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는 몇 번이나 죽거나 패가망신할 고비를 넘지만 그때마다 천우신조(天佑神助)로 살아남는다. 거의 기적이라 할 만하다. 운도 좋았지만 유비의 냉철한 처신술이 큰 역할을 한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약자가 살아남기 위해서 경계색을 쓰기도 하고 보호색을 쓰기도 한다. 경계색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요란한 색깔을 내는 경우이고, 보호색은 주위 색깔과 같이해 몸을 감추는 경우다. 유비도 경계색과 보호색을 번갈아 교묘하게 잘 썼다. 상황을 빨리 판단하여 뻗댈 때는 뻗대지만 굽힐 때는 주저 없이 굽힌다. 다소 비굴해 보이기까지 한다. 유비는 약했기 때문에 주로 보호색을 쓴다. 보호색을 쓰기 위해선 침착함과 담대함이 필요하다. 맹수가 아무리 건드려도 고슴도치가 죽은 듯이 엎드려 있다가 맹수가 싫증이 나서 그냥 가면 재빨리 도망가는 것과 같다. 매우 드물지만 유비도 더러는 경계색도 쓴다. 승산이 있을 때까진 자신을 낮추고 있다가 때가 되면 용감하게 일어서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표변하는 유비의 운신은 하도 교묘하고 자연스러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유비는 연기도 일품이다. 여러 번 주인을 바꿨지만 유비는 가는 곳마다 환영받고 인의군자(仁義君子)로 대접받는다. 명성과 신의도 유지할 수 있었다. 당시 전란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느 정도의 변신이 불가피했겠지만 유비처럼 자연스럽게 또 득을 보면서 한 경우는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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