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집중취재] 희대의 전세사기 남모씨와 송영길 측근 연루 의혹 추적기 

‘강원도 대장동’ 망상지구 개발사업, 송영길 측근이 밀고 최문순이 당겼다?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宋 인천시장 시절 손발 맞춘 투자유치본부장, 강원도로 넘어가 ‘전세사기’ 남씨와 손잡아
영세한 규모에도 강원도서 승승장구, “최문순 만난 후 망상지구 개발 사업자 됐다” 주장도


▎더불어민주당의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과 관련해 금품 살포의 최종 수혜자로 지목된 송영길 전 대표가 지난 5월 2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입장을 말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3년 정치인생의 최대 위기를 맞았다. 당대표로 당선된 2021년 전당대회에서 송영길 캠프 주도로 민주당 고위직 인사들에게 돈봉투를 살포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인천광역시장(2010년 7월~2014년 6월) 재임 시절 함께 손발을 맞췄던 투자유치 담당자 이모씨가 인천 지역 사업가 남모(61·구속 수감 중)씨와 결탁해 ‘강원도의 대장동’으로 불리는 망상지구 개발사업을 기획했다는 의혹이 더해지며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두 사건 모두 송 전 대표의 측근들이 연루됐다는 점에서 향후 수사기관이 송 전 대표에 대한 직접 수사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씨는 송 전 시장 재직 시기에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인자청)에서 일했던 인사다. 송 전 시장의 2011년 2월 25일자 ‘시정일기’에는 “(인자청) 투자유치 본부에 담당과장 이씨와 김모 팀장이 20여 차례나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사무실을 방문해 치열한 협상 끝에 결국 삼성전자가 송도에 최종 투자하기로 결정을 했다. 1%의 가능성을 100%로 만든 것”이라고 이씨를 추켜세우기도 했다. 이씨를 잘 아는 인천 지역의 한 사업가는 “인자청 소속이던 시절 어마어마하게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송 전 시장과 손발이 잘 맞았다”고 말했다. 그만큼 인천 지역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돈독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씨는 이러한 송 전 시장의 신임과 자신의 능력을 발판으로 2012년 4월 20일 인자청 투자유치본부장으로 승진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송영길의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했던 걸까. 이씨는 송 전 대표가 인천시장에서 퇴임하자 곧바로 시련을 맞았다. 유정복 인천시장 체제에서 ‘특정 기업에 특혜를 줬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것. 결국 이씨는 2015년 6월 인자청을 나왔다. 송 전 대표가 퇴임한 지 약 1년밖에 지나지 않아 이씨는 쫓겨나듯 인천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이씨는 이후 보란 듯이 재기했다. 2016년 7월 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청(동자청) 투자유치본부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문제는 이씨가 동자청에 입사해 망상지구 개발을 위해 인천 지역 건설업자였던 남씨와 손을 잡았다는 점이다. 상진종합건설을 운영하는 남씨는 ‘인천 빌라왕’으로 불리며 지난해 12월부터 현재까지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전세사기범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남씨는 아파트·빌라·오피스텔 2700채가량을 직·간접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며, 알려진 피해자만 800여 명, 피해액은 500억원 이상에 이른다.

주로 인천에서 활동하던 남씨는 어떤 과정을 거쳐 전혀 연고가 없는 강원도 망상지구 개발 사업에 뛰어들게 됐을까? 취재 결과 이씨가 비밀스럽게 남씨에게 접촉해온 정황이 포착된다. 남씨가 망상지구 개발 사업 선점을 위해 2017년 8월에 세운 특수 목적법인(SPC) 동해이씨티국제복합관광도시개발(동해이씨티)의 이사는 기자에게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2016년 말에서 2017년 초 사이 이씨가 ‘동해에 사업자를 구한다’면서 내게 연락을 해왔다. 그래서 그 내용을 남씨에게 보고했는데, 남씨는 ‘거기까지 가서 그 일을 뭣 하려 합니까’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하지만 이씨가 재차 연락해와 ‘나는 말재주가 없으니 직접 (인천으로) 와서 (남씨와) 같이 얘기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이씨가 관련 자료 2권과 지도 등을 들고 남씨와 만나 설명하니 그때서야 남씨가 긍정적으로 답하고 움직이기 시작하더라.”

