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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긴급진단] 대만 위기감 높이는 중국의 속내 

‘하나의 중국’ 꿈꾸다 ‘나 홀로 중국’ 될까 노심초사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미국·대만 가까워질 때마다 ‘하나의 중국’ 내세워 긴장 고조 전략
‘칩4’ 동맹에 위기감 방증… 대중 외교 자존심·실용 동시 추구해야


▎낸시 펠로시(오른쪽)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중국은 대만해협 일대에서 무력시위를 벌였다. 3연임을 앞둔 시진핑 중국 주석이 반도체 동맹으로 자국을 압박하는 미국 등 자유주의 진영을 향해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해석된다. / 사진:연합뉴스
대만해협은 잠들지 않는다. 미국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아시아 순방 길에 8월 2~3일 대만을 방문하자 중국은 무력시위를 벌였다. 인민해방군(중국군)은 5~7일 대만 주변에서 다연장 로켓포(MLRS)와 둥펑(東風) 계열의 탄도미사일로 실탄 사격 훈련을 한 데 이어 10일까지 각종 훈련으로 미국과 대만을 동시에 위협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탄도미사일이 처음으로 대만 상공을 넘었다. 일부는 대만 동쪽 오키나와현의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낙하했다. 일본 정부가 외교 경로를 통해 항의했지만 중국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중국군은 14일 미국 의원단 다섯 명이 대만을 방문하자 ‘실전’ 훈련을 재개했다.

중국 전투기와 군함은 앞다퉈 대만해협의 중간선을 넘어 침범 상시화와 중간선 무력화라는 ‘뉴노멀’을 시도했다. 대만해협은 가장 좁은 곳의 폭이 130㎞에 지나지 않아 중간선에서 대만까지는 불과 75㎞ 정도다. 초음속 전투기라면 3분대에, 마하 5의 공대지 미사일은 1분 이내에 대만에 도달한다. 대만 입장에서는 종심이 짧은 대만해협에서 중국 항공기와 군함이 중간선까지 넘는다면 조기경보 시간이 지극히 짧아져 불안이 가중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군사적 도발로 대만을 옥죄고 미국에 정치적인 경고를 날린 셈이다.

중국은 미국과 대만이 서로 접근하고 협력할 때마다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왔다. ‘하나의 중국’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다. 중국은 이를 토대로 대만은 자국 영토이며 대만 안보 지원은 내정간섭이라는 논리를 내세워왔다. 그렇다면 중국이 집착하는 ‘하나의 중국’에 대해 미국과 대만의 입장은 과연 무엇이기에 이렇게 충돌하는 것일까. 이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대만의 향후 반응과 행동을 전망하는 핵심 기제이기도 하다.

잘 알려진 대로 중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주장을 다른 나라에도 요구해왔다. 중국과 국교를 맺는 모든 나라는 이를 인지하고 대만과 단교를 해왔다. 1992년 중국과 수교한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흔히 간과하기 쉬운 것이 ‘하나의 중국’을 보는 미국과 대만의 시각이 중국과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사실 미국은 1979년 1월 중국과 수교하기 위해 대만과 단교하면서도 관계의 끈을 놓지 않았다. 심지어 대만 방위를 위한 역할도 계속해왔다. 미국 의회는 1979년 미국의 대중 수교와 대만 단교 직후인 그해 4월 ‘대만 관계법’을 제정해 오랜 우방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함께 연합국으로 싸웠던 중화민국을 배려해왔다. 대만 관계법은 미국 국내법이지만 그 내용은 미-대만 사이의 외교 협정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거 양자가 맺었던 외교협정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방어용 무기에 한해 대만에 미국산 무기를 제공하며, 대만 주민의 안전과 사회경제적 제도를 위협하는 무력사용 등 강제적 방식에 대항하기 위해 방어력을 유지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미국과 대만이 비록 국교는 단절했지만, 대만 관계법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군사적 동맹관계를 유지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 이유다.

펠로시 대만 방문에 무력으로 화답한 중국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응해 중국 인민해방군은 대만 영공을 가로지르는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강도 높은 무력시위를 벌였다. / 사진:중국 동부전구 위챗 계정
중국이 요구한 ‘하나의 중국’에 대한 미국의 시각은 미국과 중국이 외교 관계 수립을 전후해 발표했던 1972년 2월의 ‘상하이 코뮤니케(공동성명)’, 1978년 12월의 ‘미·중 수교 코뮤니케’, 1982년 8월 ‘8·17 코뮤니케’ 등에 잘 드러난다. 미국이 중국이 내세우는 ‘하나의 중국’을 알고 있다고 처음 언급한 것은 1972년 상하이 코뮤니케에서다. 주목할 점은 이 코뮤니케는 ‘미국은 대만해협 양측의 모든 중국인이 중국은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과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미국 정부는 이러한 입장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라고만 명시했다는 점이다.

