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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클럽] 영원무역 - 성기학 회장, M&A로 글로벌경영 쾌속 항진 

 

조득진 포브스 차장 사진 전민규 기자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이 글로벌 경영의 날개를 폈다. 미국 아웃도어브랜드 ‘아웃도어리서치’ 본사 인수에 이어 스위스 자전거브랜드 ‘스캇’도 품에 안았다. 자체 브랜드 확보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의 한계를 넘겠다는 전략이다. 지난해 10월 구입한 비즈니스제트기 팔콘 7X는 글로벌 경영의 적토마다.

▎영원무역의 서울 만리동사옥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은 정체기에 빠진 국내 아웃도어시장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글로벌 경영을 펼치고 있다.
맨섬(Isle of Man)은 영국 본토와 북아일랜드 사이 아이리시해(海) 중앙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제주도의 3분의 1정도 면적인 572㎢ 로 인구는 약 8만명이다. 19세기 이후 영국령에 속했으나 법제·행정상으로 강한 독립성을 띄고 있다. 기후가 온난하고 경치가 좋아 휴양지로 인기다. 1973년 8월 한 호텔의 화재로 51명이 사망하고 400명 이상이 부상했는데 이는 영화 ‘타워링’의 모델이 됐다. 맨섬은 1980년대 이후 법인세, 소득세에 대해 원천징수를 하지 않는 조세회피처(tax haven)로 유명해지면서 구글, 애플 등 글로벌기업이 속속 사무실을 냈다.

영원무역의 자회사 아리랑항공(ARIRANG AVIATION IOM)도 맨섬의 항구도시인 더글라스에 입성했다. 이 항공사는 지난 10월 20일 ‘팔콘(Falcon) 7X’를 항공국에 등록했다. 팔콘 7X는 프랑스 닷쏘항공이 제작한 대표적인 비즈니스제트기(이하 전용기)로, BMW그룹의 디자인웍스USA가 객실 인테리어를 맡아 업계에서는 럭셔리 항공기로 통한다. 앞서 2012년 2월 닷쏘항공의 ‘팔콘 2000EX’를 구입한 바 있는 영원무역이 이번에 업그레이드된 기종을 들인 것이다. 영원무역의 한 임원은 “우리 회사의 주 아이템인 의류는 주로 방글라데시에서 생산하고 미주와 유럽에 판다”며 “이 지역들을 커버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맨섬이다. 이곳에선 한 번의 주유로 지구상 어디든 날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글로벌 경영 전초기지라는 설명이다. 영원무역은 방글라데시에서도 8대의 항공기를 운영하고 있다.

영원무역이 글로벌 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최신형 전용기 마련에 이어 최근 글로벌 자전거업체인 스위스의 ‘스캇코퍼레이션(이하 스캇)’을 인수하는데 성공했다. 지난해엔 미국 아웃도어브랜드 ‘아웃도어리서치’ 본사 지분 80%를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영원무역은 성기학 회장이 1974년 설립한 의류제조 및 수입 판매 기업이다. 세계적인 아웃도어브랜드 노스페이스와 스포츠브랜드 나이키, 팀버랜드, 폴로, 운동화브랜드 ABC마트 등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수출하고 있다. 특히 일본 골드윈사와 합작해 설립한 골드윈코리아(현 영원아웃도어)는 1997년 노스페이스를 국내에 론칭하면서 아웃도어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현재 전 세계에서 팔리고 있는 노스페이스 제품의 40% 정도를 만들고 있다. 2013년 매출액은 1조5300억원으로 2003년 이후 국내 아웃도어시장에서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동남아·미주·유럽 넘나드는 전용기 경영


▎지난 연말 들여온 비즈니스제트기 팔콘 7X.
성기학 회장은 영원무역을 창립한 이래 단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은 경영자다.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가발·의류를 수출하는 스웨덴 업체 서울통상에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1974년 외국 바이어의 제안을 받고 직접 영원무역을 세웠다. 대학생 시절 산악부로 활동했던 그는 아웃도어 산업에 대한 잠재적 가치를 보았고 그래서 과감하게 창업을 결정했다.

