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돈(58) PD. 연예인도 아닌데 그의 이름 앞에 ‘스타’라는 단어가 붙는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PD다. 그가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에서 자주 썼던 “제가 한 번 먹어보겠습니다” 는 말은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이 PD는 지난 7월 채널A를 떠나 전격적으로 JTBC로 자리를 옮겼다. 탐사 고발 프로그램의 아이콘이 된 ‘이 영돈 PD’라는 브랜드가 ‘예능 대세 채널’ JTBC에서 어떤 시너지를 일으킬지 벌써부터 궁금증이 앞선다. 한창 새 프로그램 준비에 바쁜 이영돈 PD를 10월 초 JTBC 제작 실에서 만났다.
왜 JTBC로 옮겼는지 궁금하다.내가 그동안 고발·탐사 프로그램을 주로 했는데 과거에는 ‘주병진쇼’ ‘박중훈쇼’(KBS, 2008~2009년) 같은 프로그램도 했다. 채널 A에서 개그맨 신동엽과 ‘젠틀맨’ (2013~2014년)이란 프로그램도 했다. 교양과 예능을 반반 접목한 프로그램인데, JTBC는 예능이 강하지 않나? 지금 준비하는 건 교양과 예능을 접목하되 예능 부분이 더 크다. 이영돈 PD는 교양 캐릭터다. 이 캐릭터를 딱딱하지 않게 예능으로 풀어낼 사람이 JTBC엔 많이 있다. 그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나도 궁금하고, 나에게 도 아주 도전적인 과제라 이쪽으로 옮기게 됐다. 지금 준비 중인 프로그램은 빠르면 오는 11월 초순쯤 방송을 시작한다.
“제가 한 번 먹어보겠습니다”라는 유행어를 만들었다.그냥 내 말투다. ‘저도 좋아하는데요’ ‘먹어보겠습니다’ 이런 말투. 사실 음식을 앞에 두고 딱히 무슨 말을 하겠나? 그래서 그 말을 자주 했던 것뿐이다. 개그맨 신동엽이 그걸 갖고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성적인 코드로) 응용해서 문제가 발생한 건데… 하하, 그건 코미디언 역할이고.
의외로 예능감을 타고난 것 같다.예능, 고발, 드라마 이런 영역이 크게 차이가 난다고 보진 않는다. 고발이나 탐사 프로그램도 친숙한 느낌을 우선시한다. 프로그램에 내 이름을 걸고, 또 내가 직접 진행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프로그램 경쟁력이 있으려면 시청자가 기억할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미국은 그게 사람 이름으로 대변되는데, 우린 사람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는 걸 어색하게 여긴다. 맨 처음에 내 이름을 내걸었던 ‘이영돈 PD의 소비자고발’이 실패했으면 난 아마 그때 퇴출됐을 거다. 성공하니까 ‘아, 저래도 되는구나’ 한 것이다. 친숙함 속에서 신뢰감도 나온다. ‘먹거리 X파일’에서 MSG를 쓰지 않는 식당을 찾아내면서 생긴 ‘착한 식당 신드롬’도 그런 바탕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는다.
반전을 좋아하는데, 여러 방송국을 거쳐 JTBC까지 온 것도 인생의 반전인가.나더러 풍운아라고 하더라. 실제 사주에 역마살도 있다. 아마도 깊이 고민하고 이것저것 다 따졌으면 못 옮겼을 거다. 지상파에서 종편인 채널 A로 옮긴 이유는 새로운 환경에서 일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 JTBC로 옮길 때는 또 다른 조건이었다. 여기선 임원도 아니고, 완전히 미국식이다. 프리랜서라고 할 수도 없고, 계약된 PD다. 미국은 PD가 능력이 있 으면 돈을 더 받고 옮기는 게 당연한 분위 기다. 프로야구로 생각하면 FA 이적 같은 거다. JTBC엔 예능을 잘 아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에 나와 협업하면 상승효과가 날 수 있는 터전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선 좀 더 다르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요즘 JTBC의 ‘비정상회담’이나 ‘히든싱어’ 같은 프로그램은 지상파 내부에서도 ‘니들은 왜 저런 기획을 하지 못하느냐’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인정하는 프로다. 그런 JTBC 친구들과 건강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면, 기존의 도식적인 것에서 벗어난 뭔가가 나오지 않을까.
‘반전’이 새 프로그램에도 등장하나.토크쇼에서도 반전은 충분히 나올 수 있다. 사람들의 기대를 무너뜨리거나, 새로운 뭔가를 넣어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이다. 나는 모든 것에 반전이 있어야 시청자 의 이목을 끈다고 생각한다.
‘나도 몸 좀 사리고 조용히 살 걸’ 하고 후회한 적은 없나.전혀 없다. 여전히 새로운 프로그램을 할 때면 피가 끓는다. 앞으로 JTBC에서도 탐사 프로그램을 새로 시작 하고 그런다면 또 철없이 뛰어다니겠지. 그러니까 ‘이영 돈이는 체력왕이다’ 이런 이야기가 안 나올 수가 없다. 체력 때문에 일 못한다는 얘기 나오면 안 되는 거다.
여가 시간에 즐기는 취미는.유일한 취미는 영화보기다.술 먹고 나서 새벽 1시, 이런때 혼자 졸면서 보기도 한다. 개봉하는 영화는 거의 다 본다. 특히 반전 있는 스릴러를 좋아한다.
혹시 직접 영화를 만들 계획은.나중에 하긴 할 거다. 어떻게 될진 모르지만. (웃음)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드라마는 다음 회에 어찌 될지 기다리느라 미쳐버릴 것 같아서 아예 시작을 안 한다. 근데 영화는 2시간 안에 다 들어 있어서 보고 나면 속 시원하고 스토리가 체화된다. 그래서 다른 형태의 프로그램을 할 때 분명히 도움이 된다.
TV 프로그램은 챙겨보지 않나.요새 텔레비전은 거의 안 보고 책을 많이 본다. TV에서 형식적으로 건질 만한 포맷은 별로 없고, 거기 채우는 내용이 필요하다. 그래서 책을 많이 본다. 그걸 어떻게 영상화할 것인가는 숙제다.
이영돈 PD에게 시청률이란.굉장히 중요하다. 왜냐면 즉각적으로 승패 여부를 볼 수 있으니까. 제작진 입장에서는 내가 만든 프로그램에 어떤 반응이 오는지 봐야 하니까 목을 맬 수밖에 없다. 부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납득할 만한 수단으로 시청률을 높이려면 전략이 필요하다. JTBC에 선 이영돈을 어떻게 쓸 건가, 그 아이디어에 시청률의 승부가 걸려 있다.
요즘은 채널이 너무 많아서 웬만한 프로그램은 주목받기 어렵다.앞으로는 결국 콘텐트만 남을 거다. 콘텐트를 실어 나르는 지상파, 종편, 케이블, 위성 이런 식의 개념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한마디로 콘텐트 전성시대가 열릴 거라고 본다. 매체가 권력인 시대가 끝났고, 콘텐트가 권력인 시대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콘텐트만 살아남는 시대가 될 것이다. JTBC에 처음 올 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이영돈PD의 브랜드를 사는 겁니다’라는 이야기다. 100% 맞는 이야기다. 그게 바로 선진화된 사고방식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