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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K컬처 톺아보기(13)] 왜 우리는 뉴진스(NewJeans)에 열광하나 

‘청춘’의 아이콘화, 대중 제대로 홀렸다 

12월 발표 ‘디토’ 멜론 일간차트 77회 1위, BTS 기록 뛰어넘어
뉴트로 감성… ‘후크’ ‘칼 군무’ 등 기존 K팝 공식 깨고 신드롬


▎뉴진스는 뉴트로적 감성을 자극하며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다. / 사진:어도어
현재 가장 뜨거운 K팝 아이돌을 꼽으라면 누굴까. 방탄소년단이 전 세계를 들썩이게 했지만, 현재 뉴진스(NewJeans)만큼 뜨거운 아이돌이 있을까. 등장한 지 1년도 안 돼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뉴진스에는 어떤 비밀이 있는 걸까?

“○○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뉴진스의 하입보이(Hype boy)요.” 최근 어떤 질문에도 무조건 “뉴진스의 하입보이요”라고 동문서답하고는 뜬금없이 춤추는 밈(meme)이 유행이다. 여기서 ‘하입보이’는 뉴진스의 데뷔곡 중 하나다. 작년에 방영된 Mnet [쇼 미더 머니11]에서 우승 공약을 묻는 말에 릴보이가 “뉴진스의 하입보이요”라고 답해 웃음을 줬고, 심지어 정치인까지 어딜 가냐는 질문에 같은 답을 할 정도로 이 밈은 하나의 캠페인처럼 번져 나갔다. 그런데 이 밈에 담긴 의미가 심상찮다.

이 밈은 작년부터 해외에서 유행하던 콘텐트에서 비롯됐다. 즉 이어폰을 낀 행인에게 “지금 무슨 노래 듣고 계세요?”라고 묻는 콘텐트였다. 국내에서도 그 유행이 번져 여러 지역에서 유사한 콘텐트가 나왔는데, 그중에는 이 유행을 웃긴 상황으로 연출하는 밈도 생겨났다. 즉 듣는 노래를 묻는 게 아니라 길을 묻는 사람에게도 그냥 자신이 듣고 있던 곡 제목을 알려주고 지나가는 영상이 그것이다. “뉴진스 하입보이요”는 이 연장 선상에서 생긴 한국 버전의 밈이다. 홍대에서 길을 물으려 붙잡는 행인에게 다짜고짜 “뉴진스 하입보이요”라고 답하고는 춤을 추며 사라져버리는 식이다.

밈(meme) 양산할 정도로 신드롬


▎뉴진스는 하이브 산하 독립 레이블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가 만든 첫 번째 걸그룹이다. / 사진:어도어
여기서 중요한 건 그 밈의 주인공으로 하필이면 뉴진스가 등장한 부분이다. 그만큼 뉴진스가 핫(Hot)하다는 이야긴데, 이건 허명이 아닌 실제 지표들이 증명한다. 최근의 기록만 봐도 그렇다. 뉴진스가 지난해 12월에 발표한 곡 ‘디토’(Ditto)는 멜론 일간 차트 77회 1위(3월 8일 기준)를 기록함으로써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가 거뒀던 75회 1위 기록을 넘어섰다. 이 곡이 역대 멜론 차트 일간 누적 최다 1위 곡이 된 것이다. 이것은 멜론만의 기록이 아니다. 지니, 플로, 바이브, 벅스 등 전 음원사이트 실시간 차트 1위를 유지하고 있고, 유튜브 뮤직에서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디토’만이 아니라 뉴진스의 다른 곡들인 ‘OMG’, ‘하입보이’ 같은 곡들도 차트에서 2~3위를 유지 중이다. 작년에 첫 번째 앨범 ‘뉴 진스’(New Jeans)와 올해 초에 낸 두 번째 앨범 ‘OMG’까지 총 6곡을 발표했을 뿐인데 이런 놀라운 기록을 내고 있다는 건 이 현상이 거의 신드롬에 가깝다는 걸 말해준다.