그의 경영스타일은 치밀함과 과감성이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일수록 투자를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다른 기업들이 사업을 대폭 줄였지만 성 회장은 노스페이스를 국내에 론칭하는 강공수를 두었다. 또 OEM 제품 수출에 안주하지 않고 경쟁업체들이 잘 다루지 않는 다운웨어, 스키웨어 등의 제품을 생산했다. 기술력도 세계 정상급이다. 고어텍스 등 전문 기능성 소재와 CWS기술(무봉제 생산기술)로 다양한 제품을 자체 디자인하고 있다. 관련 산업인 염색, 패딩 공장을 가동함으로써 수직계열화를 구축했다.


▎영원무역은 방글라데시 GBC Girl’s College Hostel를 설립하는 등 생산 현지에 대한 사회공헌에 주력하고 있다.(왼쪽)/ 방글라데시 다카 공장엔 전문 의료 인력과 탁아 인력이 상주해 있다.
영원무역의 성장 비결은 글로벌 경영이다. 1980년 업계 최초로 해외투자에 나서 현재 방글라데시, 중국, 베트남, 엘살바도르 등 4개국에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다. 직원은 6만명이 넘는다. 또한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9개국에 해외사무소를 구축했다. 성 회장은 ‘다양한 나라(Multi-country), 다양한 제품(Multi-product), 다양한 방식(Multi-channel)에 기반을 둔 복합적인 사업 모델’을 강조한다. 이 같은 사업 모델 덕분에 제품 다변화와 아웃도어 위주의 브랜드 다각화가 가능했다고 믿고 있다. 그 결과 ‘방글라데시의 삼성전자’로도 불리는 영원무역의 2013년 영업이익률(매출 대비 영업이익)은 14%가 넘는다.

그는 한 해의 절반은 해외 공장에서 보내는 ‘현장형 CEO’로도 유명하다. 이동 수단은 전용기다. 그 기종을 보면 영원무역의 글로벌 경영 확대와 일맥상통한다. 방글라데시에 생산시설을 구축한 이후 구입한 것은 이탈리아 피아제항공사의 프로펠러항공기 아반티2다. 다카, 치타공 등 방글라데시 내에서 이동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후 중국 청도와 베트남 하노이에 공장을 만들면서 장거리 전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2012년 초 매물로 나온 팔콘 2000EX 중고 비행기를 구입했다. 8시간 이상 운항이 가능해 방글라데시, 중국, 베트남에 수시로 날아갔다. 그러나 시장이 커지면서 이마저도 부족했다. 특히 바이어 다변화를 위해 유럽과 미국에 갈 일이 많아졌다. 지난해 팔콘 7X를 사들인 이유다.

프랑스 대통령 전용기로 유명한 팔콘 7X는 비즈니스제트기 중 최고로 꼽힌다. 항속거리가 1만1000㎞로, 한 번 급유로 서울에서 미국 서부 전역과 시카고, 그리고 유럽까지 날아갈 수 있다. 14~16인승으로, 가격은 객실 인테리어에 따라 6000만~8000만 달러에 이른다. 업계에선 “중고라 해도 4000만 달러 이상은 될 것”이라고 분석했지만 영원무역 측이 포브스코리아에 밝힌 매입 가격은 3000만 달러다. 영원무역 관계자는 “세계 각국에 위치한 공장과 바이어 사무실 방문이 늘면서 최신형 전용기 도입이 필요했다”며 “바이어들의 영원무역 해외 공장 방문에도 이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영원무역은 OEM을 통해 크게 성장했지만 자체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지 않아 한계로 지적됐다. 업계에선 “해외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자사 브랜드가 있어야 하는데 국내 아웃도어기업이 해외에서 이름을 알리기는 쉽지 않다. 차라리 해외 브랜드를 인수해 시장 공략에 나서는 것이 더 안정적일 것”이라고 진단한다.

