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사업가, 통기타 가수, 패션 모델 등 외향적인 삶을 접고 지리산에 터를 잡은 전문희 씨. 어머니의 지병을 고치기 위해 약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산야초 전문가가 됐다.
▎경남 산청군 시천면 지리산 밑자락에서 20년 가까이 산야초를 연구하는 전문희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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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초입의 지리산. 설화 가득한 첩첩산중의 시계는 멈춘 듯하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자취를 감추고, 만행(萬行)에서 돌아온 스님은 선방에서 묵언에 들어간다. 천왕봉 밑자락의 적막한 산중(경남 산청군 시천면), 이즈음 산야초(山野草) 아낙 전문희(52) 씨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아따, ×× 오랜만이네요~잉.” 진한 남도 사투리에 육두문자 섞인 인사가 금세 형식적인 인사치레와 어설픈 경계심을 풀게 한다. 지리산에 들어와 몇 번째 겨울이냐고 물었더니 “글쎄~” 하며 말을 잇지 못한다. 인생이란 게 그런 건가. 일생에 가장 큰 변곡점이 된 해인데도 세월이 지나면 이렇게 잊고 산다. 몇 권의 책을 출판한 해를 기준으로 얼추 계산해보니 20년 가까이 됐다.돌아보면 ‘징한’ 세월이다. 유복자로 태어날 때부터 예사롭지가 않았다. “아이를 떼려고 별짓 다했다고 합디다. 그런데 태아가 뱃 속에서 도망을 다녔다고 해요.” 원치 않는 생명은 출생부터 약골이었다. 심장미숙이라고 했다. 툭하면 빈맥(분당 맥박이 100회 이상)이 찾아왔고, 저혈압과 손발마비로 바닥에 눕기 일쑤였다.어머니는 19세에 시집 와 32세에 남편을 잃고 행상을 했다. 농토 없이(전남 장흥) 3남 4녀를 키워낸 시골 아낙의 신산스런 삶이 오죽했으랴. 초등학교 시절, 막내였던 그녀는 낮에 소에게 꼴을 먹이고, 땅거미가 진 동네 어귀에서 행상을 마친 어머니를 기다렸다. 그리고 아궁이 불티 냄새나는 어머니 치마폭에서 잠을 잤다.그는 먼저 올라온 언니·오빠를 따라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잔병이 늘 문제였다. 조금만 무리를 해도 까무러치듯 가슴 통증이 시작되면서 사지가 굳었다. 소녀는 살기 위해 정신적으로 조숙해졌다. 건강강좌를 찾아다니고, 책을 읽으며 건강을 챙겼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가난이 발목을 잡았다.돈을 벌어야 했다. 26세에 전공과는 다른 인테리어 가구점 사업을 시작했다. 148㎡(45평) 고급아파트에 초대받았던 그는 플라스틱 옷걸이를 보고 무릎을 쳤다고 했다. 거실의 품격에 맞는 나무 소재의 제품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마론핸즈란 이름을 단 원목 소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돈은 벌었지만 마음 한구석의 허전함은 여전했다. 모정에 대한 그리움으로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내면 삐뚤빼뚤한 글씨로 답장이 왔다. “엄씨 걱정 그만하고 몸조심함스로. 괜찮은 남자 만나 잘 살 궁리해라~잉. 니 결혼생각만 하면 엄씨 속이 탄다 타.” 하지만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었던 그는 통기타 가수로, 패션모델로, 음식업으로 삶의 영역을 넓혀갔다. ‘친구여, 오랜 친구여’ ‘떠난 사랑’ 등 주제곡을 담은 음반도 냈다.어머니 살리려고 약초 캐기 시작운명은 가고 싶은 길을 가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법이다. 어머니가 림프샘암 진단을 받았다. 13시간에 걸친 수술, 6개월의 입원치료에도 암세포는 전신으로 퍼졌다. 의사는 잇몸에 독버섯처럼 자란 종양을 제거하려면 턱뼈를 드러내야 한다고 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낙향했다. 자연치료를 공부하며 몸에 좋다는 약초를 찾아 산과 들을 헤맸다. 산에서 채취한 참빗살나무, 하늘수박, 둥나무혹, 꾸지뽕나무, 삼백초…. 몸에 좋다는 산야초를 찾아 남도에 있는 큰 산은 모두 올랐다.이러길 3년 어머니는 의학적 시한부를 한참 넘겨 사셨지만 이미 기울어진 건강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주기적으로 찾아온 통증은 모녀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효도하고 싶으면 당신한테 농약을 사주거나 독초를 달여 달라고 할 정도였어요.” 봄기운 완연한 3월 17일, 어머니를 보내 드렸다. 어머니의 죽음은 세상의 종말과 같았다. 돈을 버는 것도, 명예를 얻는 것도 부질없는 짓이었다.천도재를 지내고 전남 강진에 있는 청자도요지에 몸을 의탁했다. 도자기를 빚으면 시름을 잊을 것만 같았다. 그것도 잠시, 운명처럼 산중의 고택인 선다헌을 찾아들었다. 우연한 기회에 친구와 방문한 그곳에서 스님이 끓여주는 차를 마시며 낡은 기와집 한 귀퉁이에 둥지를 틀 결심을 했다.“서울생활을 접는다고 하니 친지와 이웃이 모두 반대를 했지요. 언니와 조카들은 울며불며 말리고, 설득하다 화가 난 형부는 이삿짐을 팽개치고 돌아갔어요.”이렇게 입산 신고식을 거하게 치룬 전씨는 5년간 선다헌에 살면서 산야초에 빠져들었다. 산야초 아낙으로 거듭나는 시기였다. 산야초로 만든 차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건강을 위한 산야초 연구회’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대체의학과 자연의학을 전공한 교수들과 교류하며 산야초에 이론이 접목됐다.