게다가 이 신드롬이 그만한 의미와 가치를 가진 것이라는 걸 제20회 한국대중음악상의 결과가 입증했다. 뉴진스는 ‘올해의 신인’, ‘최우수 K팝 노래’, ‘최우수 K팝 음반’ 부문까지 총 3개 부문 상을 받았다. ‘디토’의 곡 작업을 한 프로듀서이자 가수인 250 역시 ‘올해의 음악인’ 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함으로써 뉴진스라는 걸그룹의 음악적 성취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시상식에서 이재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은 2022년을 “뉴진스의 해”라고 상찬하며 그 이유로 “빈틈 하나 없이 가득 채워져, 때로는 소비하면서도 피로감이 들 때도 있었던 콘텐트 속 뉴진스의 등장으로 K팝 산업은 비로소 환기됐다”고 했고, 특히 “덜어냄의 미학, 자연스러움의 추구, 가벼움, 무엇보다도 듣기 좋고 보기 좋은 음악과 콘텐트, 그리고 비주얼이 많은 사람의 눈과 귀를 확실하게 사로잡았다”고 평가했다.

뉴진스가 거둔 음악적 성취는 절제된 심플한 비트 위에 자연스럽게 소녀들의 목소리로 얹어지는 멜로디 랩이 주는 중독성만으로도 충분하다. 사실 진짜 공력이란 힘을 뺄 때 나온다고 했던가. 뉴진스의 음악은 처음 들으면 어딘가 강렬함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상하게도 그 깃털처럼 가볍게 통통 튀는 음악이 계속 귓가에 맴돈다. 그 많은 K팝 아이돌 그룹들이 강박적으로 후크송에 집착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접근이지만, 어째 그 후크송들보다 더 청자의 귀를 잡아끈다. 한 마디로 뉴진스의 음악을 말하긴 어렵지만, 그 느낌은 ‘청춘의 순수함과 자연스러움’으로 다가온다.

대중 기억 속 청춘의 면면 잘 보여줘


▎뉴진스가 2월 16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서울특별시 홍보대사 감사패 수여 및 위촉식’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리고 이것은 뉴진스라는 5인조 걸그룹이 가진 이미지 그 자체다. 뉴진스(NewJeans)라는 그룹명이 그렇다. 새로운 청바지를 뜻하는 이 그룹명은, 시대를 뛰어넘어 남녀노소가 변함없이 찾아 입는 옷 같은 그런 그룹의 이미지를 담았다. 왜 명품이 아니고 청바지일까. 그건 화려하게 치장할 필요가 전혀 없는 그저 풋풋한 청춘 그 자체를 드러내는 것일 게다. 어떤 라벨이 붙어도 그 자체로 아름답고 건강하게 느껴지는 옷이 바로 청바지가 아닌가. 나이 들어도 청바지를 입으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을 주는 옷, 그래서 뉴진스의 키워드는 청춘, 순수, 자연스러움 같은 것들이다. 물론 뉴진스의 ‘진’을 ‘Jean’ 대신 ‘Gene’(유전자)으로 해석해 새로운 유전자라는 해석이 덧붙여지기도 하지만.

뉴진스가 청춘을 아이콘화하고 있다는 것은 멤버들의 이미지를 통해서도 보인다. 중장년 세대라면 ‘디토’ 뮤직비디오에서 교복을 입고 뛰어다니며 춤을 추는 리더 민지의 얼굴에서 떠오르는 배우가 있을 게다.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영원한 줄리엣의 초상으로 남아있는 올리비아 핫세다. 그런데 올리비아 핫세는 현재 칠순의 나이다. 그러니 이 이미지는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줄리엣의 초상이다. ‘디토’의 뮤직비디오에서 캠코더로 찍은 비디오테이프의 영상이 중간중간 등장하는 건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인간은 시간을 거스를 수 없고, 그래서 청춘의 시간은 지나가기 마련이지만, 그렇기에 청춘의 기억은 영원하다. 뉴진스가 아이콘화한 청춘은 그런 의미다. 현재의 풋풋함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저마다의 청춘의 면면을 뉴진스는 걸그룹의 이미지로 가져왔다.

뉴진스는 하이브 산하 독립 레이블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가 내놓은 첫 번째 걸그룹이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샤이니, 에프엑스 같은 아이돌 그룹을 만들었고, 퇴사해 하이브 산하의 독립 레이블 대표가 된 민희진인지라, SM의 색깔이나 하이브의 색깔이 묻어날 것처럼 보이지만, 놀랍게도 뉴진스는 그 어느 쪽과도 다른 독자적인 길을 선택했다. 민희진 대표는 인터뷰를 통해 이른바 K팝 성공 공식이라는 것을 깨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실제로 뉴진스는 이젠 공식화된 K팝 아이돌과는 사뭇 다른 길을 걸었다.

