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위원 김시규 JTBC 예능국장│남궁훈 게임인재단 이사장│서현동 CJ E&M 전략기획담당 상무│이후남 magazine M 편집장│정덕현 문화평론가
▎“앉으나 서나 자나자나~.” 촬영 내내 개그맨 김준호는 고양이 인형 ‘자나’를 안고 자신의 유행어를 읊조렸다. 자나 인형은 그가 KBS ‘개그콘서트’에서 인기를 끈 사귀자 캐릭터의 애완 고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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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로 있는 것만으로 창피했습니다.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에서는 2003년 (박)준형이 형 이후로 처음 받는 겁니다. 개콘팀에게 감사합니다. 중학교 때 심형래 선배 코미디보려고 KBS방송국 왔다가 쫓겨났습니다. 경비 아저씨에게 복수하려고 개그맨이 되고 싶었어요. 그 꿈은 이미 이뤘고, 더 큰 걸 이룬 것 같습니다다. 저 대상 먹었습니다.”지난해 12월 21일 열린 ‘2013 KBS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거머쥔 개그맨 김준호(39)의 수상 소감이다. 그는 1999년 9월 개콘 첫 방송부터 현재까지 이 프로그램을 지키는 개국공신 중 한 명이다. ‘사바나 아침’ 코너부터 ‘꺽기도’ ‘감수성’ ‘비상대책위원회’ ‘뿜엔터테인먼트’에 출연하며 수많은 유행어를 남겼다. 업계 전문가들은 15년 동안 줄기차게 코미디라는 한 우물을 파온 그가 한국 코미디 발전에 큰 힘이 됐다고 평가했다.그가 포브스코리아의 ‘코리아 2030 파워리더’에 선정됐다. 그를 1월 16일 오전 11시 30분에 서울 강남구 백운갤러리에서 만났다. 첫 등장부터 웃음을 줬다. 상체에 걸친거라곤 검정 점퍼 뿐인 듯했다. 기자가 “설마 이 추운 날씨에 점퍼만 입고 왔냐”고 묻자 점퍼를 열어 보여준다. 맨살이다. 사진 촬영을 위해 옷을 갈아입을 것을 대비해 상의를 벗고 온 것이다. 미용실에서 손질한 머리 스타일이 망가질 수 있어서다.그가 벗은 건 점퍼 뿐이 아니었다. 1시간가량 진행한 인터뷰 내내 속시원하게 자신을 보여줬다. 애쓰지 않아도 그의 말 속에 유머가 배어 나온다. 천생 개그맨이다. 요즘 그의 관심사는 한국 코미디의 발전이다. 크게 두 가지 일을 진행한다. 우선 2011년 개그맨을 위한 연예기획사 코코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김준현을 비롯해 김대희, 김원효, 양상국, 김지민 등 46명의 개그맨이 소속돼 있다. 경영은 김우종 대표가 맡았다. 그의 직함은 CCO다.“다양한 뜻이 담겨있어요. 처음엔 회사 내부의 최고의 개그맨(Chief Comedy Officer)이라는 뜻을 담았습니다. (웃음) 앞으로는 콘텐트 개발(Chief Contents Officer)에 주력할 생각입니다. 후배들이 폭넓게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개그맨을 위한 지적재산권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도 알아보고 있어요.”그는 “개그 유행어도 저작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개가수(가수도 하는 개그맨)의 코믹한 노래는 저작권 보호를 받습니다. 반면 개그맨들의 유행어는 CF에서 자유롭게 사용하잖아요. 보장만 된다면 작곡가처럼 저작권료를 받을 수 있을텐데 아쉽습니다. 회사 변호사와 연구 중이에요. 캐릭터 인형에 유행어를 녹음해서 인형을 등록하면 가능할 거 같기도 해요. 쉽진 않겠지만 다양한 방법을 찾아보려고 합니다.”아시아 최초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 열어두 번째는 지난해 8월 ‘부산 국제코미디 페스티벌(BICF)’을 개최했다. 이 행사엔 ‘개그콘서트’ ‘웃차사’ ‘코미디빅리그’ 팀 등 국내 유명 개그맨 뿐만 아니라 호주 댄디맨, 독일 하키앤뫼피, 일본 3가가헷즈 등 해외 유명 개그맨까지 참여했다. 국내외 개그맨 150여 명이 한자리엔 모인 축제였다. 이 행사를 구상하고 이끈 이가 김준호다.그는 행사 나흘간 제대로 잠을 못자 빨간 토끼 눈으로 행사장을 누비고 다녔다. 각계 인사를 만나며 코미디 산업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서다. 행사 마지막날엔 스위스 몬트뢰페스티벌과 상호협력을 위한 약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그는 이번 행사에 털어넣은 사비만 1억원 이상이다. 그가 이토록 공을 들인데는 이유가 있다.“3년 전에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습니다. 영화보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눈길이 가더군요. 적어도 50명이 컴퓨터를 만지면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심장이 뜨거워지더라고요. 