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화장 기구를 수집하게 된 것은 동아제약의 자회사인 라미화장품 대표로 선임된 1977년부터다. 하지만 한국의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때는 69년 동아제약 기획관리 실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한 나는 당시 주로 숫자를 다루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어느날 지인이 이런 직업은 인성이 메마르기 쉽다며 감성과 이성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그림에 관심을 가져보라고 충고했다. 당시 동아제약은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 있었는데, 그때부터 점심시간을 활용해 식사는 최대한 간단히 하고 인사동 갤러리들을 다녔다. 이러다보니 자연히 그림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관련된 책도 읽게 됐다.
한 번은 일본의 제약 회사에 출장을 가 그 회사 공장에 전시된 일본 전통 의약 관련 도구들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귀국해서 나 역시 그림을 수집해 보고자 마음 먹었으나, 봉급쟁이가 하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 몸담고 있는 회사가 제약회사이고, 제약 관련 소품들은 다른 문화재에 비해 가격도 저렴해 봉급을 아껴 모으기 시작했다. 77년 라미화장품 대표로 발령나면서부터는 여성과 관련된 민속예술품까지 영역을 확장했고 화장 용구에 대해 애착을 갖게 된 것이다. 전통 화장 용구를 모으면서 높아진 심미안(審美眼)은 실제 비즈니스에도 큰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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