국가적 통합 과제는 성과를 낼 수 있을까요?

“윤 당선인이 잘 알고 있을 것 같습니다. 선거운동 기간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윤 당선인도 다른 지역보다 호남에 자주 간 걸로 들었습니다. 특히 윤 당선인은 선거운동 당시 ‘호남이 잘돼야 영남이 잘되는 것이고 대한민국이 잘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에 국가통합의 메시지가 압축돼 있다고 봅니다. 어느 한쪽이 잘되면 다른 쪽이 소외된다는 편견이 지배하는 대한민국에서 ‘플러스 섬’ 사고가 가능하다는 걸 강조한 것이니까요. 윤 당선인은 당선 직후 지역균형발전TF를 구성했다지요. 수도권으로 모든 게 쏠리다 보니 중앙과 지방의 양극화는 날로 심화하고 있습니다. 동서뿐만 아니라 남북 격차를 해소하고 동반성장을 꾀하는 구상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래서 윤 후보가 호남 득표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외면하거나 나 몰라라 하지는 않을 겁니다. 윤 당선인 본인이 믿는 방향대로 가면 되리라 생각해요.”

“단일화 합의, 일관성을 가지는 게 중요”


▎이문열 작가는 1985년 둥지를 튼 경기도 이천 부악문원에서 30년 넘게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펼쳤다.
국정의 동반자라 할 윤석열 당선인과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은 호흡을 잘 맞출 수 있을까요? 공동정부를 운영함에 있어 위기 상황도 올 텐데요, 어떤 점에 유의하고 인내해야 할까요?

“제가 이런 문제에는 자신이 없어서요. 그래도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제 두 사람이 믿기로 했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믿는 수밖에 없는 거지요. 설령 일이 생기더라도 어떤 수가 나오겠지요. 만약 윤석열 후보가 후보단일화를 앞두고 제게 ‘받는 게 좋으냐 안 받는 게 좋으냐’를 물어왔다면 대답을 못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단일화) 하지 말라고 했을 거예요. 지금도 단일화의 손익이 불분명하지 않나요. 어쨌거나 한번 내려진 결정에 대해서는 다른 말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일관성을 가지는 게 중요합니다.”

곧 떠나게 될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는 어떤 감정이 교차하는지요. 지난 5년 동안 작가님은 문 대통령의 태도와 처신, 언행이 이해하기 어렵다며 많은 답답함과 고통을 토로하셨지요? 최근 유튜브에선 “그때(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같은 분위기로 탄핵한다면 이 사람(문 대통령)이 탄핵할 게 더 많을 것”이라고 하셨는데요.

“늘 얘기해왔지만, 이 정권은 국민이 궁금해하는 것에 관해 설명을 안 해줘요. 그렇게 탈(脫)원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원전 중심의 발전 정책을 폐기한다고 했지요. 그런데 갑자기 원전을 주력 기저 전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입장을 바꾸더군요. 탈원전이 시대의 흐름이라던 정부가 하루아침에 원전이 주력이라고 돌아서면 어떤 영문인지 설명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사람에게 안정감이라는 것은 예측 가능성에서 생기는 겁니다. 아무리 안 좋은 일이더라도 예측 가능하면 준비가 되고, 전쟁 같은 경우도 끔찍하지만 날 수 있다고 미리 생각하면 막상 터져도 올 게 왔구나 하고 대처할 수 있는 겁니다. 국민으로 하여금 예측 가능하지 않게 하고 준비를 못하게 하면 그건 아주 안 좋은 일입니다. 문 대통령 지지층도 답답해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제가 듣기로는 2020년 총선 관련 소송이 120건에 달한다고 해요. 선거법 관련 재판은 원칙적으로 6개월 안에 매듭지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소송 절차에 들어간 게 20건 안팎에 불과하다고 하더군요. 100건 정도는 아직 손도 안 대고 있어요. 벌써 2년이 다 돼가는데 이렇다는 건 좀 이상하지 않아요? 선거법 재판을 진행해야 할 대법원이 여권에 장악돼 있으니 그런 거 아닐까요.”

집권여당이 될 국민의힘도 심기일전해야 하지 않을까요? 불과 1년 전만해도 집권당이 되리라는 기대는 못한 게 사실이지요.

