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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특집] 87년 체제 종식을 위한 긴급 제언 (5)개헌 

제왕적 대통령제는 단단한 널빤지, 지금이 바로 그걸 뚫어야 할 때 

현행 헌법 대통령에 우월적 권한 부여… 권력 남용 제어 못해
갈등 양상 크고 갈등 피로도 높은 사회에는 분권형 모델 절실


▎새 정부 출범을 즈음해 개헌의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들이 동물로 시작해서 식물로 막을 내리는 원인은 사람이 아닌 제도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진은 국회 본회의장과 제헌의회 의원 부조 및 대한민국헌법 전문 동판 다중촬영.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는 사투를 벌이는 고지 탈환전이나 다름없다. 그 이유는 소위 ‘87년 체제’라는 5년 단임제,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구조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87년 체제를 바꾸는 개헌이야말로 우리 정치 개혁의 첫 번째 과제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왜 그 어려운 헌법 개정을 하려고 하는가?’, ‘헌법을 개정하려는 필요성과 당위성은 있는가?’, ‘혹여 정략적 의도는 없는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1919년 1월 28일 뮌헨대에서 독일의 유명한 사상가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 정치(PolitikalsBeruf)’에 대해 강의하면서 ‘정치’를 이렇게 말했다. “정치란 열정과 균형감을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는 작업이다. 만약 지금까지 불가능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계속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가능한 어떤 것도 성취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도자·영웅이 아니어도 좋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때다.”

우리나라 정치의 근본 문제점인 ‘제왕적 대통령제’야말로 베버가 말하는 단단한 널빤지가 아닐 수 없다. 불가능해 보이는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의지와 도전정신이 지금 정치권에 필요한 때라고 본다. 그렇다면 왜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1. 이론적 측면에서 본 권력구조 개편의 필요성

먼저, 헌법 이론적 측면에서 우리나라 권력구조의 문제점을 살펴보면 대통령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집중돼 권력기관 상호 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심각히 훼손되고, 결과적으로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도 미흡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현행 헌법 자체가 대통령 한 사람이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게끔 설계돼 있기 때문에,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권력 남용으로 인한 여러 폐단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9차 개헌 이후 역대 우리 대통령의 경우만 보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는 헌법 이론적 측면에서 볼 때 권력구조 개편 문제를 인물 차원이 아닌, 제도 차원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충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먼저, 현행 헌법이 ‘견제와 균형의 원리(Principle of Checks And Balances)’에 충실한지를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국가권력의 집중을 방지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분할해 상호 견제하게 함으로써 균형을 유지하는통치 조직상의 원리”로 정의되고 있다.

몽테스키외에게서 비롯된 고전적 ‘삼권분립 이론’이 오늘날 다원화된 사회에서 적용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있지만, 그럼에도 현대 국가의 권력구조하에서도 변함없이 견지돼야 할 헌법상의 원칙이 있다. “권력의 집중이 권력남용을 초래하고, 권력이 남용되면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될 위험성이 크다. 따라서 권력을 여러 국가기관에 분산시켜야 한다”는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원칙에 비춰볼 때 우리 헌법은 외견상 입법·사법·행정이라는 전통적인 3분법을 취하며 권력분산을 통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도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헌법에 삼권분립이 명시돼 있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은 입법·사법·행정 모두를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대통령은 여당의 실질적 보스로 의원들에 막강 영향력

첫째, 대통령의 입법부에 대한 우위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미국과 달리, 법률안 거부권뿐만 아니라 법률안 발의권도 갖는다. 본래 법률안 거부권은 법률안 발의권이 대통령에게 부여되지 않았기 때문에 허용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헌법은 대통령에게 입법권의 핵심적 요소인 법률안 발의권을 주저 없이 양도하고 있다.

특히, 대통령이 여당 국회의원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여당의 실질적인 보스 역할을 하는 우리의 정치 현실과 결합하는 경우, 대통령의 입법부에 대한 권한은 극도로 강화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대통령 인사권에 대한 의회의 견제장치로 국회 청문회제도가 도입됐으나, 장관 임명에 대한 국회의 동의 권한이 없기 때문에 임명권자인 대통령은 국회 청문회 결과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여론에 신경을 더 쓰는 경우가 많다.

