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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국민의힘 전당대회 최대 변수 떠오른 나경원 전 의원 

친윤계 집중 견제 딛고 ‘비윤계 대표 주자’ 등극하나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당원 지지율 급락하며 ‘이준석 시즌2’ 될 가능성 커져
‘뚜껑은 열어봐야’ 신중론 속 안철수와 연대론 ‘솔솔’


▎나경원 전 의원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후환경대사 자리에서 해임된 지 이틀 만인 1월 15일 오전, 서울 동작구 흑석동성당에서 미사 후 성당을 나서며 성모상에 인사하고 있다. / 사진:김성룡 중앙일보 기자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를 뽑는 3·8 전당대회를 앞두고 나경원 전 의원(60)이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김기현 의원이 ‘친윤계’ 단일후보로 정리된 가운데 나 전 의원이 ‘비윤계’ 핵심 주자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나 전 의원이 친윤계의 집중 견제를 받는 지금의 형국이 지속된다면 비윤계를 지지하는 동정표가 나 전 의원에게 쏠릴 가능성이 있다. 정가에서는 벌써부터 안철수 의원과 나 전 의원의 연대 가능성이 거론된다. 반면 나 전 의원이 친윤계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과도 대립각을 세운 만큼 새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당심이 나 전 의원에게 등을 돌릴 수 있다. 어찌됐든 지금 나경원 전 의원은 여의도 정가의 ‘뜨거운 감자’다.

尹 정부 출범 이후 윤핵관 등 친윤계와 대립각


▎국민의힘 김기현, 권성동, 안철수 의원과 나경원 전 저출산고령 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1월 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신년인사회’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여권 사정에 밝은 이들에 따르면 새 정부 출범 이후 친윤계와 나 전 의원은 줄곧 불편한 관계였다. 친윤계는 나 전 의원을 사실상 비윤계로 간주해왔다. 윤 대통령이 비윤계인 그를 대학 시절 인연 등으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한 것도 사실상 전당대회 출마 포기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전여옥 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월간중앙과의 통화에서 “대선 과정에서 나 전 의원이 윤 대통령을 위해 한 게 뭐가 있었냐?”며 “선거기간 정치적 생명을 걸고 대통령을 도왔던 이들 중 위원장은커녕 위원 자리도 못 맡은 사람이 대부분인 반면, 나 전 의원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해 외교부 기후환경대사 자리까지 꿰찼다”고 꼬집었다.

반면 나 전 의원은 친윤계가 당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전당대회에서 의도적으로 자신을 배제하려 한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나 전 의원은 1월 13일 페이스북에 “함부로 제 판단과 고민을 추측하고 곡해하는 이들에게 한 말씀 드립니다. 나는 결코 당신들(윤핵관 등 지칭)이 ‘진정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13일 나 전 의원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했다. “나 전 의원이 현역 의원 시절이던 2017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저출산 고령사회화와 그 대책을 깊이 고민해왔다”는 게 발탁 이유였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2004년 2월 출범한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적지 않은 대통령 직속 기구가 자취를 감춘 데 반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19년째 명맥을 유지하는 중요 기관이다.

나 전 의원도 처음엔 의지를 보였다. 그는 부위원장 임명 직후 “인구정책 컨트롤타워인 위원회 위상과 달라진 새 정부 정책 방향에 맞춰 위원회 명칭을 인구 문제 전반을 아우르는 ‘인구미래전략위원회(가칭)’로 바꿀 필요가 있다”며 의욕을 내비쳤다. 하지만 차기 당대표 적합도에서 자신이 1위를 달린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정치적 야망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 전 의원은 지난해 12월 25일 페이스북에 “요즈음 제일 많이 듣는 말씀은 ‘당대표 되세요’입니다. 국민들께서 그리고 당원들께서 원하시는 국민의힘의 당대표는 어떤 리더십이 필요할까요?”라고 적었다. 지난 1월 3일 KBS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출마 여부 물음에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제가 맡은 역할을 (대통령과) 어떻게 조율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남아 있다”고 답했다. 나 전 의원은 “대통령은 어제 언론 인터뷰에서 ‘윤심은 없다’, ‘정치 개입을 안 하겠다’는 말씀을 분명히 했다”고 못 박기도 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대통령도 나의 당대표 도전을 막을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그의 이 발언은 윤심(尹心, 윤 대통령 의중)은 물론 친윤계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헝가리식 대출 탕감’ 논란 이후 용산과도 멀어져


