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총력취재] ‘김건희 리스크’ 해부 

쇼핑백 쥐고 있던 또 다른 접견 대기자들은 누구?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외국 언론 “대통령실에 VIP가 두 명 있는데, 1호 VIP는 김 여사”
영부인 논란만 언급되면 경직되는 대통령에 용산 참모들 ‘난색’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미국을 방문 중인 김건희여사가 2023년 9월20일(현지시간) 뉴욕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8차 유엔총회에서 윤 대통령의 기조연설을 경청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논란이 총선 정국의 주요 변수로 등장했다. 21대 대선 4개월 전인 2021년 11월, 김건희 여사는 전 국민이 TV로 지켜보는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아내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 취임 2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 그때 김 여사의 눈물에 진정성이 있었을까 의문을 품는 국민이 많아졌다.

인터넷언론 [서울의 소리]가 유튜브에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김 여사는 재미교포인 최재영 목사와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사저에서 비공식 접견을 갖고, 최 목사로부터 고가의 명품백을 받았다. 최 목사의 의도된 연출이었고, 사적인 자리였다고는 하지만 김 여사는 공개된 영상에서 최 목사에게 자신이 국정에 개입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국민 여론이 들끓은 것은 당연했다. 이번 일로 인해 김 여사는 막후에서 권력을 행사한다는 ‘비선 정치’에 대한 의혹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뉴욕타임스가 지난 1일 “한국에는 ‘대통령실에 VIP가 두 명 있는데, 1호 VIP는 김 여사’라는 농담이 있다”고 보도한 것은 그냥 웃어넘길 사안이 아니다.

지난 2월 7일 윤 대통령이 KBS와 가진 취임 2주년 대담에서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본 문제도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논란이었다. 당시 대담에서 박장범 KBS 앵커의 질문에 윤 대통령은 최재영 씨가 김 여사 부친과의 인연을 앞세워 만남을 시도했고, 이를 김 여사가 뿌리치지 못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고, 좀 아쉽지 않았나”라고 부연했다. 국민들이 기대했던 진정성 있는 사과 발언은 없었다. 여권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오히려 맥만 빠졌다는 반응이 나왔다.

“김 여사 심기 신경 써야 할 정도로 존재감 비대”


▎김건희 여사가 2023년 9월 13일 최재영 목사로부터 고가의 명품백을 전달받는 모습. / 사진 유튜브 채널 서울의 소리 캡처
이번 사태에 국민들이 분노하는 지점은 김 여사의 명품과 관련한 논란이 일회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김 여사는 2023년 7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순방차 리투아니아를 방문했을 때도 경호원과 수행원 16명을 대동한 채 명품 매장에서 쇼핑한 사실이 현지 보도로 드러났다. 해당 매장은 프라다·몽클레르·아르마니·구찌 등 고가 브랜드를 취급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매장 매니저는 현지 언론에서 “김 여사가 무엇을 얼마나 샀는지는 비밀”이라면서도 “김 여사 방문 후 한국 대표단이 다시 들러 물건을 추가 구매했다”고 밝혔다. 정상 외교에 동행한 대통령 부인의 뜬금없는 ‘명품 쇼핑’ 소식을 접한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당시 관련 사안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1.6%가 “(김 여사의)해명·사과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은 할 말은 한다는 ‘강골검사’ 이미지다. 애당초 2012년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에서 검찰 수뇌부로부터 수사 제한 압력이 있었다는 의혹을 폭로하며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어록을 남겼다.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들도 부정부패와 거악(巨惡)에 타협하지 않는 강직함을 정치권에서도 발휘해달라고 기대했다. 그런 윤 대통령이 유독 김 여사와 관련된 사안만은 마치 동맥경화에 걸린 것처럼 경직되는 데 대해 용산 대통령실 참모들도 난색을 표한다는 후문이다.

