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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취재] 노인 대상 로또 예측업체 사기주의보 

‘당첨 안 되면 전액 환불’ 내걸고 유인… 계약 해지하면 도리어 위약금 청구해 

이승훈 월간중앙 기자
“당첨번호 예측해 주겠다”며 판단력 흐린 노인에 장기 상품 가입 권유
피해자가 민사소송 진행하려 했더니 ‘위약금 60만원’ 청구서 날아와


▎로또 사기 사건이 늘고 있다. 2022년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로또 관련 피해 구제 건수는 총 655건. 사기당할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로또에 대한 욕망이 피해자를 계속 양산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2월 이옥순(가명·80대)씨는 TV를 시청하다 한 광고방송을 보고 직접 전화를 걸어 상담을 받았다. 로또 1등 당첨 예상번호를 제공해준다면서 현금 결제 서비스를 유도하는 업체였다. ‘XX로또’라는 이름의 이 업체는 “가입한 후 2년간 실제로 당첨되지 않을 경우 전액 환불해주겠다”며 이씨를 유혹했다. 그는 몸이 아픈 자신 등 집안의 노인들을 돌보는 아들의 경제 상황을 걱정해 이 서비스에 가입해보고자 했다. 가격도 크게 부담되지 않는 선이었다. 이씨는 아들 김모(40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TV를 보니까 로또 당첨번호를 점지해준다더라. 한 달에 19만8000원이라는데 결제 좀 해다오.” 김씨는 대번에 사기라는 것을 직감하고 “절대 결제하지 마시라”며 어머니를 말렸고 금방 전화를 끊었다. 문제는 이씨가 치매 전 단계인 ‘경도 인지장애’를 앓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씨의 전화상담을 진행했던 로또 예측업체는 텔레마케터를 통해 이씨의 연락처를 얻어낸 뒤 직접 이씨에게 전화를 걸었고, 판단력이 흐려진 노인에게 장기 상품 가입을 권유했다. 아들 김씨는 자신의 휴대전화로 발송된 200만원 상당의 결제대금을 뒤늦게 발견했다.

김씨는 곧바로 해당 업체에 전화를 걸어 환불을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말은 “약정에 동의했기 때문에 환불하더라도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씨가 법률 자문을 구해본 결과 “약정에 구두로 동의했다고는 해도, 민사적으로는 구두상 계약도 계약이 성립되는 것은 맞다”는 취지의 답변을 받았다. 업체에 전화해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고지하고 대금환급을 요구하자, 상담원은 “왜 자꾸 이렇게 귀찮게 구느냐”며 도리어 화를 냈다. 변호사를 사서 민사소송을 진행해야 하는가 생각하던 찰나, 어머니 이씨의 집으로 인천 법원에서 등기가 날아들었다.

“채무자는 채권자에게 아래 청구금액 및 독촉절차 비용을 지급하라는 명령을 구함. 금 62만8025원(이하 생략).” 김씨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60만원 남짓한 금액을 구제 받자고 민사를 진행하기엔 변호사 비용이 더 커지기 때문에,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꼴이었다. 김씨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위약금도 원금 액수에 따라 결정된다는데, 민사소송을 진행하기 모호한 금액으로 산정한 것이 아닐까 싶다”면서 “그냥 위약금을 내야 하나 고민이 깊다”라고 토로했다.

“2년간 당첨 안될 시 전액 환급” 문구로 유인


▎이옥순(가명·80대)씨에게 금전 피해를 준 로또 당첨번호 예측 사이트. 하단의 마케팅정보 수신 동의란에 체크하면 개인번호를 얻어 전화영업을 재차 진행하기도 한다. / 사진:인터넷 캡처
한국소비자원(원장 장덕진)에 따르면 이러한 유형의 피해 구제 상담이 2017년부터 이어지고 있다. 비싼 예측 서비스에 가입할수록 당첨 가능성이 높다거나 계약 기간 동안 당첨이 되지 않을 경우 전액 환급 또는 무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등의 상술로 소비자를 유인하여 계약을 성사시키는 사례다. 당첨 예측 번호가 계속해서 당첨되지 않아 계약을 해지하고 대금 환급을 요구하자 사업자가 거절한 사례도 접수됐다. 당첨되지 않으면 환급하겠다고 약정한 경우에도 약관의 환급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거나 환급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당초 약속했던 환급 이행을 거절하기도 한다.