앞서도 언급했듯 뉴진스가 보여주는 청춘은 우리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이미지로서 절대 시들지 않는다. 그러니 꾸밀 필요가 없다. 어딘가 미숙해도 그 자체의 자연스러움만으로 아름다울 수 있다. 이것은 뉴진스가 보통의 새로운 걸그룹이 갖가지 콘셉트와 세계관을 더해 떠들썩하게 등장했던 것과 다른 선택을 한 이유다. 이들은 귀여운 여자친구의 이미지도, 또 걸크러시 이미지도 아닌, 또래 소녀들의 모습 그대로다. 이렇다 할 세계관도 제시하지 않은 채 담담하게 등장했다. 곡도 티저 영상을 보여주며 기대감을 높인 후 조금씩 공개하는 방식이 아닌, 앨범 전체를 동시에 공개했다. 뮤직비디오도 마찬가지다. 이런 방식은 1990년대 초창기 걸그룹의 행보를 닮았다. 그래서 담담하지만, 오히려 도드라져 보이는 효과를 냈다.

뉴트로의 ‘힙’에 젊은 세대도 열광


▎하이브 산하 독립 레이블 어도어는 3월 9일 뉴진스가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 누적 스트리밍 횟수 10억회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 사진:어도어
‘자연스러움’을 강조한 부분은, 음악과 춤에서도 드러난다. 충분한 가창력과 춤 실력을 갖춘 이들이 뮤직비디오를 통해 들려주는 노래와 보여주는 춤은 어딘가 아마추어 같은 풋풋함이 묻어난다. 목소리도 과하게 고음을 질러대는 면이 별로 없고(곡 자체가 그렇다), 어찌 보면 소녀들의 앳된 목소리를 그대로 음악에 얹어놓은 느낌을 준다. 춤도 K팝 아이돌이라면 늘 떠오르는 ‘칼 각’과는 거리가 멀다. 인위적으로 맞춰진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날 것의 느낌을 준다.

뉴진스에게 뉴트로의 향기가 묻어나는 건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그 뉴트로는 이른바 ‘Y2K’ 감성이라고 말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겹쳐지는 그 지점을 겨냥한다. 캠코더와 비디오테이프, CD와 디스크맨, 음반과 턴테이블로 문화를 향유했던 시대의 추억. 어딘가 빛바래고 낡은 아날로그의 기억들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기억에 선연한 그 이미지들은 현재 젊은 세대가 뉴트로에 열광하는 이유다. 디지털은 복제와 속도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개성이 없다. 그래서 나만의 독특한 경험을 하고픈 젊은 세대에게 디지털 이전의 아날로그는 멋진 신세계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문화 소비에 있어 디지털이 복제 기반으로 값싸게, 더 많은 대중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몰개성화된 것에 대한 반작용이다.

‘디토’의 뮤직비디오에서 뉴진스는 시간을 되돌려 1990년대의 소녀들로 등장한다. 그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캠코더에 찍혀진 거친 영상 속에는 교복을 입은 소녀들이 아이돌을 꿈꾸며 교실에서 춤을 춘다. 그건 스쳐 지나가는 영상이지만, 기성세대에게는 나이 들어도 기억 속에서 변하지 않는 가장 빛났던 청춘의 순간들로 다가온다. 그리고 젊은 세대에게는 자신들을 닮았지만, 과거 아날로그의 빛 속에 들어 있는 뉴트로의 힙하고 새로움을 가진 존재들로 다가온다.

뉴진스가 전 세계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건, 이 아찔한 속도로 달려가는 디지털 세상에서 조금은 멈춰서 가장 빛났던 청춘의 시기를 되돌아보고픈 그 뉴트로적 감성을 정확히 건드렸기 때문이다. K팝의 틀을 벗어나기 위한 ‘역행’이 만들어낸 것이지만, 그것이 도달한 지점은 서툴고 어색해도 자연스러움 하나만으로도 아름답고 생명력이 넘쳤던 우리 모두의 기억 속 청춘의 지대였다. 그래서 뉴진스는 그저 일회적 유행이 아닌 지속적인 현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룹명에 담긴 의미처럼, 언제 꺼내 입어도 그걸 입던 시절의 풋풋함을 환기하는 청바지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했으니.

※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MBC 시청자 평가원, JTBC 시청자 위원으로 활동했다. 백상 예술대상, 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며 SBS [열린TV 시청자 세상], KBS [연예가중계]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했다. 저서로 [숨은 마흔 찾기],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웃기는 레볼루션] 등이 있다.

202304호 (202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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