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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월간중앙·경희대 공동기획 | 서울시·세종시의 ESG 1등 비결 

지방행정에 ESG 접목하니 시민 삶의 질 높아졌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경희대 P-ESG 평가에서 서울시와 세종시 종합 1, 2위 올라
사람 중심 도시설계(세종)·시민참여형 프로그램(서울) 돋보여


▎2022년 8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제로서울프렌즈 1기 발대식. 서울시는 시민 참여를 통해 ESG 경영이 일상에 정착되도록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 사진:서울시
직장 때문에 서울을 떠나 세종시에 정착한 지 3년째인 황성근(42)씨는 2년째 퇴근 후 한 시간씩 걷기 운동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있다. 자동차가 많지 않고 인도가 넓은 세종시는 번잡하지 않고 보행 환경이 좋아 사색과 운동을 동시에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걷기 습관을 들인 뒤로 건강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고질병이던 허리 통증이 사라졌고, 스트레스성 두통도 찾아오지 않았다. 식사량 조절만 병행하는 것으로도 일정한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황씨는 “몸이 가뿐해지니 정신적으로도 여유가 생겨 얼굴을 찌푸리는 일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극적인 변화는 황씨만의 체험이 아니다. ‘비만율 전국 최저’라는 수식어가 보여주듯 세종시는 전국에서 손꼽는 건강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4월 말 세종시가 발표한 ‘2022년 지역사회 건강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세종시민의 음주·흡연·비만율과 우울감 경험률은 전국에서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심신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33가지 건강지표 중 13개 부문에서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양호한 수치를 보였다.

특히 건강과 직결되는 흡연·비만율은 각각 15.1%와 27.7%로 전국 평균(19.3%, 32.5%)보다 4%포인트 이상 낮았다. 음주율은 6.1%로 전국 평균(12.6%)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스트레스 인지율과 우울감 경험률도 각각 20.1%, 4.1%로 전년(2021년)보다 5.4%p, 2.5%p 감소해 17개 시·도 중 가장 양호한 수치를 나타냈다. 반면에 신체활동과 정신건강 부문은 점점 개선되는 흐름을 보였다. 세종시민의 걷기 실천율은 50.7%로 전년도 조사보다 12.2%포인트 올라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자체 ESG 평가, 서울시와 세종시 우수


▎지난 2월 27일 열린 ‘2050 탄소중립 원팀서울’ 출정식. 서울시는 25개 자치구와 함께 2050년까지 탄소배출량 ‘0’을 달성하겠다는 기후위기 대응 비전을 제시했다. / 사진:서울시
세종시는 지자체가 ESG경영을 행정에 도입했을 때 시민의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실증하는 좋은 예다. 시민 생활과 밀접한 환경·치안·건강·복지 등은 중앙정부보다 지방정부의 역할이 더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ESG의 3요소인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는 사실상 지방행정을 모두 포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자체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시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행정 전체를 조망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 상황과 행정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정부 부처별, 분야별로 시행하는 평가는 많지만, 산발적이고 기준이 제각각이어서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경희대학교(총장 한균태)에서 지자체의 ESG경영 성과를 판단할 기준을 마련했다. 객관적인 데이터만 갖고 광역 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공공 ESG 평가 모델로는 유일하다. 경희대 P-ESG(Public ESG) 연구팀(연구책임 오형나 국제학과 교수)은 개방된 공공 데이터나 공개된 판결문 등 90개 이상의 자료를 이용해 P-ESG 지표를 개발했다. 연구 책임자인 오형나 교수는 “기업의 ESG경영은 이미 필수 화두가 됐지만, 지자체를 비롯한 공공 부문에선 ESG경영에 대한 관심이 낮은 수준”이라며 “주관적 평가를 배제하고 객관적인 데이터만으로 평가를 시행했다는 점에서 이번 P-ESG 평가 결과가 주는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올해 17개 시·도를 대상으로 한 첫 평가에서 서울시와 세종특별자치시, 제주특별자치도가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종합순위에서 서울시와 세종시가 1, 2위를 기록했다. 환경(E) 분야에선 세종시가, 지배구조(G) 분야에선 서울시가 각각 두각을 나타냈다. 사회(S) 분야에선 두 지자체가 고르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세종시는 인구가 적고 사람·환경 중심의 도시 설계가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데 바탕이 됐다. 서울시는 과밀도시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발굴하고 시민 참여의 폭을 넓히려는 노력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서울시와 세종시의 ESG 이행 노력은 실제 도시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S분야의 주요 평가 요소인 건강 증진 관련 지표에서 성과가 두드러졌다. 비만 유병률에서 1위 대전에 이어 세종과 서울시가 2, 3위에 올랐다. 연구팀은 지역 간 비만율 차이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요인으로 도시 인프라를 꼽았다. 대중교통 만족도가 낮을수록, 교차로 수 밀도가 높을수록 비만율이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앞서 세종시의 낮은 비만 유병률은 보행환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발표한 2016년 기준 시·군별 보행수단 분담률 자료에 따르면 세종시의 보행 분담률은 36.8%로 전국 평균 분담률(28.06%)보다 월등히 높았다. 서울시는 촘촘한 대중교통 인프라와 정책적 노력이 돋보였다. 서울시는 서울형 건강증진학교, 서울 꿈나무 프로젝트 등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비만 예방 관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자치구별 비만 예방 사업도 다양하다. 촘촘한 대중교통망도 비만을 낮추는 데 기여한다. 서울시의 개별통행수단분담률(2020년 기준)은 대중교통수단이 61.4%로 압도적으로 높다.

