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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범의 등산미학(36) 강원도 고성 소똥령과 라벤더 농장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죽음에 대하여 생각하다

“죽음이란 원자의 소멸이 아니라 원자의 재배열이다. 내가 죽어도 내 몸을 이루는 원자들은 흩어져 다른 것의 일부가 된다. 인간은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아름다운 은유가 아니라 과학적 사실이다. 이렇게 우리는 원자를 통해 영원히 존재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물리학자 김상욱 경희대 석좌교수의 글을 우연히 읽고 죽음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 앤드루 도이그의 〈죽음의 역사〉를 읽었다. 내친 김에 레프 톨스토이와 어니스트 헤밍웨이, 헤르만 헤세 등의 죽음에 관한 작품을 엮어 만든 이문열의 〈죽음의 미학〉이란 두꺼운 책도 읽었다. 그리고 왠지 죽음과 일맥상통할 것 같은, 산 이름에 ‘똥’이라는 단어가 내 마음을 사로잡아 무더운 한 여름날 소똥령 등산길에 올랐다.

우리에게 익숙한 대관령, 한계령, 미시령, 진부령, 구룡령은 강원도에서 서울을 오가려면 한두 번은 반드시 넘어야했던 옛 길들이다. 그만큼 애환이 많이 서려 있는데, 산 아래로 터널이 뚫리면서 이제는 아련한 옛 추억의 이름이 돼가고 있다. 소똥령은 그 정도로 이름이 알려지고 유명한 길은 아니지만 강원도 고성에서 인제를 잇는 중요한 고개였다고 한다.

소똥령은 강원도 고성군의 진부령(陳富嶺)과 함께 간성(杆城)과 인제(麟蹄)가 통하는 길목에 위치한 고개다. 가장 널리 전해지는 이야기는 고개를 넘어 장으로 팔려가던 소들이 고개 정상에 있는 주막 앞에 똥을 많이 눠 산이 소똥 모양이 됐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곳은 과거 한양으로 가던 길목으로,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 산 생김새가 소똥과 같이 돼버린 탓에 소똥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다. 한편, 간성과 인제를 연결하는 고개들 중에서는 그 규모가 작은 편이라 ‘동쪽의 작은 고개’라는 뜻으로 소동령(小東嶺)으로 부르던 것이 자연스레 소똥령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큰 아들이 8~9년 전 강원도 양구 휴전선 GOP에서 군복무를 했다. 아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고뇌에 찬 젊음을 바친 곳이라 그런지 신기하게도 면회 때 딱 한번 가본 길인데도 낯설지 않은 편안함 속에 소똥령 산기슭에 도착했다.


산에 오른 지 채 5분이나 됐을까, 길이 58m 폭 1.5m의 소똥령 출렁다리가 우리를 환영해 줬다. 다리를 건너자 마치 하늘의 레드카펫을 밟고 온 듯 새로운 소똥령의 세계가 펼쳐졌다.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없고 만날 수 없는, 피톤치드 가득한 300~400년 된 웅장하고 아름다운 아름드리 소나무가 지천에 풍류를 뽐내고 있었다. 족히 40~50m는 됨직한 곧게 뻗은 소나무도 많았지만, 원자폭탄의 파편들이 다시 피어오르면서 죽음의 서곡을 노래하는 것 같은 버섯 모양의 소나무, 삿갓을 쓴 듯한 소나무 등 갖은 모양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렇게 색다른 소나무를 감상하면서 올라와서인지 소똥령에서 제일 높다는 340m 고지 제1봉 정상도 다른 때와는 다르게 큰 헐떡거림 없이 구름 속을 걷듯 크게 힘들이지 않고 올라올 수 있었다. 이런 것을 보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참으로 맞는 것 같다. 고통스럽고 괴롭고 힘든 하루는 마치 1년이나 10년처럼 길게,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랑스런 연인과 함께하는 달콤한 하룻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빨리도 지나간다.


소똥령 마을이 아득하게 보이는, 전망이 제일 좋은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는데, 갑자기 겹겹이 둘러싸인 첩첩산중 어느 곳에서 “희범아~ 희범아~ 잘 지내냐!”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어젯밤 잠을 설쳐가며 〈죽음의 미학〉을 읽고 온 때문일까… 이 세상에서 내 이름을 가장 편안하고 다정하게 불러줬던, 지금은 저 하늘나라에 있는 절친한 친구였던 진채와 주성 두 친구가 어디선가 해맑게 나를 지켜보며 미소 짓는 듯 했다. 외아들로 남부럽지 않게 잘 살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3년간 식물인간으로 있다가 저 하늘로 간 순수하고 멋진 내 친구 진채, 그리고 안타깝게도 너무 일찍 세상을 하직한 친구가 주성이었다. 그러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잠깐 동안 죽음의 세계, 상념의 세계로 깊이 빠져 들어갔다.