송영길이 신임했던 이씨, 동자청 투자유치본부장으로


▎동해안권경제자유구역청 (동자청) 건물 울타리에 ‘망상1지구 개발 특혜 선정 진상규명 촉구!’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사진:동자청 망상지구 범시민비상대책위원회
이 과정에서 이씨는 자신이 속한 동자청에 보고도 하지 않고 남씨와 만나온 사실이 최근 강원도감사위원회 감사 결과 드러났다. 동자청 관계자는 5월 12일 “기록상 동자청장과 이씨, 남씨가 첫 미팅을 가진 건 2017년 3월 31일 인천 쉐라톤 호텔에서다”라며 “투자 결정을 받기 전이더라도 동자청 직원이 잠재 투자자와 미팅을 가지면 간략하게라도 출장 보고서를 작성해 기록에 남는데, 이씨가 첫 미팅 이전에 남씨를 만났다면 독자적인 판단으로 움직였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종합하면 이씨는 동자청에 입사한 후 기록을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남씨와 접촉했고, 애초 사업 의사가 없던 남씨를 설득해 사업에 뛰어들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보통의 공공기관 직원의 행동이라고는 보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물론 이씨가 당시 상급자인 동자청장의 지시로 남씨를 만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오랜 기간 망상지구 문제를 파헤쳐 온 강원도의 ‘범시민비상대책위원회’ 측은 그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2020년 동자청장과 미팅을 가졌다는 대책위의 한 인사는 “청장은 상진종합건설이 어떤 회사인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며 “상진종합건설이 시행만 하는지, 시공만 하는지, 분양만 하는지, 아니면 모두 하는 회사인지 청장에게 물었지만 답변을 못 했고, 이씨 등이 옆에서 대신 알려줬다”고 말했다. “상진종합건설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던 당시 동자청장이 이씨에게 ‘남씨와 만나라’는 지시를 내렸을 리 만무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 때문에 이씨 배후에 유력 정치인이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은 4월 19일 KBS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정치인이) 영향력을 행사해서 ‘빌라 사기꾼(남씨)’이 사업자로 지정되게 만들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후 여의도 안팎에서는 송 전 대표와 함께 최문순 전 강원도지사의 이름이 거론됐다.

“최문순 전 지사, 이씨 소개로 상진종합건설 남씨 만나”


▎지난 5월 2일 인천시 미추홀구 주안동 건축업자 남모씨의 사무실에서 검찰 관계자들이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망상지구 개발 사업은 2011년 4월부터 2022년 6월까지 강원도지사로 3선을 한 최문순 전 지사의 주요 공약 가운데 하나다. 앞서 복수의 매체는 “최 전 지사가 2017년경 이씨의 소개로 인천에서 남씨를 만났다”고 보도했다. 동해이씨티 이사 역시 “최 전 지사와 몇 번 함께 자리한 적이 있다. ‘강원도에 투자를 해주면 자기네들도 최선을 다해서 돕겠다’는 형식적인 얘기만 오간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남씨가 망상지구 개발사업자로 최종 선정되는 과정은 석연찮은 일의 연속이었다. 망상지구 신규 사업시행자 모집은 동자청과 남씨 측이 만난 2017년 3월 31일 직후인 그해 4월부터 7월까지 진행됐다. 이 기간 남씨의 회사 상진종합건설을 비롯해 국내외 4개사가 모집에 참여했다.

경제자유구역법상 민간기업이 개발사업자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사업지구 토지 50%’를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당시 동해이씨티가 확보한 부지는 전체 사업면적(193만 평)의 28%(54만 평)에 불과했다. 2018년 4월 동자청은 산업통상자원부에 개발 계획 변경을 신청해 그해 10월 망상지구 전체 개발 면적을 3.91㎢(119만 평)로 줄였다. 그런데도 동해 이씨티 보유 토지는 46%로 여전히 50%를 넘지 못했다. 동자청은 단일 지구였던 망상지구를 3개 지구(약 103만 평, 7만 평, 9만 평)로 분할했고, 결국 동해이씨티는 망상1지구 토지의 52%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해 11월 동자청은 남씨의 SPC인 동해 이씨티를 망상1지구 개발사업자로 최종 선정했다.

