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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취재] 줄줄 새는 국고보조금… 광복회 복마전 실태 

누적 부채만 20억인데… 직원 늘리고, 수익 사업은 뒷걸음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칼 빼든 국가보훈처 “보조금 지급 늦춰서라도 광복회 정상화시킬 것”
1년 새 광복회 수장 4차례 교체돼… 고질적 조직 내홍부터 해결돼야


▎광복회의 직전 3개연도(2020~2022년) 연간 적자 및 누적 적자 현황을 보면 2020년 11억1425만원, 2021년 22억4659만원, 2022년 19억3490만원에 이른다. / 사진:연합뉴스
대표적인 국가보훈단체인 광복회(회장 직무대행 최광휴)가 설립 이후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국가보훈처가 ‘광복회 정상화’를 위해 칼을 빼들면서 임직원 월급도 못 줄 처지가 됐다. 월간중앙 취재 결과 보훈처는 2월 18일 기준 광복회에 국고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보훈처는 2월 14일 “광복회가 고 김원웅 전 광복회장 시절 규정에 맞지 않는 새로운 직원들을 증원한 것으로 파악하고 확인 중에 있다”며 “국고보조금은 국민의 혈세이기 때문에 급하게 지급하기보다 혹여나 과다하게 지급되지 않도록 광복회 인력 증원이 타당한지 명확하게 따져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광복회는 보훈처에서 매년 25억여 원의 국고보조금을 받는다. 이는 광복회 수입(2022년 41억여 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누적 부채만 20억여 원에 이르는 광복회는 이 때문에 현재 임직원 급여도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광복회는 어떤 문제를 안고 있기에 보훈처로부터 이 같은 경고성 조치를 받은 것일까?

공고·면접 과정 없이 직원 신규 채용


▎월간중앙이 입수한 2023년 광복회 현 보직자 명단을 보면, 총무팀장·기획정책실장·선약복지국장 자리에 보직자가 2명씩으로 나타났다.
국회 카페 수익금 횡령 및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수사를 받던 김원웅 전 회장이 자진해서 사퇴한 건 지난해 2월 16일. 하지만 김 전 회장 사퇴 후에도 의혹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인력 증원 문제다. 보훈처 감사 결과 김 전 회장은 2019년 6월 1일부터 2022년 2월 16일까지 재직하면서 직원 15명을 채용했는데, 정상적인 공고나 면접 과정없이 7명을 뽑았다. 그중 4명이 김 전 회장의 지인이었다. 이 때문에 김 전 회장 재임 기간에 광복회 임직원 수는 16명에서 26명으로 60% 넘게 늘었다. 그 뒤 일부 직원이 면직되긴 했지만 지난해 7월까지도 광복회 직원은 20명대 초반을 유지했다. 광복회가 보훈처에 제출한 2023년 예산안에 따르면, 광복회 본부 임직원 총 25명에게 지급될 올해 인건비만 7억여 원(국고보조금 5억여원 + 광복회 자체 사업 수익금 2억여 원)에 달한다.

광복회 임직원 수가 급증한 이유는 직위 하나에 직원 두 명이 임명된 ‘복수 보직자’가 있기 때문이다. 월간중앙이 ‘2023년 광복회 현 보직자 명단’을 확인한 결과, 총무팀장·기획정책실장·선약복지국장 자리에 보직자가 2명씩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A 실장, B 국장은 대기발령 후 정직 3개월 처분을 받았다. 대기발령 상태에서는 기존 급여의 60~70%를 받는다.

왜 이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일까? 광복회원들은 고질적인 광복회 내부 갈등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광복회원은 “김 전 회장 때부터 기존 직원을 면직하고 그 자리에 자기 사람을 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광복회는 1년 내내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는 결국 자리싸움이다. 월급 받는 자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욕설과 몸싸움도 서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광복회의 내부 갈등은 오래된 적폐로 꼽힌다. 김 전 회장의 사퇴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장호권 광복회장은 지난해 7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광복회원이 9000명 정도인데 중심에서 운영하거나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사람은 100명도 채 안된다”며 “이 사람들이 여러 계파로 나뉘어 경쟁하며 어떻게든 서로에게 흠집을 내려고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광복회 내부에서 지난해부터 올해 1월 말까지 임직원이 면직된 사례만 14차례나 된다. 한 달에 1명 이상이 면직 처분을 받은 셈이다. 이 가운데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임이 인정돼 해당 직원을 복직시키고 그에게 임금상당액을 지급한 사례도 있다.

