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집중취재]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광역지자체장들의 ‘귀거래사(歸去來辭)’ 

“8년 했으면 할 만큼 했다” vs “어떤 식으로든 재기하고 싶다”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지난 4년 동안 전국 시·도지사 역대급 물갈이
퇴임 지자체장 암묵지, 지방 행정에 활용할 수 없나


▎6월 13일 제주도에서 열린 민선 7기 시·도지사 송별 간담회에 참석한 광역지자체장들이 꽃다발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 사진: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월간중앙은 지난해 3월부터 전국 ‘광역지자체장’과 ‘지역의 지성인’ 간 대담인 ‘구루와 목민관 대화’를 릴레이 연재하고 있다. 이 대담은 행정을 책임지는 광역지방자치단체장과 지역을 대변하는 지성인의 아이디어 충돌을 통해 지자체 현안과 미래에 대한 열린 시각을 확보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기획이다. 올 6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임박하기 전까지 총 13회에 걸쳐 진행된 대담에 여야 광역지자체장들이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이들 중 상당수가 7월 1일부로 지방정치 무대에서 물러선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그간 월간중앙이 만난 시장, 도지사들의 기나긴 여정과 퇴임 후 계획을 살펴봤다.

"뒷모습은 비밀스럽다. 얼굴과 표정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오히려 뒷모습이 진실을 꾸밈없이 드러낸다고도 한다. 얼굴과 표정은 꾸미고 속일 수 있지만 뒷모습은 그럴 수 없다. 자신의 세계를 잘 닦아온 사람의 품격 또한 뒷모습에서 드러난다고 한다.”

서양화를 전공한 이연식 작가가 2018년 펴낸 에세이집 [뒷모습]에 나오는 대목이다. 사물을 정밀하게 관찰하고 특징을 포착하는 데 능한 서양화 전공자의 눈에 비친 사람의 뒷모습이 주는 이미지는 이러했다.

때가 되어 정치 무대에서 내려가는 선량(選良)들의 뒷모습은 어떠할까? 그의 품격이 돌아서 가는 뒷모습에서 어른거릴지도 모를 일이다. 6월 1일 치러진 지방선거도 숱한 지자체장들의 등을 돌려세웠다. 광역지자체장 선거가 특히 그랬다. 4년 전인 2018년 민선 7기 광역지자체장에 선출된 17명 중 올 6월 민선 8기 광역지자체장 선거에 다시 뽑힌 이는 단 2명에 그쳤다. 나머지 15명은 이런저런 이유로 중도 하차했거나 6월 말 임기 종료와 함께 현직을 떠나게 된다. 역대 광역지자체장 선거를 놓고 볼 때 4년 만에 이렇게 대대적인 물갈이가 이뤄진 선거는 올 6월 선거를 빼고는 전례가 없었다. 민선 7기 광역지자체장 여정은 그처럼 험하고 잔혹했다고 하겠다.

민선 7기 시·도지사 송별 간담회 이색 풍경


▎6월 13일 대구시 코로나19 극복 범시민대책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권영진 대구시장. / 사진:대구시
그래서인지 6월 13일 제주도에서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회장 송하진 전북지사)가 준비한 민선 7기 시·도지사 송별 간담회 참석자들은 당락의 희비가 엇갈리면서 만감이 교차했다고 한다. 이날 행사는 민선 7기 광역지자체장들의 마지막 모임. 민선 8기에 합류하는 이도 있지만, 상당수 7기 광역지자체장은 시정(市政), 도정(道政)의 바통을 후임에게 물려주게 된다. 어떤 이는 가는 길을 중도에 멈춰 서야 하는 아쉬움에, 또 어떤 이는 다 내려놓고 떠나는 홀가분함에 방점을 찍는 등 저마다 돌아가며 소감을 밝혔다.

“(전략)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 스스로 봄길이 되어 /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하략).”