스캇 인수로 자사 브랜드 확보


이 때문에 이번 영원무역의 스캇 인수를 바라보는 시장의 반응은 뜨겁다. 영원무역이 OEM사업에서 탈피해 본격적으로 브랜드 사업에 나섰기 때문이다. 영원무역은 최근 글로벌 자전거업체 스캇 주식 375만여 주를 1085억원에 취득했다. 2013년 첫 취득 이후 추가취득으로 지분율 50.01%(625만1250주)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스캇은 1958년에 스위스 프리버그에 설립된 아웃도어기업으로,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55개국에 진출해 있다. 고급 자전거가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스키폴, 모터사이클 등 고가 스포츠용품과 의류도 판매하고 있다. 스캇이 업계 최초로 선보인 27.5인치 휠 타이어는 세계 표준이 되어 가고 있을 정도로 업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2013년 매출 5642억원, 순이익 188억원을 기록했다.

영원무역이 글로벌 스포츠용품시장에서 대규모 투자를 한 것은 국내 아웃도어시장의 성장세가 한풀 꺾이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패션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아웃도어 시장 성장률은 2009~2011년 30%대에서 2012~2013년 20%대로 줄었다. 2014년에는 8조원 가량으로 전년대비 16%의 성장한 것으로 추산된다. 영원무역 자회사인 영원아웃도어도 2010년 26.80%까지 기록했던 영업이익률이 2013년엔 10.94%로 추락했다. 영원무역 관계자는 “영원무역의 높은 기업 신인도와 재무 안정성을 기반으로 스캇이 매출을 늘릴 수 있도록 재무적 지원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향후 인수합병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영원무역의 대규모 투자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한국투자증권 나은채 연구원은 “영원무역과 스캇은 자전거와 자전거의류사업을 수년 동안 함께 해온 파트너 관계이며 이번 인수를 통해 스캇 브랜드 사업의 지역 확장뿐 아니라 자전거 및 아웃도어, 유관사업으로의 브랜드 사업 확장을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영원무역의 글로벌 경영이 탄탄대로만 걷는 것은 아니다. 최근 동남아지역에 진출한 한국 의류기업의 노동자 처우 문제나 현지화 과정에서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영원무역도 지난해 큰 홍역을 앓았다. 방글라데시 공장에서 대규모 노동자 시위가 일어나 20세 여성노동자 1명이 진압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지고, 경찰 3명을 포함한 15명이 다치는 등 유혈사태가 발생한 것. 당시 영원무역 측은 “조정된 임금체계를 오해한 일부 근로자들의 반정부 시위”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2010년에도 최저임금 문제로 유혈 시위가 일어난 바 있어 불씨는 여전하다.

동남아공장 사회공헌·매출증대 집중


이 같은 정서 때문에 영원무역은 오래전부터 현지 사회공헌에 공을 들이고 있다. 영원무역 측은 “민간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드문 방글라데시에서 교육, 의료, 환경, 문화 등에서 사회공헌 사업을 펴고 있다”며 “이를 위해 기업 단독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비정부기구 등과 연계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방글라데시 공장 내에 68명의 전문의료 인력과 9명의 탁아 인력을 상주시키고 있다. 중국과 베트남에서는 공장 근로자들을 위한 영화관, 체육관 운영과 지역사회 축제를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성 회장은 향후 방글라데시 공장의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그는 “향후 방글라데시 생산기지는 연 20% 성장할 것이다. 2년 내에 방글라데시에서 수출 1조원 시대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유럽 등 선진시장의 주문이 폭주하면서 방글라데시 공장이 쉴 틈 없이 돌아가고 있기때문에 자신있게 말한 것이다. 영원무역 성장의 핵심인 방글라데시 생산기지에서 수출 1조원 시대가 열리면 영원무역은 매출 2조원대 시대를 맞게 될 전망이다.

성 회장은 평소 강조한다. “시장은 좁고 팔 곳은 부족하다. 시장을 좋을 때보다 나쁠 때가 더 많다. 매일 위기감 속에서 살고 있다. 조금만 잘못하면 매출 떨어지고 이익률 떨어지고, 시장에서 ‘벌’받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래서 지금도 밤 비행기 타고 와서 아침에 일한다.” 그는 지난 2월 6일 독일 뮌헨에서 개최된 국제스포츠용품박람회 이스포 뮌헨에 참석했다가 11일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섬유소재전시회 프리미에르 비죵을 참관했다. 물론 ‘적토마’ 팔콘 7X를 이용한 이동이었다.

- 글 조득진 포브스코리아 기자 / 사진 전민규 기자

201503호 (201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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