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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재단 이사장을 맡은 지 7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어떻게 보냈는가.2014년 5월 이사장이 되자마자 그달에 ‘제24회 호암상 시상식’이 열렸다. 신임 이사장으로서 맞은 첫 행사였다. 이현재 전임 이사장과 호암재단 임직원들이 정성껏 준비한 밥상에 숟가락을 얹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시상식이 끝나고 나서는 호암상에 대한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먼저 호암재단 임직원, 호암상 위원 및 재단 이사진과 각각 1박2일의 워크샵을 가서 재단 발전방향에 대한 생각을 공유했다. 10월에는 이나모리 재단에서 주최하는 교토상 시상식에 초청받아 어떻게 행사를 준비하는지 살펴봤고, 최근에는 노벨상 시상식을 참관해 많이 배우고 왔다.호암상은 이병철 선대회장이 세상을 떠난 지 3년 후인 1990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선친의 인재제일주의와 사회공익정신을 기려 만든 상이다. 과학·공학·의학·예술·사회봉사상의 5개 부문으로 나눠 시상한다. 그외 분야에서 특출한 업적을 쌓았거나 한국문화와 국가사회발전에 기여한 인사에게 수여하는 특별상도 있다. 국적에 관계없이 국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이나 한국계 인사가 수상 대상이지만 사회봉사 부문만큼은 한국을 위해 활동한 외국인도 포함된다.
호암상은 인재를 중시했던 선대회장의 철학과 맞닿아 있는 듯 보인다.선대회장은 한국에서 노벨상 같은 상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갖고 계셨다. 호암상은 그분이 생전에 하지 못했던 일을 이건희 회장이 이어받은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선대회장은 인재에 대한 욕심이 대단했다. 인재를 잘 키워서 기업을 발전시키면 그것이 국가를 부강하게 만든다는 얘기를 입버릇처럼 했다. 호암재단은 단순히 호암상 시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구지원도 많이 한다. 사람에 대한 선대회장의 철학을 호암재단이 계승·발전하고 있는 셈이다.호암재단의 가장 큰 사업은 호암상 운영이지만 학술 및 연구사업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으로 호암포럼을 꼽을 수 있다. 호암포럼은 노벨상, 호암자 수상자 등 국내외 석학들의 최신 연구성과 발표, 학문적 교류 등을 지원한다는 목적으로 2013년 설립됐다.그밖에도 호암재단은 노벨상 수상자를 초청해 청소년 강연회를 진행, 학생들에게 과학에 대한 꿈과 비전을 전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2014년 5월에는 케럴 그레이더 존스홉킨스대학 교수를 초청, 한성과학고·서울영재고·과학중점고 등 과학 꿈나무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가져 큰 호응을 받았다.
호암의 인재사랑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나.선대회장은 어디에 우수한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무조건 데려오고 싶어 할 정도로 인재 발굴에 힘을 쏟았다. 삼성이 빠르게 성장한 것도 세계 각지에서 우수 인력을 데려왔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한번은 전국의 군수를 다 조사하라고 한 적이 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군수는 말 그대로 종합행정가이니 그만큼 회사생활을 잘 할 것 아니냐”며 영입하라고 했다. 종합상사를 키울 무렵에는 “서울대 상대 출신의 똑똑한 친구들이 주로 어디로 많이 가느냐”고 물어 한국은행이나 산업은행에 주로 간다고 했더니 어서 데려오라고 하더라. 당시 각 은행 조사부 에서 10명 정도 스카우트했던 기억이 난다.
호암상 수상자 선정과정이 치밀하고 꼼꼼하다.선정과정이 조금이라도 불투명하거나 불공정하면 그 상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다. 상의 존재가치가 없어지는 것이다. 호암상 위원회나 호암재단, 삼성 등 어느 곳에서도 호암상 심사위원회의 수상자 선정과정에 개입하지 않는다. 24년 동안 잡음이 없었던 것은 그 덕분이다. 이 또한 선대회장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내가 10년을 지켜본 선대회장은 완벽주의자였다. 우리가 선대회장을 묘사할 때 ‘돌다리를 두드리고 건너는 사람을 보고 나서야 건너는 사람’이라고 할 정도다. 또한, 부정한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분이다. 5%의 부정한 사람이 전체 조직을 물들일 수 있으니 가차 없이 잘라내야 한다고 했다. 호암상이 심사과정을 완벽하게 하고, 부정이 개입할 여지를 최대한 방지하는 것도 어찌 보면 선대회장의 성품 그대로라고 볼 수 있다.호암상은 ‘한국의 노벨상’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호암상의 위상을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떨치고 싶다는 것이 손 이사장의 바람이다. 방향도 분명하다. 호암상을 노벨상에 버금가는 국제상으로 발전시키고 호암상 수상자가 노벨상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노벨재단과의 교류가 많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1995년부터 노벨재단과 교류했다. ‘노벨상 100주년 기념 전시회’를 서울에서 공동주최했고 서로의 시상식에는 꼭 참석한다. 노벨상 및 호암상 수상자 간 학술교류도 꾸준히 하고 있다. 노벨재단과 교류하는 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노벨재단으로부터 배우기 위해서다. 교토상 시상식에 가봤더니 노벨상 시상식을 많은 부분 벤치마킹했더라. 우리도 좋은 것은 배우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를 하루 빨리 배출하는 것도 큰 목표다. 세계적인 한국계 학자를 꾸준히 발굴해온 덕분에 호암상 수상자는 교토상이나 노벨상 수상자 못지 않게 훌륭하다. 이들의 업적을 노벨재단을 비롯한 전 세계에 지속적으로 알려 호암상 수상자는 노벨상 수상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실제로 학계에서는 매년 높아지고 있는 호암상 수상자의 수준을 감안, 머지않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매년 노벨상 수상자를 예측하는 톰슨 로이터는 2014년 노벨상 수상자 예상후보 27명을 선정했다. 그중 2008년과 2010년에 호암상을 각각 수상한 유룡 KAIST 화학과 특훈교수와 찰스 리 서울대 의대 석좌초빙 교수가 후보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손 사장이 호암재단을 맡은 이후 큰 변화 중 하나는 호암상 심사위원회에 해외석학도 포함됐다는 점이다. 과학·공학 부문 심사위원으로 포진된 해외 석학 중에는 노벨상 수상자도 있다. 심사과정에서 자문역할만 하던 예전과는 크게 달라진 점이다.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 배출에 대한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아쉽지만 한국은 올해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일본인 과학자 3명이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것과는 대조됩니다. 호암재단과 호암상의 책임이 막중함을 느낍니다.”
이름에 담긴 정신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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