이런 이유로 대통령실 참모들은 김 여사와 관련된 부정적 이슈가 터지면 제대로 된 방어논리를 대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기 일쑤다. 윤 대통령도 평소에는 허심탄회하게 참모들과 대화를 즐기다가도 김 여사와 관련된 논란이 거론되면 정색한다는 얘기가 용산 안팎에서 심심찮게 나온다. 참모들이 김 여사에 대해 소신있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대통령실 참모들 사이에서는 “윤 대통령이 듣기 싫어하는 소리는 삼가는 게 보신(保身)에 좋다”는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 대통령실의 한 행정관은 “실무급에서는 김 여사에 대한 부정적 이슈에 대응하기가 어렵다”고 호소했다. 핵심 참모들이 김 여사 문제와 관련해 테이블에서 논의한 내용이 실무부서로 하달되지 않는 경우가 잦다는 것이다. 오히려 김 여사 관련 논란에 대해 언론 기사를 보고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는 “그럴 때면 김 여사와 관련된 논란의 사실 여부를 묻는 기자들에게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한다”고 냉소했다.

용산 대통령실 참모진에 ‘김건희 라인’ 존재


▎김건희 여사가 2023년 7월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NATO) 순방차 리투아니아를 방문했을 때 경호원과 수행원 16명을 대동한 채 명품 매장에서 쇼핑하는 모습. / 사진:'15min' 웹사이트 화면 캡처
용산 대통령실과 국회 여의도 주변에서는 이번에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논란이 불거진 원인을 두고 여러 시선이 나온다. 그중에 의미 있는 대목은 “대통령실에서 김 여사의 심기를 신경 써야 할 정도로 김 여사의 존재감이 비대하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에서 일하는 한 행정관은 “김 여사가 누구를 만나는지(대통령실에서) 관리가 안 되는 것으로 안다. 이번 사태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김 여사가) 사업가 기질이 원체 강한 분이어서 사람 만나는 데 거부감이 없기도 하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대통령실에서는 명품백 수수 문제가 알려지고 나서야 “김 여사 집안과 동향이라는 이유로 (최 목사가) 접근해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 목사가 공개한 영상에는 쇼핑백을 쥐고 있는 또 다른 접견 대기자들이 있었다. 이들이 누구이고, 어떤 목적으로 김 여사를 만나려 했는지에 대한 해명은 없었다. 만약 인사 추천이나 민원 해결과 관련돼 있을 경우 김 여사의 또 다른 국정 개입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 총선 전 ‘김건희 특검’이 무산되긴 했지만 총선 결과에 따라 이 문제는 정국을 뒤흔들 사안이 될 수 있다.

앞서 윤 대통령은 2021년 7월 국민의힘 대선 경선을 치를 때 “제 아내는 (저한테) 정치할 거면 가정법원에 가서 이혼도장 찍고 하라고 했다. 아내가 정치 참여에 아주 질색했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과거 논란이 됐던 김 여사의 친인척 대통령실 채용 논란, 인사 개입 논란 등 비선 의혹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김 여사의 친인척 대통령실 채용 의혹의 시작은 2022년 6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권양숙 여사를 예방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 대통령이 당선된 지 100일이 채 안 된 때다. 당시 방송 카메라는 김 여사 주변인들에게 관심을 보였는데, 김 여사의 일정에 동행한 수행원 3명의 신원이 불명확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이들은 김 여사의 사업체였던 ‘코바나컨텐츠’의 임직원들이었다. 한 명은 충남대 무용과 겸임교수 김모 씨로 코바나컨텐츠의 전무로 활동했으며, 다른 두 명은 코바나컨텐츠 출신으로 대통령실 채용과정을 밟고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당시 나토 정상회의 기간에 검찰 출신인 이원모 전 대통령실 인사비서관 부인 신모 씨도 김 여사와 동행했다. 대통령실 참모의 부인이자 민간인인 신씨가 경호상 기밀사항인 대통령 부부의 일정과 동선을 공유하고 같은 숙소에 머물며 행사기획·운영 등에 관여한 것이다. 앞서 신씨 부부는 윤 대통령의 중매로 맺어진 사이이며, 신씨와 모친은 지난 대선 때 윤 대통령에게 2000만원의 고액 후원금을 낸 것으로도 알려졌다. 당장 비중 있는 업무를 민간인에게 맡긴 것이 일종의 ‘지인 찬스’를 쓴 특혜 제공이 아니냐는 비판이 뒤따랐다.