상진종합건설이 2017년 6월 19일 동자청에 제출한 최초의 사업계획서(투자의향서)를 보면, 사업 면적에 ‘106만 평 개발’이라고 적시했다. 당시는 망상지구가 분할되기 전으로, 2018년 10월 동자청 신청으로 산업부는 망상1지구 면적을 103만 평으로 최종 확정했다. 이를 두고 망상지구 범시민비상대책위원회 측은 ‘특혜’ 의혹을 주장하고 있다. 상진종합건설을 미리 낙점해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최문순 “인천 전세사기와 망상지구 개발사업 무관” 해명


▎지난해 3월 26일 강원도 춘천시 중도 일원에서 열린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 준공식에서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축사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상진종합건설과 함께 망상지구 신규 사업시행자 모집에 참여했던 외국계 기업 관계자는 5월 4일 “동자청이 사실상 상진종합건설을 위해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동자청 직원으로부터 ‘상진종합건설이 사업자로 선정되면 그 밑으로 들어와서 사업을 하라’는 식으로 회유하는 듯한 얘기를 자주 들었다”고 밝혔다. 이씨는 2020년 말 건강상 이유로 동자청에 휴직계를 낸 후 지병이 악화돼 유명을 달리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씨와 함께 인자청에서 동자청으로 함께 넘어온 망상사업부장도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가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던 지난해 12월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월간중앙은 자세한 내막을 듣기 위해 당시 망상사업부장에게 수차례 전화하고 문자를 남겼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최 전 지사 측은 이 같은 특혜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5월 12일 “경제자유구역 면적은 동자청에서 안을 마련해 산업부 장관이 위원장으로 있는 경제자유구역 지정위원회 심의를 거쳐 변경된다. 강원도가 임의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씨의 소개로 남씨와 만났다는 보도와 관련해서는) 투자 유치 목적으로 28개 이상의 회사와 만나왔으며, 비단 특정 사업가와만 만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 전 지사는 앞서 민주당 강원도당을 통해 낸 입장문에서도 “인천 전세사기 사건과 망상지구 개발사업과는 전혀 무관하다”며 “해당 사업은 관련법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 진행됐다. 재임 기간에 진행된 사업이라는 이유로 전세사기 사건과 마치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보도가 되는 점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송 전 시장 법률대리인 측은 “남씨와는 일면식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남씨의 SPC인 동해이씨티 측도 “망상지구 사업자 선정 과정에 대해서는 춘천지검 강릉지청이 2020년 12월 이미 무혐의로 결정 낸 사안”이라며 “관련법에 따라 적법하게 이뤄진 사안으로 문제 될 게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남씨가 정치적 특혜를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는 “근거 없는 얘기로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인천을 무대로 활동하던 남씨가 전혀 연고가 없던 강원도로 옮겨서 대형 개발사업을 따낸 배경을 두고 강원도 현지에서는 논란이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편 남씨의 전세사기 수사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최근 주범인 남씨 등 18명에게 범죄단체조직, 사기, 공인중개사법 위반, 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를 추가로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전세사기와 관련해 범죄단체조직 혐의가 적용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남씨의 딸은 최근 서울회생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법원은 채권자들의 강제집행, 가압류, 경매 등을 중단했다.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 측은 즉시 “허가도 되지 않을 회생을 계획한다는 것은 시간 끌기 목적”이라며 회생신청을 기각해달라는 진정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딸은 아버지인 남씨에게 명의를 빌려주며 임대인 역할을 하는 방식으로 범행에 가담한 혐의로 입건된 상태다.

피해자들, 국회 앞에서 남씨 처벌과 사태 해결 촉구


▎전세사기 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지난 5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세사기 깡통전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체로 108배를 하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하루하루 마음 졸이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모인 ‘카카오톡 그룹 채팅방(단톡방)’에는 하루에도 수십 개씩 남씨 등 전세사기로 기소된 사람들의 형량에 대한 예상, 피해 관련 기사, 대응 방안, 피해자 사연, 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운동 등을 공유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현재 전세사기와 관련해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은 총 4명으로, 이들을 위한 특별법은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여의도 국회 앞에서 ‘얼마나 더 죽어야 하나요?’라는 팻말을 들고 기자회견을 연 피해자 단체는 “지금 발의된 특별법으로는 모든 피해자를 지원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보완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철빈 피해자대책위 공동위원장은 5월 12일 “특별법과 지원대책은 형편없는 상황에서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전국의 전세사기 피해자분들이 힘을 모아주셔야 한다”며 “대환대출이나 특별법상 피해자 요건, 구제방안 등 피해자들의 현실을 외면한 대책이 계속 나오고 있다. 시간을 내 대책위와 함께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달라”고 피해자들을 독려했다.

현재 남씨는 재판을 받고 있다. 3일 열린 2차 공판에서 남씨의 변호인은 “사기와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는 성립하지 않으며, 다만 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는 인정한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들의 고소장, 고소인 진술 조서, 수사기관 수사 보고서의 증거 채택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도 전달했다.

-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choi.hyunmok@joongang.co.kr

202306호 (2023.05.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