시민 건강·사회안전·만족도 세종시 최고


▎최민호 세종시장이 일회용품 줄이기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실천운동인 ‘1회용품 제로 챌린지’에 동참해 다회용품 사용 늘리기를 제안하고 있다. / 사진:세종시
세종시의 강점은 사회안전에서 발휘됐다. 지난해 말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지역안전지수에서 세종시는 6개 분야 중 4개에서 1등급을 달성했다. 화재·교통사고·범죄·생활안전·자살·감염병 6개 분야 중 세종시는 감염병·범죄·자살·화재에서 1등급을 받았다. 2021년에 세종시는 화재사고 사망자 ‘0’명을 기록했다. 자살·범죄 분야에서도 3년 연속 1등급이다. 상대적으로 낮은 등급을 받은 교통사고(3등급), 생활안전(4등급) 분야는 원인 분석을 통한 개선방안 마련에 들어갔다.

케이스탯 공공사회정책연구소와 충북대 국가위기관리연구소, 머니투데이가 공동으로 조사한 사회안전지수에서도 세종시는 A등급을 받아 조사 대상 중 2위에 올랐다. 인구 20만~50만 명 규모 지자체 중에는 1위였다. 특히 교통안전 분야에서 최고점을 받았다. 중앙부처의 지역안전지수 평가와 달리 주민 의견이 반영됐다.

시민들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 역시 꽤 높은 편이다. 세종시가 2022년 9~10월에 1800가구를 표본으로 삼아 실시한 사회조사에 따르면 삶에 대한 만족은 6.7점, 행복은 6.8점을 기록했고, 걱정은 4.6점으로 조사됐다. 가족관계에 대한 만족도에서도 전반적인 가족과의 관계에 76.7%가 만족한다고 답했고, 특히 자녀와의 관계에서 83.3%가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인구는 2020년 조사에서 43.6%였으나 2022년 조사에선 53.5%로 높아졌다. 운동 장소는 사설 스포츠센터(10.5%)나 집(15.7%)보다 공원(33.2%), 공공체육시설(21.4%) 등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시는 인구 집중으로 과밀화한 수도권의 환경적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돋보였다. 2022년 5월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ESG 경영추진계획’을 수립하고, 기후환경본부장(2급)이 주관해 7개 부서가 참여하는 ESG 추진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2021년에는 ‘세계기후환경 선도도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 제로를 달성하겠다는 탄소중립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2021년 6월 동아시아 도시 최초로 C40 도시기후리더십그룹의 최종 승인을 받아 국제적으로도 실효성을 인정받았다. 세부 실행계획인 기후변화대응 종합계획(2022~2026)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의 70%를 차지하는 건물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 서울시 전체 건물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00만 호의 노후건물을 저탄소 건물로 전환하기로 했다. 2021년 현재 4.2%인 신재생에너지 보급비율은 2030년에 21%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서울시, 시민 참여형 정책 돋보여

특히 서울시의 ESG경영은 시민 참여형에 방점을 찍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손목닥터 9988’ 사업이 대표적이다. 이 사업은 시민의 건강생활 습관 형성을 돕고 건강증진을 위해 시작한 스마트 헬스케어 사업이다. 참여자에게 스마트밴드를 제공해 개인별 건강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했다. 건강정보와 건강상담 비대면 서비스도 제공했다. 미션을 수행한 참여자에게는 병원, 약국, 헬스장, 편의점 등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최대 10만 포인트를 제공해 동기를 부여했다. 이렇게 얻은 건강 활동 데이터는 정책 기초 자료로 활용된다.

서울시가 지난해 1차 시범사업을 실시한 결과 참여자의 걸음 수가 증가하고 과체중이거나 비만인 대상자는 체중이 감량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아침식사 실천, 영향표시 인지 등 식이 섭취 부분에서도 건강행태가 개선됐다. 시민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올해 초 18만 명으로 대폭 늘린 2기 참여자 모집이 조기 마감되기도 했다.

2009년부터 해오고 있는 ‘에코마일리지’도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해 ESG를 생활 속에 정착하는 데 기여했다. 지난해 12월에 승용차 마일리지와 통합한 에코마일리지에는 242만 명이 가입해 에너지 감축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참여자는 에너지 사용량을 줄인 대가로 마일리지를 받는다. 손목닥터와 더불어 ‘짠테크’를 생활화하는 시민들에게 필수로 자리 잡을 만큼 인기가 좋다.

일회용 폐기물을 획기적으로 줄인 제로카페, 제로식당, 제로마켓, 제로캠퍼스 사업도 시민들의 자원관리 실천을 돕기 위해 내놓은 아이디어다. 다회용컵 도입 매장을 지원하고 무보증금 매장 시범 운영, 축제나 장례식장에 다회용기 사용을 유도하고, 민간 제로마켓을 활성화해 친환경 자원순환 마켓 조성을 지원하고 있다. 이 같은 실천 가능한 정책 발굴도 시민이 참여하는 공모전과 서포터스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정책 결정 과정도 수직이 아닌 수평 구조로 바뀌고 있다. 탄소중립 정책을 심의하고 주요 행정계획을 검토하는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는 각계각층의 전문가가 참여해 정책 결정에 참여한다. 올해 2월에는 서울시의회와 25개 자치구가 참여하는 ‘원팀, 서울’을 구성해 기후위기 공동대응과 2050 탄소중립 이행체계를 강화했다.

서울시의 청년 정책도 미래청년기획단과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청년넷)가 직접 제안부터 정책 수립, 예산 편성에 이르는 과정에 참여토록 하고 있다. 2012년부터 운영해오던 시민참여예산제를 정비해 올해부터는 시민참여예산위원회 위원 수를 늘려 대표성을 강화하고, 시민 제안 공모도 주제 제한 없이 접수 기간을 두 배 이상 늘려 참여의 폭을 넓혔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306호 (2023.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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