▎나경원 전 저출산고령 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1월 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신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나 전 부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헝가리식 대출 탕감’을 주장하면서 대통령실과도 멀어졌다. / 사진:연합뉴스
전당대회 출마 포기라는 암묵적인 용산의 메시지를 거스른 나 전 의원은 이후 맹공을 당했다. 표면적으로 헝가리식 저출산 대책이 타깃이 됐다. 나 전 의원은 1월 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신혼부부나 청년의 주택 구입·전세 자금 저리 대출 제도는 마련돼 있지만 저출산 대책으로서는 불충분하다고 본다”며 “출산에 따라서, 지금껏 해온 이자를 낮춰주는 것보다 더 과감하게 원금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탕감할 수 있는 부분이 없는지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22일 충북도청에서 진행한 간담회에서 “헝가리의 경우 아이를 낳으면 초저리로 빌려준 결혼 자금의 이자를 탕감해주고, 둘째를 낳으면 원금의 절반을, 셋째는 전액을 탕감하는 정책으로 결혼율이 20% 올랐다”는 발언의 연장선상이었다.

그러자 용산 대통령실이 발끈했다.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1월 6일 기자들과 만나 “어제 간담회에서 나 부위원장이 밝힌, 자녀 수에 따라 대출금을 탕감하거나 면제하는 정책 방향은 본인의 개인 의견일 뿐”이라며 “정부 정책과 무관하고 오히려 윤 정부의 관련 정책 기조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반박했다. 여의도 정치에 대한 후각이 남다른 홍준표 대구시장은 같은 날 페이스북에 “대통령실의 경고를 새겨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두 자리를 놓고 또 과거처럼 기회를 엿보면서 설치면 대통령실도 손절 절차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나 전 의원을 저격했다.

나 전 의원은 “국가 정책의 혼선을 초래했다”는 대통령실과 “전당대회에 나갈 생각이라면 정무직을 정리하라”는 여권 인사들의 맹공을 견디지 못하고, 1월 10일 김대기 비서실장 등 대통령실 참모에게 문자로 사의를 표명했다. 이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은 친윤계는 “장관급 인사가 문자로 사의를 표명하는 것은 고위공직자로서 예의가 아니다”라고 비난했고, 나 전 의원은 결국 1월 13일 오전 서면 사직서를 정식 제출했다. 이후 윤 대통령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물론 나 전 의원이 겸임하던 기후환경대사 자리에서도 전격 해임했다. 대통령실은 사표 수리나 사의 수용 대신 ‘해임’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불편함을 내비쳤고, 후임자까지 신속하게 발표하는 강수를 뒀다.

이후 친윤계와 나 전 의원 사이 가시 돋친 설전이 이어졌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1월 13일 페이스북에 “해외 순방 직전, 대통령의 등 뒤에 사직서를 던진 것은 대통령이 자리를 비운 사이 여론전을 해보겠다는 속셈 아닌가”라며 “허구한 날 ‘윤핵관, 윤핵관’ 하는 유승민·이준석과 뭐가 다른가, 우리 당에 분탕질을 하는 사람은 이준석·유승민으로 족하다”고 일갈했다. 나 전 의원도 장 의원을 향해 “제2의 진박감별사가 쥐락펴락하는 당이 과연 총선을 이기고 윤석열 정부를 지킬 수 있겠느냐”며 “2016년의 악몽이 떠오른다”고 직격했다. 비윤계도 나 전 의원 감싸기에 나서며 연대구도를 형성했다.