둘째, 대통령의 사법권에 대한 영향력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 대해서도 임명권 또는 지명권이나 예산편성권 등을 통해 제도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즉, 국회의 동의를 필요로 하긴 하나 실질적으로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대통령이 임명하고, - 대법관의 경우 대법원장의 제청을 요구하나, 이 역시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될 여지가 대단히 크다. - 헌법재판관의 3분의 1에 대한 지명권도 가지고 있다. 또 헌법상 보장된 제한 없는 ‘사면권’을 통해 사법부 재판을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셋째, 대통령의 행정권 통할 권한이다.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의 행정권 통할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헌법이 ‘기관 내 견제와 균형의 원리’로 설계해놓은 장치들이 유명무실하다면 이 부분 역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현행 헌법하에서 국무회의는 대통령 의사결정의 ‘절차적 정당성’을 담보하는 장치다. 그런데도 국무회의가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조절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의결기관이라기보다 단순한 심의기관에 불과하다는 점은 ‘정부기관 내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무색하게 한다.

이처럼 현행 헌법이 대통령에게 입법·사법·행정 영역 등에서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해 국정 조정자의 역할을 강화한 것은 국정운영에서 구심점을 형성하고 효율성을 추구하며 헌법기관이나 국가기관 간 갈등이나 대립의 발생을 사전에 해소하라는 취지이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결국, 현행 헌법은 원론적으로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따른 권력기관 상호 간의 권력분립을 선언하고 몇 가지 장치를 마련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대통령에게 입법·사법·행정을 초월하는 우월적 권한들을 동시에 부여하고 있어, 제도적으로 대통령의 권력남용을 제어하는 데 효과적으로 기능하고 있지 못하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다.

결국 문제의 원인은 사람 아닌 제도


▎지난해 12월 7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국민주권·지방분권 ·균형발전을 위한 개헌국민연대 개헌안 발표·기자회견에서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오랜 기간 정치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의 하나는 “국회만 들어가면 왜 싸우는가?”, “국회의원만 갈아치우면 정치 잘 되겠지”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사람 바꾼다고 정치가 나아진다고 보는 것은 어쩌면 순진한 생각일 수 있다. 정작 문제는 사람보다도 제도, 구조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다. 현행 헌법 자체가 대통령에게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게끔 설계돼 있기 때문에,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권력 남용으로 인한 각종 폐단에 노정될 수밖에 없다. 이는 달리 말해 현재 우리 정치의 문제는 사람의 문제보다 제도 자체의 결함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고, 따라서 권력구조 개편 문제는 인물 차원의 접근보다도 제도 차원의 접근을 필요로 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제도론적 접근은 이론적으로도 뒷받침되고 있다. 흔히 민주주의의 효율성은 ‘불신의 제도화(Institutionalized Distruct)’의 역사를 통해 설명되곤 한다. 즉, 민주주의 출발과 그 발전사는 정치인이 신뢰를 위반했을 때 엄청난 비용을 치르게 함으로써 웬만해서는 배신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와 장치를 잘 강구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이처럼 민주주의는 ‘불신의 제도화’를 통해 정치인, 정부를 신뢰하는 데 드는 위험부담을 줄여줘 사회 전반에 신뢰하는 문화의 형성을 조장해준다. 결국, 우리가 신봉하는 민주주의는 정치 행위자들에 대한 불신을 최대치까지 고려해 만들어낸 ‘고불신체제(high-distruct system)’의 산물인 셈이다. 우리 현행 헌법이 이러한 ‘불신의 제도화’를 잘 만들고 있는지, ‘권력의 분점’과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충실히 구현하고 있는지를 자문해볼 일이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점은, 이제 대한민국은 국민이 위대한 지도자라는 점이다. 교육 수준도 대단히 높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돼 있다. 과거처럼 정치권에서 탁월한 지도자가 나와서 전지전능한 신처럼 국가의 모든 갈등을 풀 수도 없고, 그렇게 기대하는 국민도 없다. 이미 우리는 탁월한 지도자가 아닌, 합리적인 제도와 시스템에 근거해 운영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권력과 정치 영역 역시 예외일 수 없다.

