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스트

Home>월간중앙>스페셜리스트

김수민 아나운서의 '리더의 언어로 말하기'(14)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리더십을 기억하자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리더십은 소탈함과 유머로 무장한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에 있었다. 외국을 방문할 때마다 해당 국가의 유력 정치인, 인사들뿐만 아니라 많은 일반인과도 만나 직접 소통했다. 연합뉴스
영국인의 자존심, 영연방의 수장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1952년 25세의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오른 이후 지난 70년 이상을 재위했다.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한 국왕이었고 특히 여왕으로서는 세계 역사상 가장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켰다.

세계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왔던 여왕의 서거 소식에 한국은 물론 각국 리더들, 그리고 수많은 글로벌 기업이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모든 공공장소에 조기를 게양하도록 지시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여왕의 서거를 애도하는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글로벌 기업의 광고판이 모여 있는 피카델리 서커스에서도 기업 광고가 사라졌다. 대신 여왕의 활짝 웃는 사진이 올라왔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서거 소식에 전 세계인은 물론, 각국 지도자들과 글로벌 기업까지 애도를 표하고 있다. 삼성전자 영국법인 홈페이지 캡처
엘리자베스 여왕은 국내는 물론 국제 정치에 일절 간섭하지 않은 여왕이었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영국 입헌군주제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며 윈스턴 처칠부터 리즈 트러스까지 16명의 영국 총리가 그녀의 재위 기간을 거쳐 갔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부터 20대 윤석열 대통령까지 대한민국의 모든 대통령이 그녀의 재위 기간을 함께 했다. 윤 대통령은 여왕의 서거 소식에 “격변의 20세기와 불확실성의 21세기를 관통하는 리더십의 모범을 보여줬다”며 “여왕과 함께 동시대의 시간을 공유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는 글로 애도를 전했다.

여왕은 영국뿐만 아니라 캐나다·호주 등 15개 입헌군주국의 국가원수이자,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국이 된 54개 국가의 연합체 ‘영연방(Commonwealth of Nations)’의 수장이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연합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여왕의 리더십 덕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리더십은 소탈함과 유머로 무장한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에 있었다. 보수적인 대영제국의 여왕이었지만 외국을 방문할 때마다 해당 국가의 유력 정치인, 인사들뿐만 아니라 많은 일반인과도 만나 직접 소통했다. 일례로 지난 1999년 한국에 국빈방문했을 때 엘리자베스 여왕은 안동 하회마을에서 생일상을 대접받으며 함께 축배를 들었다. 전통 시장을 방문했고 고추장과 김치 담그는 모습을 지켜보며 한국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당시 여왕이 신발을 벗고 한국의 고택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한국의 예법을 존중하는 모습으로 많은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난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 역할 다니엘 크레이그와 함께 메인 스타디움의 상공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영상에 등장해 수많은 사람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물론 사전에 연출된 장면이었고, 실제로는 낙하산이 착륙하는 타이밍에 맞춰 스타디움에 입장한 것이었지만 그녀가 직접 ‘본드걸‘이 돼 이런 이벤트에 참여했다는 것은 많은 리더에게 귀감이 될 만한 장면이었다.

가끔 권위와 위엄만을 앞세워 어떤 자리에 가든 근엄한 표정으로 주위를 불편하게 만드는 리더가 있다. 의전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소위 높은 사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하고만 대화하려는 리더도 있다. 이런 모습은 진정한 리더의 모습이 아니다. 리더는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긴장된 분위기를 풀어주는 부드러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훈장수여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약력을 꼼꼼히 살펴보고 메모를 한 뒤 각 사람에게 맞는 격려와 치하를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간단하고 어렵지 않아 보이지만 사실 이런 모습은 수천, 수만 명의 직원을 아래에 두고 있는 대기업의 임원조차도 실천하기 힘든 행동이다. 당장 회사나 조직의 모든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고 각 사람의 특징을 기억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어떤 위치에 있든 사람들이 그 자리를 특별하게 기억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그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리더의 역할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건 사소한 행동일 수도 있고 작은 말 한마디일 수도 있다. 리더들이여, 영국 여왕의 리더십은 일반인들에게 보여줬던 소탈한 웃음과 작은 행동들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잊지 말자.


※필자 소개: 리더스피치 대표이자 [리더의 언어로 말하기] 저자. KBS 춘천총국 아나운서로 방송을 시작해 연합뉴스 TV 앵커를 역임했으며, 현재 사이버 한국외국어대 외래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세대에 맞는 스피치를 연구하며 각 기업체 CEO, 임원들의 커뮤니케이션 컨설팅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다.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