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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 OF OFFICE - 사무실을 나온 CEO③ 김경원 디큐브시티 대표 - 비밀의 정원 직원들은 몰라요 

언제나 같은 시간 동네를 산책하는 칸트처럼 김경원 디큐브시티 대표는 매일 사무실을 벗어나 이곳저곳을 누빈다. 

최은경 포브스 기자 사진 지미연 기자

▎신도림 일대가 한눈에 보이는 9층 정원
10월 16일 오후 4시. 서울 신도림 디큐브시티 지하에 차를 대고 1층으로 올라가려는 순간 당황했다. 엘리베이터의 1층 버튼이 눌리지 않는 것.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한 중년 아주머니가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모퉁이를 돌아 문으로 나가자 다른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아주머니는 익숙한 듯 ‘L’ 층과 고급 레스토랑이 있는 41층 버튼을 눌렀다. “그쪽은 호텔 객실 전용 엘리베이터예요. 여기는 미로 같아. 올 때마다 불편해. 호호호.”

김경원(55) 디큐브시티 대표를 만나면 살짝 따져 물어야겠다 싶었는데 웬걸,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김 대표가 같은 얘기를 꺼냈다. “이곳은 미로 같아서 참 재미있어요. 디큐브시티의 콘셉트가 ‘공간의 즐거움’이거든요. 뻔한 네모 건물은 한 번 와보면 질린다는 거죠. 올 때마다 다른 재미를 주려고 합니다.”

디큐브시티는 일본 롯폰기힐스를 개발한 미국 건축 회사 저디가 설계했다. “저도 처음에는 ‘미로 전략’이 통하지 않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백화점 일 평균 방문 고객이 2년 만에 4만 명에서 6만 명으로 늘었습니다.” 디큐브시티는 지난 6월 국제부동산시상식에서 아시아·태평양 부문 우수상을 비롯해 ‘2013 도시토지연구소(ULI) 글로벌 어워드’ ‘2012 세계 부동산개발박람회(MIPIM) 건축최고인기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8층 쉐라톤 디큐브 연회장 앞 테라스
2011년 8월 개관한 디큐브시티는디큐브 백화점, 디 큐브 아트센터, 쉐라톤 서울 디큐브시티 호텔(쉐라톤 디 큐브), 디큐브 오피스 등으로 이뤄진 복합쇼핑문화공간이다. 스타우드가 위탁운영하는 쉐라톤 디큐브를 제외하고 모두 대성산업이 운영한다. 2012년 사장으로 취임한 김 대표는 건물 구조를 파악하는데 3개월을 보냈다.

“구석구석에 비효율적인 공간이 많더라고요. 재미있는 장소를 만들어보자 싶었죠. 다만 안전문제는 가볍게 넘길 수 없어 외부와 이어지는 통로를 더 늘렸습니다.”

요즘도 매일 5000보 걷기는 기본이다. 두 세 시간씩 자리를 비우면 바빠지는 건 휴대전화다. “볼일 있는 직원들이 직접 전화해요.” 고객을 위한 공간을 고민하다 김 대표 자신을 위한 비밀 공간도 찾아냈다. “책상 앞에 있는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지 않거든요. 머리가 복잡할 때는 저만 아는 곳에 숨어 있곤 합니다.” (웃음) 그가 비밀 공간을 공개하겠다며 일어섰다.

김 대표는 디큐브시티에 오기 전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 삼성경제연구소 금융·글로벌실장, CJ그룹 전략 기획 부사장 등을 지냈다. “예전부터 ‘땡땡이’ 치기로 유명했어요. (웃음) 발바닥 근육이 뇌와 연결돼 있어 움직이면 생각을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돌아다니면서 효율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낫지, 오히려 책상에 앉아 딴 생각하는 게 업무태만 아닌가요?”

책상 앞에 오래 있다고 일 잘하는 것 아냐


▎6층 시크릿가든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경영학 박사과정을 공부할 때도 30분 이상 못 앉아 있었다고 한다. “수업이 100분인데 꼭 중간에 나가서 쉬고 왔어요.” 그룹 임원 회의를 하다 가도 ‘회장님’을 앞에 두고 화장실에 다녀온단다. “인간 이 고도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30~40분이거든요. 머리를 식혀야 다시 회의에 집중할 수 있어요.”