복권 사기 수사를 오랫동안 해왔다는 일선 경찰서의 한 베테랑 수사관은 이들 예측업체의 사기에 가까운 행각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동행복권은 매주 토요일 20시 50분경에 추첨을 진행한다. 업체들은 당첨번호가 나오기 직전에 최근 번호예측 사이트에 접속한 이들을 조회한다. 오랫동안 접속하지 않은 회원들(대다수가 무료 가입 회원) 위주로 당첨번호 바꿔치기 작업을 진행한다. 추천해준 번호를 당첨번호와 유사한 번호 배열로 갈아 넣는 것이다. 3등 내지 4등 당첨번호로 만든다. 일종의 데코이(미끼)인 셈이다. 그리고는 월요일 아침, 미리 작업해둔 회원들 번호로 문자를 보낸다. ‘당첨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영업팀에서 텔레마케터들이 직접 전화를 걸어서 통보하기도 한다. 전화를 받은 피해자들이 당황해하면 ‘저희가 당첨 번호 보내드렸는데 구매 안 하셨나요’라면서 안타까운 기회를 피해자들이 놓친 것처럼 가상으로 꾸며낸다.”

이 수사관에 따르면, 경기 북부에서 적발된 한 업체는 관리자급만 55명이 검거되고 4명이 구속됐다. 전화 상담원까지 합하면 300명으로 중급 규모의 조직이었다. 당시 사건을 맡은 수사관은 “이들 업체에서 압수한 메시지를 봤더니, 조직원 간에 월요일 오전에 ‘이제 스탠바이하라’, ‘전화 잘 받아주세요’라는 식으로 문자를 미리 보내 놓기도 했더라. 업체에서 ‘문자 메시지가 전송되지 않을 수 있으니 사이트에서 번호를 확인해야 한다. 미확인 시 발생하는 손실은 피해자의 책임이다’라는 식으로 광고 문구를 명시하는 곳들은 사이트상에서 데이터베이스 조작을 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로또 욕망이 피해자 양산… 경각심 가져야


▎이옥순 (가명·80대)씨에게 인천법원에서 날아온 청구서의 일부. 62만8025원을 독촉하는 명령이 담겨 있다. / 사진:독자 제공
주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런 사기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지방경찰청이나 본청 단위에서 사건화하거나 전담부서를 규정 짓기에는 범죄 규모도 작고 영업 형태가 다양해 실제 수사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점이 꼽힌다. 경찰에 따르면, 대부분 업체에서 인터넷 사이트를 표면상에 내세우기도 하지만, 또 다른 업체에서 전화권유 판매를 할 경우엔 방문 판매법 위반 소지도 있다. 통상적으로 경찰 내에서 분류하는 지능범죄 사건이나 사이버 사건 등 여러 유형의 범죄가 혼재돼 있는 것이다. 이처럼 범죄의 경계가 모호하기도 하고, 표면적으로 보면 실제 가입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에 사기죄로 처분하기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실제 경찰에 더 알아보니, 표시광고법(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상 허위 과장 광고사례에 속해, 일부 관서에서도 기소 요청한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단일 사건화해서 대규모 수사가 집행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고 한다.

예측 업체들의 사기범죄는 법적인 영역에서도 명확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한 경찰 수사관은 “애초에 당첨번호를 예측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통계학적으로 성립되지 않는 말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사기가 성립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복권법상 당첨번호를 예측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말을 명시해두지 않아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만난 법조계 인사들도 “예측 업체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통상적인 계약으로 비칠 뿐, 이를 사기범죄로 이첩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바라보는 시각이 많았다.

실제 피해자 개개인들이 민사소송을 제기한다 하더라도 산 넘어 산이다. 실제 예측 업체에서 가입자에게 서비스 제공을 했기 때문에 도리어 피해자들이 위약금을 무는 경우도 있다. 드물긴 하지만 예측 업체가 100% 환급을 해 준 사례도 있고, 진상 고객에게는 환급해주더라도 상당한 금액을 수수료 부문으로 제하고 돌려준 사례도 있었다. 예측 업체로서는 일정 액수의 손해를 감안하더라도 전체 금액이 워낙 크기 때문에 이득인 것이다. 이러한 유형의 사기 행각은 법정에서 기망행위에 의해서 돈을 편취하는 거라고 인정받기가 굉장히 어려운 사건이기 때문에 피해자(서비스 가입자)가 소송을 진행하더라도 업체 입장에서는 해볼 만하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로또 관련 피해 구제 건수는 총 655건. 사기당할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로또에 대한 욕망이 피해자를 계속 양산하고 있기에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일선 경찰서의 한 수사관은 “로또 예측업체 사기 피해 사례 건수나 금액이 적다고 해서 이 사건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면서 “이러한 유형의 사기 행각이 널리 알려지고 사례화되어야 또 다른 피해자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이승훈 월간중앙 기자 lee.seunghoon1@joongang.co.kr

202306호 (2023.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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