미국은 중국이 금과옥조로 내세우는 ‘하나의 중국’을 원칙도, 정책도, 승인이나 인정의 대상으로도 여기지 않고 다만 ‘알고 있다’의 대상으로만 언급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중국은 하나’라고만 했을 뿐 그 주체를 중화인민공화국이라고 지칭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중국이 주도하는 양안 통일은 인정하지 않겠으며, 대만이 중국의 영토이기 때문에 대만 문제는 중국의 내정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외교적으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대만이 공격을 당하면 미국이 개입할 수 있는 외교적 명분을 유지한 셈이다.

주목할 점은 미국이 1982년 ‘8·17 코뮤니케’ 발표 직전에 밝힌 대만에 대한 ‘6개 보장’이다. 이는 ‘미국의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에 시한을 정하지 않고, 무기 수출 시 중국과 사전 협상하지 않으며, 양안 중재 역할을 맡지 않고, 대만 관계법을 수정하지 않으며, 대만 주권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변경하지 않고, 대만에 중국과의 협상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미국은 대만 관계법과 6개 보장으로 중국 주도의 양안 통일, 즉 대만 무력침공이나 흡수를 견제해왔다.

대만도 미국과 궤를 함께해왔다. 중국과 대만은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이 무너진 이듬해인 1992년 11월 홍콩에서 대만의 해협교류기금회(海基會)와 중국의 해협양안관계협회(海峽會)가 ‘하나의 중국’ 개념에 구두로 합의했다. ‘92공식(公識·Consensus)’으로 부르는 ‘개념’이다. ‘하나의 중국’이란 인식을 함께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각자 해석한다는 의미에서 ‘하나의 중국, 각자 해석(一個中國各自表述)’으로도 부른다. ‘원칙’이라고 칭하면 반드시 지켜야 하며 변경에 어렵다는 부담이 있으며, ‘정책’이라고 부르면 대만을 국가나 정부로 인정하는 것이 되므로 ‘92공식’이란 이름으로 절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나의 중국’ 명분, 1949년부터 네 차례 도발


▎1958년 중국 공산당군이 대만 영토인 진먼다오(금문도)를 향해 대포를 발사하고 있다.
중국은 그 뒤 대만의 역대 정권에 ‘92공식’의 재확인을 요구해왔다. 2016년 취임한 민진당 소속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이를 따르지 않다가 2019년 재선에 도전하자 중국은 대만해협 중간선을 침범해 대만을 압박했다.

사실 중국은 1949년 대륙을 차지한 이후 끊임없이 대만을 위협해왔다. 미국 등 서구 언론은 이번 사태를 ‘대만해협 4차 위기’로 칭한다. 1차 위기는 1954년 대만이 중국과 공동방위협정을 추진(1954년 12월 체결)하자 중국이 그해 9월 3일부터 이듬해 5월 1일까지 본토인 푸젠(福建)성에서 1.8㎞ 떨어진 대만의 진먼다오(金門島)와 67㎞ 거리의 마쭈(馬祖) 열도를 포격하면서 터졌다.

2차 위기는 중국이 1958년 8월 23일부터 10월 5일까지 진먼다오에 포탄 50만 발을 집중적으로 퍼부으면서 발생했다. 대만도 본토의 푸젠성 샤먼(廈門)역을 폭격하며 반격했다. 중국은 그 뒤에도 간헐적으로 포격을 계속했다. 심지어 1971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중화민국이 맡던 유엔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차지하고, 대만을 유엔에서 축출한 뒤에도 이어졌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군사 도발인 셈이다. 포격은 중국이 미국과 수교한 1979년 1월 1일에야 약 21년 만에 비로소 멈췄다. 중국이 1978년 시작된 개혁·개방과 1979년 1월 1일 미국과의 수교로 대만의 경제 노하우를 습득할 필요를 느낀 것이 배경으로 파악된다. 중국의 대만해협 무력시위와 대만 압박이 겉으로는 정치적이지만 속으로는 경제적인 성격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이 내부 정치적 필요에 따라 대만해협 위기를 이용한 것이다. 3차 위기는 1995년 6월 첫 직선제 총통 선거를 앞둔 리덩후이(李登輝) 대만 총통의 미국 방문에 중국이 무력시위로 대응하면서 불거졌다. 사태는 미국 해군이 2개 항모전단을 대만 인근에 급파하면서 일단락됐다. 당시 장쩌민(江澤民)은 이를 통해 권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중국은 시진핑(習近平) 시대에도 미국과 대만이 접근할 때마다 군사훈련으로 맞서왔으며 갈수록 강도를 높여왔다. 이는 국제정치적으로는 중국의 대만 접근정책과 대만의 독립 추구에 대한 경고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만, 중국 내부 정치적으로는 시 주석 체제와 애국주의의 강화를 위한 ‘연료’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중국은 2016년 12월 2일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던 도널드 트럼프가 그해 5월 취임한 대만의 차이 총통과 통화하자 “우리는 대만의 무분별한 행동을 징벌할 능력이 있으며 이 능력을 사용하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겠다”고 위협했다. 그 직후 H-6K 장거리 전략폭격기를 출동시켜 대만해협에서 군사적 위협을 강화했다.

