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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 지방 소멸… 고향사랑기부제가 답이다(3)] 남해의 숨은 보석, 경남 남해군 

100일 만에 기부금 1억 모은 비결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고향사랑기부제 시작 100일 만에 1억 모금해 상위 30위권 올라
‘젊은 세대는 여행, 중장년엔 추억과 바다 별미’ 맞춤 답례품 주효


▎경상남도 남해군은 남해의 보석 같은 지자체다. 바다를 품은 섬들의 수려한 경관은 이곳을 찾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 사진:남해군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된 지 100일을 넘기면서 지방자치단체마다 기부금 유치활동도 본격화하고 있다. 모금 실적은 지자체마다 들쑥날쑥하다. 3월 11일 기준 전국 시·도 집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가장 많은 기부금을 모은 지자체는 전북 임실군이다. 임실군은 이 기간에 2739건, 3억1100만원을 모았다. 경북 예천군과 의성군이 각각 1026건(2억3712만원)과 824건(2억100만원)으로 뒤를 이었다.

모금 실적을 가른 건 답례품이다. 임실군의 경우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임실치즈’를 전면에 내세웠다. 기부자의 절반 정도는 치즈와 요거트 등 유제품을 답례품으로 선택한다. 전국 농·축산물 답례품 중 가장 선호하는 품목은 1위가 제주 감귤, 2위가 임실 치즈 브랜드 제품으로 집계됐다. 의성군은 ‘의성마늘’과 온라인 농특산물 쇼핑몰 ‘예천장터’에서 쓸 수 있는 쿠폰을 내놔 기부자들의 마음을 샀다.

현재 지자체가 기부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출향인사들에게 기부를 권유하거나, 특색 있는 답례품으로 관심을 끄는 것뿐이다. 제도 시행 초기 몇몇 지자체가 프로젝트별 지정 기부 프로그램을 선보여 주목받았지만, 행정안전부 지침에 막혀 며칠 만에 모금을 중단했다. 개별적인 프로젝트로 기부금을 모으는 행위는 당분간 불가능한 상황이다. 아직 기부자의 시선을 사로잡진 못했더라도 지역의 관광자원을 활용해 장기 전략을 착실히 다져가는 곳도 있다. 경상남도 남해군이 그중 대표적이다. 남해군의 지명은 익숙하면서도 생소하다. 남해 바다의 이름을 그대로 행정구역 명칭으로 사용해 혼동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하지만 남해군의 자원을 놓고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남해군은 두 개의 섬(남해도·창선도)으로 이뤄져 있다. 경남 하동군과 사천시가 다리로 연결돼 있다. 남해군은 청정해역에 경관이 수려하기로 으뜸가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일부다. 과거 독일에 파견돼 한국 경제 발전에 이바지했던 독일 교포들이 거주하는 남해독일마을은 이국적인 정취를 물씬 풍겨 젊은이들에게도 인기 관광지로 꼽힌다. 남해군과 육지를 연결하는 남해대교가 놓인 곳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장인 노량해협이다. 역사와 자연경관에서 남해군의 대중성과 경쟁력은 절대 뒤지지 않는다.

남해군은 멸치 산지로도 손꼽힌다. 남해 좁은 물목의 거센 물살을 헤엄치느라 살이 단단하고 탄력이 있어서다. 좁은 물길에 치는 V자 대나무 발 그물(죽방렴)로 잡은 남해군의 ‘죽방멸치’는 국내에서 최고로 친다. 풍요로운 바다 덕분에 남해군 인구는 한때 13만 명(1966년 기준)을 웃돌 만큼 번성했다.

하지만 남해군도 비수도권 대부분의 지자체가 겪고 있는 인구 감소를 피해 가지 못했다. 해가 갈수록 인구가 줄면서 2005년에 5만 명이 붕괴됐다. 올해 1월 기준 인구는 4만 1505명으로, 4만 명 붕괴도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돼 2020년 남해군 인구 통계 기준 60세 이상 노령 인구가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남해군은 고향사랑기부제가 소멸 위기의 돌파구가 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고향사랑기부제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는 한편 답례품선정위원회를 구성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108 종류의 답례품을 정했다. 남해군이 내놓은 답례품은 지역 특산품인 죽방멸치와 마늘 및 가공품, 멸치액젓, ‘남해초’ 또는 ‘보물초’라고도 불리는 남해 시금치, 각종 수산물, 지역 화폐인 ‘화전’ 등 다양하다.

멸치와 돌문어, 지역화폐 인기 답례품으로

또 자매결연을 맺은 전국 9개 도시와 협력해 지역 특산물 판로 개척과 함께 고향사랑기부 품앗이도 전개했다. 출향 인사들도 남해군의 노력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남해군 출신으로 2021년과 2022년 남해군 홍보대사로 활동한 아이돌 그룹 에이티즈의 최산이 개인 최고 한도액인 500만원을 남해군에 쾌척했다. 최산은 기부금액의 30%인 답례품도 좋은 곳에 써달라고 재기부했다. 재외 향우회들도 앞다퉈 고향사랑기부 행렬에 동참했다. 남해군은 개인 기부자의 3분의 2 이상이 출향 인사들로 파악하고 있다.