본격적으로 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입산 8년 만에 첫 저서 『지리산에서 보낸 산야초차 이야기』가 세상에 선보였다. 산내음 물씬나는 그의 책은 힐링 바람을 타고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잡초 취급받던 산야초가 세속을 등진 한 여인의 집념과 책을 통해 우리 곁에서 다시 태어났다.
항노화·항암 효과 있는 산야초 차산야초는 잎·줄기·뿌리·열매 모두 버릴 것이 없는 영양덩어리다. 비타민·미네랄과 같은 미세영양물질은 물론 파이토케미칼(식물생리활성영양소)은 항노화 뿐 아니라 항암효과가 풍부하다. 잎을 활용한 산야초 차의 백미는 백초차다.겨울을 이겨낸 100여 가지 새순을 따서 만든다. 곡우 전에는 어떤 잎을 따도 독이 없고, 약성이 뛰어나다. 그녀는 차를 덖을 때 구증구포(九蒸九曝)를 고집한다.아홉 번 덖고, 아홉 번 비비는 전통 제다법이다. 산야초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고 건조시킨 뒤엔 살청(殺靑)을 한다. 뜨겁게 달군 가마솥에 넣고, 나무 주걱으로 쉼 없이 휘젓고 뒤집기를 반복한다.엽록소의 산화효소를 파괴해 차의 변질을 막고, 맛과 색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다. 차를 만드는 과정을 스님들은 수행의 한 방편으로 삼았다. 그만큼 인고의 정성을 쏟아야 좋은 차가 나온다.“차의 맛과 향은 첫 솥과 둘째 솥에서 결정됩니다. 첫 솥은 섭씨 200도에서 10분, 둘째 솥은 같은 온도에서 7~8분, 셋째 솥은 100~170도에서 장갑 낀 손이 견디기 어려워질 때까지, 그리고 이후에는 온도를 내려 7~10회 덖습니다.” 이렇게 덖은 산야초는 열기를 식힌 뒤 비비기로 들어간다. 차는 덖는 온도와 시간, 비비는 회수에 따라 맛과 향이 좌우된다.“처음 딸 때의 찻잎 향과 아홉 번 덖은 손의 차향이 같아야 제대로 된 차입니다. 구증구포로 만든 차는 몇 번을 우려내도 첫 맛을 잃지 않습니다.” 아홉 차례 덖은 차의 수분 함유량은 3%. 이를 다시 황토방에 널어 하루를 말리고 봉지에 담아 서늘한 곳에서 일주일 숙성시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맛내기 작업인 향 덖음을 두 시간 정도 추가한다.전통 제다법은 인스턴트식품이 대중화한 요즘에는 ‘미련한’ 작업이다. 돈 벌려는 생각으로는 절대 할 수 없다. 험한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새순을 따고, 인건비와 가공비를 생각하면 답이 나오질 않는다. 그녀는 “얼마치나 파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본질은 어디가고 상술만 남은 것 같아요.” 시중에 산야초 차가 쏟아져 나오는데 그 많은 물량을 어떻게 생산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게다가 청정지역에서 일일이 손으로 딴 재료를 사용했는지 검증도 불가능하다. TV에서 쇠비름이 좋다고 하면 농약 친 논두렁의 쇠비름까지 동이 나는 판국이다. 무분별한 채취로 산은 몸살을 앓는다.“산야초가 약성을 가지려면 종류마다 적절한 시기에 채취를 해야 합니다. 개복숭아는 알이 벌어지고, 똘배는 서리가 내려야 단맛이 듭니다. 그런데 약성이 들기 전에 싹쓸이해가는 거예요. 산야초 새순은 나무가 허약해지지 않도록 한 그루에서 조금씩 따야하는데 이런 배려 없이 자연을 훼손합니다.”차는 기호품이 아니다. 예이면서 덕이며, 도다. ‘끽다거’(喫茶去: 차나 한잔 하고 가게나)는 상대를 공경하며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 찻물 따르는 소리는 소란스럽고 번잡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다선일미(茶禪一味), 즉 차로 선의 경지에 이른다. 『야생초 편지』의 작가 바우 황대곤은 그의 백초차를 마시면서 “지리산을 통째로 내 몸에 모시는 느낌”이라고 극찬했다.좋은 물은 좋은 차를 만든다. 지리산 석간수(바위 틈새로 흘러나오는 물)로 빚은 전문희 아낙의 산야초 차를 맛보시려거든 지리산 시인 김원규의 시를 한번쯤 읽고 오는 게 낫겠다.
(상략)/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