군사 위협 높아지지만 침공 가능성은 낮아


▎대만은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와 3위인 UMC, 그리고 반도체 설계 분야 10대 기업 중 미디어텍·노바텍·리얼텍·하이맥스 등 4개 업체를 보유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미국의 2018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이 2017년 7월 미 하원에서 찬성 344표 반대 81표, 9월 상원에서 찬성 89표 반대 8표의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되고, 그해 12월 트럼프가 서명하자 중국은 다시 무력시위에 매달렸다. 이 법으로 미국 군함의 가오슝(高雄) 등 대만 입항과 대만 군함의 하와이·괌 등 미국 입항이 상호 가능해졌으며, 대만은 유사시 대만해협 방어와 반격을 위한 대잠수함 기뢰 매설과 방공망 통과 등 군사기술을 습득할 수 있게 됐다.

중국은 2018년 3월 16일 미국과 대만 고위 관료들의 상호 방문과 교류를 촉진하는 ‘대만 여행법(Taiwan Travel Act)’에 트럼프가 서명하자 즉각 무력시위에 나섰다. 3월 20일 항모 랴오닝(遼寧)함을 대만해협에 출동시킨 것을 시작으로 H-6K 전략폭격기, Su-35 전투기 등이 해협에서 8월까지 지속적으로 군사훈련을 벌였다. 2019년이 되자 중국은 대만 주변에서 상륙훈련을 포함한 공세적이고 위협적인 군사훈련을 지속했다. 미국이 그해 7월 8일 대만에 M1A2T 에이브럼스 전차와 스팅어 미사일 등 22억 달러의 무기 판매 발표에 이어 8월 20일 기존 F-16을 업그레이드한 F-16V 바이퍼 66대(80억 달러 상당) 판매를 승인하자 중국은 군사훈련으로 대만해협에 위기를 고조하면서 대응했다.

이처럼 대만은 미국과 대만에 불만이 있을 때마다 대만해협에서 무력시위를 벌이고 대만을 위협해왔다. 위협을 상시화하면서 대만에 대한 군사적 압박과 유사시 점령 가능성을 높여왔다. 문제는 이러한 고강도 군사 압박이 전쟁, 즉 중국의 대만 침공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중국의 대만 압박은 사실상 미국에 대한 불만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이 미국을 직접 압박하고 위협할 국력이 되지 않기 때문에 대만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미국과 대만은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에 대비하기는 하지만 가능성을 그리 크게 보지는 않는다. 중국의 위협이 갈수록 날카로워지는 점은 인정하지만, 중국이 전쟁을 벌일 만큼 절박하지 않으며, 개전으로 얻을 이득보다 손실이 더 크다는 이유에서다.

美 주도 반도체 동맹 위기감이 무력시위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 20일 경기도 평택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웨이퍼에 서명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이 주도한 반도체 동맹(칩4) 예비회담에 참여하기로 했다. / 사진:대통령실 사진기자단
무엇보다 중국과 대만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하는 소재·부품·장비·투자·인력 등으로 서로 엮여있다는 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중국 경제를 돌리는 데는 대만의 반도체가 절실하다. 대만은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와 3위인 UMC, 그리고 반도체 설계 분야 10대 기업 중 미디어텍·노바텍·리얼텍·하이맥스 등 4개 업체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이 반도체를 순조롭게 확보하려면 대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군사적으로 중국이 대만을 제아무리 신속하게 점령한다 해도 이 반도체 업체들이 고스란히 중국 수중에 들어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응과 대만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돼 중국이 과연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시 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처럼 불확실한 일에 도전할 수 있을 정도의 정치적인 여유가 있는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중국은 전쟁으로 잃을 것이 너무도 많다.

