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UNICEF - “나눌수록 행복하다” 

 

사진 전민규 기자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20주년을 맞았다. 한국은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됐다. 오종남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은 지구촌 곳곳의 어려운 어린이를 돕는 유니세프의 행복한 나눔을 자랑했다.

▎서울 종로구 효자로의 유니세프 한국지사에서 만난 오종남 사무총장.



지난해 10월말 제주도에서 ‘2013 제주올레 걷기 축제’가 열렸다. 참석자들에게 “이 길에서 무엇을 나눌 것인가”를 묻는 순서가 있었다.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행복’을,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슬픔’을 꼽으며 설명했다. 다음으로 생뚱맞게 신발을 나누고 싶다고 말한 이가 있었다. 은빛 머리칼에 인자한 미소가 인상적인 오종남(62)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이다. 그는 맨발이었다.

“우리처럼 오래된 세대는 어린 시절 고무신을 신거나 맨발로 다니던 추억이 있습니다. 경제발전에 힘입어 많은 사람이 멋진 등산복을 입고 형형색색의 신발을 신고 축제에 참가했습니다. 하지만 지구촌에는 아직도 신발이 없어 맨발로 살아가는 어린이가 적지 않습니다. 올레길을 걷는 동안 맨발로 살아가는 어린이들의 고통을 생각하며 잠시나마 맨발로 걷고자 합니다.”

그는 한 시간 반가량을 맨발로 걸었다. 많은 참가자는 오 사무총장의 맨발 투혼을 보며 유니세프에 후원금을 내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는 1975년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해 경제기획원과 기획재정부에서 주로 일했다. 청와대에선 대통령 비서관을 지냈고, 제7대 통계청장을 맡았다. 한국인 최초의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도 역임했다. 이후엔 서울대 과학기술혁신 최고 과정 주임교수와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을 맡았다.

그가 지난해부터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이 됐다. 새로운 도전이었다. 더욱이 올해는 한국위원회가 설립 20주년이 되는 해다. “작년엔 대학교수를 맡고 있어 직무대행으로 시작했습니다. 적임자가 나타나면 물려줄 생각이었고요. 올해 설립 20주년을 기념해 ‘비전 20/20’을 발표했습니다. 지난 20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계획한 겁니다. 사무총장을 뽑는 추천위원회가 새로운 비전을 발표한 첫 해만이라도 사무총장을 맡아달라고 간곡하게 부탁을 하더군요. ”

‘ 연봉 1원’의 사무총장

오랜 고심끝에 승낙했다. 그리고 연봉 1원을 받는 사무총장이 됐다. “보수를 받으면 받는 만큼만 일하게 됩니다. 아이들을 돕는 일인데 책임감을 갖고 일해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규정상 월급을 받게 돼있어요. 그래서 1원만 받기로 했습니다. (웃음) 나이 예순이 넘으면 남은 인생을 어디서 보낼 지 고민하게 됩니다. 사회에 진 빚을 갚는 마음으로 해보려고요. 충분히 보람있고,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유니세프와 인연이 깊다. 2009년부터 한국위원회 이사로 일했다. 오 사무총장은 “우리 세대는 유니세프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찡하다”고 했다.

“유엔은 1946년 제2차세계대전 후유증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어린이를 돕기 위해 ‘유엔국제아동긴급기금(유니세프)’을 설립했습니다. 1950년 3월 25일 유니세프는 한국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기본 협약을 맺은 지 석달 후에 6.25 전쟁이 터졌습니다. 한국 아동들은 긴급구호 식량으로 끼니를 때웠어요.

당시 커다란 드럼통에 옥수수 분유를 끓였어요. 휙휙 저어서 한 국자씩 퍼주는 게 유일한 식사였지요.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하면서 1994년 1월 1일 한국은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변신했습니다. 지구촌 어려운 어린이를 돕는 선진국형 국가위원회가 생긴겁니다.”

그는 유니세프 후원자 중 기억에 남는 사람으로 박양숙 여사를 꼽았다. 2010년 84세의 할머니가 아들이 미는 휠체어를 타고 유니세프를 찾았다. 그가 내민 돈 100억원은 개인 후원금 중 최고 금액이다.

“그는 말이 어눌했어요. 젊었을 때 가르치는 일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때 배운 교훈이 교육이 인간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상에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돈을 써달라고 하더군요. 큰 돈이긴 했지만 과연 ‘이 돈으로 세계 수많은 아이의 교육을 책임질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죠.

하지만 박 여사의 돈은 ‘스쿨포아시아(Schools for Asia) 프로젝트’를 만드는 종잣돈이 됐습니다. 전 세계 초등교육을 받지 못한 3000만명 아시아 어린이를 위해 마련된 프로그램입니다. 박 여사는 지금 세계 곳곳에서 세워지는 학교 소식을 듣는 즐거움으로 살고 있어요.”

오 사무총장은 박 여사를 만난후 ‘부자로 사는 즐거움’을 사람들에게 전한다. “살아있을 때 다 쓰지 못한 100억원을 기부해 커다란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유산으로 물려줘서 자녀끼리 싸우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부자로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부자로 죽겠습니까.”

매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기부금액은 늘고 있다. 지난해 세계 36개 위원회에서 기부액 규모로 3위를 기록했다. 미국, 일본 다음으로 한국이다. 1994년 350만 달러였던 기부금액은 2012년에는 7500만 달러로 늘었다. 지난 한 해에는 40만 명이 넘는 정기후원자가 1000억원이 넘는 기부금을 유니세프에 전달했다.

오 사무총장은 기부금액의 규모는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기금 액수를 늘리기보다 우리나라의 기부문화의 격을 높이고 싶습니다. 본인이 애써 번 돈을 보람있고, 뜻있게 쓰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합니다. 큰 돈을 기부하란 얘기가 아닙니다. 빌 게이츠의 1억 달러 기부는 청소부가 100만원 월급에서 10만원을 나누는 것과 비슷합니다. 기부자 본인이 행복하고, 받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나눔 문화를 전파할 계획입니다.”

한국에도 어려운 아이들이 적지 않은 데 해외 어린이를 돕는 이유는 뭘까. 세계 어린이를 돕지 않는다고 해서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오 사무총장은 “한국이 어려울 때 유니세프에서 43년이나 도움을 줬다”며 “받은 것을 나눠주면 한국이 은혜를 잊지 않고 되갚는 따뜻한 나라로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제품을 알릴 뿐 아니라 한국의 품격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 사무총장은 “기부보다 나눔이란 단어가 더 좋다”고 했다. “지금 세계 경제는 제대로 나눠 가진다면 굶어 죽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필요 이상으로 적게 갖고 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나눔이 필요합니다. 나누는 것은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도리에요. 내가 행복하고, 받는 사람이 행복한 것은 물질 뿐이 아닙니다.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잘 대접하는 것도 나눔입니다. 간혹 식당이나 골프장에서 직원들에게 함부로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친절한 말 한마디도 행복한 나눔의 시작입니다.”

201402호 (2014.01.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