김 여사의 인사 개입 논란도 여전하다. 대통령실에 김 여사의 입김으로 기용된 ‘김건희 라인’이 존재한다는 것은 용산 주변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다. 권력에 줄을 대기 위해 김 여사를 찾는 사람들도 문제지만 사저를 개인 사무실 삼아 그들을 만났던 김 여사의 잘못도 크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김 여사와 윤 대통령의 오랜 지인이었던 사업가 황모 씨의 아들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 행정관에 채용된 바 있다. 김 여사를 ‘작은 엄마’라고 부를 만큼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 하면 윤 대통령의 외가 쪽 6촌 동생인 최모 씨는 대선 기간 당시 캠프 초기부터 회계팀장을 맡았다. 이후 부속실에 근무하면서 김 여사 관련 일정을 담당하는 ‘관저팀’ 팀장이 됐다.

여당 의원, 총선 홍보물에서 尹 사진 내려

김 여사의 입김으로 외교부 라인이 전격 교체됐다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다. 앞서 윤 대통령은 2023년 3월 한·미 동맹 70주년을 기념한 미국 방문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을 전격 경질했다. 표면적 이유는 김 전 실장이 중요한 보고를 누락했다는 것이었지만 실장만 교체되고 국가안보실 제1차장인 김태효 차장이 그대로 남는 형국이 되면서 ‘김성한·김태효’ 갈등설이 수면 위로 부각됐다. 당시 김 차장은 김 여사 라인으로 분류되는 인사였다. 당장 김 실장 경질에 김 여사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말이 나왔다. 이후 대통령실 의전비서관에 김 여사의 대학원 동기 김승희 씨가 기용되면서 의혹은 더욱 증폭됐다. 이벤트업체 대표를 지낸 김씨는 정부 초기부터 대통령실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근무한 대표적인 ‘김건희 라인’으로 알려졌다. 김 비서관은 2023년 10월 20일 자녀 학교폭력 논란으로 사퇴했다.

무엇보다 김 여사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관여돼 있다는 의혹은 인화성이 큰 불씨다. 이 사건은 2023년 2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공범들의 1심 판결문에 ‘김건희 계좌’가 범행에 사용됐다고 적시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더불어민주당은 2022년 9월 이를 특검법으로 처리하자며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국민의힘의 외면 속에 숙려기간을 지나 2023년 12월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윤 대통령은 “여당이 특검 추천에서 배제됐고, 수사 상황을 생중계하는 조항이 있는 악법”이라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하지만 이후 벌어진 여론조사 결과는 윤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색하게 했다. 한국갤럽이 1월 23~25일 전국 성인 1001명을 상대로 전화조사 인터뷰한 결과(신뢰 수준 95%·표본오차 ±3.1%p, 응답률 16.7%),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는 63%로 나타났다. 부정평가 이유로 ‘김건희 여사 문제’는 여러 요인 중 3위(9%)를 차지했다.

여권에서는 대통령실에 제2부속실을 설치해 총선 전에 김 여사를 공적인 체계에서 통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 여사 리스크가 여당에까지 파장을 미친다면 총선 승리가 어려울 거라는 판단에서다. 실제 국민의힘 모 의원 선거사무실은 최근 홍보물에 실었던 윤 대통령 사진을 빼고 한동훈 비대위원장 사진으로 교체했다. 김건희 여사 문제로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진 상황이라 윤 대통령을 앞세우지 않는 선거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의원실 관계자는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다. 지금이야 눈치를 보고 있지만 선거가 본격화되면 다들 윤 대통령 대신 ‘한동훈 마케팅’으로 갈아탈 것”이라고 말했다.

-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

202403호 (2024.02.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