중국의 이번에 과도한 반응을 한 가장 큰 이유는 펠로시의 대만 방문으로 ‘하나의 중국’이라는 중국의 원칙과 정책, 그리고 대만과 관련한 핵심이익이 침범돼서라기보다 반도체와 관련한 미국의 압박이 더 크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두 가지 사안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면서 증폭됐을 것이다.

현 상황에서 중국이 직면한 최대 도전은 미국이 한국·대만·일본 등과 반도체 공급 동맹인 ‘CHIP4(칩4)’를 결성하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칩4가 결성되면 미국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좌우할 수 있어 미·중 경쟁에서 중국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중국의 초조함이 펠로시의 대만 방문을 빌미로 대만해협에서 강력한 무력시위로 표출됐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대만 포위 훈련으로 작전 계획과 통신망·정보망·기동방식·화력수준 관련 정보가 미국에 파악되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강력한 대응이 필요했던 셈이다. 결국 갈수록 험악해지는 중국의 정치적 레토릭과 군사적 위협은 중국의 자신감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초조함을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의 군사적 압박은 대만인을 겁주기는커녕 오히려 심각한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대만인의 반중 정서에 불을 지르고, 신남방정책 강화로 대중 의존도를 줄일 새로운 시장 개척에 속도를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중국의 내부 정치다. 시 주석은 올가을 20차 당 대회에서 3연임 결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3연임에 성공하면 정치적으로 신중국을 건국한 마오쩌둥(毛澤東)과 개혁·개방으로 중국의 경제를 키운 덩샤오핑(鄧小平)에 버금가는 지도자의 위상을 확보할 수 있다. 시 주석은 집권 이후 꾸준히 대만의 독립 시도를 경고하고, 통일을 강조해왔다. 이에 따라 중국의 대만 점령 기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중국의 ‘사드 억지’, 역공세로 전환해야


▎7월 7일 G20 외교장관회의가 열린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이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하고 있다. / 사진:외교부
하지만 1979년 베트남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뒤 실전 경험이 없는 중국군이 군사적으로 대만을 점령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대만 무력 점령을 시도하다 실패하거나 후폭풍으로 경제에 타격을 입을 경우 시 주석은 3연임은커녕 그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시 주석이 모험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결국 중국의 대만해협 무력시위는 인도·태평양 동맹의 확대와 칩4 동맹 결성 시도에 대한 중국의 견제구로 보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이런 상황이 올해 수교 30주년을 맞은 한국과 중국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은 한국 정부가 과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와 관련해 ‘3불 1환’을 선서(宣誓) 또는 선시(宣示)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사드 배치는 주권 사안이라며 올해 안에 상주 사드 기지를 정상화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사실 중국은 과학적·군사적으로 사드에 목맬 이유가 없다. 유사시 중국에서 북미로 향할 대륙간탄도탄(ICBM)은 중국 동북지역이나 몽골, 러시아 시베리아를 거쳐 북극해를 지나는 최단 거리를 비행할 수밖에 없어서다. 미국으로 향하는 중국 ICBM이 한반도를 지날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하다. 따라서 미 본토 방어용도 아니고 사거리 200㎞에 불과한 방어 무기인 사드가 중국의 안보를 위협할 어떤 이유도 없다.

따라서 중국이 사드로 지속해서 딴지를 거는 것은 한국이 인도·태평양 동맹 참여를 확대하고 칩4 동맹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을 막으려는 하나의 전략적 족쇄를 걸려는 시도로 볼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는 중국에 왜 사드 배치가 자국 안보에 해가 되는지를 명확히 설명하라고 요구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반복적인 억지와 공세를 한국의 공세로 역전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펠로시 방한 중 윤 대통령이 휴가 중이라는 이유로 대면 회담 대신 40분간 통화만 하면서 이를 둘러싼 다양한 해석과 전망이 나온다. 아시아 순방에 나선 펠로시를 직접 만난 싱가포르 리셴룽(李顯龍) 총리나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와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대만에서 자국군 군사훈련을 하면서도 중국과는 꾸준히 관계를 강화하는 등 자존심과 실용을 동시에 추구해왔다. 기시다는 미·일 동맹과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4자 안보대화)를 통해 미국과 관계를 강화하면서 중국 견제에 앞장서왔다. 윤 대통령이 펠로시를 만나지 않았음에도 그 직후 열린 한·중 외교부 장관 회담에서 중국이 사드 족쇄 걸기를 시도했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결국 중국은 강한 자에 약하고, 약한자에 강한 면모를 보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은 중국의 이러한 특성, 내부 정치, 그리고 국가전략을 파악해 새로이 접근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한반도에서 중국의 의미와 가치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202209호 (2022.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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