세상에는 백수, 천수를 다 누리다가 하룻밤 꿈꾸듯, 천당으로 이사 가듯 편안한 죽음도 있지만 고통 속에 투병하다가 사랑하는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병원 침대에서 죽는 이들도 있다. 교통사고, 익사, 화재, 추락, 감전, 벼락 등으로 비명횡사하는 죽음도 있는가 하면 선천적 결손, 유전적 기형, 난산 등으로 태어난 지 채 1시간도 못 살고 죽는 아이들도 있다. 그 뿐인가. 한 끼 식량이 없어 죽는 안타까운 죽음, 지고지순한 사랑을 갈구하다 가는 죽음,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신념에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 죽음도 있다. 내 의지와 전혀 관계없이 위정자의 욕심 때문에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슬프고 어리석은 죽음도 있다. 한마디로, 우리는 애써 죽음을 터부시하거거나 외면하고 때론 초월하고 거부하고 소원해 보지만 죽음은 항상 내 곁에 있다. 우리 삶은 비록 왕과 거지처럼 큰 차별이 있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고 누구나 빈손으로 간다는 그 진리에, 우리 인간들은 매일 마음의 폭동을 일으키지 않고 고요의 바다에서 침묵을 지키며 일생을 버텨내는 것이다. 앞으로 줄기세포, 장기 이식, 유전자 조작 등의 신기술로 죽음의 원인이 대부분 정복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꿈같은 미래의 이야기고, 그래도 인간은 결국 죽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고보면 죽음을 미학적으로 표현한 작품도 많다. 세계적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대표적이다. 이반 일리치는 중류층 가문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해 남들이 우러러보는 판사가 되고, 마음에 드는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너무나 기분이 좋아 들뜬 나머지 부주의로 사다리 위에서 동으로 만든 뾰족한 쇳덩이에 옆구리가 찔려 시나브로 죽음을 맞이한다.

헤르만 헤세의 〈크놀프〉는 독일의 ‘엄친아’다. 가문 좋고 매너 좋고 정의롭기까지 해서 모두가 다 부러워하지만 그에게도 질풍노도의 사춘기가 찾아와 어느 예쁜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모든 것을 다 바쳐 그녀를 사랑하지만 둘은 결국 헤어지고 만다. 크놀프는 그때부터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잃고 방랑객이 돼 떠돌다가 나이 들고 병이 들어 고향에 있는 그녀의 집을 찾는다. 그리고는 늙어빠진 그녀를 만난 후 지친 어린아이처럼 울먹이면서 반항하듯 이렇게 말한다.

“풀과 포도주같이 짙고 달콤한 향기가 이른 봄밤의 그윽한 바람이 돼 밀려왔다. 참으로 그것은 아름다웠다. 기쁨도 아름다웠고, 슬픔도 아름다웠다. 아! 그런 날이 없었으면 얼마나 비참했을까! 하지만 그때 바로 모든 게 끝났어야 하는 건데! 이미 행복 속에 가시가 들어 있었다! 두 번 다시 좋은 시절은 오지 않았네. 결코 다시는…….” 크놀프는 그렇게 쓸쓸하고 외롭게 눈물 속에 죽음을 맞는다.


휴~ 꿈인지 생시인지, 잠깐의 상념에서 깨어나 큰 숨을 한번 내쉬고 지금 내가 살아 있는 것인지 큰 소리를 질러보았다. 아~ 이렇게 살아있음이 고맙다. 고개를 들어 아득히 먼 곳을 바라봤다. 모든 것이 푸르고 신비롭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소똥령은 이름이 소똥령이지만, 직접 와서 보니 숲이 울창하고 시원하고 멋스럽고 아름다워서 전혀 더러운 똥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 죽음이란 것도 그 두려움과는 반대로 우리들 일상의 웃음 속에, 기쁨 속에, 행복 속에, 슬픔 속에, 좌절 속에… 이 세상 모든 것 속에 똬리를 틀고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 우리의 삶이 더 가치 있고 소중한 게 아닐까! 새삼,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고맙다.

다시 묵묵히 산행을 이어갔다. 한참을 걷다가 주위를 살펴보니 벌써 소똥령의 2봉, 3봉을 찍고 내려와 시원한 물줄기가 내리치는 칡소폭포였다. 칡소폭포는 칡넝쿨로 그물을 만들어 바위에 고정해 놓으면 산란기를 맞아 물길을 뛰어오르는 연어와 송어 등의 민물고기들이 손쉽게 걸려들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결국 그 물고기들도 더 좋은 세상, 2세의 요람을 찾아가다가 낭떠러지 공중에서 최후의 죽음을 맞이하는 셈이다. 정말 하찮은 미물인 물고기들도 도처에 죽음의 위험이 깔려 있다. 삶이란 게 참으로 경이롭다. 그래서 숭고하고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1분, 1초를 낭비하지 말고 보람되고 가치 있고 멋지게 살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하산 후 점심을 맛있게 먹고 가까이 있는 라벤더 농장을 찾았다. 산과 들과 물과 하늘과 구름과 바람과 태양과 토양이 어우러져 만든 은은한 라벤더 향기에 취하고, 그런 대자연 속에 인간의 향취가 더해지니 오늘 하루 종일 나를 지배했던 우울감이 달아나고, 세상이 환상적이고 아름답고 신명난다.