이날 모임에서는 권영진 대구시장이 정호승 시인의 시 ‘봄길’을 읊었다. 권 시장은 “이게 이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며 자리에 함께한 시·도지사들과 석별의 정을 나눴다고 한다. 지난 3월 말 3선 도전이 점쳐지던 권 시장은 전격적으로 불출마를 선언했고, 6월 30일부로 재선(再選)의 직무를 내려놓고 자연인으로 돌아간다. 그는 대구시정을 이끌면서 이따금 공무원들에게 이 시를 들려줬다. 어려운 때일수록 용기를 잃지 말고 길을 개척하자며 격려할 때 인용했던 시구라고 한다. 이 ‘봄길’의 시어(詩語)들은 이제 권 시장 자신에게 새로운 도전을 예고하는 울림이기도 하다.

권 시장은 “당분간은 어머니를 잘 모시면서 가족도 돌보고, 개인적인 재충전 시간을 갖고 싶다”고 월간중앙에 전했다. 그는 지난 8년이 무척 고된 나날이었다고 돌이켰다. 임기 중 5년은 야당 시장이라는 어려운 환경에서 예산 확보 등에 동분서주했고, 코로나 팬데믹 3년 동안은 대구시 공동체의 안전을 방어하는 데 혼신의 힘을 쏟았다고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대구·경북 통합신공항부지 확보, 치수 다변화를 통한 물 문제 해결, 대구 신청사 이전 확정 등 3대 현안사업의 초석을 놓은 데서 자긍심을 느낀다고 했다.

3선에 대한 아쉬움은 없느냐는 질문에 “8년이면 할 만큼 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광역시장을 12년이나 하면서 창의와 열정을 쏟아낼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물러날 시기를 잡는다면 지금이 적절하다는 판단이 나온다. 권 시장은 1962년생이다. 지역에서는 그의 불출마를 도약을 위한 움츠림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권 시장 본인도 “제가 대구시장을 4년 더 한다면 그것으로 제 정치 인생은 마감하게 된다”면서 “개인적으로 정치를 한 번 더 할 수 있다면 여기에서 일단 멈추는 게 옳다”고 못을 박았다. 시장으로서의 삶을 매듭짓고 국회의원 등 대구시를 위한 다른 봉사 기회를 찾겠다는 게 그의 포석이다.

6월 13일 제주도 시·도지사 송별 자리에서는 사시사철 변하는 풍경과 세월의 덧없음을 노래하는 판소리 사철가도 울려 퍼졌다. 평소 창(唱)을 즐기는 송하진 전북지사가 한 소절 뽑은 것이다. 그는 동네 마을회관이든 해외 한국 대사관저이든 흥이 오르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판소리를 들려주는 ‘숨은 소리꾼’이다. 전북의 큰선비 유재 송기면 선생과 서예 대가 강암 송성용 선생을 조부와 부친으로 둔 송 지사는 예술과 문학에도 조예가 깊다. 그런 만큼 지역의 문화와 예술 저변 확대에도 공을 들였다.

그는 원래 3선에 도전장을 냈으나 지난 4월 14일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 컷오프 결정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며칠 뒤 민주당 공관위에 청구한 재심도 기각되자 그는 “전주시장 두 번, 전북지사 두 번 할 수 있었던 것도 민주당의 덕”이라며 당의 결정을 수용했다.

“전주시장 두 번, 전북지사 두 번 당선은 민주당 덕”


▎지난 4월 공천 탈락 후 가진 정계 은퇴 기자회견에서 참석자와 인사를 나누는 송하진 전북지사. / 사진:송하진 지사 SNS
“냉철한 머리로 일하는 유능한 행정가이자 따뜻한 가슴으로 일하는 착한 정치인이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송 지사는 지난 4월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이렇게 돌이켰다. 그는 평소 경제학자 마셜(Alfred Marshall)이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 취임사에서 언급한 ‘냉철한 두뇌와 따뜻한 가슴(cool head but warm heart)’이라는 문구를 마음에 새겼다. 그 연장선에서 16년의 정치 활동 기간 실용주의에 기반한 따뜻한 정치를 실천하고자 했다는 게 송 지사 주변의 전언이다.