2. 경험적 측면에서 본 권력구조 개편의 필요성

정치학의 유명한 명제인 “모든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권력의 지나친 독점은 많은 폐단을 노정한다. 대통령 권력을 예로 들면, 바로 제도로서 보장된 권력 그 이상을 누리는 ‘제왕적 대통령’이 그 대표적 예일 것이다. 교과서적으로 본다면 국회는 “국민의 대표로서 법을 만들고, 나라 살림을 짜고, 행정부를 견제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현실 정치 측면에서 본다면, 국회는 그야말로 대통령 권력을 향한 ‘치킨게임(Chicken Game)’에 몰두하는 곳이다. 즉, 선거 시기만 되면 대통령 권좌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터의 베이스 캠프가 되고, 대통령이 선출된 이후에는 대통령을 보위하는 세력과 대통령을 끌어내리려는 세력 간에 중단 없는 대회전의 장이 된다.

2004년 대통령 탄핵사건 때 보였던 여야의 목숨 건 대립·갈등이 정치학에서 치킨게임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된 점만 보더라도, 현재 우리 정치가 얼마나 ‘치킨게임’에 깊이 몰입돼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권력을 독점하는 제왕적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5년마다 한 번씩 여야가 양보 없는 혈전을 벌인다. 즉, 국회는 입법부로서 기능하기보다는 대통령이라는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베이스 캠프로서 역할에 올인한다.

일찍이 후안 린츠(Juan Linz) 교수가 ‘대통령제와 의회주의는 차이가 있는가(Presidential or Par liamentary Democracy: Does it make a differ ence, 1994)’라는 논문에서 지적했듯이 “대통령제가 끼치는 가장 큰 영향은 ‘승자 독식’의 결과를 지향하는 통치와 더불어 ‘제로섬 게임’의 강렬한 요소를 민주정치 속으로 도입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선거의 승자는 전쟁의 전리품을 챙기듯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패자는 죄인처럼 모든 것을 잃는다. 선거 결과 나타난 유권자의 표심이 51 대 49라 하더라도, 권력의 분포는 100 대 0이 되고 만다.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면 나라의 예산권과 인사권을 사실상 독점할 수 있다. 이것은 자원 배분의 심각한 왜곡을 가져올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지역 갈등이 더 깊어지고, 정치는 상생과 타협이 아닌 극한 권력투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처럼 ‘올 오어 나싱(All or nothing)’의 승자독식 구조 아래서는 대통령이 제도적으로 보장된 권한 이상을 휘두르는 경향이 짙다. 모든 권력이 다 대통령으로 집중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국가의 중요한 문제와 이권이 대통령에게로 모이게 되고, 또 그러다 보면 대통령의 가족과 친인척, 측근들에게까지 유혹의 손길이 뻗칠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각종 권력형 부정부패로 이어지게 된다. 87년 헌법 이후 대통령 또는 그 측근 상당 수가 각종 비리로 끝내 불행한 결말을 초래한 예를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인치(人治)는 곧 대통령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제왕적 대통령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승자독식 구조와 맞물릴 수밖에 없는 ‘제왕적 대통령제(Imperial Presidency)’란 무엇인가? 일찍이 미국의 사회 비평가 슐레진저가 1960년대 닉슨 정부 시절 지나친 권력집중으로 갖가지 문제를 야기한 백악관 비서실을 지적하면서, 당시 미국 대통령제를 제왕적 대통령제라 칭한 데서부터 비롯된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원리와 우리나라의 실제