하루를 살더라도 건강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건강한 장수 비결 10가지’를 정리했다. 오늘 하루 죽음을 생각하며 느낀 의미를 오래 오래 잊지 않고 음미해 보기 위해 부록처럼 첨부해본다.

1. 나를 알자

나이 들고도 건강하게 지내려면 우선 스스로에 대해 전문가가 돼야 한다.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과 비타민D 수치를 확인하라. 체질량 지수는 물론 허리둘레와 엉덩이 둘레의 비율을 적어두는 것도 잊지 말 것. 부모님을 비롯한 직계 조상이 노년에 어떤 병을 앓았는지, 언제 돌아가셨으며, 사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최대한 알아두자.

2. 빨리 움직여라

걷기는 누구에게나 좋은 운동. 중요한 건 속도다. 숨이 가쁘고 땀이 날 정도로 빨리 걸어라. 하루 30분이면 몸은 물론 두뇌를 최선의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 밖에서 햇볕을 받으며 걷는다면 금상첨화. 기분이 밝아지고 비타민 D도 생겨날 것이다.

3. 하루 10시간 단식하라

계속 먹을 게 들어가면 위가 쉴 틈이 없어진다. 소화 기관에도 휴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 것. 밤 9시 이후에는 아무 것도 먹지 말자. 그것만 지켜도 매일 10시간 단식이 가능하다. 저녁을 최대한 일찍 먹고, 아침은 느지막이 먹는 식으로 공복을 14시간에서 16시간까지 늘릴 수 있다면 더 좋다.

4. 숲으로 가라

나무 그늘에 있으면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지 않는지?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다. 피톤치드가 스트레스와 혈압을 낮추고, 면역력은 높이는 것. 또 숲속 흙에 사는 미생물은 우리 몸의 미생물군유전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5. 근육을 단련하라

마흔이 넘으면 1년에 1% 꼴로 근육이 사라진다. 그 결과 심장병, 뇌졸중, 골다공증에 걸릴 위험도 커진다.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은 근력 운동을 할 것. TV 앞에 아령을 두고 짬짬이 들어버릇하는 것만도 크게 도움이 된다.

6. 독서하라

앉아 있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것, 혼자보다는 여럿이 하는 일이 건강에 좋다. 그런데 독서는 대개 앉아서, 또 혼자 하기 마련인데도 불구하고 장수에 도움이 된다. 미국 예일대 연구진은 50대 이상 36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독서를 많이 하는 이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2년 이상 오래 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루에 30분 정도 책을 읽는 건 숙면에도 기여한다.

7. 낮잠을 자라

짧은 낮잠은 주의력, 집중력, 기억력을 높인다. 특이하게도 낮잠을 자는 사람이 밤에 더 잘 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단, 낮잠은 30분을 넘기면 안 된다. 시간이 늦었다면, 다시 생각할 것. 늦은 오후에 낮잠을 잤다간 밤잠을 설칠 수 있다.

8. 점프하라

뼈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자꾸 뼈를 써야 한다. 즉 운동을 해야 한다. 관절만 버텨준다면, 가장 효과적인 건 점프다. 하루에 10회에서 20회 정도 점프하라. 한 번 하고 30초 쉬는 식으로 반복하면 좋다. 달리기나 줄넘기 역시 골밀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걸맞은 운동이다.

9. 눈을 아껴라

눈을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은 담배를 끊는 것. 그리고 눈에 좋은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 옥수수, 오렌지색 파프리카, 당근, 케일 등 밝은 노란색, 오렌지색, 초록색 채소를 챙겨 먹을 것. 규칙적으로 안과 검진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 마흔이 넘어가면 시력이 빠르게 변하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컴퓨터 모니터, 스마트폰 등을 너무 오래 보지 않도록 하고, 햇볕이 강하다면 여름에는 물론 겨울에도 선글라스를 쓰도록 하자.

10. 어울려라

외로움은 노년의 적. 당뇨병만큼이나 위험하다.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것. 꼭 친구가 아니어도 누군가를 돕고, 다독이는 일이 우리를 살게 만든다. 개를 키우는 것도 좋다. 반려견에게 식사를 챙겨주고 산책시키다 보면 규칙적 생활이 가능해진다. 개를 키우는 이는 아닌 이들에 비해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무엇보다도 개는 친구와 마찬가지로 정서적 위안을 준다.


※필자 소개: 김희범(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 이사장)- 40대 후반 대기업에서 명예퇴직. 전혀 다른 분야인 유지보수협동조합을 창업해 운영 중인 11년 차 기업인. 잃어버린 낭만과 꿈을 찾고 워라밸 균형 잡힌 삶을 위해 등산·독서·글쓰기 등의 취미와 도전을 즐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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