최근 일주일 동안 머리를 식히느라 3~4번 비밀 장소를 찾았다. 지난 10월 6일 대성산업은 1조6000억 원대 재무구조 개선 계획을 발표했다. 이 내용에는 디큐브 백화점의 매각 계획도 포함됐다. 1947년 대구 연탄공장에서 출발한 대성산업은 가스, 보일러, 자원개발 등 에너지 분야를 넘어 건설, 유통까지 사업 영역을 넓혔다. 2011 년 1조4000억 원을 투입해 디큐브시티를 선보였지만 세계 금융위기, 부동산 불황으로 적자 폭이 커져만 갔다. 그룹 전체가 흔들릴 위기에 놓이자 결국 신도림 디큐브 백화점, 거제 디큐브 백화점 등을 매각하고 에너지 사업에 집중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1층 디큐브 아파트 앞 공원
김 대표는 대성산업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겸하고 있다. “다음 달이면 디큐브시티 매각 작업이 끝날 겁니다. 해외투자자에게 세일 앤 리스백(매각 후 운영권 임대) 방식으로 매각할 계획입니다. 대성산업이 소유한 경기도 용인 기흥 부지도 다음 주면 매각이 이뤄질 거예 요.” 김 대표는 “현재 400%가 넘는 대성산업의 부채비율을 내년 초 200%까지 낮출 것”이라며 “디큐브시티 역시 올 4분기 첫 흑자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온 후로 디큐브시티는 달라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설의 청결과 안전입니다.” 매일 사무실을 나와 건물을 돌아다니는 것 역시 시설을 살피기 위함이다. 불이 나간 전등, 깨진 타일, 페인트가 벗겨진 벽이 없는지 꼼꼼히 본다. 김 대표의 눈에 띄면 어떤 일이 있어도 24 시간 안에 수리해야 한다. “같은 색 페인트를 구하지 못해 사인펜으로 벽을 칠해 놓은 적도 있어요. 그만큼 고객에게 우리 마음을 알리고 싶은 거죠.”

또 김 대표는 공간을 새롭게 디자인했다. 지나친 인테리어 요소를 없애고 효율적인 쇼핑 동선을 구축했다. 1층 연못을 메우고 명품 화장품 매장들을 들여온 것이 대표적인 예다. 빈 공간을 꾸며 시크릿가든 같은 ‘펀(fun)’한 장소도 곳곳에 만들었다. 백화점 지하 1층의 햇빛광장, 공부&쉼터가 그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곳이다.

햇빛광장에서는 아이들이 축구를 할 수 있다. 와이파이가 되는 공부&쉼터는 새로운 스터디 명소로 떠올랐다.

“처음 왔을 때 외관과 인테리어는 최고급인데 입점 브랜드는 그렇지 않았어요. 디큐브시티 때문에 주변에 고급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철새상권’을 만든 거죠.” 김 대표는 입점 브랜드를 고급화하고 롯데시네마, 신세계 스타수퍼, 전자랜드를 들여왔다. 내년 1월에는 교보문고가 입점할 예정이다.

문화와 먹는 즐거움도 더했다. 디큐브시티 앞 디큐브 파크 공연장에서는 무료 공연이 자주 열린다. “이곳이 대성산업 연탄공장일 때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덮었다고 해요. 디큐브시티를 문화의 발원지, 지역 랜드마크 로 만들어 지역민에게 조금이라도 빚을 갚겠다는 것이 회장님(김영대 대성 회장)의 뜻입니다.” 디큐브 백화점은 전체 면적에서 음식점이 30%를 차지한다. “쇼핑, 문화, 먹는 즐거움까지 한 번 들어오면 나갈 필요가 없어요. 멤버십 회원 수가 50만 명까지 늘었습니다. 이들의 충성도를 높이려면 디큐브시티를 더 재미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겠죠?”

201411호 (201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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