“국민의힘이 더 큰 일이에요. 그래도 여당은 일사불란함은 있어요. 그게 나쁜 짓이든 좋은 짓이든 간에 일사불란하게 그나마 형식을 맞추는데, 야당은 그것도 못하는 경우가 많지요. 모르겠어요. 예를 들면 당의 움직임, 당의 운영 양식에서도 말이죠. 이준석 대표만 봐도 대선 국면에서 독자적 언행으로 당내 분란을 일으키는 등 당이 어수선했었지요. 또 당대표와 경남지사를 지내고 대통령이 되겠다고 본선과 경선에 나섰던 홍준표 의원 같은 이는 다시 대구시장에 출마할 것처럼 말하고 있어요. 본인이 절차에 따라 경선하겠다면 막을 길은 없겠지만 우스운 일이죠.”

“내 문학 인생의 마지막 결정판”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불멸] 개정판 교정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는 이문열(오른쪽) 작가. ‘죽어 천년을 살리라’라는 제목으로 바뀐 소설 [불멸] 교정본.
이 작가는 2019년 40여 년을 함께 호흡해온 민음사를 떠나 알에이치코리아(RHK)에 둥지를 틀고 아흔 권에 달하는 작품 전집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이 작가는 기자가 부악문원을 찾은 이날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 [불멸](2010년 출판) 개정판의 교정을 막 끝낸 참이었다. 그는 소설 [불멸]에 들인 엄청난 공력에 비해 독자들에게 잘 다가서지 못한 점을 안타까워했다. [불멸]은 제목을 바꿔 [죽어 천년을 살리라]로 출간된다. ‘죽어 천년을 살리라’는 중국 고전에서 따온 구절이다. 안중근 의사가 의거를 일으키고 일제에 의해 숨을 거두자 한국과 중국의 숱한 명사들이 그 순국을 애도하는 만시(輓詩)를 지었다. 그중 당대 최고 문필가 두 사람이 ‘죽어 천년을 살리라’는 한시의 구절을 만시에 인용했었다고 한다.

건강은 좀 어떠신가요?

“요즘은 많이 걷는 편입니다. 집 주변에 설봉산이라고 있는데 하루에 거의 10㎞ 가까이 걸어요. 두 시간 이상 걸리죠. 그렇게 한 지가 한 1년 반 돼갑니다. 굉장한 효과를 보고 있어요. 요사이 컨디션이 가장 좋은 상태입니다. 술은 거의 안 하고 있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할까. 그것도 막걸리 두 병을 넘기지 않으려고 해요.”

즐기던 약주를 멀리하면 사는 재미가 덜할 것 같습니다만.

“이제 재미가 없을 나이가 됐습니다. 75세면 요즘 나이라 치더라도 그렇게 적은 것도 아니죠. 옛날 같으면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했지요. 요즘은 이 나이가 흔해져서 그렇긴 하지만 아무래도 이런 것은 있어요. 어떤 우울함이나 초조함 같은 게 있는 것이 기억력도 예전만 못하고 감수성도 깊이나 풍성함을 갖출 수가 없어요. 그냥 모든 게 심상하고 몽롱할 때도 있지요. 시간은 또 빨리 지나가지요. 하루가 뭘 했는지 모르게 지나가버립니다. 이렇게 사라지고 잊혀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요즘은 주로 어떤 일에 집중하십니까?

“아시겠지만 제가 40년간 함께했던 출판사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내 일생의 책이 다 옮겨가는 것이지요. [삼국지] [수호지] [초한지] 서른 권 외에 내 작품집이 한 예순 권 돼요. 그렇게 아흔 권을 출판사를 옮겨 책을 새로 내니까 제가 책을 들여다보고 교정하는 것으로 마지막 결정판이 되는 셈이에요. 지난 2년 동안 줄곧 제 책들을 검토하고 쓴 글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실망도 하고 감탄도 하면서 그런 인연을 보내고 있어요. 오늘은 마지막 책 교정을 보고 있는데 마지막이어서 그런지 애착을 갖고 오래 봤습니다.”

- 글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신인섭 기자

202204호 (2022.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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