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포토포엠] 당신은 잘 가고 나는 잘 왔습니다 

 

이재연

▎덕수궁의 봄 / 사진:박종근 비주얼실장
겨울이 남아있기엔 바람이 부족했고
봄이 오기엔 사용해야 할 겨울이 아직 남아있었다

누군가 왔다 갔던 길이 자꾸 떠올라 지워지지 않은 것도
다시 기억하지 않으려고 이름을 오래 안고 있었던 것도
또 다른 침묵이었다

여긴 너무 고요해, 문을 열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바람이 강의 물살을 건드렸다 흙은 스스로 부풀어 올라 입김을 토했다
왜 이리로 와야 했는지 꼭 이 길로 와야만 했는지
햇살이 아른거렸다

조용한 고지대에 올라 조금 남아 있던 너를 아주 보냈다
실내등을 끄고 자꾸만 어둠을 바라보려 했던 나의 마음도
너와 함께 보내고 난 후, 겨울나무에 물색이 돌아왔다

슬그머니 뒷모습을 감추었던 고양이가 골목으로 돌아왔다
한 조각 햇살을 끌어당기던 오후의 벤치도 공원으로 돌아왔다
그때, 너 보내고 없는 주소지에
나보다 먼저 꽃이 돌아와 있었다

※ 이재연 - 전남 장흥 출생. 2005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2012년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시집으로 [쓸쓸함이 아직도 신비로웠다]가 있으며,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계간 [시와사람], [사이펀] 편집위원이다.

202304호 (202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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