모든 도백이 그러했듯이 송 지사의 꿈과 목표도 전북 발전이었다. 제조업 기반이 부족한 전북에서는 기업의 투자와 정책적 지원을 유도하기 어렵다는 점에 그는 주목했다. 그래서 그는 전북 안에서 해법을 찾고자 했다. 헛된 공약을 남발하기보다는 지역에서 가능하고 잘할 수 있는 아이템을 발굴했다. 전주시장 시절 추진한 전주한옥마을 명소화 사업과 탄소산업 활성화가 그 결정판이고 도지사 송하진을 만든 동력으로 작용했다. 전주시는 그의 재임 기간 전주한옥마을을 지렛대 삼아 연간 관광객 천만 명이 찾는 관광도시로 도약했다. 2015년에는 전국 최초로 전라북도 탄소산업 육성 조례를 제정하고, 전북 연구개발특구를 지정하는 등 탄소산업을 전북의 미래 전략산업으로 육성했다.

‘12 대 5’.


▎지방선거 후 강기정 광주시장 당선인과 회동을 가진 이용섭 광주시장(오른쪽). / 사진:연합뉴스
광역지자체장 전체 17석 중 겨우 5석만 민주당에 허락한 6월 1일 지방선거 결과에 당 지지층은 정신적 혼란에 빠졌다. 낙선 당사자들의 좌절과 쓰라림은 이루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지방선거 다음 날인 6월 2일 자신의 SNS에 낙선자들을 위로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선거에서 지고 나면 많이 아프고 힘들다”면서 “그러나 대응하기에 따라 성공의 밑거름이 되고 삶의 큰 자산이 되기도 한다”고 실의에 빠진 이들을 다독였다.

이 시장 본인도 4월 26일 민주당 광주시장 후보 경선에서 고배를 들어야 했다. 실패가 주는 고통을 알기에 6월 1일 지방선거 낙선자들에게 보내는 그의 메시지는 더 진한 여운과 공감을 남겼다. 그는 SNS에서 현실을 잘 버텨내는 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치열한 선거에서 지고 나면 이런 말들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당장의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다. 이를 위해 외국에 나가보기도 하고 산과 들을 헤매보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찾은 최고의 해법은 ‘모든 것이 내 탓이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를 가슴에 새기는 것이다. 자기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미움의 감정을 씻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이 같은 자기 성찰은 마음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내 탓이다’를 반복하면 증오의 대상도 사라지고 마음도 점차 평상심으로 돌아온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매를 먼저 맞아본’ 그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우선 인생이라는 것이 새옹지마이니 이번 패배가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너무 좌절하지 말기 바란다. 하늘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줄 때는 항상 먼저 고통을 준다(천장여지필선고지, 天將與之 必先苦之). 살아온 날을 되돌아보면 한때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이나 사건들이 훗날 오히려 복이 되고 교훈이 되는 경우가 참 많았다.”

현역 지자체장이 선거 관련 예비후보로 선관위에 등록하면 부단체장이 단체장의 권한을 대행한다. 이 시장도 광주시장 후보 민주당 경선에 참여하느라 잠시 내려놓았던 광주시장직에 5월 2일 복귀했다. 5월 이후 그의 발걸음은 광주형 일자리 정착, 인공지능(AI) 대표도시 위상 강화, 기후위기대응 선도 도시 입지 구축 등 역점 사업 마무리에 집중되고 있다.

“정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열흘”


▎6월 10일 천안 신부공원에서 열린 ‘제35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한 양승조 충남지사. / 사진:양승조 지사 SNS
“내가 그렇게 험한 인생을 살아온 건 아닌데 지금은 정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열흘 같다.”

6월 10일 전화통화에서 양승조 충남지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방선거 패배라는 긴 터널을 통과하는 듯했다.

양 지사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치 입문 후 처음 지는 선거를 했다. 4선 국회의원 관록에다 민선 7기 충남도지사에 재임 중인 그는 5연승 끝에 이번 6월 지방선거에서 일격을 당한 것이다. 생애 첫 좌절에 즈음해 그는 “저도 모르게 오만하진 않았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면서 “이번 선거 결과는 몸에 이로운 쓴 약”이라고 자세를 낮췄다.