▎1987년 9월 18일 국회의장실에서 이재형(가운데)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총무들이 6공화국 헌법안을 마주 잡은 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신민당 정재원, 민정당 이대순, 이 의장, 민주당 김현규, 국민당 양정규 원내총무.
제왕적 대통령제는 정치권력을 비(非)제도적으로 행사해 권력을 남용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데, 구체적으로는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대통령이 독선·독단적으로 결정하고, 대통령이 법과 제도 위에 군림해 법치(法治)가 아닌 인치(人治)를 행하며, 정치권력을 대통령 자신의 측근을 위해 사용화(私用化)하고, 그 결과 대통령의 권한이 입법부와 사법부를 압도함으로써 입헌주의의 핵심 원리인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무너지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이처럼 제왕적 대통령제는 민주주의하에서 ‘선출된 군주(Elected King)’로 군림하며, 현실 정치하에서 승자독식 구조와 맞물려 제도적으로 보장된 권한 이상의 초월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속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헌법 이론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경험적 측면에서의 대통령제 폐단이라 하겠다. 결국, 대통령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로 인한 각종 권력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국회가 국민을 위해 정상적으로 기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현 통치 구조의 개선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3. 비교법적 측면에서 본 권력구조 개편의 필요성

그렇다면, 정치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나라들의 통치구조는 어떠한가? 대통령제를 취하는 나라들은 몇 나라 정도 되고, 혹여 우리나라처럼 강력한 ‘제왕적 대통령제’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 비교법적인 분석은 앞으로 우리나라 권력구조의 방향성을 유추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리라 본다.

이론적으로는 의원내각제가 대통령중심제보다 더 안정된 정치제도로 평가받고 있으며, 경험적으로도 민주주의 실현이나 공고화에 더 적절한 권력구조임이 입증되고 있다. 저명한 정치학자인 린츠와 바렌주엘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80년대까지 민주주의를 실현한 국가 43개국 중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국가가 3개국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대통령제 채택국가가 5개국, 이원집정제 채택 국가가 3개국, 그리고 직접민주제 연합국가인 스위스가 있다).

또 대통령제보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더 잘 실행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가 아닌 53개국을 대상으로 1973년부터 1989년 사이에 의원내각제 국가 28개국 중에서 61%인 17개국이 최소 1년 이상 민주주의를 실천했다. 이에 비해 대통령제를 채택한 25개국에서 20%인 5개국만이 최소 1년 이상 민주주의를 실천했다. 이는 대통령제 국가보다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민주주의 실천 가능성이 3배나 높음을 뜻한다.

또 1945~1980년 사이에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국가의 각료 중 60%가 같은 정권에서 계속 재직했으나, 대통령제는 25%에 불과했다. 이는 의원내각제가 안정된 정부를 지향하고, 행정 경험이 많은 ‘전문각료(technocrat)’를 배출함으로써 능률 있는 정부 행정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요인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OECD 국가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지난 18대 국회에서 헌법교수 몇 분에게 OECD 국가들의 통치구조에 대한 연구 용역을 준 적이 있는데, 그 결과를 보면 OECD 국가 중 6개국(미국·멕시코·칠레·한국·폴란드·프랑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의원내각제이거나 실질적으로 의원내각제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6개국 중 정치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과 프랑스인데, 이 나라들은 다음에서 보듯이 제도적으로 혹은 역사적으로 대통령의 권력 독점이 불가능하게 돼 있다.

