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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K컬처 톺아보기(12)] '더 글로리', 학교폭력에 투영된 한국사회 부조리 

우리는 생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 

학교폭력 이슈 수면 위로, ‘생존자들의 서사’에 대중 관심 높아져
[약한영웅 Class 1], [돼지의 왕] 부모 경제력 따른 양극화 지적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의 학교폭력 피해자 문동은(송혜교)의 모습. 이 작품은 피해자의 몸에 난 상처보다 더 깊은 건 마음에 새겨진 상처라고 말한다. / 사진:넷플릭스
최근 K콘텐트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는 ‘학교폭력’이다. 이를 소재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는 최근 이러한 학교폭력 이슈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작품으로 꼽힌다. 이 작품이 담고 있는 학교폭력은 한국사회의 어떤 부조리를 투영하고 있는 걸까.

잔혹하다. 고등학생들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뺨을 때리고 발로 차는 건 예삿일이고, 마치 고문이라도 하듯 뜨겁게 달궈진 고데기(머리를 펴거나 웨이브를 넣어 모양을 낼 때 쓰는 전자제품)와 다리미로 온몸을 지져 살갗을 문드러지게 한다. 피해자는 온몸에 화상 자국과 멍이 남았고, 나이 들어도 그 자국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몸에 난 상처보다 더 깊은 건 마음에 새겨진 상처다.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만들며 나아가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조차 버겁게 만드는 상처. 학창시절 벌어진 학교폭력은 그렇게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부숴버린다. 게다가 더 끔찍한 건 그 가해자들이 너무나 버젓이 잘 살아간다는 점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들은 당시 끔찍한 학교폭력을 저질렀지만,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돈과 권력을 가진 부모들은 학교도 경찰도 가해자들 편에 서게 만들었다. 심지어 피해자의 가난한 부모 역시 가해자 부모의 돈 몇 푼에 합의서를 써주고는 딸을 버리고 도망쳤다.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삶. 그것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의 학교폭력 피해자 문동은(송혜교)의 삶이다.

그저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는 최근 학교폭력 이슈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작품으로 꼽힌다. / 사진:넷플릭스
드라마 속 이야기일 뿐이라고? [더 글로리]가 학교폭력의 소재로 쓴 고데기 사건은 2006년 세상을 놀라게 했던 실화로부터 가져왔다. 청주의 모 여중에서 벌어진 이 학교폭력은, 서너 명의 동급생이 약 20일에 걸쳐 한 여중생을 대상으로 고데기로 팔에 화상을 입히고, 머리핀 등으로 가슴에 상처를 내고, 둔기로 피해자의 온몸을 폭행해 피멍이 들게 만들었던 사건이었다. 당시 학교 측은 ‘결정적 단서가 없다’며 사건을 급히 마무리 지으려 했다. 이에 피해자의 아버지가 경찰에 고발함으로써 가해 학생은 구속되고 제대로 대처하지 않은 학교와 교사들은 행정처분을 받았다.

[더 글로리]가 화제가 되면서 그 ‘실화판’이라는 이야기들이 인터넷에 회자됐고, 몇몇 방송은 이를 소개하기도 했다. 즉 우리 사회에는 문동은 같은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실제로 적지 않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더 글로리]로 인해 학교폭력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그 피해 사실을 고백한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최근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여행 크리에이터 ‘곽튜브’의 고백이 대표적인 사례다. 늘 해맑게 웃고 여행 중 만난 외국인들과 더할 나위 없는 온정을 나누곤 했던 곽튜브지만, 그가 고백한 학교폭력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당시 너무 힘들어 “외국에 나가서 한국인이 없는 데서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곽튜브는 그래서 지금의 여행 크리에이터가 된 것 같다고 말했지만,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었다고 짚었다.