그는 준비된 정치인이었다. 지난해 5월 월간중앙 ‘구루와 목민관 대화’에서도 도정(道政)은 물론 국정(國政) 전반에 해박한 지식을 과시했다. 도정 구석구석을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손금 들여다보듯 소개했다. 전국 이슈 관련 통계도 통째로 암기한 듯 어떤 주제든 막힘없이 술술 풀어나가 상당한 기억력의 소유자라는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인지 꿈도 많다. 이번 20대 대선 국면에서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들어 완주했다. 그에게는 대통령이 정치의 최종 목표다. 그는 “국가와 도민과 함께하는 일이 낙선으로 완전히 절연되는 것은 아니다”면서 다음과 같이 의지를 다졌다. “제가 아직 정치를 은퇴할 나이는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재기하고 싶다.”

그는 도지사로서의 책무도 마지막까지 챙기고자 한다. 지방선거 낙선 다음 날인 6월 2일 오후 업무에 복귀했다. 그는 “제가 마무리할 것은 하고 민선 8기 충남지사에게는 더 깨끗하고 정비된 환경을 물려주고 싶다”며 주변 정리에 들어갔다.

대표적인 게 안면도 관광지 개발 사업이다. 양 지사는 6월 9일 충남의 오랜 숙원사업이기도 한 태안군 안면도 관광지 개발사업과 관련해 우선협상대상자와 본 계약을 체결했다. 또 서해선-경부고속철도 KTX 직결을 통한 교통인프라 구축, 서산공항 건설에도 남은 노력을 기울였다.

“역점 사업 연속성 갖고 추진되길”


▎지방선거에서 낙선한 이춘희 세종특별자치시 시장 후보가 6월 2일 세종시 선거캠프 사무실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012년 출범한 세종특별자치시에 대한 이춘희 세종시장의 애착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건설교통부 차관과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을 지내면서 세종시의 얼개를 만들고 기초를 다진 당사자다. 나아가 세종시 2, 3대 시장으로 당선된 그는 자기 완결적인 ‘정치·행정수도’ 세종시의 자생력과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주력해왔다.

그도 이번 지방선거에서 시민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선거 다음 날인 6월 2일 낙선의 책임을 자신의 부족함으로 돌린 그는 “행정수도 세종을 향한 20년의 발걸음을 여기서 멈춘다”고 패배의 아쉬움을 고했다. 그는 “어디서든 세종시가 행정수도를 넘어 대한민국 행복 1번지가 되도록 노력하고 응원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이튿날인 6월 3일에는 자신의 SNS에 이형복 시인의 ‘친구여’라는 시를 올렸다. “어쩜 다행한 일이기도 해 / 이제 너로 사는 거야 / 한가로이 촌길을 걸으며 / 개망초꽃에게 인사도 건네며 / (중략) / 이제껏 보지 못했던 / 또 다른 행복을 만나게 될 거야.” 이 시장은 이 시를 올리면서 “꼭 나한테 하는 얘기 같다”고 촌평을 붙였다.

1977년 그는 고려대 법대 재학 중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공직과 인연을 맺은 지도 45년째 접어든다. 사무관으로 시작한 건설교통부에서 차관을 역임하고 지난 8년간 세종시정을 이끌었다. 그래서인지 “어찌 보면 이제 좀 쉴 때가 되긴 됐구나 하는 그런 생각도 좀 든다”고 조심스레 운을 뗐다.

현재 그는 임기 말 주어진 일정을 충실히 소화하면서도 새로이 일을 만들기보다는 기존 업무를 말끔하게 처리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행정수도 기반 구축과 세종시 내 풀뿌리 민주주의의 착근, 로컬푸드 사업 활성화, 도시재생사업 확산 등 민선 7기 세종시가 추진해온 역점 사업이 민선 8기 시정부에서도 연속성을 가지고 잘 추진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국회의원과 시장 선거에서 7번 고배를 마신 끝에 2018년 승리해 ‘7전8기’의 사나이로 널리 알려진 송철호 울산시장은 조용한 퇴임을 준비 중이다. 그는 1995년 ‘울산광역시 쟁취 시민운동본부’ 상임본부장으로 시민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제출하고 정당을 방문하는 등 광역시 승격 운동을 주도했다. 이런 연유로 그의 가슴은 울산의 도약을 이끈 주역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그가 6월 1일 지방선거 이후 대외 발언을 거의 하지 않았다. 본인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과 오랜 정치활동에 지쳤을까? 그는 “지난 30년 동안 시민과 함께 호흡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굉장히 고맙게 생각한다”면서 “큰 과오 없이 떠날 수 있어 다행스럽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현안에 대해 말은 아꼈지만, 울산의 미래를 책임질 에너지와 산업에 관한 소신은 분명히 했다. 그는 “해상풍력과 수소경제는 울산만이 아닌 우리나라와 세계 인류의 미래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노르웨이 국영기업이자 세계적 에너지 전문기업인 에퀴노르가 울산 앞바다에서 부유식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에너지 문제는 정치적 관점을 뛰어넘어 에너지 그 자체로 봐달라”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해상풍력과 수소산업은 지구를 살리는 최선의 카드가 될 것이다. 조금 늦고 빠름이 있을 뿐이지 이 길은 결국엔 우리가 가야 하는 운명의 길이다.”