영화제처럼 세계적인 코미디 축제가 생긴다면 코미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일하면서 먹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인터뷰 중간 그는 간단하게 빵과 우유로 점심을 해결했다. 이 시간 이후에도 스케줄이 많아서 식사할 시간이 없어서다. 수요일엔 ‘개그콘서트’ 녹화가 있다. 최근엔 ‘해피선데이-1박2일’ 세번째 시즌의 고정 출연자로 합류했다. 이 촬영은 격주 주말에 찍는다. 일주일 내내 진행하는 예능프로그램 ‘인간의 조건’도 있다. 입술 쪽에 포진이 생겨도 제대로 쉬지 못하니 3주 가까이 아물지 않는다.그의 코미디 인생에서 딱 한번 쉰 적이 있다. 2009년 도박 물의를 일으켜 8개월간 출연 중이던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삶에서 가장 힘든시기였다. “어느 정도 해야 범죄이고 취미인지 구분을 못했습니다. 제 잘못이죠. 300만원 정도의 돈으로 도박을 했어요. 마카오에 2년 동안 8번 정도 갔어요. 금액을 계산해보니 순식간에 천만원 단위가 되더라고요. 실망감을 안겨드려 죄송할 뿐이에요.”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그가 찾은 곳은 강화도의 낚시터였다. “사실 낚시를 할 줄 몰라요. 멍하니 앉아 있으니 김대희 형이 찾아오고, 옹담샘 멤버들도 와줬어요. 하지만 무대에 설 수 없는 환경에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물고기를 웃길 수도 없고요. (웃음) 심각했어요.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원형 탈모가 생겼습니다. 돌파구로 찾은 게 인터넷 방송이었어요. 웃긴 영상을 찍어서 올려야겠다고 마음먹은 거죠. 후배 30명에게 디지털 카메라를 하나씩 나눠주고 재미있는 영상을 찍어오라고 했어요. 한달 뒤 후배들이 보내온 영상을 보니까 쓸만한 게 없더라고요. 그때서야 프로듀서와 작가가 왜 필요한지 알겠더군요.” (웃음)그의 성공 키워드는 세 가지다. 광대·도전·긍정적인 사고가 그것. 우선 광대는 광대다. 개콘에서 사귀자 캐릭터를 맡으면서 달라진 생각이다. 사귀자는 뿜엔터테인먼트 코너에 등장하는 원로 배우로 고양이 인형 ‘자나’를 안고 다닌다. 매번 우스꽝스런 의상으로 관객들을 놀라킨다.예를 들어 시상식에 입고 갈 드레스를 선보이겠다고 말하며 보여준 의상이 때 타월 의상이다. 때 타월을 여러 개 겹쳐서 만든 드레스다. 유행어 ‘자나자나~’도 이 코너에서 나왔다. “광대는 망가질수록 사람들이 좋아해요. 만나면 재밌으니까 사람들이 편하게 대하는 거 같아요. 지난해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진행할 때도 진정성이 느껴진다며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둘째 도전을 즐긴다. “무슨 일이든 부딪히며 풀어가는 성향이에요. 우선 해보고 안되면 문제점을 파악한 후에 다시 도전하는 거에요. 지난해말 노르웨이의 음악가 일비스의 히트곡 ‘더 폭스’를 리메이크한 노래 ‘좀비’를 내놨어요. 특히 좀비가 우는 소리를 독특하게 담아냈습니다. 뮤직비디오도 찍었는데 예상보다 반응이 좋지 않아요. 녹음 날 목상태가 안좋아서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한거 같아요. 다음엔 노래 대신 랩을 해보려고요.”광대·도전·긍정이 성공 비결긍정적인 사고도 빼놓을 수 없다. “하고 싶은 일을 잊지 않고 마음에 새기면 그대로 이뤄져요. 작년, 재작년에 결심했던 일들을 모두 해냈어요. 이젠 남태평양의 낙원이라고 불리는 보라보라섬을 목표로 삼았어요. 40대 초반엔 영화 촬영에 도전하고, 40대 중반부터는 일년에 절반가량은 이 섬에서 머물 생각이에요. 요즘 습관처럼 ‘보라보라’라며 말하고 다닙니다.”보라보라섬을 가기 위한 첫 단추가 회사 경영을 안정화시키는 일이다. 그가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도 척척 돌아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그가 꿈꾸는 회사의 미래상은 한국적인 요시모토 흥업이다. 이곳은 10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최대의 개그맨 기획사다. 소속 개그맨이 1500여 명에 이른다. 일주일 평균 70여 편의 방송물을 제작해서 공급한다. 유명 개그맨은 방송뿐 아니라 공연장을 통해 끊임없이 대중과 소통한다.항상 남을 즐겁게 해주는 게 일인 그는 정작 본인은 행복할까. 그는 “행복하다”고 했다. 그 이유가 재밌다. “열심히 까불면서 사는 거 보니까 행복한 거 같아요. 삶이 힘들고 여유가 없으면 까불지를 못해요. 정치가 윈스턴 처칠만 해도 위트가 넘쳐 주변이 생기가 있었다고 하잖아요.” 그의 재치는 사진 촬영 때 빛을 발했다. 사진기 셔터를 누를 때마다 다양한 표정과 제스처를 쏟아냈다. 특히 자나 인형을 품에 안고 “자나자나~” 유행어를 할 때마다 현장은 웃음바다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