[더 글로리]가 촉발한 학교폭력에 대한 이슈는 그것이 ‘생존자들의 서사’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다.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사실 죽음까지 내몰렸던 그 상황 속에서 끝내 버티고 싸워 살아남은 생존자들이다. 문동은 역시 아무런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그 삶을 놓으려 했다. “흉터는 가렵고 생리통으로 배는 끊어질 듯 아프고 그 순간 그런 생각이 들더라. 약국은 9시에 열고 한강은 20분만 걸으면 된다.”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던 문동은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삶 때문에 가졌던 이 ‘안 좋은 생각’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복수심이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자신의 삶을 부서뜨린 저들의 삶 또한 부서뜨리는 것. 문동은은 가해자 연진에게 “오늘부터 내 꿈은 너야”라며 미친듯이 웃음을 짓는다. 그렇게 살아남아 일을 하고 검정고시로 학교를 졸업하고 교육대학에 들어간다. 그가 굳이 교육대학에 들어간 이유는 단 하나다. 그곳이 모든 걸 다 가진 가해자 연진(임지연)이 거의 유일하게 문동은을 두려워할 한 가지를 만들어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건 다시 학교다. 너무 부유해 꿈같은 건 가질 필요도 없어 ‘현모양처’가 꿈이라고 했던 연진이 유일하게 두려워할 존재는 아이의 선생님일 테니까.

[더 글로리]의 문동은처럼, 이제 우리 사회에서 ‘생존자들의 서사’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강력한 힘을 드러낸다. 그것은 실제 현실의 결핍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산재한 그 많은 사건·사고의 생존자들을 떠올려 보라. 가깝게만 봐도 세월호 참사의 생존자들(피해자 가족들)은 지금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진상규명을 호소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고, 이를 똑 닮아 있는 이태원 참사의 생존자들 역시 여전히 그때의 시간에 멈춰서 고통받고 있다. 이들 피해자는 소수자로 치부돼 무시되고, 심지어 매도당하기도 한다.

K콘텐트가 관심 갖게 된 생존자들의 서사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약한영웅 Class 1]은 유약한 모범생이 학교폭력에 맞서며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학원액션물이다. / 사진:웨이브
물론 지금은 과거 군부정권 시절에 군대에서 ‘관심사병’이라 지칭하며 다수자의 사회에 부적응자로서 소수자를 보던 그런 관점이 존재했던 시대와는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곽튜브가 이야기한 것처럼, 소수자일 수밖에 없는 피해자들, 아니 생존자들의 목소리에 우리 사회가 귀 기울이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생존자들의 서사’가 담긴 콘텐트가 많아지고 있는 건, 이러한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가 그만큼 크다는 걸 말해준다.

그런데 문동은의 복수극에는 경쟁적인 한국사회의 일면 또한 더해져 있다. 복수하려면 어떻게든 권력을 쥐어야 하고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이가 노력해서 권력을 쥘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결국 교육뿐이다. 문동은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에 뜻이 있어 그 길을 선택한 게 아니다. 그 타이틀을 가져야 권력을 쥘 수 있고 나아가 생존의 이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가진 교육의 문제를 에둘러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교육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된다. 다 가진 이들에게도, 또 모든 걸 빼앗긴 이들에게도. 그러니 이러한 학교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폭력이 벌어질 수밖에.