비윤계 인사·야권 원로들, 나 전 의원 옹호 움직임

정치권에서는 퇴로가 막힌 나 전 의원이 결국 전당대회 출마를 결심할 것으로 본다. 3·8 전당대회가 친윤 VS 비윤 구도로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이런 구도에서 당내 비윤계가 나 전 의원의 응원군으로 등장했다. 이준석 전 대표와 가까운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장제원 의원을 향해 “세력으로, 힘으로 권위를 만들고 내세우고 싶다면 스스로 먼저 반민주주의자임을 당당하게 커밍아웃하시길 바란다”며 “한 줌이 두 줌, 세 줌이 되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게 된다면, 그것은 필경 ‘한 줌’을 규정한 오만함과 마녀사냥식 ‘낙인찍기’ 때문일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나 전 의원을 향한 친윤계의 공격을 비윤계가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의미였다.

야권 원로들 사이에서도 친윤계를 비판하는 발언이 쏟아지고 있다.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특정 세력이 똘똘 뭉쳐 한 사람을 찍어내다시피 하는 걸 좋게 볼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도 월간중앙과의 전화 통화에서 “비윤계인 유승민 전 의원을 의식해 ‘당원 선거 투표 70%·일반국민 여론조사 30% 합산’이던 당대표·최고위원 경선 룰을 ‘당원 투표 100%’로 변경해 나 전 의원의 전당대회 출마를 부추긴 것은 국민의힘”이라며 “집권 여당이 한 사람 때문에 룰을 변경했다는 점에서 좀 쫀쫀해 보이고, 대통령이 정치를 모른다고 해서 이른바 윤핵관들이 대통령이 당무에 관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행태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제2의 이준석? 아니면 2014년 김무성 당선 리바이벌?

그렇다면 나 전 의원의 정치적 운명은 어떻게 될까? 정가에서는 국민의힘 전당대회 판도가 점차 나 전 의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나 전 의원이 친윤계는 물론 대통령실과도 대립각을 세운 만큼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당심이 차츰 나 전 의원에게 등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의힘 당원들이 가장 바라는 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고 정권도 재창출하는 것”이라며 “당장 총선에서 이기려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라가야 하는데, 나 전 의원처럼 자기 정치하고 용산에서 반대하는 이를 당원들이 계속 지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전여옥 전 의원은 “이른바 ‘이준석 사태’를 통해 충분한 학습 효과가 있었던 만큼 당원들이 알아서 잘 판단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한때 나 전 의원의 측근으로 분류됐던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도 YTN 라디오의 한 프로그램에서 “지지율은 신기루 같은 것이고 당원들이 등을 돌리는 것도 삽시간”이라며 “당원들이 왜 지지하는지를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국민의힘 지지층을 상대로한 차기 당대표 적합도 조사에서 김기현 의원이 나 전 의원을 오차범위 내에서 제쳤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반면 뚜껑은 열어봐야 안다는 신중론도 만만찮다.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투표권을 가진 당원이 크게 증가한 상황에서 만약 나 전 의원이 2등 안에 들어 결선에 진출한다면 나 전 의원이 당대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비윤계 지지층의 표심이 막판에 결집돼 나 전 대표의 손을 들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정가에서는 범친윤계로 꼽히는 안철수 의원이 나 전 의원과 손을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안 의원은 최근 페이스북에 “당의 중요한 자산을 배척하는 전당대회가 되면 안 된다”고 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나 전 의원은 물론 유승민 전 의원 등 친윤계가 견제하는 이들을 ‘당의 중요한 자산’으로 표현하며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여의도의 한 정치평론가는 “나 전 의원은 결국 제2의 이준석의 길을 걷게 되거나, 2014년 김무성 당대표 당선의 리바이벌이 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으로 보인다”며 “흥미진진한 전당대회가 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choi.eunseok@joongang.co.kr

202302호 (202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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