미국, 원천적으로 대통령 1인 권력독점이 불가한 이유


▎2017년 4월 12일 정세균 국회의장과 제19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들, 국회 개헌특위 위원장과 간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 김동철 국민의당 간사,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간사, 심상정 정의당 후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정세균 국회의장,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이주영 개헌특위위원장, 홍일표 바른정당 간사, 김교흥 국회의장비서실장.
먼저, 미국의 경우를 보자. 미국은 대통령이 강력한 의회의 지배를 받는 의회주의 민주국가이고, 사법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으며,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어 대통령 1인의 권력독점이 제도적으로 불가능하게 돼 있다. 원래 대통령제는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제도다. 미국 헌법의 창시자들이 미국 건국과 동시에 대통령제를 고안하게 된 동기는 무엇보다 국가의 대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은 영토가 광활하고 각주의 독립성이 매우 강하며 의회는 강력했으나, 통일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의 구심점이 없었다. 따라서 각 주를 통합해 견고한 연방제를 채택하기 위해 연방정부의 통일적이고 일관된 외교정책과 국방문제를 다루기 위한 연방 대통령이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 미국의 대통령제는 연방주의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미국의 대통령제는 제도적인 측면에서 행정부의 권력이 연방정부와 주정부로 분산돼 있어 권력독점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특히 미국의 각 주는 사형제도를 달리할 정도로 독립성이 강하다. 이렇게 준국가와 같은 체제로 각 주가 연방정부로부터 강한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연방 대통령이 내정에 관한 한 제왕적 대통령의 지위를 누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또 미국은 제도적으로나 전통적으로 의회, 즉 입법부의 우위가 확립된 나라이다. 법률안 제출권을 의회만 가지고 있고, 수많은 고위 공무원에 대한 엄격한 인사청문 절차, 그리고 예산안 편성권 및 감사 기능이 의회에 예속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연방 상·하원은 대통령 또는 정부를 충분히 견제하고 비판·감독할 수 있는 제도와 전통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경제적 번영 이룬 나라 대부분 의원내각제에 기초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사법 시스템이다. 미국의 연방대법원, 항소법원 판사는 모두 종신제로 임명되기 때문에 어떠한 권력으로부터도 독립돼 재판할 수 있어 사법권의 독립이 철저하게 보장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 출범 이후부터 확고하게 자리 잡은 연방주의,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확실한 우위, 사법부의 완전한 독립 등을 통해 권력기관 상호 간의 충분한 견제와 비판이 가능하고, 따라서 미국의 대통령제는 구조적으로 막강한 권력을 갖는 제왕적 대통령을 만들 수 없도록 충분한 장치가 마련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대통령제는 미국을 제외하고는 성공한 나라를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한 미국의 여러 제도와 전통을 다른 나라들이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제적 번영을 이루고 있는 나라의 다수가 대부분 의원내각제에 기초하고 있다는 통계 자료도 있다. 2009년 기준으로 1인당 GDP(국내총생산) 3만 달러 이상 국가 24개국 중 대통령제는 미국·스위스·UAE 등 3개국에 불과하고, 나머지 21개국은 의원내각제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스위스의 경우는 대통령제 국가라 부르기가 대단히 어렵다. 각료 7명이 1년씩 돌아가면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대통령제 국가는 미국과 UAE밖에 없는데, 이 나라들도 모두 연방제 성격이 강해, 대통령의 자의적인 권력행사가 어렵다고 할 수 있겠다. 결국, 3만 달러 이상 국가 중 우리와 같은 강력한 대통령제 국가는 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치 선진국이나 경제 선진국들의 경우 제왕적 대통령제의 통치구조를 가진 나라는 단 한 나라도 없으며,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앞으로 과연 어떠한 통치구조로 전환해야 할 것인지는 자명하다.

또 한 가지 주의 깊게 볼 대목은 ‘우리나라와 같이 남북 이념 갈등, 동서 지역 갈등, 다양한 계층 갈등을 겪고 있는 분열된 사회에서 어떤 통치구조가 적합한가’라는 문제다. 1960년대에 정치인들과 헌법 제정자들이 분열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권형 해결책들을 마련한 사례로 오스트리아·캐나다·콜롬비아·사이프러스·인도·레바논·말레이시아·네덜란드·스위스 등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중층적으로 갈등의 양상이 크고 갈등의 피로도가 점차 높아지는 우리나라 사회에서 향후 사회 안정과 화합을 위한 통치구조를 설계하면서 ‘분권형 모델’은 매우 적실성(適實性)이 클 것으로 생각되며, 그 구체적인 형태로 분권형 대통령제 또는 의원내각제가 연구·검토돼야 한다고 본다.

- 우윤근 전 국회 사무총장·현 법무법인 광장 고문

202204호 (2022.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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