웹소설과 웹툰에는 학교폭력을 다루는 콘텐트가 ‘학원액션물’이라는 장르로 불릴 만큼 많아졌다. 여기에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가 중심적인 플랫폼으로 자리하면서, 그간 레거시 미디어에서는 다루지 못했던 이들 학원액션물이 OTT에서 여럿 제작됐다.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약한영웅 Class 1], 디즈니+ [3인칭 복수], 티빙에서 원작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해 리메이크한 [돼지의 왕]이 그것이다. 넷플릭스는 이미 [인간수업]을 통해 청소년 성매매는 물론이고 그들이 마주한 폭력적인 현실을 다룬 바 있고, [지금 우리 학교는] 같은 좀비물 역시 그 근간에는 학교폭력이 소재로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더 글로리]를 포함한 학교폭력을 다루는 이 많은 K콘텐트에는 공통으로 어른거리는 한 가지 특징이 존재한다. 그것은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 나뉘는 양극화된 사회의 부조리다. [더 글로리]의 피해자 문동은의 엄마와 그를 가해한 연진의 엄마는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엄청난 부자인 연진의 엄마는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연진의 잘못 따위는 문제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반대로 문동은의 엄마는 돈 때문에 딸의 피해 사실을 부정하는 합의서에 사인을 해주는 인물이다. [약한 영웅 Class 1]에서도 이러한 양극화된 사회는 부유한 부모와 가난한 부모를 가진 아이들의 대비로 드러난다. 늘 혼자 지내는 연시은(박지훈)과 상반되게 뭐든 무마해주는 부모를 둔 영빈(김수겸)이 그렇고, 절친이었지만 비뚤어지는 오범석(홍경)의 이야기에도 엇나간 부모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돼지의 왕]은 그 문제의식 자체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뉘는 양극화된 사회가 만들어내는 상반된 삶을 전제로 하고 있다. 즉 살을 내주는 것으로 존재가치를 인정받는 것도 모른 채 살아가는 ‘돼지의 삶’과 태생적으로 사랑받는 ‘개의 삶’이 다르다는 것. 그래서 돼지의 삶을 살게 태어난 자들이 힘을 가지려면 악해져야 하고 괴물이 돼야 한다고 이 드라마 속 철이(최현진)는 말한다. 물론 그러한 사회에 대한 복수심은 결국 파국에 이르게 되지만.

학교폭력이 민감하게 건드리는 양극화 사회


▎티빙에서 원작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해 리메이크한 [돼지의 왕]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뉘는 양극화된 사회가 만들어내는 상반된 삶을 그리고 있다. / 사진:티빙
최근 해외에서도 각광받는 K콘텐트는 자본화된 한국사회의 부조리한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다룬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빈부로 나뉜 한국사회의 계급구조를 지하·반지하·지상이라는 공간을 통해 그려낸 바 있고, 김은희 작가의 [킹덤]은 양극화된 ‘헬조선’의 풍경을 조선 시대라는 시공간에서 기득권자들이 변한 좀비와 그저 배가 고파 좀비가 된 민초들의 좀비를 대비해 그려냈다. 최근 이러한 양극화된 사회에 대한 K콘텐트의 비판의식은 [대행사] 같은 오피스물이나, [사랑의 이해] 같은 멜로드라마 속에서도 첨예하게 그려진다. [대행사]는 스펙과 연줄로 연결된 저들만의 카르텔에 의해 분명한 경계의 선이 존재하는 회사에서 갑과 싸워나가는 을의 연대를 그리고 있고, [사랑의 이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졸 출신과 고졸 출신, 남과 여로 나뉘는 사회 속에서 사랑 같은 관계가 얼마나 ‘이해관계’에 의해 휘둘리는가를 그려내고 있다.

[더 글로리] 같은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 K콘텐트는 이러한 양극화된 사회가 아이들을 어떻게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 만들어내는가를 보여준다. 한때 그나마 교육은 태생적 삶의 조건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성장의 사다리였지만 지금은 이조차 무너졌고, 이러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학교를 떠나 사회로 나와서도 여전히 가해자와 피해자의 삶을 사는 현실을 학교폭력을 다룬 K콘텐트가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작품들을 해외에서도 공감한다는 건 자본화된 삶의 양태가 여기나 저기나 다를 바 없어지고 있다는 걸 말해주고 있다.

※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MBC 시청자 평가원, JTBC 시청자 위원으로 활동했다. 백상예술대상, 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며 SBS [열린TV 시청자 세상], KBS [연예가중계]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했다. 저서로 [숨은 마흔 찾기],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웃기는 레볼루션] 등이 있다.

202303호 (20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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