지역 유관기관들도 기부 열기에 동참했다. 남해군 농·축협과 남해수협은 남해군과 고향사랑기부제 업무 협약을 맺고 기부제의 성공적인 정착과 지역경제 발전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협약에 따라 농협중앙회 남해군지부와 지역 농·축·수협은 경쟁력 있는 남해군 농·축·수산물을 발굴해 공급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할 계획이다.

남해군의 이런 노력은 이내 구체적인 성과로 돌아왔다. 고향사랑기부제 시행 100일 만인 4월 11일 남해군에 접수된 누적 모금액이 1억원을 넘어섰다. 군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690명이 총 1억50만원의 기부금을 냈다. 기부자의 94%는 세액공제 한도액인 10만원 이하 기부자였다.

석 달여 만에 1억원을 돌파한 지자체는 그리 많지 않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만희(국민의힘) 의원이 전국 228개 기초지자체를 대상으로 고향사랑 기부금 모금액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실적 공개에 응한 140개 자지체 중 1억원을 넘어선 지역은 21곳에 불과했다. 자료가 2월 27일 기준이어서 당시 남해군은 1억원을 돌파하기 전이었지만, 1분기 모금액 상위 30개 지자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남해군은 기부자의 정보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모금 캠페인 전략을 짜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기부자의 64%는 경남지역 거주자였고, 연령대는 1960~1970년대에 태어난 40~50대가 절반 이상이었다. 이들은 대개 돌문어와 지역 화폐인 ‘화전’을 답례품으로 선택했다. 특히 남해군의 빼어난 관광자원과 고향사랑기부제를 연계하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시너지를 낼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제법 규모가 커진 기부금의 사용 방안도 찾기로 했다. 지난 4월 7일 고향사랑기금 운용심의위원회 첫 회의를 열어 기부금 수입의 투명하고 효율적인 관리와 기금 운용계획, 기금 활용 사업 발굴 등 여러 방안을 논의해가기로 했다. 기부금은 군민의 복리 증진을 위한 사업과 사회적 취약계층 지원, 청소년 육성 및 보호, 지역공동체 활성화 등의 사업에 쓰일 예정이다.

[박스기사] “남해군을 가슴에 담으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 초기인데도 안정적으로 정착해 나가고 있습니다. 남해군을 사랑하는 군민과 향우들, 나아가 국민의 성원에 힘입어 제도를 시행한 지 100일 만에 모금액 1억원을 돌파하는 놀라운 성과를 올렸습니다. 남해에 연고가 있어 기부해주신 분도 많지만, 남해군을 관광차 방문했을 때 각인된 아름다운 경관과 좋은 추억으로 인해 선뜻 기부금을 내신 기부자도 많았습니다. 우리 남해군은 고향사랑기부제 활성화를 위해 크게 두 가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먼저 ‘전통적인 답례품 발굴’입니다. 다른 지자체들이 특색 있는 답례품 발굴에 주력하고 있지만, 우리는 거꾸로 전통적인 답례품 발굴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기부자들이 선택한 답례품을 분석해 보니 약 60%가 남해군을 대표하는 수산물과 마늘가공식품 등을 선택하셨습니다. 특히 2030세대가 답례품을 선택할 때 부모님을 위한 품목을 주로 선택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다양한 연령층이 만족할 수 있는 품질 좋은 답례품 발굴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명확합니다. 부모 세대에겐 남해군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젊은 세대에겐 품질 좋은 답례품을 제공해 믿을 수 있는 마음의 고향으로 남해군을 가슴에 담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고향사랑 기부가 N차 소비로 이어지게끔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우리 군이 가진 매력적인 관광지와 관광 상품을 발굴하고, 관광자원을 활용해 관계인구가 지속해서 유입되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또 남해화폐인 ‘화전’을 답례품으로 선택하신다면 남해군을 다시 찾아 수려한 경관을 만끽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다음으로 모든 군민이 고향사랑기부제의 홍보 요원이 되고자 합니다. 고향사랑기부제를 모르는 국민이 여전히 많습니다. 제도를 알더라도 기부 결심까지 이어지려면 다각적인 홍보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재 법령으로는 소극적인 홍보만 가능해 제도를 알리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아쉬움이 크지만, 우리 군민들이 나서서 출향민과 방문객, 관광객들에게 고향사랑기부제를 알려 나가겠습니다. 또 군민의 의견과 전문가 의견을 듣고 고향납세제를 일찌감치 시작한 일본과 다른 지자체의 사례를 분석해 다양한 방법으로 기부자에게 감동을 주고 공감할 수 있는 사업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또 기부하신 분들의 기부금이 누구에게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를 투명하게 공개해 일회성 기부가 아닌 지속적인 추가 기부로 이어지게끔 노력해 나가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응원을 남해군에 보내주시길 기대합니다.

- 남해군수 장충남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305호 (20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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