광복회가 운영하는 수익 사업의 비리·부실도 문제다. 각종 특혜 의혹으로 구설에 오르고, 김 전 회장 비자금 조성에 쓰였다는 의혹을 받는 국회 ‘헤리티지 815’ 카페는 결국 문을 닫았다. ‘독립운동가 만화 출판’ 사업도 인쇄비 과다 견적 등의 문제가 발견돼 책을 출판하지 못하고 창고에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광복회 수익 사업이 올해 개선될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수익 사업 업무를 담당하는 사업관리부에는 현재 보직자가 없다. 한 광복회원은 “김 전 회장 시절 만들어진 사업관리부는 자기 계파의 사람에게 월급 받는 자리를 만들어주려고 신설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수익 사업 운영과정의 비리·부실도 문제


▎2월 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광복회관 앞에는 광복회 정상화를 원하는 한 광복회원이 ‘환골탈태 광복회 새롭게 출발’이라는 현수막을 걸어놨다.
복수의 광복회원에 따르면, 광복회장이 조직을 사유화할 수 있는 광복회 정관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촉발됐다는 의견이다. 현재 광복회 정관 제25조(사무국) 제1항에는 “본회의 이사회 의결로서 사무총장 밑에 국, 부, 팀을 신설 및 폐지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관련해서 광복회 회무규정 제9조(임·직원)는 “직원의 증감은 회장이 정한다”고 적시돼 있다. 광복회장이 마음만 먹으면 부도 직전의 재정 상태라고 해도 직원을 늘리고 부서를 신설할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광복회는 이런 문제들이 중첩되면서 지난해 적자만 19억3490만원에 이른다.

광복회 정상화의 길은 없을까? 우선 조직 내부에서 정상화의 동력을 찾아야 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광복회는 1년 새 수장이 4차례나 바뀌면서 구심점을 잃은 모습이다. 김 전 회장 사퇴 이후 허현 직무대행을 거쳐 지난해 5월 장호권 회장이 취임했다. 하지만 일부 광복회원들이 “장 회장을 포함한 몇몇 후보들이 결선 투표 시 표를 몰아주기로 담합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장 회장을 상대로 직무 집행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이 이를 인용했다. 이후 김진 직무대행 역시 일부 회원의 소송으로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현재는 관선 변호사 최광휴씨가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광복회가 골칫덩이로 전락하자 보다 못한 원로들이 모여 광복회 정상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인 김황식 전 국무총리 등 독립운동가 기념사업회장과 후손 13명은 성명을 통해 “단체가 내홍에 휩싸여 그 권위와 위상이 땅바닥에 떨어져가고 있다”며 “위기에 빠진 광복회의 현실을 볼 때 광복회 스스로 자정 노력도 필요하지만, 보훈처에서도 관심을 두고 광복회가 조속히 정상화돼 국민에게 존경받는 단체로 거듭나도록 필요한 노력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10월 보훈처는 “광복회가 전임 회장들의 비위·비리 및 비정상적인 단체 운영 등 일탈 행위로 회원들 간 물리적 충돌 및 대립 상황이 발생해 광복회뿐만 아니라 모든 보훈단체의 위상마저 실추되고 있다”며 “향후 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절실한 실정임을 유념해 광복회가 이른 시일 내에 애국단체로서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광복회 내부 갈등은 끊이지 않고 있다. 결국 보훈처가 태도를 바꿨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최근 “광복회 스스로 환골탈태를 기대하는 게 어렵다면 더는 단체의 자율성을 존중하며 기다릴 수만은 없다”며 “광복회가 본연의 자리로 반드시 돌아올 수 있도록 ‘비상한 각오로, 어떤 조치라도’ 취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5월 회장 선거가 정상화 계기 될 듯


▎김황식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전 국무총리)이 지난 1월 18일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린 광복회 정상화 국가 원로 촉구 공동성명서 간담회에서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독립운동가 기념사업회장 및 후손들과 광복회 정상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후 기념 촬영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광복회 정상화 추진은 투 트랙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정관 정비와 신임 광복회장 선거가 그것이다. 보훈처는 정관 정비와 관련해 최광휴 직무대행과 깊이 있는 논의를 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최 직무대행이 광복회 내 행정적인 부분, 그리고 정관 정비 등에 대한 조치에 나설 예정”이라며 “광복회에 대한 국고보조금 지급 시기는 이러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관 정비는 1인 독재 체제, 특정 계파 비호를 예방하는 데 방점이 찍힐 전망이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지난해 9월 “김 전 회장이 권한을 남용해 독단적이고 자의적으로 광복회를 운영한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며 “그야말로 1인 독재체제로 광복회를 사유화했다. 무법자의 일당독재 같았다”고 말한 바 있다.

보훈처는 오는 5월로 예정된 신임 광복회장 선거와 관련해서도 광복회와의 조율을 거쳐 그간의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광복회장 선거가 조직을 정상화시키는 첫 단추가 될지, 아니면 더욱 심한 갈등으로 빠지는 구렁텅이가 될지 관심이 몰린다.

-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choi.hyunmok@joongang.co.kr

202303호 (20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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