치열한 접전 끝에 석패한 박남춘 인천시장도 지방선거 이후 인터뷰 등 언론 노출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그는 공약 이행률 최우수 SA등급 획득, 바이오·수소·항공정비 등 경제구조 고도화 등 시정 성과를 바탕으로 표심을 공략했으나 지역의 반(反)민주당 정서를 넘어서진 못했다. 그는 선거 다음 날 자신의 SNS에 “시민의 엄중한 뜻을 겸허히 받겠다. 남은 임기 잘 마무리하고 인천시민의 한 사람으로 여러분 곁에 있겠다”는 짤막한 메시지로 인사를 대신했다.


▎6월 9일 울산시청 접견실에서 송철호(왼쪽 넷째) 울산시장과 풍력터빈 생산업체 베스타스 임원진이 부유식 해상풍력 사업 관련 협의를 진행했다. / 사진:연합뉴스
“시행착오 또는 정책 실패 보고서를 만들자”

법에서 허용하는 3선을 꽉 채우고 퇴임하는 이시종 충북지사, 최문순 강원지사는 비교적 발걸음이 가볍다. 이시종 지사는 1971년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한 이래 반세기 동안 공인으로 살았다. 임명직 23년, 선거직 27년을 합해 ‘반백 년’을 봉직한 것. 특히 민선 1∼3기 충주시장, 17∼18대 국회의원(충주), 민선 5∼7기 충북지사를 지내는 등 최장수 선출직 공무원의 반열에 올랐다. 이런 역정을 담은 자서전 [오직 일로써 승부하다-8전8승 이시종의 비결] 출판기념회를 6월 18일 열어 공직생활의 대미를 장식한다.

최문순 강원지사는 코로나19 위기 국면에서 강원도 감자 판매에 나서 ‘대한민국 완판 남자’라는 애칭을 얻었다. 1984년 문화방송(MBC) 기자로 입사해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최연소 MBC 사장에 임명됐다.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발을 들였고, 2011년부터 강원지사에 내리 3선을 성공했다.

짐을 싸는 광역지자체장들의 뒷모습에서 전북대 강준만 교수가 말한 암묵지(暗黙知)가 아른거리는 느낌이다. 강 교수는 2008년 펴낸 저서 [지방은 식민지다]에서 암묵지 개념을 인용, 지자체장 간의 경험이 전수되지 않는 현실을 개탄했다. 암묵지는 현실에 존재하지만 눈에 잘 보이지도 귀에 잘 들리지 않는, 말이나 글로 설명하기 어려운 지식을 뜻한다. 강 교수는 책에서 “정작 암묵지가 필요한 건 행정인데도 여태까지 그 수많은 장관과 지방자치단체장과 공기업 사장 중 그 누구도 자신의 암묵지를 후임자는 물론 시민사회에 전달하기 위한 책 한 권 낸 적이 없다. 자기 허영으로 내는 책은 무수히 많아도 말이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그는 “떠나는 단체장이 시행착오 또는 정책 실패 보고서를 만들어 뒤를 이을 초보 단체장에게 선물하면 어떨까”라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성공의 기억뿐만 아니라 실패의 기억도 지방 행정과 자치 발전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는 말이다.

-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202207호 (2022.06.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